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3:28,2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 하느니라 하시니”
디모데전서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이러한 구절들로 현 시대의 목사들과 부흥사들이 성도들을 협박하여 그 진의를 왜곡하고, 오히려 성령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일이 많다. 즉, 목사나 부흥사의 말(자신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만)을 순종하지 않으면,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고, 그 죄는 크며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하여 성도들은 두려움에 떨고 믿음의 확신이 흔들리며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어떤 성도는 성령훼방죄를 가르쳐주려고 해도 자신의 목사가 옳다했음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틀리지 않았고 오히려 진리를 가르쳐 주려고 하는 자가 성령을 훼방한다고 한다.
본문에서 주님은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 모든 죄악 중에 최악의 범죄라고 선언하셨다(Our Lord declares blasphemy against the Holy Ghost to be more heinous than all other sins). 성령훼방죄가 다른 모든 죄보다 심각한 것은 성령께서 그리스도보다 우월하시기 때문이 아니다. 일단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면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자들은 무지를 근거삼아 핑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훼방’이 단순히 성령의 본체에만 관련되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그의 은혜에 관련된다는 것이다(What is here said about blasphemy does not refer merely to the essence of the Spirit, but to the grace which He has bestowed upon us).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단호한 악의로써 대항하여 싸우는 자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훼방한다고 볼 수 없으나, 우리가 우리들 중에 거하시는 성령을 소멸하고자 고의적으로 노력할 때만 이러한 불경죄를 범하게 된다(This kind of sacrilege is committed only when we knowingly endeavor to extinguish the Spirit who dwells in us).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시함에 있어서 우리는 성령님께 직접적으로 무례를 행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은 성령으로부터 나오며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역행하여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얕보는 자들은 오로지 성령을 훼방하고 있는 것 외에 무엇이겠는가(Why is this, but because those only are blasphemers against the Spirit, who slander his gifts and power, contrary to the conviction of their own mind?).
히브리서 6장 6절에 말하는 ‘타락한 사람’이 그러한 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그 빛을 가리고 하늘의 맛 또는 은사를 빼앗고, 성령의 참여를 거역하는 자들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부인하는 일이다. 즉, 그들은 전에 자신들이 받아들였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떠난 배교자들이다. 이런 일은 성령에 대해서 범죄하지 않는 한 아무에게도 일어나지 않는다(This happens to no one but to him who sins against the Holy Spirit).
바울은 이 죄를 율법의 첫째 판에 국한시키고 있으며 주님은 ‘훼방’이란 말로 한 가지 특정의 죄악을 명백히 가리키고 계심과 동시에 이 특정의 죄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직접적인 대항임을 보여주고 계신다. 둘째 돌판에 대한 위반은 그것이 고의적이라 하더라도 용서를 받지만, 첫째 돌판을 알면서 고의적으로 침해하는 자는 성령에 대해서 죄를 범하는 자이다(Transgressions of the second table, although they are voluntary, are forgiven; but he who knowingly and willingly breaks the first table sins against the Holy Spirit, because he is in direct opP0SITION to God). 그러므로 성령훼방죄란 율법의 첫째 돌판을 위반함으로써 하나님께 직접 반역하는 것이요, 진리에 대한 악의적인 배척인 것이다.
또한, 히브리서 10장 26절에서 말하는,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자들이 그러한 자들이다. 진리를 맛보고 은사를 받았으면서도, 돌밭에 뿌려진 시처럼, 보편적인 배교에 의해, 그들이 성령에 의해 그들의 양심에 확신되었던 그들의 진리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박해하거나 반대하면서, 악의적이고 악의에 차서 비난함으로 죄를 짓는 자들은 성령을 훼방하는 자들이다. 즉, 유한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상대로 고의적인 전쟁을 수행하며, 그 결과 그들에게 제공되고 있는 성령의 빛이 말살되어 버릴 때에만 성령에 대한 죄가 범해지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For men commit the sin against the Holy Spirit, when they undertake a voluntary war against God in order to extinguish that light of the Spirit which has been offered to them).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하나님께 이미 버림받은 한 가지 표징이다(Blasphemy against the Spirit is a token of reprobation). 그러므로 이 죄에 빠진 자는 버림받을 영을 받았다고 말할 수가 있다(롬 1:28). 진실로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그같이 두려운 죄악에 자신을 허용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며, 반면에 그 죄악에 빠진 자는 재기할 수 없다고 우리는 주장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지혜와 공의로운 심판으로 자기 은혜를 경멸하는 죄악을 응징하신다. 하나님은 버림받은 자들의 심령을 강퍅케 하셔서 회개의 의욕을 갖지 못하게 하신다.
