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 조금 지난 후, 갑자기 한 쪽눈에 백내장이 찾아옴. 바로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하였으나, 다른 한쪽 눈에 백내장이 옴. 다른 한 쪽눈도 수술을 하였으나, 1차 수술했던 눈에 백내장이 재발함.사시교정 수술도 받았음. 쓴이는 아기 때 총 3번의 눈수술을 받음 그리고 2차 수술했던 눈에도 백내장이 재발-> 양쪽 눈 백내장인 채로 살아감. 엄마는 현대의학으로 내 병을 고칠 수 없다고 판단했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함
-초등시절 아빠는 시외버스터미널 버스기사가 되셨음. 그리고 엄마에게 비디오방을 차려줌 덕분에 쓴이는 초등시절을 많은 친구들과 행복하고 즐겁게 보냈음.ㅎ 엄마는 비디오가게 문을 닫아놓고 교회행사에 다니는 일이 잦았음.
-중등시절 아빠는 버스노조 대모에 적극 동참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ㅅㅋㄴㅇ트럭을 한대 사서 운전수 일을 하심. 일이 많이 고됨. 엄마는 밤낮으로 교회행사에 참여하기 시작함.
- 쓴이의 중학교생활은 너무 암울했음. 돋보기 안경을 쓰고 다니면서 괴롭힘을 많이 당함 수시로 안경을 벗기고 보이는지 안보이는지 실험을 당하고, 떄려도 누가 떄렸는지 모르므로 많이 맞았음. 맨 앞자리에 앉아도 칠판이 안보여서 짝꿍이 많이 도와줬음(선생이 시킴). 고마운 마음에 마음을 열었는데. 볼펜으로 팔을 간질러달라는둥->도와주는 값으로 돈을 달라는둥. ->새로운 격투기술의 샌드백으로 구타도 거의 매일 당함-> 나중에는 나를 매일 때리는 고정적인 무리들이 생김.
-아빠는 교회에 열심인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고 교통사고가 자주 나서 돈을 많이 물어주고,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자 그 화살이 엄마에게 향하며 점점 폭력적인 성격이 됨. -집에 아빠가 있는 날에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면. 엄마가 교회행사를 마치고 저녁늦게 귀가하면 아빠는 부엌칼을 들고있다가 현관으로 던졌음. 그리고 다시 들어오면 폭력을 일삼았고 한살어린 남동생은 울며 싸움을 말렸고 그 와중에 나는 반복되는 괴로운 일상을 피하기 위해 방문을 닫고 컴퓨터 게임을 했음. 엄마는 이것을 핍박으로 여겼는지. 교회 권사의 말을 듣고 신용카드로 옷을 몇백만원치 산다던지. 교회에 헌금을 많이 했으며 많은 돈을 대출까지 받아서 했음
-고등시절 중학교보단 나았음. 몇몇 일진무리가 아주 가끔 떄리거나 시험기간에 교과서를 뻇어가긴 했지만. 견딜만 했음.중학교 때 내 짝궁이었던 놈(내 인생에서 얘가 가장 싫음)도 우연히 같은 고등학교로 올라왔지만. 학과라는 개념이 있어서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음(이건 너무 다행)나는 학교라는 곳이 너무도 싫었기 때문에.아프다는 이유로 조퇴를 밥먹듯이 했음. 내가 생각해도 나는 아픈연기의 달인이었음 졸업할 때 통지표? 그런 걸 보니 조퇴일수가 약 130일정도 였던걸로 기억함(가물가물)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이었던 것 같음.
-가정의 자산은 점점 줄어들었음.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집에 평수가 점점 줄어들어서 엄마와 남동생과 내가 한방에서 같이자고 아빠가 혼자 따로 한방에서 자는 생활이 됨 아빠는 일을 구했다가 금방 그만두기를 반복. 일을 안나가는 날이 많아졌고 그 와중에도 가정폭력은 계속됨.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떄 집에 유리문이 박살나면서까지 엄마가 맞고 잇었는데. 내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처음으로 아빠를 주먹으로 때림. 아빠는 그 일로 충격을 받았는지. 이후로 폭력은 행사하지 않았지만. 폭언은 더욱 심해짐.
