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랄했던 새엄마 옆에 더 사악했던 우리 아빠 5 마지막

ㄴㄴ2020.11.16
조회9,769
추가//이렇게 끝내기 너무 아쉬워서 번외편으로 한 더 써서 올렸어요 ㅎㅎ이번에는 너무 무거운 얘기 아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므흣하게 보셨으면 좋겠어요근데 이 마지막편은 왜 이어쓰기가 안되는걸까요...여섯번을 시도했는데도 안되네요 ㅜㅜ번외편 제목은악랄 새엄마 번외편/ 로또 맞으면 반 떼어주고싶은 내친구이에용오바쌈바해서 죄송합니다.........






하... 저 이거 다 날라가버려서 다시 썼어요 ㅜㅜ
이거 쓰다가 하루가 다 가버릴줄은 몰랐어요 흐어엉...
그래도 마무리 잘 해보렵니다



마지막글이에요~!!
심기일전하고 컴터 책상앞에앉아 키보드를 타다다다 두드리는데 신랑이 슬쩍 제 뒤로 오길래..뭐얏 내 글 훔쳐보려고 이러나??했드니 갑자기 정수리 냄새를 킁킁 맡고 우어어어억!!! 하는거있죠-_-
저는 요즘 환경보호에 힘을 쓰느라 주말엔 머리를 감지않고 있거든요^^
하지만 머리에 비듬은 없으므로 음슴체 가겠음
오타야 너도 끝까지 나와 함께 가잣꾸나 허허
나는 원래 일기쓰는걸 좋아함
다꾸도 상당히 좋아함스티커 덕후임 데헷
하지만 고딩때 아빠새끼가 내가 다이어리에 자기 욕 써놓은거 내방뒤지다 열어보고 다섯시간 앉혀놓고 고문시키길래 그것도 다 때려쳤음
그때 막 나를 한대 갈길것 마냥 손올렸다가 내리는 와중에도 나는 이상하다.. 난 분명히 주어를 빼놓고 욕을했는데 어케 알았지? ㅡㅡ 라는 생각이 들었음
아빠를 욕한게 아니라 딴사람 욕한거라고 발뺌하봤자 소용없을것 같아 그냥 입 꾹 다물고 나죽었소..했음 
아빠는 나 고딩때부터 몇시간씩 앉혀놓고 고문시키는걸 참 좋아했음
어느날은 72인치 티비만한 꼬질꼬질한 화이트보드 하나를 어디서 주워와서는 거실에 떡하니 놓고 나보고 앞에와서 앉으라는거임
쇼파에는 못앉게 했음무조건 바닥에 앉아서 부동자세 해야함
나는 중3때 다리 수술을 해서 그렇게 장시간 방바닥에 앉아있는것 자체가 정말 생고문임
어느날은 내 진로에대해 얘기하고 어느날은 나의 성격형성이대해 얘기하였음
내 진로는 아빠가 정해주는거임나 어릴때부터 하고싶은거 무지 많았는데 입밖으로 한마디도 못꺼내봤음
대학교도 그인간이 정해준 학교, 과 지원해서 들어갔음
그인간 말하길 나는 성격이 족같아서 살도 안찌고 쌍판데기도 그모양 이라했음
그리고 항상 다른 누군가와 비교를 했음
비교대상 탑은 내동생임
참고로 내가 막 이쁜얼굴은 아니지만 새엄마가 맨날 나 데리고 시장가다가 동생 태어나서 걔데리고 나가자 시장 사람들이 다 큰애만 못하다며 솔직 발언을 하셨다함
내동생 친구들 우리집에 놀러왔을때 걔네가 동생에게 말하길 너는 이렇게 생겼는데 언니는 참 다르게 이쁘게생기셨다고 -_-.
내동생은 키가 매우 작고 까무잡잡하며 새엄마 성형전 얼굴 판박이임
우리 친엄마도 절대 이쁜 얼굴은 아닌데 하얗고 키크고 몸매가 좋았음
