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신랑은 20살,21살에 만나서 28살,29살에 큰아이가 생겨 결혼을 했습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인격체가 만나 가정을 만들고 그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는 것이 참 쉽지 않다고 느끼며 조언을 얻고자 아니 푸념을 늘어 놓고자 글을 쓰게 됐습니다.
2012년 아이가 생기며 8년간의 연애를 청산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오랜 연애로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저는 결혼초기부터 신랑이 힘들었습니다. 그에 대한 사랑으로 이겨내고 감당하고자 했지만~참 많이 울었던 거 같습니다. 긴 이야기가 될 듯 하네요.
저희 시부모님은 참 열심히, 부지런히 사셨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신랑은 21살부터 일을 해서 본인의 학비를 벌고, 26살 어린 나이에 창업해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돈에 대해 큰 걱정없이 살았던 저와는 다른 20대를 보냈지요. 그래서 신랑은 저와 결혼하며 긴장이 풀렸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결혼을 하며 신랑은 원래 좋아라 하던 게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좋아했습니다. 그 사람이 편안해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좋았습니다. 냉장고 문만 열어도 토할거 처럼 입덧이 심했지만 아침,저녁 차려주는 일상도 좋았습니다.
없는 솜씨에 밥을 잘 먹이려고 나름 참 노력했습니다. 몸도 점점 무겁고, 손발도 붓고 했지만 그냥 저희 신랑을 참 아꼈기에 다 해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미숙하고 부족한 살림실력이었죠. 전적으로 자의에서 시작된 첫 단추였습니다.
그렇게 큰 아이가 태어났고, 난생 처음해보는 경험들과 감정에 힘들었습니다. 2시간에 한번씩 젖을 먹이고, 수시로 기저귀를 갈아주고, 씻기고, 재우고~ 인터넷으로 읽어 본 적은 있지만 ~막상 내가 겪으니 두렵고,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아이가 하나라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신랑 출근시키고 아이 데리고 밑에 마트서 후딱 장보고~아이 잠깐 잘 때 집치우고, 아이 보다가 신랑 퇴근할때 쯤 밥해서 먹고~치우고 그 생활이 어느정도 가능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신랑테 새벽에 아이를 봐달라거나 청소를 해달라거나 설거지를 부탁해 본 일이 거의 없습니다. 오롯이 내가 감당하자고 생각했었습니다. 또 계속 집에만 있다 보니 감정적으로도 점점 안좋아지고 있었습니다.
(집에만 더 있었던 이유ㅡ큰 아이가 돌이 될 동안 5번 정도 모임을 했었는데 그 중 4번이 조리원 모임이었습니다. vips같은 곳에서 모이고 룸 같은 곳에서 식사도 하고 옆 소파에서 기저귀를 갈고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었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고, 육아에 대한 상식도, 사회적 인식도 잘 몰랐던 저는 흔히 요즘 사회서 일컫는 맘충의 행동을 했던듯 합니다. 저는 처녀적부터 늘 아이를 좋아했고, 그런 부분에 대해 너그럽다면 너그럽고 무디다면 무딘편이었습니다. 그러다 아가씨인 대학 친구를 만나서 커피숍에 갔는데 그 건물 화장실에는 아기 받침대가 없을때였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면 변기뚜껑을 닫고 거기다 아이를 눕히고 기저귀를 갈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아이를 소파에서 갈아입혔습니다. 그러고 쓰레기통에 버리려는데 그 일련의 모습에 제 친구는 꽤나 실망과 충격을 받은 듯 했습니다. 제 친구의 얼굴에서 '너 맘충'을 읽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강박적으로 집에만 있었던거 같아요. 내가 무지에서 비롯된 또 다른 실수를 하면 어쩌나 싶어서요.)
