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모같은 엄마

쓰니202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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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슴체로 쓸게요 판님들

흙수저의 푸념이니 이런거 싫으시면 보지 않으시는 걸 추천드리며..

너무 사생활이라 악플은 자제 부탁드립니다.

 

엄마라고 하기도 싫음

물론 내가 죽으면 눈물이라도 한방울 흘릴 사람이 엄마고 이런 글을 올린다는게 내 얼굴에 침뱉기

인건 알고 있음. 근데 해외에서 너무 오랜만에 들어와서 이야기 할 사람이 없어서 써봄.

 

엄이라고 하겠음

 

성격을 설명하는게 너무 어려운데 내가 찾을 수 있는 제일 비슷한 말 : 말티즈 같은 성격임

동해번쩍 서해번쩍 하는 사람이라 정적인 자식들은 엄에게 의지하는 것도 있음

 

엄은 남아선호사상이 있는 전라도 집안이며 세대를 이어받아 2020년에도 내 남동생을 예뻐함

물론 그거 뿐이라면 상관이 없는데

아버지는 모계중심의 집안에서 자라 나를 엄청 예뻐했음

그게 불행에 시작이었을까.

 

엄은 머리를 자르기 싫다는 9살인 나를 데리고가 머리를 남자처럼 잘라버림

나랑 같이 썸(?)관계였던 남자애는 그 다음날 부터 나한테 말을 안걸었었던 것 같고

애들은 왜 머리를 잘랐냐고 한마디 씩 묻는데 대답을 잘 못했던 기억이 있음

그때부터 나의 격노함이 시작이 된 듯 아이라 매일 학교가면서 잊어는 버렸지만

20년이 더 흘러 내가 엄의 나이가 되고보니 아버지가 날 너무 예뻐해서

질투가 난 듯 함

 

내가 신보다 인간을 더 사랑하는 것도 죄라는 말을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있는데

그 말을 이해했다. 엄의 아빠 사랑은 치가떨릴 정도였던 것 같음

 

엄은 줄곳 나에게 (욕주의) __아 / ___아 / _같은년아 / ____아

니까짓년이 / 너같은 년은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서 죽여버려야 돼

그래서 너는 보지가 위아래로 쪽 찢어졌니?

 

이런 말들을 썼고 어린 나는 그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였으나 고쳐지는 것은 없었음

친척들이 물어보면 그냥~ 장난치는거지~ 엄마가 그런 말도 못하니??? 욕도 장난으로 하는거야

라고 말했던 듯 함

 

엄은 남아선호사상자 답게 내 남동생을 아주 예뻐했음

동생은 인형처럼 귀엽게 생기고 아버지처럼 온순한 타입의 어린이였고 지금은 30대

뚱남이 되었지만 엄은 아직도 우리 애기라고 부름

 

어디서 읽었는데 자식중에 누군가가 너무 예쁘면 그 외의 자식은 평범히 사랑하고

그 자식은 더 사랑하는 게 아니라, 특정 자식을 향한 사랑이 낙랑과 평강 뭐시기 같이

커져서 다른 자식들은 그 자식의 먹이를 빼앗는 도둑 년놈들로 보여서 꼴도 보기 싫다고

말을 했다는 어른이 있다더라

 

근데 그 말이 왜 내 마음속에 저장 되었는지

이때까지 내 인생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너무나 잘 이해되더라 이상하게도

엄의 삿대질과 욕설을 내 뱉을 때의 표정들

마치 귀신들린 사람이 굿을 하는 것 같음

 

나는 모두가 대학을 가는 88세대 답게 좋지않은 머리로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갔음

전공은 그지같지만 그래도 재밌어했음 아무도 진로상담을 해주거나 하질 않아서

그냥 대학에 갔다는 생각에 기뻤음

등록금은 다 학자금 대출 생활비는 호프집 알바, 콜센터 상담, 리셉션. 편의점에서

아니면 생활비 대출받아서 나한테 돈줄사람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냥 혼자 해결했음

한번은 버스탈 차비가 없어서 학교를 못갔고 생리대를 살 돈이 가끔 없었음

물론 엄빠가 해결 해 줄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그때 동생은 고딩이었고 졸업 후 배달알바를 하다가 지금은 제약회사 물류팀에서

근무하고 착해보이는 동갑내기랑 결혼을 함

 

나는 우연히 교포를 만나 해외로 이주했다가 이런저런 일이 있어 이혼을 생각하고 들어와 있음

그래서 7년만에 엄과 재회했는데

문제는 거기서 부터다.