물론 여기에서 한 번 깨우침을 받은 자들이 믿음에서 떨어지는 것은 치명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일정한 진리를 공격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에서 경고를 주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인내로 굳건히 서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이루어가기를 우리를 완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그리스도께 간구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의 모든 죄로부터 해방을 초래하였으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그 죄로부터 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용서받지 못하는 죄에 대해서 특별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소위 "성령훼방죄"라고 부릅니다.
(중략) “이미 자신이 성령훼방죄가 아닐까 걱정하는 분이라면 그 자체로 벌써 성령훼방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령훼방죄는 성령의 뜻을 알면서도 고의나 악의적으로 죄를 짓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즉 성령훼방죄에 해당되는 죄는 회개를 수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근심을 한다거나 양심에 찔림을 받아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거나, 고의적이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즉 성령훼방죄가 아닙니다.”
그 이유를 성경적으로 설명드립니다.
"훼방"이란 말은 헬라어 "블라스습헤미아"로써 성경에서는 주로 "참람, 훼방"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 원래의 의미는 중상(특히 하나님에 대항하는), 참람(신적위엄을 손상시키는)을 말합니다. 바울은 딤전1장 13절에서 자신을 "훼방자"였다고 말하는데, 그 단어는 "블라습헤모스"라는 형용사로서 같은 어원을 갖습니다. 만일 전에 성령을 훼방한 죄가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바울은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1:13)
바울은 자신이 훼방자였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한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은 긍휼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기독교인이 되기 이전에 고의나 악의가 아닌 성령훼방죄에 대해서는 우리는 죄사함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딤전1:13의 기록처럼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한 성령훼방죄"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기독교인들을 강제로 잡아 하나님을 "모독"한 사람이었습니다.(행26:11) 그러나 바울이 구원을 받지 못하였으며, 죄사함을 받지 못하였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블라스헵메오)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행26:11)
윗 본문은 바울이 다메섹을 가기 이전, 즉 예수를 만나기 직전의 기록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형벌하였으며 잡아 가두는 일을 담당하였으며,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였고, 그 "모독하다"는 단어는 "블라스헵메오"로서 앞에서 언급한 단어와 동일한 어원을 갖는 동사입니다.
즉 결론적으로, 성령훼방죄는 그리스도인이면서 고의와 악의로 성령을 참람하게 모욕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한때 이단이나 사아비집단에 속해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철저하게 뉘우치고 회개한 사람은 더 이상 성령훼방죄에 속하지 않습니다.
바울도 성령훼방과 모독죄를 범하던 때에는 유대교에 속하여 있었습니다. 즉 성령훼방죄는 단지 진리를 의심하거나 그것을 부정하는 자체를 말하거나 과거의 잘못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회개를 거절하고, 양심과 성령의 조명을 고의와 악의로 거절하며 악행하는 현재의 경우 말합니다.