문제는 계획에 없이 둘째가 생긴겁니다. 신랑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지만...결혼 전부터 성욕이 없는 저에 비해 저희 신랑은 항상 원했습니다. 출산 한달 전부터 자궁수축 등을 핑계로 거절했고, 아이 백일때 까지도 몸이 힘들어 거절했었습니다. 그러다 백일이 지나고 미안한 마음에 했던 첫 관계에서 덜컥 둘째가 생긴겁니다. 제가 피임을 원했지만 신랑은 퍽 억울해 했습니다. 4달을 참았고, 수유 중에는 임신 안된다며 피임을 거부했습니다. 저도 수유중이었고, 생리를 안했기에 임신이 될거라고 예상치 못해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는 사실 역아였던 첫째를 제왕절개로 낳느라 몸이 회복도 안된 상태여서 낙태를 고민했습니다. 정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때 신랑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기가 바뀌겠다고 했습니다. 왠지 둘째는 아들일거 같다며 낳자고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돕겠노라 다짐했고~그런 그를 믿었습니다. 근데 그렇게 토덧을 함에도 첫째 기저귀 한번 안갈아주는 그를 보며, 반찬이 마음에 안든다는 그를 보며, 결정적으로 둘째아이 출산날을 겪으며 그 기대는 헛된 희망임을 알았습니다. 밤새 게임을 하다 잠들어서 제왕절개 수술을 하러 들어가는 제게 와주지 못했습니다. 차가운 병실에 들어가며 울었습니다. 마취에 들어 잠들기 까지도 참 마음이 외로웠습니다.
그런 모든 서운함을 단지 신랑에 대한 사랑하나로 참아냈던거 같습니다. 정말 아끼고 귀엽고 사랑스러우니 웃으며 애교부리면 마음이 녹았습니다. 그럼에도 둘째가 태어나자 세상이 뒤집어지듯이 제 상황은 나빠졌습니다. 결혼하며 조금씩 시간이 늘던 신랑의 게임은 회사를 안가며까지 했고, 수입도 점점 줄며 빚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게임할때는 세상 날카로와 말도 걸기 불편했고, 밤새 게임하고 다음 날 낮까지 잠자기 일수였습니다. 밥을 본인이 먹겠다 해서 차려 놓고 먹으라고 하면 갑자기 안먹겠다하고~제가 서운한 마음에 울거나 화를 내면 자는데 시끄럽게 군다고 욕이 날라왔습니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패턴이 아니니 저는 점점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젖먹이 영아와 이유식을 조금 넘기던 유아를 키우며 집안일도 다 해야했습니다. 그러면서 집에 자주 있는 신랑 밥도 챙겨야 했습니다. 그 시기에 신랑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조력자, 동반자가 아니라 챙겨야 할 또 다른 대상이였습니다. 새벽에 둘째보느라 못 일어나서 아침밥을 차려주는 날이 적어지자 서운해 했고~집안이 조금씩 더러워 지자 종종 화를 냈습니다. 저도 당연히 화는 났지만 이해하자며 저를 다독였습니다. 또 신랑은 둘째가 남자아이고 장인어른을 닮았다고 미워했습니다. 새벽에도 2시간에 한번씩 깨서 젖이나 분유를 먹여야 했는데 제가 못일어나고 어기적 거리면 소리를 지르며 아기한테 욕을 했습니다. 그럼 저는 혼비백산 아이를 안고 거실로 가 젖을 먹였습니다.
한번은 우는 소리가 싫다고 아이 얼굴에 베개를 던지는 모습을 보고 이혼도 결심했었습니다. 그러나 또 어영부영 사과하고 또 고치겠다며 저 상황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아이들이 조금씩 크고 18평 아파트가 좁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좀 더 외곽으로 가 넓은 평수 아파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근처에 있던 가족들, 익숙한 장소에서 멀이지게 되었고~그게 제 우울증의 발단이 되었던 듯 합니다.
