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탈 죄송해요. 근데 어딘가에라도 이 언니가 저에게 해준 걸 말하고 싶었는데 맨날 맘속에만 담고있다가 익명으로 씁니다. 25살이에요. 폰으로 쓰는거라 음슴체 이해해주세요.
우리 엄마는 동네 치맛바람 대장이었음. 아빠 돈 잘 벌고 엄마도 잘 벌었음. 그런데 둘 다 학력 콤플렉스 있음. 그래서 나랑 오빠를 어릴때부터 좋은 대학 보내려고 맘 먹음. 오빠는 살아있음 30살로 얼굴도 이뻐서 좋은 여친 있었을거임. 내가 살아있다고 가정하는 이유는 나중에 말할거임.
난 순종적이고 성실한 오빠와 달리 초딩때부터 공부를 극혐하고 말 오지게 안 들었음. 유딩때부터 눈높이, 재능, 구몬 이런거 끊임없이 했는데 선생님들이 내가 너무 말 안들어서 포기함. 엄빠가 강남에서 웬만한 학원 다 보냄. 근데 늘 2달도 못가서 쫓겨나다시피 나옴. 지금 생각해보면 ADHD였던 것도 같음.근데 엄마가 치맛바람 날릴 때 아는 아줌마가 있었음. 그 아줌마 딸이 나보다 10살 언닌데 연대생이었음. 그 아줌마가 자기 딸이 애들을 너무 좋아하는데 과외 도전해보겠다고 함. 그래서 나 11살 때 언니를 처음 만남.
첨 봤을 때 넘 예뻤음. 지금 생각해보면 전형적인 미인은 아닌데 나랑 달리 피부가 백옥처럼 하얗고 아담하고 맑고 땡그란 무쌍눈에 조화잘된 청순여신이었음. 난 이번에도 역시 개ㅈㄹ을 ㅅ전함. 근데 눈 하나 꿈쩍 안 하는거임. 그래서 나도 오기가 생겨서 더 ㅈㄹ함. 그런데 그러는 날 그 맑은 눈으로 날 가만히 보기만 하는거임. 그래서 왜 나 안 혼내냐고 물어봤더니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너 되게 착한 애구나? 그럼. 난 이게 뭔소린가 싶어서 멍하니 있었는데 내가 잘못한 걸 아는 게 착한거라고, 나중에 그걸 고친다면 착한데다 똑똑한 거라고 함. 그래서 난 맨날 문제아 취급 받다가 그말 한마디에 달라짐. 숙제도 웬만큼 꼬박꼬박 했고 태도도 많이 고침. 문제집 비 개많이 내렸는데도 무조건 열심히 해서 훌륭하다고 함. 이게 내 인생에서 기억나는 첫번째 칭찬임.
난 그때 이후로 정말 달라짐. 공부를 막 잘하진 못했어도 그래도 단원평가나 중간기말에는 80~90 정도까지 올라감. 성적도 성적이지만 담임쌤들과의 관계도 좋아짐. 엄빠도 그런 점에서 그 언니를 정말 맘에 들어함. 나도 언니가 내 유일한 약이었음. 당시 엄빠말은 안 들어도 언니 말은 들음.
그러다가 언니가 3학년 때 휴학함. 그땐 잘 몰랐는데 지금 보면 몸이 좀 아팠던 거 같음. 그래도 일주일에 3번있는 내 과외는 옴. 그렇게 난 무사히 중학교에 입학했고 엄빠나 나나 평범한 중학생활을 기대했음. 근데 우리 가족의 지옥이 시작됨. 고3이던 우리 오빠가 모의고사 보고나서 아파트에서 뛰어내림. 아직도 그 날을 잊을 수 없음.
3교시 체육 끝나고 교실 돌아가는데 담임쌤이 집에서 전화왔다고 함. 전화기 너머로 엄마 우는 소리가 들림. 아빠가 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오빠가 병원에 있다고 함. 그래서 난 암것도 모르고 병원으로 갔는데 오빠가 호흡기를 달고 처참한 몰골로 누워있었음. 유서가 옷 안에 있었다고 함. 엄마 옆에서 계속 울고 아빠는 넋이 나가서 눈물만 흘림. 침대 위에 있는 환자가 오빠라는 생각이 안 들어서 눈물이 안 났음. 그렇게 이틀을 보내다가 오빠가 떠남. 그제서야 눈물이 펑펑 쏟아짐. 마지막날 발인하는데 아빠가 오빠 시체 못 보게 내 눈을 가렸는데 그 손이 엄청 떨림이 느껴졌음. 난 아빠 손에 눈물 다 쏟음.
발인 다음날 언니한테 전화왔는데 안 받음. 내가 아파트 단지에서 오빠가 뛰어내린 곳만 계속 보면서 울었음. 근데 언니가 갑자기 나타나서 나 안아줌. 장례식장에도 왔었다는데 기억은 안 남. 언니 품에 머리 박고 눈물콧물 질질 짜면서 울음. 다른 말은 기억 안나는데 이 말만 기억함. 엄마아빠는 ㅇㅇ이 있으니까 이겨내실거야. ㅇㅇ이는 엄마아빠 계시니까 힘내자. 언니가 ㅇㅇ이한테 할말이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해. 이거였음. 지금 쓰면서도 눈물남. 나중에 이어쓰겠음
내 인생을 바꿔준 언니 이야기
별로 안 길다고 하셔서 글 두개 합첬어요
방탈 죄송해요. 근데 어딘가에라도 이 언니가 저에게 해준 걸 말하고 싶었는데 맨날 맘속에만 담고있다가 익명으로 씁니다. 25살이에요. 폰으로 쓰는거라 음슴체 이해해주세요.
