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 남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어떻게 할래?

ㅇㅇ20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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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가 끝난 중3 말, 학교는 정말 재미있었어 쌤들은 수업시간에 영화를 틀어주셨고 너는 친구들이랑 둘러앉아 담요를 덮고 수다를 떨었지 남녀 구분 없이 모여 앉아서 마피아 게임을 하기도 하고 간식을 돌려 먹기도 했어 그 몽글몽글한 분위기를 즐기면서 너는 난생 처음 학교 가는 걸 좋아하게 됐어

그날도 넌 아침 일찍 등교하고 있었어 쌀쌀한 겨울 공기와 옅게 피어오르는 입김, 따뜻하게 몸을 감싼 롱패딩과 가벼운 가방까지 모든 게 완벽했어 매점에 들러 친구들이랑 나눠 먹을 간식을 산 뒤 교실로 올라갔음

그런데 뭔가 이상했어 복도가 평소보다 더 소란스러웠고 애들 목소리가 좀 묘하게 다른 느낌이었어 거기다가 입을 꾹 다물고 지나가던 애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거야 넌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교실 문을 벌컥 여는데, 갑자기 한꺼번에 소리가 물밀듯이 밀려오는 것 같이 귓가를 웅웅 울렸어

한동한 멍하니 서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단 자리에 앉았어 네 친구가 너를 부르길래 돌아봤는데 걔가 말하는 소리가 겹쳐서 들리는 거야

"야 ㅇㅇ아 우리 오늘은 다같이 무서운 얘기하기로 했어!”

'ㅇㅇ이 오늘 화장 잘 됐다 색 예쁘네’

너는 당황해서 친구를 쳐다봤어 그리고 대답했음

"어어… 고마워”

친구는 너를 이상하게 쳐다봤고 너는 급히 아냐 재밌겠다! 그러면서 화제를 돌렸어 하루 종일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고, 너는 그제야 네가 남의 생각을 읽는 초능력이 생긴 걸 알게 됐어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나자 너는 능력을 어느정도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어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와 생각하는 소리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고 누구 생각인지까지도 구분할 수 있었어 여러 가지 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는 것도 익숙해졌고 이젠 그게 없으면 허전할 정도였지

그 능력은 꽤 유용했어 학원 쌤이 오늘 숙제 안 해온 사람을 혼내실지 넘어가실지 미리 알 수 있었고 부모님이 오시는 걸 자동으로 알 수 있으니 밤마다 안심하고 몰폰을 할 수 있었어 그런 사소한 것들부터 시작해서 너를 싫어하는 애는 누구인지, 진심으로 너를 위해주는 친구는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것, 썸남이나 짝남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 등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 가끔 너를 예쁘다고 생각하는 남자애들이 있으면 우쭐해지기도 하고 걔네를 좀 더 의식하게 되기도 했지

이렇게 생각을 읽는 것의 재미에 푹 빠져 있는 상태로 중학생 생활이 끝났고 어느새 고등학교 입학일이 되었어 너는 설레는 마음으로 교복을 입고 가볍게 화장을 했어 생각을 읽는 능력이 있으니 인간관계가 더 쉬워졌고, 전과는 달리 친구에 대한 아무런 걱정이 없었어 너는 스스로 남과 다른 특별한 아이라고 생각했거든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했고.

딱 교실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예민하게 반 애들 생각을 훑어보는데, 다들 너에 대해 긍정적 반응이거나 별 관심 없었어 그래서 제일 가까이 앉은 애한테 인사를 했어 그리고 몇 마디 나누자 서서히 네 주변에 여자애들이 모였음 너는 역시 쉽다고 생각하며 자신만만하게 애들 생각을 읽고 거기에 맞는 반응을 해 주었어 너에 대한 애들의 호감도는 눈에 띄게 올라갔고 그럴 때마다 넌 승리감을 느꼈어