나는 그래도 아빠 이목구비가 좀 괜찮은데 그걸 닮았고 나머지 흰피부에 키큰거랑 몸매는 엄마닮아 집에서 나혼자 키가 큼
미용실 손님들이 새엄마한테 옆에 동생이 있는데도 나만 미스코리아시켜라 모델시켜라 그럴때마다 아우 그래야죠~ 하면서 그여자 표정 썩어들어갔음
내가 눈에 띄게 이쁜게 아닌데 동생이랑 있으면 상대적으로 더 나아보였음
그래도 내얼굴의 완성은 쌍수가 아닐까 싶음ㅋㅋㅋ 
그랬거나 말았거나 아빠새키 눈에는 내동생이 훨 이쁘고 탈렌트였고 나같은건 동생 똥꾸녕도 못핥을거다 그러고 또 나는 지 생모년 닮아가지고 생긴게 참 말그대로 지읒같다고 하였음
항상 결론은 그거였음넌 니 생모년이랑 똑같이 생겨서 재수가 없다 쌍판데기 쳐다볼때마다 패 죽여버리고싶다 하며 손을들어 때리려 확~ 씨!! 아오 싯팔 함
처음에는 그놈의 화이트보드에다다 끄적끄적하면서 뭐 강의라도 하는양 꼴깝떨다가 마지막엔 끝날 무렵엔 그 마커 내얼굴에 집어던짐
어떤날은 그 고문이 장장 7시간동안 이어졌음
화장실만 딱 한번 가게해주고 물한모금 못마신채 계속 방바닥에 부동자세 시킴
다리가 너무 아파서 살짝 일어나려하면 다과상 들어서 나한테 집어던지려함
내가 무서워서 움찔움찔하면 저 __ 지생모 닮아서 쩔쩔 대기는!! 야이 싯팔년아 너땜에 그년생각나자나 아오 니년 태어나는바람에 그여자랑 결혼해서 내인생 다망친거야 ____...이라 하길래 속도위반 사고쳐서 결혼한줄 앎
근데 나중에 알고보니 둘이 연애결혼했고 결혼해서 4년후에 날 낳았으며 그 전에 애하나를 더 임신했었는데 친엄마가 임산한거 말 안하고 지웠다 함
왜 하필 걔가 아니고 날 낳았나 원망이 됐음
차라리 걔가 태어나고 날 지웠으면 이고생을 안했을것을...
근데 뭐 그때는 그인간 뻔뻔하게 거짓말 하는통에 진짜 나땜에 결혼한줄 알고.. 속으로는 그래 이샛키야 나땜에 인생망쳐 미안하다 이샛키야~ 하며 겉으로는 죄인마냥 미안해...하며 울었음
울기라도해야 이 장시간의 고문이 끝날것같았음
큰 오산이었음
이년이 반항하냐며 싸대기 후려 갈겼음
오늘은 7시간이나 고문시켰으니 안때리겠거니했는데 또 맞았음
때리면서 또 신고해봐 상년아. 세상에 지애비 경찰에 신고하는년은 너밖에 없울거다 이 천하에 싹바가지 없는년같으니라고- 하며 씩씩대는데 나는 정말 이제 가망이 없다 싶었음
그날밤은 피울줄도 모르는 담배가 생각이 났음
내방 배란다 창문을 활짝 열고 방충망도 다 열어재꼈음
그리고 그 창틀에 걸터앉았음
나는 원래 고소공포증이 있어 높은곳 무서워하는데 그날은 하나 무섭지도 않고 11월 꽤 추운날씨에도 그냥 시원했음
우리집은 10층..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기 딱 좋겠지? 싶었음
새벽 두시 지나가는 사람하나 없고 툭 떨어지기만하면 될일이었음
근데 그 마지막 용기가 나질 않는거임
평소에 가위를 하도 많이 눌리니까 귀신이 있을거라 생각했었음
지금 여기에 어떤 귀신 딱 하나라도 있으면 나를 톡 밀어줬으면 좋겠다 했음 
망할... 그냥 바람만 살살 불었음
나란년.. 칼로 손목도 못긋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도대체 어떻게해야 죽을수있는건지 한심하고 병신같고 스스로 혐오스럽기만했음...
