하소연 할 사람이 없어서요...

쓰니2020.09.08
조회318
그냥 생각나는 글이나 시 같은거 쓰다가 일기처럼 쓴거라...
중간중간 막 들어간 내용이나 말투가 좀 이상해도 이해해주세요...


사회와 엄마 아들과 남편은 제게 괴물이였고.
사회는 가시밭 길이였어요.
초5때부터 고3... 그때까지 왕따였어요.
친구는 항상 없었고 언제나 옳바른 이야기와 규칙을 따르기만 하는 학생이였어요.
가정은 저는 그냥 남이였어요.
아비란 인간은 사사건건 본인이 틀렸다고 지적받으면 날뛰었어요.
어린시절 식사 예절을 지켜달라는게 절 미워하는 이유였지요.
그냥 각자 따로 국을 덜어먹자, 쩝쩝거리지 말아달라 2가지 요구였어요.
지가 더럽냐고 하며 화내더군요.
저는 더럽다고 했어요. 남에 분비물 가득한 음식은 먹기 싫었거든요. 밥 그릇을 저한테 던질려고 하더군요.
저에게 장난을 치고 제가 화를 내면 절 때리기도 했어요.
유별난 자식이라고 넌 비정상적이라고 항상 말하셨어요.
엄마 아들은 친형제에요. 그냥 그 단어가 싫어요.
중학교쯤 가더니 절 툭하면 때리고 조롱했어요.
기억에 남는 말은
"난 저따위로 살면 이미 자살 했을거였는데"
"도데체 왜 사냐?"
언제나 멍든 몸으로 왕따인 학교에 가고.
집에오면  엄마 아들이 절 조롱하고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때렸어요.
애비랑 똑같이 저에게 틀린걸 지적받으면 난동을 피웠어요.
그시기 저는 죽는게 무서워 매일 울고 자살을 생각하고 또 무서워 울고.  반복되는 나날이였어요.
그 속에서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는 엄마였지요.
허나 커가며 점점 이상함을 느꼈어요.
내가 이렇 망가져가는데 변함 없이 곁에 있었거든요.
내가 아프하고 무너져 내려도 엄마의 태도는 그대로 였어요.
아파서 울고 비명을 질러도 잠시 눈을 둘뿐.
상황이 변하는 것은 없었지요.
엄마에 대한 사랑은 급격하게 변화하여 원망과 분노가 되었어요.
저 두사람이 내 인생을 망치는데 내 편인줄 알았던 엄마는 왕따당하는 절 지켜보는 아이들과 똑같은 방관자였죠.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그보다 난 모든것을 잃은 기분이였어요.
공허...
그 것만이 나의 삶이였죠.
언제나 교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어요.
등교부터 하교까지 오로지 독서만요.
삶은 나에게 고통을 주는 고문도구나 다름 없기에.
나는 그곳에서 얻을수 있는게 없었어요.
책은 나에게 사랑.우정.애뜻함.소속감을 주었어요.
현실에서는 없는 친구가 책속에 살았고.
아픈 내 맘을 돌봐주는 가족도 책속에,
누군가에 사랑에 온전한 삶을 되찾는 주인공의 이야기도 말이죠.
언제나 나는 가져본적 없는 감정이였어요.
그 속에서 나는 그들이 되어 살아간거죠.
허나 그 세계마저도 나를 지킬수 없던 시기는...
참담 했지요.
정신병원에 가고 싶다. 사는게 너무 힘들다. 살고싶다 통곡하며 간절하게 빌었던 시기.고1이였어요.
공허한 나는 학교창틀에 앉아서 바람을 맞는것도 좋아했어요.
다리를 밖에 내놓고 걸터앉아 바닥을 보았죠.
솔직히 몇번은 바닥을 향해 뛰어볼까 고민 했어요.
그럼에도 나의 세계가 되어준 도서관이 있었기에 뒤돌아 책을 읽으러 갔어요.
그 말을 들으신 어머니는...미친년이였죠.
무슨 심리상담한다는 교회사람 만나게 하더군요.
그녀의 말은 조금 위안이였지만 곧 나를 더 무너트렸어요.
나에 면전에 대고는 자신은 봉사하러 나온거라고 짖걸이더군요.
나는 그 말을 듣고 포기했어요.
나의 고통은 엄마에게 사춘기 따위였을 거에요.
그렇게 무너진 저는... 책속의 세상이 아닌 잠의 세계로 갔어요.
자고 일어나 밥을 먹고 잠들고,
깨어나서 다시 잠들고, 씻고 잠들고.
눈을 뜬 세상은 너무 아팠어요.
등교거부도 했어요.
하루 20시간 잠든 내가 너무 싫지만, 그 시기에는 가장 평온했어요.
이런 내 모습을 보고도 우리 가족은 절 병원에 데려갈 생각은 안하더군요.
가족의 일을 담임 선생님이 해주셨고.
저는 차가운 잠의 세계에서 따뜻한 대화로 잠시나마 세상에 묶어두셨어요.
그시기 가위를 무의식 적으로 팔에 비비고 있었거든요.
작은 상처를 내며 자해를 시작한 시기에요.
부모요? 당연히 몰랐죠.
이건 나중에 일인데 엄마 아들이 감옥에갔을때.
저는 한번도 자해를 안했고, 약도 없이 잘 살았어요.
허나 어머니는 그를 빼낼려고 노력했고 변호사를 써서 결국 꺼내오셨죠.
그가 돌아오고 한달만에 바로 시작되었죠.
손목을 커터칼로 베었어요.빠르게 여러번.
그것을  엄마한테 보여주며 말했죠.
저 녀석 데려오면 내가 다시 미친다고,나 분명 정상적으로 못산다고. 울면서 상처를 보여주고 새볔에 나갔어요.
그럼에도 애미는 문자3개만 남기고 절 안찾더군요.
나열하고나니 한심하네요. 이래도 항상 엄마를 챙겼다니.
다음날 저녁에 들어갔는데 사과는 커녕 아무일 없다는 듯이 행동했어요. 가증스럽죠?
상처받아도 엄마라고 여태 다시 화기애애 했다니.
제가 남들과 다른 스타일을 선도 할때는 옆에 스지도 못 하게 했어요. 부끄럽다니 창피해서 쪽팔린다니.
고3때 부터 시작 했어요. 아마 유튜브 1세대 남자 뷰튜버들? 그들과 거의 동시에 시작했어요.
머리도 기르고 꾸미고,전 확실히 그냥 꾸미는 남자입니다...
지인들 다니는 장소는 저랑 나란히 걷지도 않았어요.
애비는 친척들 모이는 장소에 꾸미고 있다고 머리채를 잡고 빰을 칠려다 할아버지가 말려서 넘어간 기억도 있네요.
암튼 이런 가족들하고 사는데 
무능한 전 아직도 그사람들 등골이나 뽑아먹어요.
학창시절 꿈은 가질수 없었어요.
살아있는 것. 그것이 고통인데 미래가 기대될리가요.
책속에 세계가 선사해준 거짓된 삶.
그것을 가져보고 싶은 미련이 절 살려뒀거든요.
언제나 저는 이렇게 말해요.
가족이 뭐 그렇게 중요하냐.
어차피 서류 한장뿐인 관계인데...
그럼 절 모를 사람들은 저보고 이상하다거나 매정하데요.
저에게 준건 언제나 돈과 상처 뿐이거든요.
그 돈이란 것도 그냥 중상 정도 가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