우리 엄마는 동네 치맛바람 대장이었음. 아빠 돈 잘 벌고 엄마도 잘 벌었음. 그런데 둘 다 학력 콤플렉스 있음. 그래서 나랑 오빠를 어릴때부터 좋은 대학 보내려고 맘 먹음. 오빠는 살아있음 30살로 얼굴도 이뻐서 좋은 여친 있었을거임. 내가 살아있다고 가정하는 이유는 나중에 말할거임.
난 순종적이고 성실한 오빠와 달리 초딩때부터 공부를 극혐하고 말 오지게 안 들었음. 유딩때부터 눈높이, 재능, 구몬 이런거 끊임없이 했는데 선생님들이 내가 너무 말 안들어서 포기함. 엄빠가 강남에서 웬만한 학원 다 보냄. 근데 늘 2달도 못가서 쫓겨나다시피 나옴. 지금 생각해보면 ADHD였던 것도 같음.근데 엄마가 치맛바람 날릴 때 아는 아줌마가 있었음. 그 아줌마 딸이 나보다 10살 언닌데 연대생이었음. 그 아줌마가 자기 딸이 애들을 너무 좋아하는데 과외 도전해보겠다고 함. 그래서 나 11살 때 언니를 처음 만남.
첨 봤을 때 넘 예뻤음. 지금 생각해보면 전형적인 미인은 아닌데 나랑 달리 피부가 백옥처럼 하얗고 아담하고 맑고 땡그란 무쌍눈에 조화잘된 청순여신이었음. 난 이번에도 역시 개ㅈㄹ을 ㅅ전함. 근데 눈 하나 꿈쩍 안 하는거임. 그래서 나도 오기가 생겨서 더 ㅈㄹ함. 그런데 그러는 날 그 맑은 눈으로 날 가만히 보기만 하는거임. 그래서 왜 나 안 혼내냐고 물어봤더니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너 되게 착한 애구나? 그럼. 난 이게 뭔소린가 싶어서 멍하니 있었는데 내가 잘못한 걸 아는 게 착한거라고, 나중에 그걸 고친다면 착한데다 똑똑한 거라고 함. 그래서 난 맨날 문제아 취급 받다가 그말 한마디에 달라짐. 숙제도 웬만큼 꼬박꼬박 했고 태도도 많이 고침. 문제집 비 개많이 내렸는데도 무조건 열심히 해서 훌륭하다고 함. 이게 내 인생에서 기억나는 첫번째 칭찬임.
난 그때 이후로 정말 달라짐. 공부를 막 잘하진 못했어도 그래도 단원평가나 중간기말에는 80~90 정도까지 올라감. 성적도 성적이지만 담임쌤들과의 관계도 좋아짐. 엄빠도 그런 점에서 그 언니를 정말 맘에 들어함. 나도 언니가 내 유일한 약이었음. 당시 엄빠말은 안 들어도 언니 말은 들음.
그러다가 언니가 3학년 때 휴학함. 그땐 잘 몰랐는데 지금 보면 몸이 좀 아팠던 거 같음. 그래도 일주일에 3번있는 내 과외는 옴. 그렇게 난 무사히 중학교에 입학했고 엄빠나 나나 평범한 중학생활을 기대했음. 근데 우리 가족의 지옥이 시작됨. 고3이던 우리 오빠가 모의고사 보고나서 아파트에서 뛰어내림. 아직도 그 날을 잊을 수 없음.
3교시 체육 끝나고 교실 돌아가는데 담임쌤이 집에서 전화왔다고 함. 전화기 너머로 엄마 우는 소리가 들림. 아빠가 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오빠가 병원에 있다고 함. 그래서 난 암것도 모르고 병원으로 갔는데 오빠가 호흡기를 달고 처참한 몰골로 누워있었음. 유서가 옷 안에 있었다고 함. 엄마 옆에서 계속 울고 아빠는 넋이 나가서 눈물만 흘림. 침대 위에 있는 환자가 오빠라는 생각이 안 들어서 눈물이 안 났음. 그렇게 이틀을 보내다가 오빠가 떠남. 그제서야 눈물이 펑펑 쏟아짐. 마지막날 발인하는데 아빠가 오빠 시체 못 보게 내 눈을 가렸는데 그 손이 엄청 떨림이 느껴졌음. 난 아빠 손에 눈물 다 쏟음.
발인 다음날 언니한테 전화왔는데 안 받음. 내가 아파트 단지에서 오빠가 뛰어내린 곳만 계속 보면서 울었음. 근데 언니가 갑자기 나타나서 나 안아줌. 장례식장에도 왔었다는데 기억은 안 남. 언니 품에 머리 박고 눈물콧물 질질 짜면서 울음. 다른 말은 기억 안나는데 이 말만 기억함. 엄마아빠는 ㅇㅇ이 있으니까 이겨내실거야. ㅇㅇ이는 엄마아빠 계시니까 힘내자. 언니가 ㅇㅇ이한테 할말이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해. 이거였음. 지금 쓰면서도 눈물남. 나중에 이어쓰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