만일 누군가가 그러한 성령훼방죄를 범하지 않았을까 두려워하며 그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번민하며 기도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성령훼방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기독교는 과거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며, 현재의 상태인 믿음을 확증합니다. 그러나 만일 자신이 현재에도 성령의 조명을 받으면서도 성령을 훼방하며 하나님의 아들을 욕되게 하는 자라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의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교회를 다녔다가 한때 이단에 미혹된 적이 있었고, 다시 회개하여 돌아온 사람은 성령훼방죄가 아닙니다. 아무리 과거에 교회를 다녔지만, 그 당시의 신앙이 확실한 성령의 조명 안에 있었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가 이단에 미혹된 것은 "알지 못하고 한 실수"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단교회에 빠졌을 때에 예수를 모욕하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고의적으로 행한 일이 아니었다면(예를 들어 성경적인 지식이 부족하였거나, 제대로 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현재 올바른 믿음을 갖고 진정으로 회개하였다면,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몰라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기독교 확실한 신앙관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 (극단적인 예를 들면 돈이나 여자등 다른 목적을 위하여) 고의적인 목적을 갖고 이단으로 갔다면, 그는 다시 돌이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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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훼방죄 4편(결론)---교회론적 적용
3. 개혁파 교회의 최종 결론
1) 불신앙에 대한 엄중한 경고와 책망.
개혁주의에서 성령훼방죄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매우 심각한 어떤 죄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본문이 말해주지 않는다. 즉, 용서 받지 못하는 무서운 죄가 분명 있으나, 그것이 어떤 죄인지는 확정적으로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죄에 대한 지속적인 각성과 긴장을 놓지 않게 하였다. 따라서 개혁주의에서 성령훼방죄와 그 특정 대상자로서 적그리스도를 해석할 때는 아주 주의하고 조심해야 한다. 성령훼방죄와 사망에 이르는 죄의 실체는 분명히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고,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이 분별하거나 확정하지 않는다. 특별히 적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은 전체 교단의 판단과 역사적 판단 속에서 신중을 기하여 교회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때에 판단한다.
2) 오늘날 종교지도자들에게 주어지는 엄중한 경고
마태복음 12장30절은 성령훼방죄와 연관하여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고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엄중히 경고했다. 이처럼 성령훼방죄는 구원의 은혜에 대한 지속적인 반대와 진리에 대한 곡해와 오류를 통해서 방해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더욱 많이 노출된다. 복음서는 성령훼방죄를 두 가지로 풀어서 경고한다. 첫째는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 않는 죄들이며, 둘째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지 않고 오히려 방관하며, 곡해하며, 지연시키며 방해하여 교회를 무너뜨리는 죄들을 경고한다. 오늘날 자유주의나 WCC나 새관점학파처럼 기독교의 중요한 가치들을 지속적으로 훼손하고, 변형하고, 방해하면 이런 경고를 받을 수 있다.
3) 회개를 통한 용서의 확증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
성령훼방죄에 대한 인식을 너무 강하게 생각한 청교도들 중에는 용서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초점을 지나치게 말하여 용서 받을 수 있는 상태를 너무 엄격하게 제한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즉, 회개의 조건을 너무 높고 까다롭게 하여 죄에 대한 용서의 확증을 갖지 못하도록 했다. 아무리 죄의 엄중함과 심각함을 경고하고 강조한다 할지라도 회개하는 자에게조차 용서의 확증을 지나치게 축소시키면 안 된다. 회개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완고함을 보이는 자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용서 받지 못하는 죄가 있다라고 엄중히 경고하면서 심판에 대한 엄중한 책망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에게는 아낌없이 복음을 통한 용서를 제시해야 한다. 즉, 회개하는 자에게는 용서의 확증을 강조하되, 지속적으로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엄중한 경고를 제시하는 균형을 갖추는 것이 개혁주의 방식이다. 어거스틴은 “아무리 작은 죄도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가고, 아무리 큰 죄도 회개하면 용서받는다.”라고 충고하였다. 또한 요한일서 1장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는 말씀도 기억해야 한다.