그렇게 시작됐던 자살충동으로 결국 나는 스무살에 수면제 50알을 입에 털어넣기도했음
간은 콩알만해서 한번에 한군데서 50알을 다 사면 자살하는게 티날까봐 다섯군데 약국을 돌아다니며 사서 모았었음매번 뭐 그렇게 찌질했나 모르겠음ㅡㅡ
그때 그거 먹고 위세척 없이 살아나긴 했음
50알이면 양이 너무 적었나봄..
대학생때도 종종 자살충동이 올라오길래 처음으로 정신과 상담도 받아보고 그랬음
어느날은 설거지를 하는데 식칼을 닦다 문득 이걸로 저새끼를 찌르면 죽으려나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음 
그 칼을 수세미로 수십번을 닦으며 막 상상을 했음
이가 악 물리고 몸을 부들부들 떨리면서 손에 힘이 꽉 들어갔음
와.. 이러다 내가 살짝만 정신 돌면 살인나겠다 싶었음
아빠는 맨날 나랑 새엄마 죽인다고 오한마를 안방 서랍장 위에 올려뒀었음
나는 아빠 없을때 방에 들어가서 그걸 한번씩 들어봤음
내가 들기가 쉬워야 이걸로 때려죽일수가 있으니까- 너무 무거워서 이거 들었다간 그전에 그놈이 날 먼저 때려죽이게 생겼으므로 이건 탈락
그인간 어디 나갔다가 들어오는시간이 예상보다 조금 늦어지면 어디서 교통사고라도 심하게 당해서 죽어버린어거면 좋겠다 생각했었음
그러나 어김없이 집으로 겨 들어오는 그 꼴을 보고나면 맥이 확 풀렸음
내가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것같았음이대론 안되겠다싶어 주말에 도서관간다하고 큰엄마한테갔음가서 맛난밥도 먹고 식당 서빙일도 도와드리고 용돈도 받고 즐거운 시간 보냈음
가겟방에 큰엄마랑 누워 한참을 이야기했음
나 요즘에 진짜로 아빠를 죽여버리고싶다고막 칼 집어드는 상상한다고...
큰엄마는 내 등을 둥굴게 쓱쓱 문질러 주시면서 사람은 항상 마음을 곱게 써야한다 하셨음
그런 사람같지도 않은것들은 알아서 그 벌 다 받을거고 나는 워낙 초년고생이 심하긴하지만 원래 착한애니까 지금처럼 참고 착하게 살아가다보면 좋은남자만나 시집가서 사랑 듬뿍 받고 잘 살거라 하셨음
나는 그냥 큰엄마냄새가 너무 좋아서 큰엄마 겨드랑이에 얼굴 파묻고 더 한참을 누워있었음
내가 어린시절 사춘기 시절 나쁜길로 엇나가지않고 그래도 정신줄 꽉 붙들며 살아갈 수 있었던건 큰엄마 덕분이었음
힘들때면 항상 전화하고 찾아가고 큰엄마한테 힐링받고 다시 돌아와 이 지옥속에서 또 하루하루를 버텨냈음
우리 큰엄마 없는 살림에 나까지 데려다 아빠한테 돈한푼 안받고 거둬먹이느라 많이 힘드셨을거임
어디가서 한소리씩 듣지말라고 식사예절도 엄하게 가르치셨고 내자식아니라고 나몰라라 않고 숙제해라 공부해라 닥달도 많이 하셨음 
초딩 중딩때 다리가 너무 아파서 계단도 잘 못올라갈때 새엄마는 성장통이라 괜찮다며 날 방치할때 나 데리고 좋다는 한의원 여러군데 다니며 침 맞춰주시고 지방이랑 서울에 있는 병원에까지 나 데려가서 주사 맞춰주셨음
새엄마가 내 속옷도 제대로 안사주면 나 데리고가서 다 사주시고 그여자 미용사임에도 불구하고 내 곱슬머리 매직한번 안해줘서 큰엄마가 미용실 데려가 해주셨음