 

엄과 나는 돈을 합쳐 집을 사기로 이야기를 한 후 알아보는데 계속 원하는 조건이 달랐음

아우

이 사람은 고집이 장난아닌 사람이었다 라는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나며

평온하고 아무일 없었던 내 일상에 다시 삿대질과 욕설이 난무하기 시작함

한달간 다툰 끝에 그럼 엄의 돈으로만 집을 사고 나는 거기들어가서 월세를 내고 살겠다

어짜피 다시 돌아갈 거니까 라고 한 후 며칠 조용히 지냈는데

엄의 머리속을 안들여다봐도 알것만 같았는데

엄의 말은 일단 내 돈을 빌려서 집을 산 후 너는 들어와서 월세 50을 내고 살아라

네 돈은 지금 사는 집이 팔리면 돌려주겠다 였음

 

근데 난 그게 왜그렇게 싫었을까

예전에 남편이 자기나라로 돌아가기 전에 직장: 도곡역 <-> 집: 홍대입구 에서 너무 멀었던 나는

남편과 같이 나가서 따로 산적이 있었는데

남편이 먼저 본국으로 들어가고 나는 3개월정도 한국에 남아있어야 해서

다시 엄의 집으로 간적이 있었고

엄의 집에는 엄과 남동생+그의 여친 이 함께 거주중이었는데

남동생이 나한테 어디서 그지같은게 굴러먹다가 들어와서 엄마한테 지랄이냐 라고 한적이 있음

물론 엄과 싸우고 있어서 그랬지만,

아무튼 나는 남편을 따라 들어갔고 물론 천원한장 받은적없고 원하지도 않았음

 

근데 여기 들어왔을 때 보니 없는 살림에도 돈을모아서 아들 결혼식을 시키고

남은돈을 다 아들을 주고 다시 돈을 모으고 모아 몇 천만원을 주었다고 하데

물론 남동생이랑 결혼을 해줘서 올케한테 고맙고 해주고싶은 마음은 알겠다.

 

엄과 엄의 남친까지 데리고 일본으로 미국으로 필리핀으로 여행을 다녔던 것도 생각이나고

근데 내가 미국에서 고심끝에 선물을 골라서 보내면

반응이 야 니가 보낸 신발 신었다가 넘어졌어~~!! (싸구려 아니고 30만원짜리 SAS..) 라던지

니가 보낸 옷들 별 볼일도 없더라 라던지

그런 것도 기억이 나고

 

나도 자식인데 집이 없는 내가 들어가서 3개월 있는다고 저런 말을 뱉는 동생이나

여기 와서 나한테 다시 니년때문에 내 아들이 대학에 못갔다고 귀신들린 듯이

다시 레파토리를 시작하는 엄을 보니까

내가 해외에서 명절때 가족들이 모여있는 거 보면 언젠가 나도 들어가면 저런 기억 만들 수 있을지

생각했던 내 자신이 한심하더라 엄의 노후계획도 세워보았고 내 딴에는 내 능력껏 엄에게

한달에 용돈을 얼마를 줘야겠다 계산을 해본 적도 많은데

 

아무튼

 

곰곰히 생각해 보면 딸은 그냥 출가외인이니까 사위돈을 빼돌려서 자기한테 명품백이나

사주고 남동생은 빚을 내서라도 내 모든 것을 다 줘야할 존재였던 것 같음

물론 지금 하는 꼴을 보면 남동생은 그거에 크게 불만이 없어보임

 

물론 그말도 맞다.

근데 왜 서운한지 이해할수 있는 분?

 

며칠전에 엄에게 말했다.

동생을 키울때 돈이 없어서 걔한테 못해줘서 마음이 아팠다는건 이해할 수 있겠는데

왜 니 년때문에 내 아들이 대학에 못갔다 라는 스토리는 변한게 없냐

당신이 등록금을 한 번 냈냐 아니면 나한테 용돈을 한 번 줬냐

시뻘건 얼굴로 나를 쳐다 보데 물론 내말을 안듣고 있었겠지 ㅋㅋ

그 다음 발언은 니 년때문에 못갔지!!!!!!!!!!!!! 였으니까 ㅋ

 

내 손에 십원한장 쥐어주지 않은 사람이 남동생에게 저렇게 하는 걸 보고살수가 없을것 같았다

그리고 내 돈은 무이자로 빌려가고 들어와서 50씩 월세를 내라고

다른 딸들은 백만원씩 준다고

하는 소리를 어................................. 듣다보니 이제는 안보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나가서 살면 월세는 그 정도 들겠지

얼마전에 환갑때 엄에게 무슨 선물을 원하냐고 했더니 금 다섯돈짜리 목걸이를

해달라고 했던 엄에게 나는 아무것도 안줬다.

그냥 내 마음이 그러라고 시켜서,

예전에는 돈이 없어서 못해줬는데 이제는 돈이 있어도 안해줄려고

아무것도 안 준 __이 낫지

뭘 줬는데도 __일 수는 없다.

 

엄에게 다시는 보지 말자고 했고 남동생에게도 니가 대학을 못간게 왜 항상 내탓이냐

라고 문자를 했는데 그 둘은 다음 날 웃으면서 통화를 하고 있었고

그냥 그러던지 말던지 식

 

그냥 할머니를 여행을 모시고 다닐걸 싶음

내 그지같은 삶도 엄은 부러워서 그랬던 건가?

부러워 할게 아무것도 없는 인생인데.

동생은 잘난 것도 없는 년이 라고 말했고 엄은 다리병신이 되서 왜 나한테 왔냐고 그러던데.

(무릎 물리 치료 중)

 

그들의 입장은 다를 수도 있겠지.

앞으로 20년은 안보고 살 수 있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