4) 성령훼방죄와 성령을 근심케 하는 죄는 구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훼방죄와 성령을 근심케 하는 죄를 구별하지 못해서 큰 혼란을 겪는다. 신자는 자신의 죄 때문에 때로는 성령을 근심케 하는 죄를 짓고 책망을 받는다. 하지만 신자는 사망에 이르는 성령훼방죄를 범하여 이신칭의가 취소되는 최종적 타락에 빠지는 않는다. 성화에 대한 책망이 지나쳐 칭의가 취소되는 것처럼 경고하면 안 된다. 아무리 잘못을 크게 범해도 칭의가 취소되는 것처럼 경고하면 구원론 전체가 파괴된다. 항상 성화적 책망으로 자제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성도는 자신의 죄 때문에 성령을 근심케 하는 죄는 범할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조 17장 3항에서 “그럼에도 성도들은 사단과 이 세상의 유혹과 그들 안에 남아 있는 부패의 우세함과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들을 게을리 함으로 극심한 죄에 빠질 수 있으며, 그 결과 얼마 동안 죄에 빠져 있기도 한다. 그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고, 그의 성령을 슬프게 하며, 그들이 받은 은혜와 위로 중 일부를 빼앗기게 되고, 그들의 마음이 강퍅해지며, 양심은 상처를 입고, 다른 사람을 해치고 넘어지게 하며, 그들 자신에게 일시적 심판을 불러 온다.”
또한 18장 4항에서도 “참된 신자들이라도 구원의 확신이 종종 여러 가지 방법으로 흔들리고, 약해지며, 일시적으로 중단될 수 있다. 이것은 신자들이 구원의 확신을 유지하는 것을 게을리하고, 양심을 상하게 하고,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특별한 죄에 빠지며, 돌발적이거나 강렬한 유혹을 받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얼굴빛을 거두시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도 어두움 가운데 걸으며 전혀 빛을 보지 못하게 방임하여 두시기 때문이다.”라고 경고한다.
성령훼방죄'에 대하여
성령훼방죄란?
막 3:28,2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 하느니라 하시니”
디모데전서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이러한 구절들로 현 시대의 목사들과 부흥사들이 성도들을 협박하여 그 진의를 왜곡하고, 오히려 성령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일이 많다. 즉, 목사나 부흥사의 말(자신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만)을 순종하지 않으면,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고, 그 죄는 크며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하여 성도들은 두려움에 떨고 믿음의 확신이 흔들리며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어떤 성도는 성령훼방죄를 가르쳐주려고 해도 자신의 목사가 옳다했음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틀리지 않았고 오히려 진리를 가르쳐 주려고 하는 자가 성령을 훼방한다고 한다.
본문에서 주님은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 모든 죄악 중에 최악의 범죄라고 선언하셨다(Our Lord declares blasphemy against the Holy Ghost to be more heinous than all other sins). 성령훼방죄가 다른 모든 죄보다 심각한 것은 성령께서 그리스도보다 우월하시기 때문이 아니다. 일단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면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자들은 무지를 근거삼아 핑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훼방’이 단순히 성령의 본체에만 관련되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그의 은혜에 관련된다는 것이다(What is here said about blasphemy does not refer merely to the essence of the Spirit, but to the grace which He has bestowed upon us).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단호한 악의로써 대항하여 싸우는 자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훼방한다고 볼 수 없으나, 우리가 우리들 중에 거하시는 성령을 소멸하고자 고의적으로 노력할 때만 이러한 불경죄를 범하게 된다(This kind of sacrilege is committed only when we knowingly endeavor to extinguish the Spirit who dwells in us).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시함에 있어서 우리는 성령님께 직접적으로 무례를 행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은 성령으로부터 나오며 성령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역행하여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얕보는 자들은 오로지 성령을 훼방하고 있는 것 외에 무엇이겠는가(Why is this, but because those only are blasphemers against the Spirit, who slander his gifts and power, contrary to the conviction of their own mind?).
히브리서 6장 6절에 말하는 ‘타락한 사람’이 그러한 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그 빛을 가리고 하늘의 맛 또는 은사를 빼앗고, 성령의 참여를 거역하는 자들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부인하는 일이다. 즉, 그들은 전에 자신들이 받아들였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떠난 배교자들이다. 이런 일은 성령에 대해서 범죄하지 않는 한 아무에게도 일어나지 않는다(This happens to no one but to him who sins against the Holy Spirit).
