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도 정신이 없었거니와 글 올린 당시 댓글이 없어서 어제야 제 글에 댓글이 많이 달렸던 걸 확인하고 댓글을 읽으며 한참 울다가 오늘에서야 이어지는 글을 씁니다.
일하는 중에 글쓰기가 힘들어 점심시간을 빌어 글을 써봅니다..
먼저 우리 강아지는 10월 마지막날에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제가 글을 올린 다음날부터우리 루이는 하던 모든 이상행동을 멈춘 채 가만히 누워 잠만 잤습니다..
얕은 숨만 겨우 붙은채로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배변활동도 멈추고 잠만 잤어요.
쇠고기로 죽을 쑤어 곱게 갈아 주사기로 넣어주어도 먹지 못했어요..
그리고 토요일, 제가 다시 친정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루이가 떠났다고..
엄마가 잠시 장을 보러 다녀왔는데, 엄마가 집에와서 루이가 잘 있나 한번 보고 쓰다듬어주시자 큰 한숨을 내뱉더니.. 그렇게 떠났다고 했습니다..
소식을 전하며 엄마는 펑펑 우셨어요..전화를 끊은 저도 펑펑 울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 아이들이 놀라 왜 그러냐고 저를 달래주었습니다.
눈물이 제일 많은 큰동생은 그 때 출장중이었는데.. 차마 말을 전할 수 없어 화장장에 가기 전에야 제가 소식을 전했어요..
누나가 잘 보내주라고.. 엉엉 우는 큰동생과 또 한번 울었습니다.. 화장장으로 가는길에 달이 참 밝더라구요..이렇게 달이 예쁜 밤에 널 보낼수 있어서 다행이다.. 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화장장에 가니 먼저 도착한 막내동생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엄마는 차마 볼수가 없다며 같이 오시지 않았구요.
불과 얼마 전에 봤을 때보다 더 작고 앙상한 모습에 가슴이 무너졌어요..
관이 정말 작았는데 그 관이 커보일 정도로 작은 아이..
입관을 마치고도 보내기가 힘들어 한참을 울다 가마로 들어갈 때.. 관계자분께서 아이를 덮고 인사를 저희에게 해주시는데 내내 덤덤하던 막내동생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 화장하던 당시가 생각나서.. 그리고 떠나는 아이가 너무 불쌍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어요..
화장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막내동생이랑 앉아 루이가 우리집에 오던 그 당시, 말썽피우던 모습, 재롱 떨던 모습, 개인기 하던 거, 아빠랑 루이랑 지내던 모습들, 아빠 돌아가시고 루이가 아빠자리에 앉아 낑낑대던 모습, 내가 첫 아이를 낳아 보여줬을 때 옆에 누워 아이를 보며 꼬리치던 그 모습, 어느 순간 흰털이 나고 늙어가던 그 모습들, 이제 더이상 침대에 오르지 못하던 그 때.. 눈이 안보이기 시작했을 때.. 소리도 잘 못 듣기 시작했을 때.. 등등을 회상하며.. 또 한참 울고 웃었네요..
이 아이는 참.. 우리에게 작지만 큰 존재였구나.. 16년동안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존재가 되었구나.. 강아지가 아니라 진짜 가족이었고 내 동생이었다..
아이는 저희의 요청에 따라 스톤으로 남았어요.
스톤은 가족들이 하나씩 나누어 갖고, 나머지는 아버지 안치단에 넣어드리려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정말 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또 한번 펑펑 울었습니다.. 아직 네돌도 안된 둘째는 엄마 왜 우냐며 작은 손으로 절 안아주고, 이제 외갓집에 가도 루이가 없어.. 루이는 이제 하늘나라에 가서 못 만나.. 라고 하니 이상한 마음이 드는지 울더라구요.. 루이 왜 없어, 왜 못 만나. 그거 싫어 하면서요..
첫째는 제가 화장장 가 있는 사이 루이 그림을 그렸다며 보여주는데..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표현을 어찌 안 건지 그림에 무지개도 그려주고.. 뒤에는 루이가 엄마에게 하고싶은 말일 거라며 글씨를 써줬는데.. 그 글을 보고 또 무너졌어요..
"다시올개" "루이가" 어쩜 이렇게 저를 보듬어주는지.. 큰동생은 저 그림 보고 또 펑펑 울었다고 하더라구요..