그리고 우리 큰아빠.. 엄근진 무뚝뚝하시고 항상 말도 없으신분이시지만 나 한살배기때 너무 일찍 엄마 떨어졌다고 누워서 응애응애 우는 나보고 너무 불쌍해서 구석에서 혼자 우셨다함
애정표현도 못하실뿐아니라 오빠들 어렸을때 잘 안아주지도 않으셨다는데 나는 큰아빠가 안아주신 기억이 꽤 있음대학때 
기숙사 짐빼고 하숙집 옮기고 자취방 이사할때도 다 큰아빠가 트럭 가져다 해주셨음내 친부란 작자는 나 때리려고 일부러 술쳐먹고 들어와서는 이불 얼굴까지 뒤집어쓰고는 무서워서 자는척했으나 몸은 바들바들 떨리고있는 나를 비웃으며 안자고있는거 다알아 __아 하믄서 허리를 발로 차곤 했었는데...
큰아빠는 오빠들한테 회초리 한번을 안드심
그래도 오빠들은 충분히 큰아빠 무서워도하고 존경도하고 알아서 말 잘들었음
아빠가 친엄마랑 처음 이혼했을 때 큰엄마 큰아빠는 나를 달라고하셨댔음
입양해서 본인들 딸로 키우겠노라고...
아빠가 절대 안줌 
개객끼.
망할새키가 그때 큰엄마 큰아빠한테 나 줬으면 나는 다른 삶을 살았을텐데...
나는 다음생엔 큰엄마 큰아빠 막내딸로 태어나고싶음
지금도 나는 두분 딸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래도 정말 진짜 친딸로 태어나고픔이 
죽지못해 살아가는 날들이 도대체 언제끝나려나.. 저인간 죽어야 끝이나나.. 하다가 대학교때 날 내쫓아준 덕에 난 그 거지같은 소굴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
그뒤로 나한테 직접연락은 거의 안했음
해도 내가 안받는다는건 참 잘 앎
자기한테 숙이고 들어오면 대학 등록금 대주겠다, 내 너의 졸업식을 꼭 가야겠다 이런말들을 새엄마나 동생을 통해 전했음
대학 졸업후에 새엄마랑 동생 다 연락끊고 살던 어느날 회사에서 회식이 있는날이었는데 2차로 노래방을 갔었음
그날따라 노래방에 앉아있는게 참 싫었음
그러는 찰나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고 나는 얼씨구나하고 전화를 받으며 그 방을 빠져나왔음
-여보세요?
-아빠야..
노래방이라 시끄러워서 네? 여보세요? 누구세요? 를 연발하는데쓰니야, 아빠라고....순간 소름이 쫙 끼쳤지만 나는 폰을 귀에서 떼고 다 들리게끔 뭐래~ 아빠는 무슨! 하며 내 핑크빛 롤리팝 폴더를 경쾌하게 콱 닫아버림ㅋㅋ
그게 아빠와의 마지막 통화
나는 지금 미국에 살고있음 
어릴때부터 본능적으로 이집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는지 나는 항상 해외로 나가고싶어했음
호주로 워홀을 가고싶어했다가 사촌오빠가 대학 졸업후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오는걸 보고 미국으로 경로를 바꿈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집을 정리하고 미국으로와서 알바 투잡뛰며 학교 다녔음
모아두었던 돈이 많지 않아 주말이면 고깃집에서 하루 14시간 고기구우며 진짜 한국에서 대학다닐때랑은 비교도 안될만큼 빡세게 살았음