-이런 생활 속에 나이가 들어 고등학교 졸업할 떄쯤이 됐던 것 같음. 하나 기억에 남는건. 같은 반 여자아이들이 나랑 같이 졸업사진에 나오는 것이 싫다고 선생님에게 뗴를 쓰는걸 보고. 나는 슬쩍 반에 돌아가 혼자 울었던 것이 기억남.ㅎ
-집에 돈이 하나도 없었지만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에 갈 수 있게 됐음. 그러나 아빠가 내 이름으로 스카이라이프 시청료를 몇달 연체했기 떄문에 그게 걸림돌이 되어 대출자격이 안된다고 했음. 그래서 1년뒤에 대학을 가게됨. 나는 1년동안 알바를 했음. 홈플러스 알바, 희망근로 등.
그러나 돈을 모으진 못했음. 내 알바비가 고스란히 집안 생활비가 됨. 1년동안 생계유지만 한 뒤 대학을 들어감. 실업계 특별전형으로 내 고등학교 성적과 집안사정으로 등록금90프로 면제가 되는 전문대로 입학을 했음. 제대로 된 옷한 벌 사본 적이 손에 꼽았고, 자기 자신에게 너무나 관심이 없던 난, 매일 같은 옷을 입고 학교를 감. 사람도 너무 사귈 줄을 몰라서 학생들이 나를 기피하는게 느껴졌음. 집에선 용돈을 전혀 받을 수 없었는데. 교과서, 각종 회비, 식비 등을 충당할 돈이 없어서 야간 택배알바를 뛰었는데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해도 수업시간에 졸게 될 수 밖에 없었음. 친구도 없었고, 생계유지도 되지 않았기 떄문에 한학기 다니고 자퇴함.
-21살이였음-
(*)글을 적다보니 이 글을 왜 적고 있는지 의문이 생기고 귀찮아져서... 댓글에 한명이라도 다음 이야기 궁금하다는 사람이 있으면 2편도 올릴게요.
31살. 알바몬의 인생사 1
야간 편의점 카운터에 앉아 문득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글을 써봅니다.
이런 글을 처음이라 두서가 음쓰므로 음슴체 써도됨? ㅇㅇㄳ
-1990년 대구의 큰 병원에서 출생하였음.
-아빠는 레미콘 기사, 엄마는 가정주부로 부족하지 않은 생활이었음.
-돌이 조금 지난 후, 갑자기 한 쪽눈에 백내장이 찾아옴. 바로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하였으나,
다른 한쪽 눈에 백내장이 옴. 다른 한 쪽눈도 수술을 하였으나,
1차 수술했던 눈에 백내장이 재발함.사시교정 수술도 받았음.
쓴이는 아기 때 총 3번의 눈수술을 받음
그리고 2차 수술했던 눈에도 백내장이 재발-> 양쪽 눈 백내장인 채로 살아감.
엄마는 현대의학으로 내 병을 고칠 수 없다고 판단했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함
-초등시절 아빠는 시외버스터미널 버스기사가 되셨음. 그리고 엄마에게 비디오방을 차려줌
덕분에 쓴이는 초등시절을 많은 친구들과 행복하고 즐겁게 보냈음.ㅎ
엄마는 비디오가게 문을 닫아놓고 교회행사에 다니는 일이 잦았음.
-중등시절
아빠는 버스노조 대모에 적극 동참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ㅅㅋㄴㅇ트럭을 한대 사서 운전수 일을 하심. 일이 많이 고됨.
엄마는 밤낮으로 교회행사에 참여하기 시작함.
- 쓴이의 중학교생활은 너무 암울했음. 돋보기 안경을 쓰고 다니면서 괴롭힘을 많이 당함
수시로 안경을 벗기고 보이는지 안보이는지 실험을 당하고,
떄려도 누가 떄렸는지 모르므로 많이 맞았음. 맨 앞자리에 앉아도 칠판이 안보여서
짝꿍이 많이 도와줬음(선생이 시킴). 고마운 마음에 마음을 열었는데.
볼펜으로 팔을 간질러달라는둥->도와주는 값으로 돈을 달라는둥.
->새로운 격투기술의 샌드백으로 구타도 거의 매일 당함->
나중에는 나를 매일 때리는 고정적인 무리들이 생김.
