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누군가에겐 다정하고 좋은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나한테서는 그 사람들은 한없이 못된 사람이었다. 그냥, 참…. 다수의 못된 사람들이다. 현재까지.
중학생 3학년으로 올라갈 때, 알게 모르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같이 놀던 친구들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 같은 반(A반)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어느샌가 보니 은따에서 따돌림당하는 그런 존재로 만들어져있었다. 그런데 황당한 건 A반 애들이 전부 나를 안 좋게 본다는 소문이 돌았다. 웃기지도 않는다. A 반에서 나랑 말 섞어 보지 않은 애들이 1/4이며, 안면만 있는 애들이 2/4 그리고 다수의 못된 사람들 1/4이다.
딱 봐도 답이 나오는 이야기다. 마주칠 때마다 째려보는 시선? 꼬투리 잡으려는 말투들? 별별 행동들 사실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 아픔이 지금은 골치 아프게 한다. 우연히 본 사진에 보기 싫은 얼굴을 보니 온몸에 소름이 돋고, 나에게는 세상 모질게 행동하면서 지금은 여러 학교 돌아다니며 취업 진로 강의를 돈다는 게…. 취업 컨설턴트? 란다. 말이 안 된다. 몸이 굳어 사고회로가 정지된다.
현재까지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보면 괴롭히던 무리의 한 친구가 같은 고등학교를 오고 나서, 대학생 때 중학교 동창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등등이었던 것 같다.
몇 달 전, A반이었던 한 동창을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사이가 틀어진 이유에 관해 물었다.
위 얘기들을 늘어놓고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이 말만 몇 번을 되풀이했는지 모른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꼬인 건지. 왜 나에게만 그랬던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동창 친구의 말이 더 가관이다. “어떻게 했길래 반 전체랑 사이가 안 좋을 수 있냐” 딱 이렇게 비수를 꽂았다. 내 머리가 징처럼 댕- 하고 한참을 울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온 걸까? 왜 물어본 거지. 근데 그 동창 친구는 그 무리 중 한 사람(B)에게 되게 고마웠다고 했다. 장난스런 괴롭힘을 당하던 중 B가 구해줬다고 말했다. 그럴 수 있다. 성별이 달랐으니..
본인이 고마워하는 것과 내가 고통받는 것에 대한 괴리감이 상당했다. 그래서 더 상대를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B가 동창에게 준 호의에 또는 동창이 받은 호의에 충분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사람마다 상대를 대하는 행동이 천차만별이기에.
대화를 나누던 시간에 잠깐은 비수를 꽂는 동창이 더 미웠다. 편을 들어 달라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런데 나의 관점으로 볼 순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 관점으로 ‘많은 인연 중에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고, 그 많은 인연 중에서 그 사람들은 100중에 1이라고.. 그 작은 인연에는 아파하지 않는다고..’ 왜 소리 내지 않았는지. 그때의 나를 왜 내가 지키지 못했는지. 여러 생각이 든다 •••.
최근 들어 자살로 인한 뉴스를 많이 접하다 보니, 안타까운 마음을 넘어서 나 또한 여러 힘듦이 뇌리에 박히듯 지나쳤다. 많은 사람이 힘든 시기를 잘 이겨 냈으면 좋겠다.
‘자살’, ‘AOA 민아 사건’이 마음에 남았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올해 7월, 논란이 됐던 AOA 민아 사건을 더욱이 마음에 남았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래, 누군가에겐 다정하고 좋은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나한테서는 그 사람들은 한없이 못된 사람이었다. 그냥, 참…. 다수의 못된 사람들이다. 현재까지.
중학생 3학년으로 올라갈 때, 알게 모르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같이 놀던 친구들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 같은 반(A반)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어느샌가 보니 은따에서 따돌림당하는 그런 존재로 만들어져있었다. 그런데 황당한 건 A반 애들이 전부 나를 안 좋게 본다는 소문이 돌았다. 웃기지도 않는다. A 반에서 나랑 말 섞어 보지 않은 애들이 1/4이며, 안면만 있는 애들이 2/4 그리고 다수의 못된 사람들 1/4이다.
딱 봐도 답이 나오는 이야기다. 마주칠 때마다 째려보는 시선? 꼬투리 잡으려는 말투들? 별별 행동들 사실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러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 아픔이 지금은 골치 아프게 한다. 우연히 본 사진에 보기 싫은 얼굴을 보니 온몸에 소름이 돋고, 나에게는 세상 모질게 행동하면서 지금은 여러 학교 돌아다니며 취업 진로 강의를 돈다는 게…. 취업 컨설턴트? 란다. 말이 안 된다. 몸이 굳어 사고회로가 정지된다.
현재까지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보면 괴롭히던 무리의 한 친구가 같은 고등학교를 오고 나서, 대학생 때 중학교 동창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등등이었던 것 같다.
몇 달 전, A반이었던 한 동창을 만났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사이가 틀어진 이유에 관해 물었다.
위 얘기들을 늘어놓고는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이 말만 몇 번을 되풀이했는지 모른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꼬인 건지. 왜 나에게만 그랬던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동창 친구의 말이 더 가관이다. “어떻게 했길래 반 전체랑 사이가 안 좋을 수 있냐” 딱 이렇게 비수를 꽂았다. 내 머리가 징처럼 댕- 하고 한참을 울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온 걸까? 왜 물어본 거지. 근데 그 동창 친구는 그 무리 중 한 사람(B)에게 되게 고마웠다고 했다. 장난스런 괴롭힘을 당하던 중 B가 구해줬다고 말했다. 그럴 수 있다. 성별이 달랐으니..
본인이 고마워하는 것과 내가 고통받는 것에 대한 괴리감이 상당했다. 그래서 더 상대를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B가 동창에게 준 호의에 또는 동창이 받은 호의에 충분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사람마다 상대를 대하는 행동이 천차만별이기에.
대화를 나누던 시간에 잠깐은 비수를 꽂는 동창이 더 미웠다. 편을 들어 달라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런데 나의 관점으로 볼 순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 관점으로 ‘많은 인연 중에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고, 그 많은 인연 중에서 그 사람들은 100중에 1이라고.. 그 작은 인연에는 아파하지 않는다고..’ 왜 소리 내지 않았는지. 그때의 나를 왜 내가 지키지 못했는지. 여러 생각이 든다 •••.
최근 들어 자살로 인한 뉴스를 많이 접하다 보니, 안타까운 마음을 넘어서 나 또한 여러 힘듦이 뇌리에 박히듯 지나쳤다. 많은 사람이 힘든 시기를 잘 이겨 냈으면 좋겠다.
저마다의 사정은 다 있고, 저마다의 힘듦도 존재한다. 말로 뱉지 않을 뿐이다.
살자. 열심히 행복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