차도 없던 시절 지낼곳마저 없었을때 친구 차에서 이불 두개씩 덮고 자기도했고 학교 화장실에서 양치하고 세수하고 그랬었음
아는 언니네 옷방에서 지낸적도 있고 알바하는 식당 히스페닉 노동자들 숙소에서 잠깐 지낸적도 있었음 
큰엄마랑 사촌오빠들 한국에 내 친구들은 다 막 빨리 한국 다시 나오라고 난리가 났었음
나는 그대로 포기하고 돌아가고싶지 않았음
가더라도 뭐 하나는 해내서 가고팠음나는 깡 말랐지만 악으로 깡으로 버텼음
비 오빠의 1일 1깡은 뭐 암것도 아님 
어느샌가 나는 차도 생기고 하숙집에 들어가서 편히 지내고 좋은 사람들 만나 도움도 아주 많이 받으며 점점 자리를 잡아갔음
위기가 왜 없었겠음
고통사고가 심하게 나서 차도 폐차하고 위태로웠을땐 큰엄마가 돈을 보내주셨고 학비가 빵꾸났을땐 중딩때 베프 그친구 부모님이 한학기 학비랑 생활비까지 보내주셨음
그 중딩 베프 내 친구님은 생일때마다 돈을 보내줬고 친척언니 한명도 학비에 보태라며 돈을 보내주기도 했었음
빠듯빠듯했지만 진짜 열심히 살았음그와중에 나는 내가 어릴적 남몰래 꿈꾸었던 것도 이뤄봤음
모델 ㅋㅋㅋ
키가 큰편이긴해도 프로모델을 할만큼 완전 크진 않았기땜에 아마추어 모델 활동을 했었음
열네살 열다섯살 피지컬 장난아닌 백인 흑인 애들속에 혼자 제일 늙었지만 그래도 동양인중에는 유일하게 오디션 패스하고 당당하게 런웨이 걸어봤음
쇼도 몇개 나가고 촬영도하고 잡지에도 실려봤음피팅
모델일도 해보고.. 마지막에 뉴욕 패션 윅 딱 찍고 그 다음해에 신랑만나 결혼했음
우리 신랑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고 다정다감하고 결혼해서 3년 넘도록 나는 청소기한번 안돌리고 빨래 한번 안했을 정도로 집안일 척척 잘해줌
나는 그저 음식 열심히 하고 설거지 더 열심히 하고 ㅋㅋ참, 결혼식 할때는 큰엄마랑 오빠들이 돈 다 보내줘서 그돈으로 무사히 치름
그때는 큰집식구들이 아무도 미국에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나는 가족한명 없이 결혼식을 올렸지만 신랑 팔짱끼고 씩씩하게 입장했고 휑한 가족석엔 친구들이 가득가득 채워주었음
내가 결혼식에 돈을 보탰다하더라도 사실 결혼식은 어머님이 알아서 다 해주신 거임 
내 드레스 까지도 어머님이 사주셨으니까..
여기서 잠깐 시댁 자랑을 좀 하자면,
시부모님은 두분 사이 좋으시고 자식들 뒷바라지 열심히 하시고 사신분들임
우리 어머님 결혼하고 처음 내 생일에  생일상 거하게 차려주시고 생일이랑 크리스마스엔 항상 캐쉬 선물, 본인 옷사러 백화점 가시면 어머님꺼 한벌 내꺼 두벌 사오심
남들은 친정에서 살림살이 다 가져온다는데 나는 어머님이 김치, 반찬, 과일 등등 항상 갈때마다 바리바리 싸주심
미리 사두신 겨울 레깅스도 내가 필요하다하시면 다 내여주시고 신발 사이즈도 똑같아서 신발도 잘 주심
우리 아버님은 새차 뽑으면 며느리 옆에태워 드라이브 시켜주시고 어머님이 내 생일상 차리실때 옆에서 동그랑땡 만드심
