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그렇지 않으면 삶을 놓치게 된다.진지해져라.그러나 심각해지지 말라.진지함과 심각함은 서로 다르다. 심각해질 때는수단과 목적, 방법과 성취라는 개념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그때 목적지가 있고 그 목적지로 가는 길이 있다.야망이 생긴다.심각함은 곧 야망이며 하나의 질병이다.관심을 이 세상으로부터 돌릴 수도 있다.그러나 그때 야망에 찬 마음은 또다른 세상을 생각한다.심각함은 종교적인 것이 아니다.심각한 사람은 자동적으로 철학적인 사람이 된다.그는 생각을 시작한다.심각함은 곧 머리와 관계가 있다.심각한 사람,사상가는 침울한 얼굴이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그들은 웃지도 못하고 놀지도 못한다.항상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그는 삶 자체를 수단으로 만들어 버린다.그러나 삶 그 자체가 곧 목적인 것이다. 진지한 사람은 완전히 다르다.진지함은 가슴으로부터 나온다.진지한 사람은 심각하지 않다.진지한 사람은 추구는 하되목적을 추구하지 않는다.그는 어린아이처럼 추구한다.찾고자 하는 것을 발견하면 그것은 좋다.그리고 발견하지 못한다 해도 그것도 역시 좋다. 아이는 개를 좇아 달려가다가도 도중에 나비를 발견하면 방향을 바꾸어 나비를 좇는다.그렇게 나비를 따라가다가 길가에 꽃이 있으면나비는 잊어버리고 온 관심을 꽃으로 집중시킨다.아이는 심각하지 않다.단지 진지할 뿐이다.아이가 어떤 것을 마음에 두면그는 전체적으로 그것과 함께 있게 된다.그것이 진지함이다.나비와 개를 잊어버리면 꽃이 모든 것이 된다. 관심을 어떤 하나에 집중할 때그것이 진지함이다.그러나 어떤 목표를 얻기 위해서관심을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할 때교활하게 된다.그대는 단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수단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그러나 아이들에게는 길이 곧 목적지이다.그리고 종교적인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길이 곧 목적지이다. 내가 어디에 있든 그곳이 바로 목적지이다.내가 무엇이 되었든 그것이 바로 목표이다.바로 '이' 순간 나의 삶 전체가 나에게로 수렴한다.어디 다른 곳으로 갈 목적지가 없다.그대는 이 순간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즐겨야 한다. 종교적인 사람은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고어느 곳으로도 가지 않는다.단지 아침 산책을 할 뿐이다.그것이 다른 점이다. 그대는 직장에 갈 때 똑같은 길을 지나간다.그리고 아침 산책을 한다.길도 같고 집도 같고 모든 것이 같다.그대 자신도 같고 다리도 같다.그러나 아침 산책을 할 때모든 것이 달라진다.비종교적인 사람은 항상 어느 곳으로 가고 있다.직장이나 가게 등등 항상 어떤 목적지가 있다.그러나 종교적인 사람에게는 아침 산책과 같이 어떤 목적지가 없다. 세속적인 사랑은 목표지향적이다.그 목표가 무엇이든,심지어 神이더라도 목표지향적이다.그러나 비세속적인 사람은 목표지향적이 아니다.그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 살고 있다.모든 것이 지금, 그리고 여기로 수렴된다.바로 이것이 무한이 된다.모든 길을 통해서 그 무한으로 가려고 하여도그것은 언제나 도달될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그것은 무한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우리가 어떤 곳에 도달할 때 모든 것은 곧 사라져 버린다.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게 된다면그때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스스로 싫증을 내게 된다.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무한한 것은 계속 진행되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무한은 하나의 무한에서부터 또 다른 무한으로 계속해서 진행되어 나간다. 이 말들을 잊지 말라.마음속에서 기억하라는 말이 아니다.더욱더 깊이 들어가 가슴속에 자리잡도록 하라는 말이다. 가장 위대한 일에 대해서는임의적인 추측을 만들어 내지 말자. 아무리 많이 배운다고 하여도 이제는 얻어지지 않는 것. 금을 찾는 자들은수많은 흙을 파 내면서도 얻는 것이 거의 없으리니. 모든 길을 다 여행하여 보아도영혼의 한계는 발견할 수 없네.그 의미는 너무나도 깊어라.
삶을 심각하게 생각하지마라, 진지해지라.