바울은 이 죄를 율법의 첫째 판에 국한시키고 있으며 주님은 ‘훼방’이란 말로 한 가지 특정의 죄악을 명백히 가리키고 계심과 동시에 이 특정의 죄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직접적인 대항임을 보여주고 계신다. 둘째 돌판에 대한 위반은 그것이 고의적이라 하더라도 용서를 받지만, 첫째 돌판을 알면서 고의적으로 침해하는 자는 성령에 대해서 죄를 범하는 자이다(Transgressions of the second table, although they are voluntary, are forgiven; but he who knowingly and willingly breaks the first table sins against the Holy Spirit, because he is in direct opP0SITION to God). 그러므로 성령훼방죄란 율법의 첫째 돌판을 위반함으로써 하나님께 직접 반역하는 것이요, 진리에 대한 악의적인 배척인 것이다.
또한, 히브리서 10장 26절에서 말하는,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자들이 그러한 자들이다. 진리를 맛보고 은사를 받았으면서도, 돌밭에 뿌려진 시처럼, 보편적인 배교에 의해, 그들이 성령에 의해 그들의 양심에 확신되었던 그들의 진리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박해하거나 반대하면서, 악의적이고 악의에 차서 비난함으로 죄를 짓는 자들은 성령을 훼방하는 자들이다. 즉, 유한한 인간들이 하나님을 상대로 고의적인 전쟁을 수행하며, 그 결과 그들에게 제공되고 있는 성령의 빛이 말살되어 버릴 때에만 성령에 대한 죄가 범해지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For men commit the sin against the Holy Spirit, when they undertake a voluntary war against God in order to extinguish that light of the Spirit which has been offered to them).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하나님께 이미 버림받은 한 가지 표징이다(Blasphemy against the Spirit is a token of reprobation). 그러므로 이 죄에 빠진 자는 버림받을 영을 받았다고 말할 수가 있다(롬 1:28). 진실로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그같이 두려운 죄악에 자신을 허용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며, 반면에 그 죄악에 빠진 자는 재기할 수 없다고 우리는 주장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지혜와 공의로운 심판으로 자기 은혜를 경멸하는 죄악을 응징하신다. 하나님은 버림받은 자들의 심령을 강퍅케 하셔서 회개의 의욕을 갖지 못하게 하신다.
물론 여기에서 한 번 깨우침을 받은 자들이 믿음에서 떨어지는 것은 치명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일정한 진리를 공격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에서 경고를 주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인내로 굳건히 서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을 이루어가기를 우리를 완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그리스도께 간구해야 하는 것이다.
* 칼빈 주석 및 웨스트민스터 성경주해 요약
http://blog.naver.com/pjhjhcpg/70154301711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의 모든 죄로부터 해방을 초래하였으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그 죄로부터 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용서받지 못하는 죄에 대해서 특별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소위 "성령훼방죄"라고 부릅니다.
(중략)
“이미 자신이 성령훼방죄가 아닐까 걱정하는 분이라면 그 자체로 벌써 성령훼방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령훼방죄는 성령의 뜻을 알면서도 고의나 악의적으로 죄를 짓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즉 성령훼방죄에 해당되는 죄는 회개를 수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근심을 한다거나 양심에 찔림을 받아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거나, 고의적이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즉 성령훼방죄가 아닙니다.”
그 이유를 성경적으로 설명드립니다.
