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집 규수들은 보시오

ㅇㅇ2020.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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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명절과 제사를 치르며 등골이 휘는 양반집 규수들은 이 글을 봅시다.

진짜 뼈대 있는 양반집에선 며느리를 절대(여자들을) 부려먹지 않습니다. 종가집 제사가 빡세다고요? 남자들에게 빡세겠죠... 여자 손 타면 부정탄다고 진짜 양반집 종가에선 여자 안 시킵니다. 또한 노후에 며느리에게 생활비를 받아서 써야 하기 떄문에 시댁에선 결코 며느리를 부려먹지 않습니다.(일정 기간이 지나가면 종가 관련 통장을 며느리에게 넘깁니다)


저는 신안동김씨의 선원파의 방계 여식입니다. 직계였으면 더 떵떵거리고 살았을 것 같습니다.
저희 친척들은 충청남도에 거의 몰려 살고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때부터 부모님께 늘 들었던 말이 있습니다.(엄마는 한산이씨)
"제대로 된 집안일수록 여자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저는 장녀였기 떄문에, 장녀버프를 엄청나게 받았습니다. 교육, 금전적인 면에서 남동생보다 오히려 더 큰 지원을 받았고 당연히 대학교육도 다 받았습니다. 대학원도 갔어야 했지만, 제가 거부했습니다. 담배는 남녀불문 건강상의 문제로 무조건 금지였고, 남동생과 차별 받은건 품행(나시티 안되고, 무릎 위 바지 안 됨)과 통금시각(21시 이후 귀가시 피바람) 정도였습니다.물론 대학을 서울로 가면서 그런건 나중에 모두 안드로메다로.

저희 엄마가 결혼하시고 약 10년 정도는 시집 살이를 조금 하신것 같긴 합니다만, 이 역시 30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심통맞은 성격으로 벌어진 일이었을 뿐... 저희집안은 원래 며느리 데려다 부려먹는 가풍이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돌아가신 친할머니도 풍앙조씨 여식으로 귀하디 귀한 양반집 딸 대접 받으면서 사셨다는 얘기를 들었었거든요. 정말 평생 떵떵거리고 사셨다고 합니다.

저희 친정은 명절이나 제사때 따로 차례상을 차리지 않습니다. 대부분 큰 행사는 절에 맡겼고, 소소한 제사는 큰집에서만 간단히 하시고 끝냅니다.
5년 전쯤에 조상님들 묘를 모두 이장해서 납골당으로 모시면서 자잘한 형식들은 모두 없앴습니다. 이 역시 집안 어르신들께서 "이제 시대가 바뀌었으니, 이 짐은 우리대에서 끝냅시다"라고 어르신들께서 정리하셨다고 하시네요.

결국 저는...제사나 차례 때 고통 받은 적이 없습니다...(동생이 장가가고 딱 1년만 전 부친거 빼고는요. 올케가 와서 한다는데 저도 해야죠...) 벌초야 남자들이 하는거니까 저는 패스.

그리고 저도 결혼을 했고(인동장씨 장남). 저희 시댁에서도 저한테 뭔가 딱히 시키지 않으십니다. (뼛속부터 경상도라 이 집은 여자들이 너무 차별 받아서 역으로 며느리를 편하게 해주신 케이스)
뭔가 하기를 바라지도 않으시고, 저희 친정 엄마가 "너도 가서 좀 일 해"라고 닥달하시지만, 시어머니께 용돈과 선물 드리는거로 퉁 치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 시댁도 차례와 제사로는 경상도 특유의 씨족중심 사고방식이 뿌리깊어서 어디가면 꿇리지 않는 집이었는데, 제가 시집오면서 굉장히 많이 간소화 되고 변했습니다. 촌수를 알 수 없는 친척까지 죄다 모이던걸 이제 안하시네요.


진짜 양반집이라면 며느리를 부려먹지 않습니다. 진짜 종년이 따로 있었을텐데, 종년 부려먹어야지 왜 같은 양반집에서 시집온 규수를 부려먹습니까...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양반들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양반들 절대 고리타분하지 않습니다. 세도를 유지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시대의 흐름을 꿰뚫었고 민감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깨인 사람이 정말 많았습니다. 다만 이권 앞에서 양심을 접고 이권을 택한 적이 많은 것이죠. 누구보다도 시대의 흐름을 빨리 읽고 깨인 사람들이 양반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자 못지 않게 늘 배워야 했고, 비슷한 가풍의 집과 혼인을 맺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12남매셨는데, 저희 아버지, 둘째 큰아버지, 막내고모가 깨인 분이셨습니다. 이 세 분의 공통점은 딸이고 아들이고 차별치 않으셨고, 그 자식들도 딸이고 아들이고 시대에 맞게 공부를 시켜서 지금은 다들 편하게 잘 삽니다. 시댁에서도 시집살이 안 당합니다. 왜냐면 가풍이 맞는 집과 혼인 맺으셨으니까요.

요즘 저희 친정은 명절이면 간단하게 식사만 하고 끝내시고, 골프치러 가시거나 해외여행 가십니다.
저희 시댁도 저한테 이래라 저래라 일해라 절해라 시키지 않으십니다.
물론 명절때 사돈끼리 저 통해서 서로 안부 여쭙고, 소소하게 선물 정도는 주고 받으십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경상도 시댁이 저를 편히 놔두는데는 남편의 역할이 컸고, 시부모님들의 품성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사는 지역이 그 지역이라 지금껏 그리 살아오셨을 뿐, 제가 시집간 이후로는 많이 간소화 되고 변하셨습니다.

일제시대 이후 이미 양반이란 말은 의미가 없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어느 미친놈이 요즘 세상에 "나 양반이야!"이러고 삽니까-0-...).
중요한건 그 사람이 얼마나 깨인 사람인가 입니다. 제대로 배우고(인성과 가정교육 포함) 시대를 빨리 읽어 거기에 재빠르게 적응하는게 중요한 것입니다.


혹시 아직도 시집살이나 종년노릇 하고 계신 분들이 계신다면... 돌상노무 집안이..라는 소리는 점잖게 넣어두시고(99%의 확률로 돌상노무 집안 맞을겁니다),
배우지 못 했거나, 배워도 어설프게 배운 주변을 고치셔야 합니다. 못 배웠어도 점잖은 분들 많습니다.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되면 고치시려 합니다.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이 시댁을 가르치려 드냐는 소리가 나오면 뿌리부터 돌상노무 집안이니 깨일 가능성 따위 없습니다. 잽싸게 버리시거나, 평생 안고 가시고....ㅜㅜ
아직 결혼하지 않은 규수들은 그 집이 양반인지 아닌지(ㅋ...)를 보시는게 아니라, 그 집안의 가풍을 보세요. 이 집안이 가정교육을 제대로 시켰는지 아닌지를 보셔야 합니다. 제대로 된 집이라면 시부모님들 모두 점잖으시고 자상하실겁니다.
잘 살고 못 살고의 문제도 아닙니다(물론 잘 사는 집이면 훨씬 덜 갈구는건 맞습니다. 건강관리하고 놀러다니느라 바쁘시거든요). 이건 그 분들의 인성 문제입니다.
가능성이 없어보인다면... 그냥 빠르게 판 접고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
그래야 결시친에 명절마다 하소연 글 올리는 종년팔자가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