-아빠는 교회에 열심인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고
교통사고가 자주 나서 돈을 많이 물어주고,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자
그 화살이 엄마에게 향하며 점점 폭력적인 성격이 됨.
-집에 아빠가 있는 날에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면.
엄마가 교회행사를 마치고 저녁늦게 귀가하면 아빠는 부엌칼을 들고있다가 현관으로 던졌음.
그리고 다시 들어오면 폭력을 일삼았고
한살어린 남동생은 울며 싸움을 말렸고 그 와중에 나는 반복되는 괴로운 일상을 피하기 위해
방문을 닫고 컴퓨터 게임을 했음. 엄마는 이것을 핍박으로 여겼는지. 교회 권사의 말을 듣고
신용카드로 옷을 몇백만원치 산다던지. 교회에 헌금을 많이 했으며 많은 돈을 대출까지
받아서 했음
-고등시절
중학교보단 나았음. 몇몇 일진무리가 아주 가끔 떄리거나 시험기간에 교과서를 뻇어가긴 했지만.
견딜만 했음.중학교 때 내 짝궁이었던 놈(내 인생에서 얘가 가장 싫음)도 우연히 같은 고등학교로 올라왔지만. 학과라는 개념이 있어서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음(이건 너무 다행)나는 학교라는 곳이 너무도 싫었기 때문에.아프다는 이유로 조퇴를 밥먹듯이 했음. 내가 생각해도 나는 아픈연기의 달인이었음 졸업할 때 통지표? 그런 걸 보니 조퇴일수가 약 130일정도 였던걸로 기억함(가물가물)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이었던 것 같음.
-가정의 자산은 점점 줄어들었음.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집에 평수가 점점 줄어들어서
엄마와 남동생과 내가 한방에서 같이자고 아빠가 혼자 따로 한방에서 자는 생활이 됨
아빠는 일을 구했다가 금방 그만두기를 반복. 일을 안나가는 날이 많아졌고
그 와중에도 가정폭력은 계속됨.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떄 집에 유리문이 박살나면서까지
엄마가 맞고 잇었는데. 내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처음으로 아빠를 주먹으로 때림.
아빠는 그 일로 충격을 받았는지. 이후로 폭력은 행사하지 않았지만. 폭언은 더욱 심해짐.
-이런 생활 속에 나이가 들어 고등학교 졸업할 떄쯤이 됐던 것 같음.
하나 기억에 남는건. 같은 반 여자아이들이 나랑 같이 졸업사진에 나오는 것이 싫다고
선생님에게 뗴를 쓰는걸 보고. 나는 슬쩍 반에 돌아가 혼자 울었던 것이 기억남.ㅎ
-집에 돈이 하나도 없었지만 학자금 대출을 받아 대학에 갈 수 있게 됐음.
그러나 아빠가 내 이름으로 스카이라이프 시청료를 몇달 연체했기 떄문에
그게 걸림돌이 되어 대출자격이 안된다고 했음. 그래서 1년뒤에 대학을 가게됨.
나는 1년동안 알바를 했음. 홈플러스 알바, 희망근로 등.
그러나 돈을 모으진 못했음. 내 알바비가 고스란히 집안 생활비가 됨.
1년동안 생계유지만 한 뒤 대학을 들어감.
실업계 특별전형으로 내 고등학교 성적과 집안사정으로
등록금90프로 면제가 되는 전문대로 입학을 했음.
제대로 된 옷한 벌 사본 적이 손에 꼽았고, 자기 자신에게 너무나 관심이 없던 난,
매일 같은 옷을 입고 학교를 감. 사람도 너무 사귈 줄을 몰라서
학생들이 나를 기피하는게 느껴졌음. 집에선 용돈을 전혀 받을 수 없었는데.
교과서, 각종 회비, 식비 등을 충당할 돈이 없어서 야간 택배알바를 뛰었는데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 해도 수업시간에 졸게 될 수 밖에 없었음.
친구도 없었고, 생계유지도 되지 않았기 떄문에 한학기 다니고 자퇴함.
-21살이였음-
(*)글을 적다보니 이 글을 왜 적고 있는지 의문이 생기고 귀찮아져서...
댓글에 한명이라도 다음 이야기 궁금하다는 사람이 있으면 2편도 올릴게요.
참고로 2편은 개인적으론 비교도 안되게 암울합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