직장상사 욕할때도 잘 들어주시고 얼굴보고는 아니더라도 카톡으로 항상 다정한 말씀해주시고 어머님 몰래 용돈도 따로 주심
한번은 내가 팔을 다쳐서 운전도 못하고 하필 그때 신랑은 많이 바쁠때여서 집에만 콕 박혀있다가 너무 심심하다하니 우리 아버님 아침에 출근하시면서 날 친구집에 데려다주시고 퇴근하시면서 데리러 오심
아버님 우리 아빠랑 동갑이심
이렇게 다를수가 없음..
아빠도 나한테 해준적 없는거 아버님이 많이 해주심 
이런게 가족인거구나 싶을때가 많음
어머님은 항상 내게 큰엄마 큰아빠께 잘하라 하심
조금 더 여유생기든 얼른 미국 모시고 와서 여행 시켜드리라 하심
나는 큰엄마 큰아빠도 그렇지만 시부모님께도 잘하고싶음
지금은 신랑 직장때문에 타주로 이사를 왔지만 이틀에 한번 시댁 단톡방에 고양이사진이랑 내사진도 올리고 종종 영통도 하며 지냄
우리 큰엄마는 내가 결혼한 뒤로 두발 뻗고 주무신다 함
내가 좋은사람만나 결혼해서 잘 사는 모습 보니 너무 좋으시다고....
근데 몇달 전 이 아빠란 새끼가 큰집 코 앞으로 이사를 감
새엄마랑은 진작부터 별거중인지라 지금은 또 다른 여자랑 같이 산다 함
그인간이 최근 왜 그곳으로 이사를 간건지 나는 충분히 예상이 감
이제 나이를 꽤 먹은데다가 몇년전부터는 동생이 새엄마와 가깝게 지내므로 아빠랑 연락을 딱 끊고 사는 걸로 알고있음
그동안 나를 찾아내려고 여기저기 알아봤을 거임
내가 찾아질리가 있나 한국 떠나온지가 언젠데..
그인간 40대부터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 지방간 다 가지고 있었는데 얼마전에 심하게 아파서 병원에 꽤 오래 입원을 했었다 함
그러고 나니 내 생각이 더 났겠지.나를 찾아내기 위한 최후의 수단은 우리 큰집임
나는 명절에 큰집엘 가면 항상 큰엄마 큰아빠랑 같이 잤었음
지들 세식구 같이 자고 나는 당연한듯이 큰엄마 큰아빠랑 같이 자는 걸 보면서 뭔가 느끼는것 같았음
내가 모든사람 다 끊고 지내도 큰집 식구들만큼은 왕래할거라고 예상했을거임
그래서 그곳에 진을 치고 매일같이 산책을 하는척 큰집앞을 지나며 염탐한다고 함
처음 그 사실을 알고 나는 몇일 밥도 잘 못먹고 잠을 계속 설쳤음
나는 분명 여기 미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인간이 내 코앞까지 들이닥친 기분이었음
어쩐지 겁도 나고 무엇보다 큰엄마 큰아빠가 걱정이 되었음
무슨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나...
오빠들이랑 통화를 하고 이런 얘기들을 하니 걱정 붙들어매고 너는 거기서 밥 잘먹고 잠 잘자고 잘지내고만 있으라 함
오빠들이 제일 벼르고 있는건 우리 아빠임
우리 어릴적 아빠가 큰아빠 멱살잡고 목조르고 죽인다고 난리쳤던 그 장면을 우리 모두가 다 봤었기 때문에...
그때 오빠들은 너무 어렸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그게 한으로 맺혀있음
그래서 지금 그인간이 무슨 짓거리 하나만 하면 진짜 끝을 보려고 주시하고 있는 중이라 했음
새엄마도 같은 이유로 얼마전에 큰엄마한테 전화해서 나에대해 아는게 있는지 떠본거임