"훼방"이란 말은 헬라어 "블라스습헤미아"로써 성경에서는 주로 "참람, 훼방"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 원래의 의미는 중상(특히 하나님에 대항하는), 참람(신적위엄을 손상시키는)을 말합니다. 바울은 딤전1장 13절에서 자신을 "훼방자"였다고 말하는데, 그 단어는 "블라습헤모스"라는 형용사로서 같은 어원을 갖습니다. 만일 전에 성령을 훼방한 죄가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바울은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1:13)
바울은 자신이 훼방자였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한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은 긍휼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기독교인이 되기 이전에 고의나 악의가 아닌 성령훼방죄에 대해서는 우리는 죄사함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딤전1:13의 기록처럼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한 성령훼방죄"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바울은 기독교인들을 강제로 잡아 하나님을 "모독"한 사람이었습니다.(행26:11) 그러나 바울이 구원을 받지 못하였으며, 죄사함을 받지 못하였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블라스헵메오)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행26:11)
윗 본문은 바울이 다메섹을 가기 이전, 즉 예수를 만나기 직전의 기록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형벌하였으며 잡아 가두는 일을 담당하였으며,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였고, 그 "모독하다"는 단어는 "블라스헵메오"로서 앞에서 언급한 단어와 동일한 어원을 갖는 동사입니다.
즉 결론적으로, 성령훼방죄는 그리스도인이면서 고의와 악의로 성령을 참람하게 모욕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한때 이단이나 사아비집단에 속해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철저하게 뉘우치고 회개한 사람은 더 이상 성령훼방죄에 속하지 않습니다.
바울도 성령훼방과 모독죄를 범하던 때에는 유대교에 속하여 있었습니다.
즉 성령훼방죄는 단지 진리를 의심하거나 그것을 부정하는 자체를 말하거나 과거의 잘못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회개를 거절하고, 양심과 성령의 조명을 고의와 악의로 거절하며 악행하는 현재의 경우 말합니다.
만일 누군가가 그러한 성령훼방죄를 범하지 않았을까 두려워하며 그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번민하며 기도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성령훼방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기독교는 과거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며, 현재의 상태인 믿음을 확증합니다.
그러나 만일 자신이 현재에도 성령의 조명을 받으면서도 성령을 훼방하며 하나님의 아들을 욕되게 하는 자라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의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교회를 다녔다가 한때 이단에 미혹된 적이 있었고, 다시 회개하여 돌아온 사람은 성령훼방죄가 아닙니다. 아무리 과거에 교회를 다녔지만, 그 당시의 신앙이 확실한 성령의 조명 안에 있었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가 이단에 미혹된 것은 "알지 못하고 한 실수"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단교회에 빠졌을 때에 예수를 모욕하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고의적으로 행한 일이 아니었다면(예를 들어 성경적인 지식이 부족하였거나, 제대로 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현재 올바른 믿음을 갖고 진정으로 회개하였다면,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몰라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기독교 확실한 신앙관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 (극단적인 예를 들면 돈이나 여자등 다른 목적을 위하여) 고의적인 목적을 갖고 이단으로 갔다면, 그는 다시 돌이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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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훼방죄 4편(결론)---교회론적 적용
3. 개혁파 교회의 최종 결론
1) 불신앙에 대한 엄중한 경고와 책망.
개혁주의에서 성령훼방죄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매우 심각한 어떤 죄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본문이 말해주지 않는다. 즉, 용서 받지 못하는 무서운 죄가 분명 있으나, 그것이 어떤 죄인지는 확정적으로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죄에 대한 지속적인 각성과 긴장을 놓지 않게 하였다. 따라서 개혁주의에서 성령훼방죄와 그 특정 대상자로서 적그리스도를 해석할 때는 아주 주의하고 조심해야 한다. 성령훼방죄와 사망에 이르는 죄의 실체는 분명히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고,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이 분별하거나 확정하지 않는다. 특별히 적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은 전체 교단의 판단과 역사적 판단 속에서 신중을 기하여 교회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때에 판단한다.
2) 오늘날 종교지도자들에게 주어지는 엄중한 경고
마태복음 12장30절은 성령훼방죄와 연관하여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고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엄중히 경고했다. 이처럼 성령훼방죄는 구원의 은혜에 대한 지속적인 반대와 진리에 대한 곡해와 오류를 통해서 방해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더욱 많이 노출된다. 복음서는 성령훼방죄를 두 가지로 풀어서 경고한다. 첫째는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 않는 죄들이며, 둘째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지 않고 오히려 방관하며, 곡해하며, 지연시키며 방해하여 교회를 무너뜨리는 죄들을 경고한다. 오늘날 자유주의나 WCC나 새관점학파처럼 기독교의 중요한 가치들을 지속적으로 훼손하고, 변형하고, 방해하면 이런 경고를 받을 수 있다.