저희 가족들은.. 아직은 힘들지만 일상을 잘 보내고 있습니다.
친정에서는 아직 루이의 흔적들을 다 치우지 못하고, 앉은 자리, 먹던 밥그릇 물그릇, 갖고 놀던 장난감만 봐도 울컥울컥 하고 있어요..
저 역시 바쁜 일상에 있다가 엄마나 동생들이랑 통화할 때, 루이 사진을 볼 때 울컥울컥 합니다..
밤에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품을 빌어 울기도 합니다.
이 모든 감정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해결되겠죠..
아빠가 떠나셨을 때도 그랬던 것 처럼..
지금은 그냥.. 아빠도 아프지 않고, 루이도 아프지 않고, 둘이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길..
그리고 먼 훗날 둘이 함께 마중나와주길.. 바랍니다..
저희가족은 아이를 안락사로 보내지 않은 결정을 잘 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마 그렇게 보냈다면 아이를 보낸 슬픔+죄책감에 더 힘들었을 것 같다는 얘기를 지금도 합니다..
그렇다고 안락사로 아이들을 보내주신 분들을 비난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아이를 보내는 방법이 다르다 해서 사랑의 크기가 다른 건 절대 아니니까요. 그 또한 아이를 사랑하기에 내리는 결정 중 하나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아이가 계속 괴로워했다면 저희도 그런 결정을 했을 거예요.
루이는 저희가 고민을 하던 그 다음날, 잠만 자듯 있다가 저희를 떠났기에 할 수 있던 결정이었습니다.
이전 글에 댓글 남겨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사랑하는 아이를 무지개다리로 먼저 보내신 견주님들께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는 것은 몇번을 겪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 아픔인듯 합니다.
그리고 반려동물 키우시는 모든 분들 최선을 다해서 추억을 쌓고, 사랑해주시길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전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어떤 방식을 택하든, 그것은 남이 아닌 내가 결정할 방식이고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반려견 안락사 의견글 썼던 사람입니다.
지난주에 반려견 안락사 의견 여쭙는 글 썼던 사람입니다.
글을 쓰고도 정신이 없었거니와 글 올린 당시 댓글이 없어서 어제야 제 글에 댓글이 많이 달렸던 걸 확인하고 댓글을 읽으며 한참 울다가 오늘에서야 이어지는 글을 씁니다.
일하는 중에 글쓰기가 힘들어 점심시간을 빌어 글을 써봅니다..
먼저 우리 강아지는 10월 마지막날에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제가 글을 올린 다음날부터우리 루이는 하던 모든 이상행동을 멈춘 채 가만히 누워 잠만 잤습니다..
얕은 숨만 겨우 붙은채로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배변활동도 멈추고 잠만 잤어요.
쇠고기로 죽을 쑤어 곱게 갈아 주사기로 넣어주어도 먹지 못했어요..
그리고 토요일, 제가 다시 친정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루이가 떠났다고..
엄마가 잠시 장을 보러 다녀왔는데,
엄마가 집에와서 루이가 잘 있나 한번 보고 쓰다듬어주시자 큰 한숨을 내뱉더니.. 그렇게 떠났다고 했습니다..
소식을 전하며 엄마는 펑펑 우셨어요..전화를 끊은 저도 펑펑 울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 아이들이 놀라 왜 그러냐고 저를 달래주었습니다.
눈물이 제일 많은 큰동생은 그 때 출장중이었는데.. 차마 말을 전할 수 없어 화장장에 가기 전에야 제가 소식을 전했어요..
누나가 잘 보내주라고.. 엉엉 우는 큰동생과 또 한번 울었습니다..
화장장으로 가는길에 달이 참 밝더라구요..이렇게 달이 예쁜 밤에 널 보낼수 있어서 다행이다.. 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화장장에 가니 먼저 도착한 막내동생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엄마는 차마 볼수가 없다며 같이 오시지 않았구요.
불과 얼마 전에 봤을 때보다 더 작고 앙상한 모습에 가슴이 무너졌어요..
관이 정말 작았는데 그 관이 커보일 정도로 작은 아이..
입관을 마치고도 보내기가 힘들어 한참을 울다 가마로 들어갈 때..