신랑의 직장과 집의 거리가 멀어지자 신랑은 더 회사를 안가고 게임에 빠져들었습니다. 자꾸 빚은 늘고, 걱정이 많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 신랑이 하던 블로그 마케팅일이나 쇼핑몰 cs를 할 사람이 없다는 말에 제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연년생 아이 둘과 집안일에 블로그,cs일이 더 생겼습니다. 무모했지만 집에서 할 수 있으니 해서 신랑일이 좀 안정되길 바랐습니다. 두돌 조금 넘은 큰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돌 즈음 된 작은 아이를 아기 침대에 가둬두고 티비보게 하고선 블로그와 cs를 했습니다. 작은 아이를 돌보며 cs를 하며 별별 욕을 다 듣고, 첫째를 픽업하고, 다시 아이들을 챙기고~집안일을 하고 그러면 뉘엿뉘엿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며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몇번이나 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모든 서운함들을 차치하고 신랑에게 제일 힘든 부분은 저에 대한 연대의식이 적은 부분입니다. 집안일도 내려놨고, 육아에 대해서도 크게 바라는 바가 더이상 없습니다. 다만 문득문득 제가 일때문에 바빠서 (아이들 4,5살부터 학원일을 합니다. 동네서 하니 아이들 케어도 제가 다 합니다.)병원 좀 데려가 달라고 해도, 아침에 아이들 시리얼 좀 말아줘라고 해도, 애들 좀 학교에서 잠깐 찾아 달라고 해도 '그건 너의 일이니 네가 알아서 해' 라는 반응을 보이며 도리어 제게 짜증을 냅니다. 제가 살림과 육아에 95가지를 하고 종종 5를 부탁하는 건데도 꼭 난 그에게 세상 칭찬과 감사를 해야하며, 그는 자기 눈에 거슬리는 집안일도 꼭 제게 말하며 제대로 안하냐는 핀잔과 함께 합니다. 그러며 자기가 참고 참다 이야기 한다고 하는데 기가 찹니다. 또 저희 아버지가 암수술하실때도 네가 왜 학원 수업을 쉬냐며 프로정신이 없다며 핀잔을 줍니다. 사람자체는 나쁜게 아닌데 점점 지칩니다. 이런걸 매번 설명하고 화내고 이런 과정들이 지겹습니다. 그냥 도망가고 싶습니다.
부부에 대해서
제 가슴 안에서는 폭풍이 이는데 글로 쓰려니 막막함이 앞섭니다.
저와 신랑은 20살,21살에 만나서 28살,29살에 큰아이가 생겨 결혼을 했습니다.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인격체가 만나 가정을 만들고 그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는 것이 참 쉽지 않다고 느끼며 조언을 얻고자 아니 푸념을 늘어 놓고자 글을 쓰게 됐습니다.
2012년 아이가 생기며 8년간의 연애를 청산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오랜 연애로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저는 결혼초기부터 신랑이 힘들었습니다. 그에 대한 사랑으로 이겨내고 감당하고자 했지만~참 많이 울었던 거 같습니다. 긴 이야기가 될 듯 하네요.
저희 시부모님은 참 열심히, 부지런히 사셨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신랑은 21살부터 일을 해서 본인의 학비를 벌고, 26살 어린 나이에 창업해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돈에 대해 큰 걱정없이 살았던 저와는 다른 20대를 보냈지요. 그래서 신랑은 저와 결혼하며 긴장이 풀렸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결혼을 하며 신랑은 원래 좋아라 하던 게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좋아했습니다. 그 사람이 편안해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좋았습니다. 냉장고 문만 열어도 토할거 처럼 입덧이 심했지만 아침,저녁 차려주는 일상도 좋았습니다.
없는 솜씨에 밥을 잘 먹이려고 나름 참 노력했습니다. 몸도 점점 무겁고, 손발도 붓고 했지만 그냥 저희 신랑을 참 아꼈기에 다 해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지금 돌이켜보면 미숙하고 부족한 살림실력이었죠. 전적으로 자의에서 시작된 첫 단추였습니다.