3) 회개를 통한 용서의 확증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
성령훼방죄에 대한 인식을 너무 강하게 생각한 청교도들 중에는 용서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초점을 지나치게 말하여 용서 받을 수 있는 상태를 너무 엄격하게 제한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즉, 회개의 조건을 너무 높고 까다롭게 하여 죄에 대한 용서의 확증을 갖지 못하도록 했다. 아무리 죄의 엄중함과 심각함을 경고하고 강조한다 할지라도 회개하는 자에게조차 용서의 확증을 지나치게 축소시키면 안 된다. 회개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완고함을 보이는 자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용서 받지 못하는 죄가 있다라고 엄중히 경고하면서 심판에 대한 엄중한 책망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에게는 아낌없이 복음을 통한 용서를 제시해야 한다. 즉, 회개하는 자에게는 용서의 확증을 강조하되, 지속적으로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엄중한 경고를 제시하는 균형을 갖추는 것이 개혁주의 방식이다. 어거스틴은 “아무리 작은 죄도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가고, 아무리 큰 죄도 회개하면 용서받는다.”라고 충고하였다. 또한 요한일서 1장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는 말씀도 기억해야 한다.
4) 성령훼방죄와 성령을 근심케 하는 죄는 구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훼방죄와 성령을 근심케 하는 죄를 구별하지 못해서 큰 혼란을 겪는다. 신자는 자신의 죄 때문에 때로는 성령을 근심케 하는 죄를 짓고 책망을 받는다. 하지만 신자는 사망에 이르는 성령훼방죄를 범하여 이신칭의가 취소되는 최종적 타락에 빠지는 않는다. 성화에 대한 책망이 지나쳐 칭의가 취소되는 것처럼 경고하면 안 된다. 아무리 잘못을 크게 범해도 칭의가 취소되는 것처럼 경고하면 구원론 전체가 파괴된다. 항상 성화적 책망으로 자제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성도는 자신의 죄 때문에 성령을 근심케 하는 죄는 범할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조 17장 3항에서 “그럼에도 성도들은 사단과 이 세상의 유혹과 그들 안에 남아 있는 부패의 우세함과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들을 게을리 함으로 극심한 죄에 빠질 수 있으며, 그 결과 얼마 동안 죄에 빠져 있기도 한다. 그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고, 그의 성령을 슬프게 하며, 그들이 받은 은혜와 위로 중 일부를 빼앗기게 되고, 그들의 마음이 강퍅해지며, 양심은 상처를 입고, 다른 사람을 해치고 넘어지게 하며, 그들 자신에게 일시적 심판을 불러 온다.”
또한 18장 4항에서도 “참된 신자들이라도 구원의 확신이 종종 여러 가지 방법으로 흔들리고, 약해지며, 일시적으로 중단될 수 있다. 이것은 신자들이 구원의 확신을 유지하는 것을 게을리하고, 양심을 상하게 하고,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특별한 죄에 빠지며, 돌발적이거나 강렬한 유혹을 받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얼굴빛을 거두시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도 어두움 가운데 걸으며 전혀 빛을 보지 못하게 방임하여 두시기 때문이다.”라고 경고한다.
신원균 교수(한마음개혁교회, 웨스트민스터 신학회 회장, 대신총회신학연구원 조직신학)
[출처] 성령훼방죄 4편(결론)---교회론적 적용/신원균목사,한마음개혁교회 (한마음개혁교회) |작성자 신원균목사
=믿신판에 ㅇㅇ라는 넥네임을 사용하는 분이 많아 약간 혼란스럽긴 한데.. '성령훼방죄'에 대해 질문한 분에 대한 답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