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 않은 이야기지만 이렇게 글을 쓰게 되니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떨리기도 하네요.
글이 많이 두서없고 길어요.
멘탈을 반쯤 놓고 쓰는 글이어서 오탈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26세 여자고, 부모님과 여동생(23세)과 함께 지방 광역시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공무원이시고, 엄마는 2금융권 은행에 다니셨는데 제가 어릴 적 많이 아파서 일을 그만두시고 저를 돌보셨다고 해요. 초등학교 입학 즈음부터 다시 일을 시작하셔서 지금은 평범한 회사원이세요.
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유치원 무렵 밥을 남겼다고 엄마에게 내팽개쳐진 기억이에요. 머리끄댕이를 잡고 바닥에 내팽개치고, 주먹으로 몸 이곳저곳을 때리고, 구석에 몰아넣고 발로 밟으셨어요. 아빠의 퇴근 후에 항상 쪼르르 달려가 말했지만 아빠는 그냥 어린아이의 투정 정도로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하루 걸러 하루 맞고, 매일매일 울면서 밤을 보냈어요. 엄마는 항상 제게 싸x지없는 년이라며 소리를 지르셨어요. 그 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어요. 억지로라도 의연하게 서 있으려 하면 제가 울 때까지 머리끄댕이를 잡아 흔들었어요. 무섭고 아파서 울면 나가 죽어, 공부 못하면 이 집에서 나가라고, 뭘 잘했다고 우냐고 소리지르셨어요. 혼나고 나서도 항상, 하루 온~~~종일 조그만 목소리로 저 싸가지없는 년, 씨x년이라고 중얼거리시다가 다시 한 번 화가 치밀어 오르면 뛰어와서 저를 때렸어요. 저는 엄마의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너무 무서웠어요.
초등학교 때 왕따를 심하게 당했어요.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아이돌, 드라마, 최신 가요를 저는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학생수가 많지 않은 학교라 금세 전교에서 아는 왕따가 되어버렸어요. 저랑 옷깃만 스쳐도 아이들은 썩었다고 외치며 피했고, 남자애들은 저를 실내화로 툭툭 건드렸어요. 화장실에 가면 옆칸 변기에 올라가 위에서 내려다보고, 절 보며 킥킥거렸어요. 당시에는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도 친구를 사귀는 게 너무 어려워요.
엄마가 어릴 적에는 형편이 좋지 않았고, 시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농사일을 돕느라 대학 진학도 여의치 않으셨어요. 엄마가 등록금을 하려고 모았던 돈은 한 살 어린 이모의 등록금이 되었대요.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공부 욕심이 정말정말 많으셨어요.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집 전화로 엄마한테 전화를 해야 했어요. 전화하는 시간이 10분이라도 늦어지면 그 날은 매맞는 날이었어요. 학교에서 놀다 왔다는 이유로요. 학구열 심한 엄마는 친구랑 놀 시간, TV볼 시간도 주지 않으셨어요. 집에 오면 엄마가 내준 영어단어 5장 쓰기, 영어 문법 5장 쓰기 숙제를 해야 했어요. 매일매일요. 조금이라도 못 하면 또 맞았어요. 자유시간은 없었어요. 제 공간도 없었어요. 거실에서 책상을 펴 놓고 숙제를 했어요. 엄마는 퇴근하셔서 안방에서 TV를 보시다가 발소리를 죽여 저를 감시하러 나오셨어요. 제가 조금이라도 졸거나 딴짓하는 게 보이면 그 길로 발길질을 하셨어요. 주말이 너무 싫었어요. 주말마다 아빠랑 동생이랑 같이 도서관에 갔어요. 그럼 항상 어딜 놀러나가냐고 소리지르며 욕을 하셨어요. TV도 안보고, 친구도 안 만나고 유일한 취미가 책읽기였는데. 가끔 엄마랑 도서관을 가면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같은 자기계발서만 억지로 한아름 들고왔던 기억이 나요. 집에 오면 아빠가 있으니까, 도서관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엄마한테 흠씬 두들겨 맞았었네요.