관계자분께서 아이를 덮고 인사를 저희에게 해주시는데
내내 덤덤하던 막내동생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 화장하던 당시가 생각나서.. 그리고 떠나는 아이가 너무 불쌍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어요..
화장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막내동생이랑 앉아
루이가 우리집에 오던 그 당시, 말썽피우던 모습, 재롱 떨던 모습, 개인기 하던 거, 아빠랑 루이랑 지내던 모습들, 아빠 돌아가시고 루이가 아빠자리에 앉아 낑낑대던 모습, 내가 첫 아이를 낳아 보여줬을 때 옆에 누워 아이를 보며 꼬리치던 그 모습, 어느 순간 흰털이 나고 늙어가던 그 모습들, 이제 더이상 침대에 오르지 못하던 그 때.. 눈이 안보이기 시작했을 때.. 소리도 잘 못 듣기 시작했을 때.. 등등을 회상하며.. 또 한참 울고 웃었네요..
이 아이는 참.. 우리에게 작지만 큰 존재였구나..
16년동안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존재가 되었구나..
강아지가 아니라 진짜 가족이었고 내 동생이었다..
아이는 저희의 요청에 따라 스톤으로 남았어요.
스톤은 가족들이 하나씩 나누어 갖고, 나머지는 아버지 안치단에 넣어드리려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정말 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또 한번 펑펑 울었습니다..
아직 네돌도 안된 둘째는 엄마 왜 우냐며 작은 손으로 절 안아주고,
이제 외갓집에 가도 루이가 없어.. 루이는 이제 하늘나라에 가서 못 만나.. 라고 하니
이상한 마음이 드는지 울더라구요..
루이 왜 없어, 왜 못 만나. 그거 싫어 하면서요..
첫째는 제가 화장장 가 있는 사이 루이 그림을 그렸다며 보여주는데..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표현을 어찌 안 건지 그림에 무지개도 그려주고..
뒤에는 루이가 엄마에게 하고싶은 말일 거라며 글씨를 써줬는데..
그 글을 보고 또 무너졌어요..
"다시올개" "루이가"
어쩜 이렇게 저를 보듬어주는지..
큰동생은 저 그림 보고 또 펑펑 울었다고 하더라구요..
저희 가족들은..
아직은 힘들지만 일상을 잘 보내고 있습니다.
친정에서는 아직 루이의 흔적들을 다 치우지 못하고, 앉은 자리, 먹던 밥그릇 물그릇, 갖고 놀던 장난감만 봐도 울컥울컥 하고 있어요..
저 역시 바쁜 일상에 있다가 엄마나 동생들이랑 통화할 때, 루이 사진을 볼 때 울컥울컥 합니다..
밤에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품을 빌어 울기도 합니다.
이 모든 감정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해결되겠죠..
아빠가 떠나셨을 때도 그랬던 것 처럼..
지금은 그냥.. 아빠도 아프지 않고, 루이도 아프지 않고, 둘이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길..
그리고 먼 훗날 둘이 함께 마중나와주길.. 바랍니다..
저희가족은 아이를 안락사로 보내지 않은 결정을 잘 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마 그렇게 보냈다면 아이를 보낸 슬픔+죄책감에 더 힘들었을 것 같다는 얘기를 지금도 합니다..
그렇다고 안락사로 아이들을 보내주신 분들을 비난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아이를 보내는 방법이 다르다 해서 사랑의 크기가 다른 건 절대 아니니까요.
그 또한 아이를 사랑하기에 내리는 결정 중 하나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아이가 계속 괴로워했다면 저희도 그런 결정을 했을 거예요.
루이는 저희가 고민을 하던 그 다음날, 잠만 자듯 있다가 저희를 떠났기에 할 수 있던 결정이었습니다.
이전 글에 댓글 남겨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사랑하는 아이를 무지개다리로 먼저 보내신 견주님들께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는 것은 몇번을 겪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 아픔인듯 합니다.
그리고 반려동물 키우시는 모든 분들
최선을 다해서 추억을 쌓고, 사랑해주시길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전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어떤 방식을 택하든, 그것은 남이 아닌 내가 결정할 방식이고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반려동물과 그 가족분들이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기였을 때..
많이 아팠을 때
입관했을 때
딸아이가 그려준 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