심각해질 때는수단과 목적, 방법과 성취라는 개념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그때 목적지가 있고 그 목적지로 가는 길이 있다.야망이 생긴다.심각함은 곧 야망이며 하나의 질병이다.관심을 이 세상으로부터 돌릴 수도 있다.그러나 그때 야망에 찬 마음은 또다른 세상을 생각한다.심각함은 종교적인 것이 아니다.심각한 사람은 자동적으로 철학적인 사람이 된다.그는 생각을 시작한다.심각함은 곧 머리와 관계가 있다.심각한 사람,사상가는 침울한 얼굴이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그들은 웃지도 못하고 놀지도 못한다.항상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그는 삶 자체를 수단으로 만들어 버린다.그러나 삶 그 자체가 곧 목적인 것이다.
진지한 사람은 완전히 다르다.진지함은 가슴으로부터 나온다.진지한 사람은 심각하지 않다.진지한 사람은 추구는 하되목적을 추구하지 않는다.그는 어린아이처럼 추구한다.찾고자 하는 것을 발견하면 그것은 좋다.그리고 발견하지 못한다 해도 그것도 역시 좋다.
아이는 개를 좇아 달려가다가도 도중에 나비를 발견하면 방향을 바꾸어 나비를 좇는다.그렇게 나비를 따라가다가 길가에 꽃이 있으면나비는 잊어버리고 온 관심을 꽃으로 집중시킨다.아이는 심각하지 않다.단지 진지할 뿐이다.아이가 어떤 것을 마음에 두면그는 전체적으로 그것과 함께 있게 된다.그것이 진지함이다.나비와 개를 잊어버리면 꽃이 모든 것이 된다.
관심을 어떤 하나에 집중할 때그것이 진지함이다.그러나 어떤 목표를 얻기 위해서관심을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할 때교활하게 된다.그대는 단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 수단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그러나 아이들에게는 길이 곧 목적지이다.그리고 종교적인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길이 곧 목적지이다.
내가 어디에 있든 그곳이 바로 목적지이다.내가 무엇이 되었든 그것이 바로 목표이다.바로 '이' 순간 나의 삶 전체가 나에게로 수렴한다.어디 다른 곳으로 갈 목적지가 없다.그대는 이 순간을 전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즐겨야 한다.
종교적인 사람은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고어느 곳으로도 가지 않는다.단지 아침 산책을 할 뿐이다.그것이 다른 점이다.
그대는 직장에 갈 때 똑같은 길을 지나간다.그리고 아침 산책을 한다.길도 같고 집도 같고 모든 것이 같다.그대 자신도 같고 다리도 같다.그러나 아침 산책을 할 때모든 것이 달라진다.비종교적인 사람은 항상 어느 곳으로 가고 있다.직장이나 가게 등등 항상 어떤 목적지가 있다.그러나 종교적인 사람에게는 아침 산책과 같이 어떤 목적지가 없다.
세속적인 사랑은 목표지향적이다.그 목표가 무엇이든,심지어 神이더라도 목표지향적이다.그러나 비세속적인 사람은 목표지향적이 아니다.그는 '지금 그리고 여기에' 살고 있다.모든 것이 지금, 그리고 여기로 수렴된다.바로 이것이 무한이 된다.모든 길을 통해서 그 무한으로 가려고 하여도그것은 언제나 도달될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그것은 무한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우리가 어떤 곳에 도달할 때 모든 것은 곧 사라져 버린다.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게 된다면그때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스스로 싫증을 내게 된다.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무한한 것은 계속 진행되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무한은 하나의 무한에서부터 또 다른 무한으로 계속해서 진행되어 나간다.
이 말들을 잊지 말라.마음속에서 기억하라는 말이 아니다.더욱더 깊이 들어가 가슴속에 자리잡도록 하라는 말이다.
가장 위대한 일에 대해서는임의적인 추측을 만들어 내지 말자.
아무리 많이 배운다고 하여도 이제는 얻어지지 않는 것.
금을 찾는 자들은수많은 흙을 파 내면서도 얻는 것이 거의 없으리니.
모든 길을 다 여행하여 보아도영혼의 한계는 발견할 수 없네.그 의미는 너무나도 깊어라.
< 오쇼 라즈니쉬 / 헤라클레이토스 강론 숨은 조화>에서발췌
(근원의빛 상승의 형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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