이제 나이먹고 허리 분질러져서 수술한 후유증때문에 미용실 일도 제대로 못할테고 동생은 아빠랑 살때 자기 엄마 딱 끊고 살았던 애라 자기랑 또 틀어지면 얼마든지 연 끊고 살거란걸 알거임
내동생은 참 어지간히 냉정한 아이임
그리고 그 속을 잘 알수도 없음예전에 동생이랑 연락끊긴 새엄마가 큰엄마한테 전화해서 그래도 쓰니는 참 착했는데...하며 한참을 아쉬워 했더랬음
짤없음
우리집 곧 더 큰집으로 이사감
원래는 한국 갔다온지가 너무 오래되어 코로나 끝나면 바로 한번 나갔다올 계획이었으나 그새끼 거기서 그러고 있다는 소식에 계획변경함
한국 절대 안나감
대신 오빠들한테 식구들이랑 미국 놀러올때 꼭 큰엄마 큰아빠 모시고 오라고 함
우리 이사가면 그집에 와서 편히 지내다 가시라고 ㅎㅎ
큰엄마 보고싶어 죽겠는데... 영상통화만하며 꾹 참고있음 ㅠㅠ
나는 그인간이 살아있는 동안은 절대 그앞에 안나타날거임
죽을병에 걸렸다해도 찾아갈 생각 절대 없음우리 신랑 그리고 나중에 내자식들도 보여줄 생각 1도 없으므로 음슴체는 이만 끝내야겠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그리고 저 틈틈히 댓글 하나하나 다 읽어봤어요..제가 뭐라고.. ㅜㅜ 얼굴한번 본적 없는 저에게 따뜻한말 해주시고 토닥토닥 위로 응원 다 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해요..가슴에 응어리진거 글로 풀어내면서 참 많이 힘들었는데 그래도 다 해버리고 나니까 후우련한게 있네요 허헛막 제가 그인간들한테 통쾌하고 복수하고 축배 사이다 결말을 원하셨던 분들께는 좀 실망스러울수도 있겠지만 저.. 지금 충분히 행복해요ㅎㅎ저는 지금 이런 제 결말이 더 좋아요앞으로 살면서 어쩌다 한번씩 여기 들어와 제가 썼던 글도 보고 댓글들도 볼것같아요그때는 이 글을 읽으면서 좀 다른 기분이 들것 같아요글쓰면서 느꼈던 점 중 하나는.. 나는 작가는 못하것다- 였어요사실 어릴적 제 꿈중 하나가 글쓰는 작가였거든요어후 이거 아무나 하는거 아닌것 같아요 ㅜㅜ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그대로 글로 쓰는건데도 떠오르는 일들이 막 두서없어 정리하고 풀어서 써내려가는게 저한테는 너무 빡세더라구요그리고 저는 이제 제가 꿈꿔왔던 일중 하나를 또 이루기 위해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해요원래는 결혼하자마자 공부하려했는데 다니던 직장을 바로 그만둘수 없어서 쬐금 더 일하다 미뤄지고 오래부터는 꼭 하자 했는 코로나땜에 또 미뤄지고 ㅜㅜ미국은 지금 코로나 장난아니거든요... 역시 케이방역 짱 ㅋㅋ글을 마무리하다 보니 웃음이 절로 나네요이거 올리고 오늘밤 자려고 누우면 막 다쓰지못한 일들 생각나서 이불을 퍽퍽 차버릴지도 모르겠어요 ㅎㅎ하지만 여기서 그만 끝내겠습니당제 글 읽으시며 같이 열폭하시고 속상하시고 어릴적 상처에 힘드셨던 분들 모두다 저랑 같이 꽃길만 걸으시길 간절히 바래요감사합니다 진심으루 ㅎㅎ