그렇게 큰 아이가 태어났고, 난생 처음해보는 경험들과 감정에 힘들었습니다. 2시간에 한번씩 젖을 먹이고, 수시로 기저귀를 갈아주고, 씻기고, 재우고~ 인터넷으로 읽어 본 적은 있지만 ~막상 내가 겪으니 두렵고,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아이가 하나라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신랑 출근시키고 아이 데리고 밑에 마트서 후딱 장보고~아이 잠깐 잘 때 집치우고, 아이 보다가 신랑 퇴근할때 쯤 밥해서 먹고~치우고 그 생활이 어느정도 가능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신랑테 새벽에 아이를 봐달라거나 청소를 해달라거나 설거지를 부탁해 본 일이 거의 없습니다. 오롯이 내가 감당하자고 생각했었습니다. 또 계속 집에만 있다 보니 감정적으로도 점점 안좋아지고 있었습니다.
(집에만 더 있었던 이유ㅡ큰 아이가 돌이 될 동안 5번 정도 모임을 했었는데 그 중 4번이 조리원 모임이었습니다. vips같은 곳에서 모이고 룸 같은 곳에서 식사도 하고 옆 소파에서 기저귀를 갈고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었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고, 육아에 대한 상식도, 사회적 인식도 잘 몰랐던 저는 흔히 요즘 사회서 일컫는 맘충의 행동을 했던듯 합니다. 저는 처녀적부터 늘 아이를 좋아했고, 그런 부분에 대해 너그럽다면 너그럽고 무디다면 무딘편이었습니다. 그러다 아가씨인 대학 친구를 만나서 커피숍에 갔는데 그 건물 화장실에는 아기 받침대가 없을때였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면 변기뚜껑을 닫고 거기다 아이를 눕히고 기저귀를 갈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아이를 소파에서 갈아입혔습니다. 그러고 쓰레기통에 버리려는데 그 일련의 모습에 제 친구는 꽤나 실망과 충격을 받은 듯 했습니다. 제 친구의 얼굴에서 '너 맘충'을 읽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강박적으로 집에만 있었던거 같아요. 내가 무지에서 비롯된 또 다른 실수를 하면 어쩌나 싶어서요.)
문제는 계획에 없이 둘째가 생긴겁니다. 신랑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지만...결혼 전부터 성욕이 없는 저에 비해 저희 신랑은 항상 원했습니다. 출산 한달 전부터 자궁수축 등을 핑계로 거절했고, 아이 백일때 까지도 몸이 힘들어 거절했었습니다. 그러다 백일이 지나고 미안한 마음에 했던 첫 관계에서 덜컥 둘째가 생긴겁니다. 제가 피임을 원했지만 신랑은 퍽 억울해 했습니다. 4달을 참았고, 수유 중에는 임신 안된다며 피임을 거부했습니다. 저도 수유중이었고, 생리를 안했기에 임신이 될거라고 예상치 못해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저는 사실 역아였던 첫째를 제왕절개로 낳느라 몸이 회복도 안된 상태여서 낙태를 고민했습니다. 정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때 신랑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기가 바뀌겠다고 했습니다. 왠지 둘째는 아들일거 같다며 낳자고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돕겠노라 다짐했고~그런 그를 믿었습니다. 근데 그렇게 토덧을 함에도 첫째 기저귀 한번 안갈아주는 그를 보며, 반찬이 마음에 안든다는 그를 보며, 결정적으로 둘째아이 출산날을 겪으며 그 기대는 헛된 희망임을 알았습니다. 밤새 게임을 하다 잠들어서 제왕절개 수술을 하러 들어가는 제게 와주지 못했습니다. 차가운 병실에 들어가며 울었습니다. 마취에 들어 잠들기 까지도 참 마음이 외로웠습니다.