중학교 무렵 저희 지역에서 학구열이 높기로 유명한 곳에 이사를 왔고, 그때부터는 새벽 6시에 엄마가 저를 깨웠어요. 공부하라고요.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요. 머리가 좀 컸다고 매일 엄마와 싸웠어요. 제 눈에는 모든 게 너무 부조리했어요. 친구들이 다 가지고 있는 핸드폰은, 엄마도 어릴 때 그런 거 없이 살았다는 이유로 사주지 않았어요. 중학교 3학년까지 다니면서 영화는 딱 한 편 봤어요. 친구들이랑 연락하고 싶으면 엄마 핸드폰으로 하라면서, 막상 친구들이 연락하면 한 번도 저한테 전해주지 않았어요. 수련회를 다녀와서 너무 피곤해 하루만 학원을 빼 달라고 하면 돈이 아깝지도 않냐면서 또 때렸어요. 공부 못하면 나가 죽으라고요. 보다 못한 동생이 아빠한테 알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어디 한 번 해 보라고 했어요. 어느 날 제가 두들겨 맞고 있을 때 동생이 디카로 동영상을 찍었고, 엄마는 그 길로 카메라를 빼앗아 부숴버렸어요. 아빠에게 내장 칩에 저장된 영상을 보여드리려고 했지만, 이 ㅆ년들이 연기하는 거라고 소리를 지르며 내장 칩마저 갖다 버리셨어요.
고등학교 때 성추행을 당했어요. 잘 가르친다며 엄마가 보낸 수학 과외 선생님한테요. 집에 가기 싫어서 매일 야자를 11시까지 했고, 그 좋은 학군에서 항상 반에서 5등 안에 들었음에도 엄마 성에는 차지 않았어요. 말은 당연히 못했죠. 매일 TV에서 보도하는 성폭행, 성추행 뉴스를 보며 항상 여자 탓을 했던 엄마니까요. 그냥 야자 끝나고 오는 길이 무서워서 2G폰이라도 사달라고 했지만 역시 거절당했어요. 그놈의 나 어릴적, 나 어릴적.. 이런 거 없이도 잘 살았다 타령. 결국 성추행은 과외를 그만둘 때까지 이어졌어요. 지금까지도 남자에 대한 피해의식이 강한 편이에요. 최근에 엄마한테 성추행 당한 걸 이야기했는데, 그때 엄마한테 말하지 않은 네 잘못이니 피해자인 척 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대학에 가서는 나아질 줄 알았어요, 저는. 수능이 끝나고 다음 날, 쉬는 걸 엄마가 보셨어요. 시험 끝났다고 맘 놓고 있기는. 공부를 해라, 공부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또 소리를 지르셨어요. 친구들은 수능 끝났다고 쌍수도 하고 놀러도 나가는데.. 그냥 쉬는 것조차 싫어하셨어요. 대학에 입학했을 때, 처음 대면식이라고 술을 마시러 갔더니 엄마가 노발대발하셨어요. 저녁 6시가 넘었는데 어디 어린애가 술이냐면서.. 대학교 2학년까지 제대로 술을 마셔본 적이 없어요. 밤 10시가 넘어갈 때쯤엔 부재중 전화가 과장 없이 40통이 찍혔어요. 문자로는 부모 허락도 없이 어딜 돌아다니냐, 부모가 너한텐 뭐냐, 어딜 여자애가 술이냐.. 이런 말이 난무했고요. 부끄러웠어요.. 그냥. 창살 없는 감옥에 갖힌 거 같았어요. 주말에 약속이 있어 나가려 하면 또 놀러 나간다며 그릇을 집어던지고, 뺨을 때리고.. 그래서 억지로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 있는데도 본인이 그 상황을 곱씹어서 다시 화가 나면 달려와서 물건을 부수고 손찌검을 했어요. 태어나서 한 번도 제대로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대학 입학 후에는 쉬지 않고 알바를 했는데도 돈 벌어서 쓸데없는 데 쓴다고 나무라셨어요. 처음에 마트 알바를 했었는데 그것도 엄마 눈에는 차지 않았어요. 지거국 사범대씩이나 보내 놨더니 마트 알바나 하고 자빠졌다고. 엄마는 저의 자존감 도둑이었어요.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어요. 그냥 했어요. 쉬고 싶었고, 집이 답답했고, 학교에서의 인간관계가 너무 어려웠어요. 알바를 다니며 쉬고 있는데, 어느 날 집에 와보니 쪽지가 있었어요. 엄마는 네가 이렇게 사는 거 못 보니까 나가라고. 화장품은 다 부서져있었고, 옷장은 뒤집어 엎어져 있었어요. 어릴 때는 나가라고 해도 못 나가니까, 지금도 똑같을 줄 아셨나 보죠. 짐 챙겨서 나왔어요. 동기네 집에 3개월을 살았어요. 그때서야 엄마가 안 그런다고, 미안하다고 연락이 와서 집에 들어왔어요. 그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어요.