댓글 52

지나가다가오래 전

Best해피엔딩인것같아 넘 좋네요~^^ 늘 행복하세요~

ㅇㅇ오래 전

Best아..덧글 달았던 사람인데요 ㅎㅎ 실례지만 혹시 좋은 시댁 만나서 즐거운 결혼 생활 하시는 그런 스토리도 좀 연재 해주시면 안되나요?? 사실 쓰니님 글을 처음 보았을때 아무 생각 없이 읽어 나가다가 점점 몰입 되어 지기도 한 점도 있구요. 글 쓰시는 솜씨가 너무 좋으신 것 같아서요.. 아픈 기억은 이제 저 멀리 날려 버리시구 미국에서의 생활 이라던지 즐거운 시댁 남편 이야기 같이 연재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글 솜씨가 너무 좋아서 아까와요.. 허무맹랑 하다고 생각 하실 수 있는데 좋은 일 들도 기록으로 남기는 것 도 괜찮을 것 같다는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의견 이었습니다..미국 코로나 심각 하던데 조심 하시구요. 늘 행복하세요. 멀리서 나마 글쓴이 응원 할게요 ^^*

ㅇㅇ오래 전

행복하게 지내고 계시지요? 판글 읽다가 우연히 님글보고 짧게나마 안부묻습니다.

ㅇㅇ오래 전

힘드실텐데 여태 버텨온 거 너무 대단하시고 존경스러워요.. 생각 날 때 마다 와서 읽을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oo오래 전

행복하다 생각하는게 얼마나 사이다인데요 ㅜㅜ

ㅇㅇ오래 전

너무 다행이에요 정말 훌륭하시고 대단하세요... 님이니까 그 환경에서도 이렇게 강하고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었던것같아요 정말 존경스럽고 멋집니다...앞으로 늘 행복한 일만 있길 바라요

ㅎㅎ오래 전

아진짜 결말이 생각보다 더더더 해피엔딩이어서 마음이 놓입니다..ㅠㅠ 초년에 고생이 많았던 만큼 갈 수록 더 행복하실거라고 믿어요^^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아메리칸 라이프도 들려주셨으면 좋겠는데ㅎㅎㅎㅎ 정말로 행복하세요^^^!!!

오늘오래 전

연재하신 글 다 읽어보았어요. 정말 너무 대단한 것 같아요. 이렇게 훌륭하게 자신의 힘으로 살아낸 모습이 너무 대단하네요. 이번에 많이 치유됐길 바래요 더욱 더 기쁘고 행복할 앞날을 응원합니다!

ㅇㅇ오래 전

힘든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버텨내신 모습.. 정말 존경합니다. 앞으로 좋은날만 있을거예요. 행복하세요

우주별오래 전

그동안 너무 고생하셨고 잘버텨내주셔서 정말 기쁨니다. 이글을 읽고있는 현재 힘드신 많은분들도 글쓴님처럼 버티고 살다보면 꼭꼭좋은날이 올거에요! 저또한 지금 벼랑끝이지만 다시마음다잡고 살아보려구요. 글쓴님 주위에 좋으신분들이 많아 다행이에요.특히 큰집식구분들과 절친분 남편분과시댁식구분들.글쓴님이 좋은사람이라 좋은 사람들이 함께하는거죠. 저도 노력해야겠어요! 글쓴님 앞으로 더좋은날들과 좋은일들이 가득하실거고 멀리서나마 늘응원할게요♡행복하세요!!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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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오래 전

아이낳아 키우시면 더 치유될꺼예요. 내가 자라고 싶었던 모습으로 키우다보니 힐링되러라구요. 힘들때 아이가 등을 쓸어줄때면 핸드폰 급속충전보다 더 빨리 쑥 올라가는 느낌입니다. 행복하실껍니다. 앞으로도 계속, 80년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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