그런 모든 서운함을 단지 신랑에 대한 사랑하나로 참아냈던거 같습니다. 정말 아끼고 귀엽고 사랑스러우니 웃으며 애교부리면 마음이 녹았습니다. 그럼에도 둘째가 태어나자 세상이 뒤집어지듯이 제 상황은 나빠졌습니다. 결혼하며 조금씩 시간이 늘던 신랑의 게임은 회사를 안가며까지 했고, 수입도 점점 줄며 빚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게임할때는 세상 날카로와 말도 걸기 불편했고, 밤새 게임하고 다음 날 낮까지 잠자기 일수였습니다. 밥을 본인이 먹겠다 해서 차려 놓고 먹으라고 하면 갑자기 안먹겠다하고~제가 서운한 마음에 울거나 화를 내면 자는데 시끄럽게 군다고 욕이 날라왔습니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패턴이 아니니 저는 점점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젖먹이 영아와 이유식을 조금 넘기던 유아를 키우며 집안일도 다 해야했습니다. 그러면서 집에 자주 있는 신랑 밥도 챙겨야 했습니다. 그 시기에 신랑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조력자, 동반자가 아니라 챙겨야 할 또 다른 대상이였습니다. 새벽에 둘째보느라 못 일어나서 아침밥을 차려주는 날이 적어지자 서운해 했고~집안이 조금씩 더러워 지자 종종 화를 냈습니다. 저도 당연히 화는 났지만 이해하자며 저를 다독였습니다. 또 신랑은 둘째가 남자아이고 장인어른을 닮았다고 미워했습니다. 새벽에도 2시간에 한번씩 깨서 젖이나 분유를 먹여야 했는데 제가 못일어나고 어기적 거리면 소리를 지르며 아기한테 욕을 했습니다. 그럼 저는 혼비백산 아이를 안고 거실로 가 젖을 먹였습니다.
한번은 우는 소리가 싫다고 아이 얼굴에 베개를 던지는 모습을 보고 이혼도 결심했었습니다. 그러나 또 어영부영 사과하고 또 고치겠다며 저 상황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아이들이 조금씩 크고 18평 아파트가 좁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좀 더 외곽으로 가 넓은 평수 아파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근처에 있던 가족들, 익숙한 장소에서 멀이지게 되었고~그게 제 우울증의 발단이 되었던 듯 합니다.
신랑의 직장과 집의 거리가 멀어지자 신랑은 더 회사를 안가고 게임에 빠져들었습니다. 자꾸 빚은 늘고, 걱정이 많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 신랑이 하던 블로그 마케팅일이나 쇼핑몰 cs를 할 사람이 없다는 말에 제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연년생 아이 둘과 집안일에 블로그,cs일이 더 생겼습니다. 무모했지만 집에서 할 수 있으니 해서 신랑일이 좀 안정되길 바랐습니다. 두돌 조금 넘은 큰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돌 즈음 된 작은 아이를 아기 침대에 가둬두고 티비보게 하고선 블로그와 cs를 했습니다. 작은 아이를 돌보며 cs를 하며 별별 욕을 다 듣고, 첫째를 픽업하고, 다시 아이들을 챙기고~집안일을 하고 그러면 뉘엿뉘엿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며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생각을 몇번이나 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모든 서운함들을 차치하고 신랑에게 제일 힘든 부분은 저에 대한 연대의식이 적은 부분입니다. 집안일도 내려놨고, 육아에 대해서도 크게 바라는 바가 더이상 없습니다. 다만 문득문득 제가 일때문에 바빠서 (아이들 4,5살부터 학원일을 합니다. 동네서 하니 아이들 케어도 제가 다 합니다.)병원 좀 데려가 달라고 해도, 아침에 아이들 시리얼 좀 말아줘라고 해도, 애들 좀 학교에서 잠깐 찾아 달라고 해도 '그건 너의 일이니 네가 알아서 해' 라는 반응을 보이며 도리어 제게 짜증을 냅니다. 제가 살림과 육아에 95가지를 하고 종종 5를 부탁하는 건데도 꼭 난 그에게 세상 칭찬과 감사를 해야하며, 그는 자기 눈에 거슬리는 집안일도 꼭 제게 말하며 제대로 안하냐는 핀잔과 함께 합니다. 그러며 자기가 참고 참다 이야기 한다고 하는데 기가 찹니다. 또 저희 아버지가 암수술하실때도 네가 왜 학원 수업을 쉬냐며 프로정신이 없다며 핀잔을 줍니다. 사람자체는 나쁜게 아닌데 점점 지칩니다. 이런걸 매번 설명하고 화내고 이런 과정들이 지겹습니다. 그냥 도망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