복학하고 나서는 임용을 보라는 압박이 심해졌어요. 어릴때부터 항상 하던 말. 성공해라. 전문직 해라. 공무원 해라. 마치 교사가 아닌 나는 가치가 없다는 듯이. 엄마는 똑같았어요. 처음 몇 주는 제게 맞춰 주려고 노력하셨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다시 폭언을 쏟아부으셨어요.
스물다섯 봄, 자해를 했어요. 이제는 이게 내 문제인지 엄마의 문제인지 알 수가 없어서요. 그냥 다 제 잘못인 거 같았어요. 친한 고등학교 친구들은 제 팔을 보면서 울었어요.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엄마한테 우울증이란 걸 알렸어요. 아빠랑 얘기해 보쟤요. 아빠는 대뜸 저한테 소리를 지르셨어요. 너 취직은 어떻게 할 거냐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한테 대들었어요. 내가 지금 학원 강사로 3년을 일했다. 그 노력은 안 보이냐. 지금 돈 버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빠 딸이 슬퍼서 죽을 거 같다는데, 그깟 취직이 문제냐고. 이런 얘기 하려고 나 불렀냐고. 아빠한테 맞는 건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어디 X발년이 아빠한테 대드냐면서, 마구잡이로 절 때리셨어요. 그 사이에 동생이 제 핸드폰과 본인 지갑을 챙겨서 절 끌고 집에서 도망쳤어요. 무작정 뛰어서 다시 집을 나왔어요. 우울증 약이 없으면 잘 수가 없었어요. 6개월이 지나고 엄마한테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집에 다시 들어왔어요.
계속 집에 들어갔던 이유는 엄마의 감성팔이 때문이었어요. 엄마아빠는 이제 늙었다. 너희가 성공하는 게 엄마아빠의 기쁨이다. 엄마는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너도 알지 않느냐. 난 너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엄마의 기분을 저도 이해했어요. 제가 이해하는데도 불구하고 엄마와 화해하지 않으면 저는 나쁜 딸이 될 거 같았어요. 한편으로는 엄마아빠를 사랑했어요. 그랬는데 이제는 자괴감과, 엄마에 대한 미움과 사랑 사이에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요..
최근 코로나 때문에 강사 일을 그만두고 동생이랑 여행을 갔다가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한 달을 입원했어요. 다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전공이 사범대고 문과계열인지라 쉽게 취직이 되진 않네요. 10월 초쯤 집을 나와 지금은 남자친구 집에 있어요. 여기가 아니라 어디라도 좋으니 집에 가고 싶지 않아요..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집에 있는 것 자체가 과거를 회상하게 해서 때때로 눈물이 터져요. 엄마의 쿵쾅거리는 발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뛰어요. 엄마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죠. 뜬금없이, 무슨 일도 없었는데 제가 집을 나가버렸으니. 적적하실 엄마아빠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안 좋은데, 집에 들어갔을 때 소리지를 엄마를 생각하니 집에 가기가 너무 싫어요. 취업도 막막하고, 집에 있고 싶지 않고, 마음이 너무 답답해요. 따끔한 조언도 좋으니 동생이라고 생각하시고 한 마디씩만 부탁드릴게요.
쓰고 나니 정리도 안 되고 너무 징징거리는 글이 되어서 죄송해요. 이런이런 내용을 써야지 하고 수없이 생각했는데도 두서가 없네요.. 시간 내서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어릴적부터 지속된 엄마와의 불화, 조언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조언을 구할 곳이 없어서 자주 보던 판에 몇 자를 끄적여 봅니다.
