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 보면 백제 아신왕 때 태자 전지를 일본에 인질로 보낸 기록이 있고 백제 멸망 무렵에도 왕자 부여풍이 일본에 인질로 있다가 왕으로 파송된 기록이 나옴. 백제는 멸망할 때까지 일본에 왕자를 인질로 보낸 사실이 남의 역사서도 아닌 우리 역사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음. 광개토대왕 때 일본군이 고구려 영토인 황해도 지역에 침입한 기록이 있고 신라도 약소국이라 일본에 인질을 보냈었는데 그것이 유명한 박제상 이야기~ 일본은 백제, 신라보다 더 강했다. 한국 교과서는 이것을 은폐하고 왜곡하고 있음. 일본처럼 우리도 역사왜곡을 해왔다!
「웅략천황 23년(A.D 479년) 여름 4월 백제의 문근왕이 훙하였다. 천황이 곤지왕의 다섯 아들 중 둘째 말다왕이 젊고 총명하므로 칙하여 궁중에 불렀다. 친히 머리를 쓰다듬으며 타이르심이 은근하여 그 나라의 왕으로 하였다. 무기를 주고 아울러 축자국의 군사 500인을 보내 백제국까지 호송하였다. 이를 동성왕이라 한다. 二三年夏四月 百濟文斤王薨 天王以琨支王五子中第二末多王 幼年聰明 勅喚內裏 親撫頭面 誡勅慇懃 使王其國 仍賜兵器 幷遣筑紫國軍士五百人 衛送於國 是爲東城王」日本書紀 雄略天皇紀 23年條
한국인의 백제, 일본사 왜곡~
백제 아신왕 때 태자 전지를 일본에 인질로 보낸 기록이 있고
백제 멸망 무렵에도 왕자 부여풍이 일본에 인질로 있다가
왕으로 파송된 기록이 나옴.
백제는 멸망할 때까지
일본에 왕자를 인질로 보낸 사실이 남의 역사서도 아닌
우리 역사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음.
광개토대왕 때 일본군이 고구려 영토인 황해도 지역에 침입한 기록이 있고
신라도 약소국이라 일본에 인질을 보냈었는데 그것이 유명한 박제상 이야기~
일본은 백제, 신라보다 더 강했다. 한국 교과서는 이것을 은폐하고 왜곡하고 있음.
일본처럼 우리도 역사왜곡을 해왔다!
「웅략천황 23년(A.D 479년) 여름 4월 백제의 문근왕이 훙하였다. 천황이 곤지왕의 다섯 아들 중 둘째 말다왕이 젊고 총명하므로 칙하여 궁중에 불렀다. 친히 머리를 쓰다듬으며 타이르심이 은근하여 그 나라의 왕으로 하였다. 무기를 주고 아울러 축자국의 군사 500인을 보내 백제국까지 호송하였다. 이를 동성왕이라 한다.
二三年夏四月 百濟文斤王薨 天王以琨支王五子中第二末多王 幼年聰明 勅喚內裏 親撫頭面 誡勅慇懃 使王其國 仍賜兵器 幷遣筑紫國軍士五百人 衛送於國 是爲東城王」日本書紀 雄略天皇紀 23年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