모든 게 잘 되어가고 있어서 기분이 좋은 와중에, 갑자기 어디선가 적의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어

'아, 재수없어’

너는 깜짝 놀라 생각의 주인을 찾아 두리번거렸고 단박에 눈이 마주쳤지 걔는 너를 보며 부정적인 생각들을 쏟아냈어 자기가 잘난 줄 아냐, 여우짓할 것 같이 생겼다, 저런 스타일 너무 싫다, 어쩜 저렇게 단순하냐 등등…

너는 처음 받아보는 이유 없는 미움에 기분이 확 나빠졌어 처음 보는 앤데 너를 왜 저렇게 싫어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 그리고 눈을 돌려 다시 너를 좋아해주는 다른 애들이랑 친해지려고 노력했어

그렇게 첫날을 보낸 후 둘째 날이 찾아왔어 교문으로 들어섰는데, 쎄한 공기가 느껴지는 거야 처음 보는 다른 반 애들이 너를 보며 수군거렸고 걔네가 생각하는 내용은 뭔가 이상했어

교실로 들어가서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걔네 사이에 너를 싫어했던 그 여자애가 자연스럽게 끼어있었어 애들이 너를 보는 눈빛도 눈에 띄게 달라졌고 다들 너를 피하기 급급했어

닥치는 대로 애들 생각을 다 들어보던 너는 너를 싫어했던 그 여자애가 애들 사이에 헛소문을 퍼뜨린 걸 알게 되었어 그 애가 한 거짓말 몇 마디는 순식간에 너를 쓰레기로 만들어 버렸어 다른 애들은 한 치의 의심없이 그 소문을 믿고 있었고, 넌 어떻게 네가 등교하기도 전에 다른 반 애들까지 그 소문을 알고 굳게 믿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

너는 생각을 읽을 수 있었음에도 다른 애들에게 해명할 자신이 없어졌어 너무 확고한 믿음과 너를 향한 적대가 너를 점점 위축시켰어 남들이 너에 대해 나쁜 생각을 하는 걸 알게 되는 건 생각보다 너무 힘든 일이었고 앉아서 책상을 정리하던 넌 결국 네 자리에 엎드리고 말았어

엎드린 네 등 뒤로 비웃음이 쏟아졌어 실제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조소 어린 말들뿐만 아니라 걔네가 너에 대해 생각하는 것까지 듣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지 연예인들이 받는 악플을 누가 실시간으로 귀에 읽어주는 것 같았어

하루 종일 학교 어디를 가든 애들은 너를 보고 네 얘기를 했고, 소문은 점점 과대포장돼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어 그렇게 따돌림을 당하게 된 너는 학교 가는 매일매일이 지옥 같았어 자존감도 점점 낮아지고 생각을 읽는 능력을 가진 것을 원망하게 되었어 너를 맨 처음 싫어했던 그 여자애는 물리적으로까지 너를 괴롭히기 시작했지

2주가 지난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다 잠이 든 너는 종례가 끝나고 나서야 눈을 떴어 텅 빈 교실에 앉아 있는데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나는 거야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일이 이렇게 된 건지도 모르겠고 남들한테는 없는 초능력까지 있는데 전혀 활용을 못하고 있는 네가 스스로 한심했어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의 생각이 읽혔어

'억울해? 그러게 나대지 말았어야지’

그 여자애였어. 첫날부터 너를 싫어했던 걔.

너는 뒤로 홱 돌아 그 애를 똑바로 노려봤어 너도 모르게 속으로 욕을 하고 있었지 그러자 그 여자애가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어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애들이 다들 욕할 때.”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어 쟤가 내가 생각한 걸 어떻게 아는 거야? 그러자 걔가 생각하는 게 다시 들렸어 씨익 웃는 미소가 소름끼쳤어

'야 나도 사람들 생각 다 들려. 너만 있는 능력 아닌데 어디서 잘난 척이야’

너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어

 

이런 상황에서 너네는 어떻게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