방탈 죄송합니다. 결시친에 계신 분들이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실 것 같아서 이곳에 올려요.
좋지 않은 이야기지만 이렇게 글을 쓰게 되니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떨리기도 하네요.
글이 많이 두서없고 길어요.
멘탈을 반쯤 놓고 쓰는 글이어서 오탈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26세 여자고, 부모님과 여동생(23세)과 함께 지방 광역시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공무원이시고, 엄마는 2금융권 은행에 다니셨는데 제가 어릴 적 많이 아파서 일을 그만두시고 저를 돌보셨다고 해요. 초등학교 입학 즈음부터 다시 일을 시작하셔서 지금은 평범한 회사원이세요.
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유치원 무렵 밥을 남겼다고 엄마에게 내팽개쳐진 기억이에요. 머리끄댕이를 잡고 바닥에 내팽개치고, 주먹으로 몸 이곳저곳을 때리고, 구석에 몰아넣고 발로 밟으셨어요. 아빠의 퇴근 후에 항상 쪼르르 달려가 말했지만 아빠는 그냥 어린아이의 투정 정도로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하루 걸러 하루 맞고, 매일매일 울면서 밤을 보냈어요. 엄마는 항상 제게 싸x지없는 년이라며 소리를 지르셨어요. 그 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어요. 억지로라도 의연하게 서 있으려 하면 제가 울 때까지 머리끄댕이를 잡아 흔들었어요. 무섭고 아파서 울면 나가 죽어, 공부 못하면 이 집에서 나가라고, 뭘 잘했다고 우냐고 소리지르셨어요. 혼나고 나서도 항상, 하루 온~~~종일 조그만 목소리로 저 싸가지없는 년, 씨x년이라고 중얼거리시다가 다시 한 번 화가 치밀어 오르면 뛰어와서 저를 때렸어요. 저는 엄마의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너무 무서웠어요.
초등학교 때 왕따를 심하게 당했어요.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아이돌, 드라마, 최신 가요를 저는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학생수가 많지 않은 학교라 금세 전교에서 아는 왕따가 되어버렸어요. 저랑 옷깃만 스쳐도 아이들은 썩었다고 외치며 피했고, 남자애들은 저를 실내화로 툭툭 건드렸어요. 화장실에 가면 옆칸 변기에 올라가 위에서 내려다보고, 절 보며 킥킥거렸어요. 당시에는 힘들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도 친구를 사귀는 게 너무 어려워요.
엄마가 어릴 적에는 형편이 좋지 않았고, 시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농사일을 돕느라 대학 진학도 여의치 않으셨어요. 엄마가 등록금을 하려고 모았던 돈은 한 살 어린 이모의 등록금이 되었대요.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공부 욕심이 정말정말 많으셨어요.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집 전화로 엄마한테 전화를 해야 했어요. 전화하는 시간이 10분이라도 늦어지면 그 날은 매맞는 날이었어요. 학교에서 놀다 왔다는 이유로요. 학구열 심한 엄마는 친구랑 놀 시간, TV볼 시간도 주지 않으셨어요. 집에 오면 엄마가 내준 영어단어 5장 쓰기, 영어 문법 5장 쓰기 숙제를 해야 했어요. 매일매일요. 조금이라도 못 하면 또 맞았어요. 자유시간은 없었어요. 제 공간도 없었어요. 거실에서 책상을 펴 놓고 숙제를 했어요. 엄마는 퇴근하셔서 안방에서 TV를 보시다가 발소리를 죽여 저를 감시하러 나오셨어요. 제가 조금이라도 졸거나 딴짓하는 게 보이면 그 길로 발길질을 하셨어요. 주말이 너무 싫었어요. 주말마다 아빠랑 동생이랑 같이 도서관에 갔어요. 그럼 항상 어딜 놀러나가냐고 소리지르며 욕을 하셨어요. TV도 안보고, 친구도 안 만나고 유일한 취미가 책읽기였는데. 가끔 엄마랑 도서관을 가면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같은 자기계발서만 억지로 한아름 들고왔던 기억이 나요. 집에 오면 아빠가 있으니까, 도서관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엄마한테 흠씬 두들겨 맞았었네요.
중학교 무렵 저희 지역에서 학구열이 높기로 유명한 곳에 이사를 왔고, 그때부터는 새벽 6시에 엄마가 저를 깨웠어요. 공부하라고요.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요. 머리가 좀 컸다고 매일 엄마와 싸웠어요. 제 눈에는 모든 게 너무 부조리했어요. 친구들이 다 가지고 있는 핸드폰은, 엄마도 어릴 때 그런 거 없이 살았다는 이유로 사주지 않았어요. 중학교 3학년까지 다니면서 영화는 딱 한 편 봤어요. 친구들이랑 연락하고 싶으면 엄마 핸드폰으로 하라면서, 막상 친구들이 연락하면 한 번도 저한테 전해주지 않았어요. 수련회를 다녀와서 너무 피곤해 하루만 학원을 빼 달라고 하면 돈이 아깝지도 않냐면서 또 때렸어요. 공부 못하면 나가 죽으라고요. 보다 못한 동생이 아빠한테 알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어디 한 번 해 보라고 했어요. 어느 날 제가 두들겨 맞고 있을 때 동생이 디카로 동영상을 찍었고, 엄마는 그 길로 카메라를 빼앗아 부숴버렸어요. 아빠에게 내장 칩에 저장된 영상을 보여드리려고 했지만, 이 ㅆ년들이 연기하는 거라고 소리를 지르며 내장 칩마저 갖다 버리셨어요.
고등학교 때 성추행을 당했어요. 잘 가르친다며 엄마가 보낸 수학 과외 선생님한테요. 집에 가기 싫어서 매일 야자를 11시까지 했고, 그 좋은 학군에서 항상 반에서 5등 안에 들었음에도 엄마 성에는 차지 않았어요. 말은 당연히 못했죠. 매일 TV에서 보도하는 성폭행, 성추행 뉴스를 보며 항상 여자 탓을 했던 엄마니까요. 그냥 야자 끝나고 오는 길이 무서워서 2G폰이라도 사달라고 했지만 역시 거절당했어요. 그놈의 나 어릴적, 나 어릴적.. 이런 거 없이도 잘 살았다 타령. 결국 성추행은 과외를 그만둘 때까지 이어졌어요. 지금까지도 남자에 대한 피해의식이 강한 편이에요. 최근에 엄마한테 성추행 당한 걸 이야기했는데, 그때 엄마한테 말하지 않은 네 잘못이니 피해자인 척 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대학에 가서는 나아질 줄 알았어요, 저는. 수능이 끝나고 다음 날, 쉬는 걸 엄마가 보셨어요. 시험 끝났다고 맘 놓고 있기는. 공부를 해라, 공부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또 소리를 지르셨어요. 친구들은 수능 끝났다고 쌍수도 하고 놀러도 나가는데.. 그냥 쉬는 것조차 싫어하셨어요. 대학에 입학했을 때, 처음 대면식이라고 술을 마시러 갔더니 엄마가 노발대발하셨어요. 저녁 6시가 넘었는데 어디 어린애가 술이냐면서.. 대학교 2학년까지 제대로 술을 마셔본 적이 없어요. 밤 10시가 넘어갈 때쯤엔 부재중 전화가 과장 없이 40통이 찍혔어요. 문자로는 부모 허락도 없이 어딜 돌아다니냐, 부모가 너한텐 뭐냐, 어딜 여자애가 술이냐.. 이런 말이 난무했고요. 부끄러웠어요.. 그냥. 창살 없는 감옥에 갖힌 거 같았어요. 주말에 약속이 있어 나가려 하면 또 놀러 나간다며 그릇을 집어던지고, 뺨을 때리고.. 그래서 억지로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 있는데도 본인이 그 상황을 곱씹어서 다시 화가 나면 달려와서 물건을 부수고 손찌검을 했어요. 태어나서 한 번도 제대로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대학 입학 후에는 쉬지 않고 알바를 했는데도 돈 벌어서 쓸데없는 데 쓴다고 나무라셨어요. 처음에 마트 알바를 했었는데 그것도 엄마 눈에는 차지 않았어요. 지거국 사범대씩이나 보내 놨더니 마트 알바나 하고 자빠졌다고. 엄마는 저의 자존감 도둑이었어요.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어요. 그냥 했어요. 쉬고 싶었고, 집이 답답했고, 학교에서의 인간관계가 너무 어려웠어요. 알바를 다니며 쉬고 있는데, 어느 날 집에 와보니 쪽지가 있었어요. 엄마는 네가 이렇게 사는 거 못 보니까 나가라고. 화장품은 다 부서져있었고, 옷장은 뒤집어 엎어져 있었어요. 어릴 때는 나가라고 해도 못 나가니까, 지금도 똑같을 줄 아셨나 보죠. 짐 챙겨서 나왔어요. 동기네 집에 3개월을 살았어요. 그때서야 엄마가 안 그런다고, 미안하다고 연락이 와서 집에 들어왔어요. 그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어요.
복학하고 나서는 임용을 보라는 압박이 심해졌어요. 어릴때부터 항상 하던 말. 성공해라. 전문직 해라. 공무원 해라. 마치 교사가 아닌 나는 가치가 없다는 듯이. 엄마는 똑같았어요. 처음 몇 주는 제게 맞춰 주려고 노력하셨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다시 폭언을 쏟아부으셨어요.
스물다섯 봄, 자해를 했어요. 이제는 이게 내 문제인지 엄마의 문제인지 알 수가 없어서요. 그냥 다 제 잘못인 거 같았어요. 친한 고등학교 친구들은 제 팔을 보면서 울었어요.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엄마한테 우울증이란 걸 알렸어요. 아빠랑 얘기해 보쟤요. 아빠는 대뜸 저한테 소리를 지르셨어요. 너 취직은 어떻게 할 거냐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한테 대들었어요. 내가 지금 학원 강사로 3년을 일했다. 그 노력은 안 보이냐. 지금 돈 버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빠 딸이 슬퍼서 죽을 거 같다는데, 그깟 취직이 문제냐고. 이런 얘기 하려고 나 불렀냐고. 아빠한테 맞는 건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어디 X발년이 아빠한테 대드냐면서, 마구잡이로 절 때리셨어요. 그 사이에 동생이 제 핸드폰과 본인 지갑을 챙겨서 절 끌고 집에서 도망쳤어요. 무작정 뛰어서 다시 집을 나왔어요. 우울증 약이 없으면 잘 수가 없었어요. 6개월이 지나고 엄마한테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집에 다시 들어왔어요.
계속 집에 들어갔던 이유는 엄마의 감성팔이 때문이었어요. 엄마아빠는 이제 늙었다. 너희가 성공하는 게 엄마아빠의 기쁨이다. 엄마는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너도 알지 않느냐. 난 너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엄마의 기분을 저도 이해했어요. 제가 이해하는데도 불구하고 엄마와 화해하지 않으면 저는 나쁜 딸이 될 거 같았어요. 한편으로는 엄마아빠를 사랑했어요. 그랬는데 이제는 자괴감과, 엄마에 대한 미움과 사랑 사이에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요..
최근 코로나 때문에 강사 일을 그만두고 동생이랑 여행을 갔다가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한 달을 입원했어요. 다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전공이 사범대고 문과계열인지라 쉽게 취직이 되진 않네요. 10월 초쯤 집을 나와 지금은 남자친구 집에 있어요. 여기가 아니라 어디라도 좋으니 집에 가고 싶지 않아요..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집에 있는 것 자체가 과거를 회상하게 해서 때때로 눈물이 터져요. 엄마의 쿵쾅거리는 발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뛰어요. 엄마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죠. 뜬금없이, 무슨 일도 없었는데 제가 집을 나가버렸으니. 적적하실 엄마아빠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안 좋은데, 집에 들어갔을 때 소리지를 엄마를 생각하니 집에 가기가 너무 싫어요. 취업도 막막하고, 집에 있고 싶지 않고, 마음이 너무 답답해요. 따끔한 조언도 좋으니 동생이라고 생각하시고 한 마디씩만 부탁드릴게요.
쓰고 나니 정리도 안 되고 너무 징징거리는 글이 되어서 죄송해요. 이런이런 내용을 써야지 하고 수없이 생각했는데도 두서가 없네요.. 시간 내서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