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적(法律的) 판단(判斷)이 요구(要求)될 때, 입증(立證)보다는 방증(傍證)이 더 중요하게 취급된다는 점을 모르는 법조인((法曹人)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입증자료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자백(自白)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拷問)이라는 악행(惡行)을 저지르기도 했지요. 그렇게 방증은 입증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방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입증자료는 신뢰할 수 없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주셨으면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결과, 방증(傍證)을 외면하고 입증(立證)에만 연연(戀戀)한다면 그런 행위(行爲)가 바로 사법농단(司法壟斷)입니다.
저는 나경원 전 원내대표께 단도직입적으로 묻고싶은 말이 있습니다. 물론 지난번에도 드렸던 질문이지만요. 올해 총선 때 왜 따님과 함께 낙선운동을 하고 다니셨나요?
사람들은 집안에 있을 때는 헝클어진 모습에 아주 편안한 복장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밖에 외출 나갈 때는 온갖 멋이란 멋은 다 부리면서 나갑니다. 자신의 내면보다는 외모가 더 중요해서 그렇게 멋을 부리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온갖 멋을 다 부리고 나가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거 같아서 별 뜻 없이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나경원 전 원내대표께서는 올해 총선 때 왜 따님과 함께 낙선운동을 하고 다니셨나요?
저는 그 낙선운동이 너무 궁금했고 언뜻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남자라고 해서 외출할 때 수염도 안깍고 눈꼽도 안떼고 나가는 것이 개성이며 자랑거리인가요? 제 생각에는 개성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자랑거리는 아닌거 같아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경원 전 원내대표께는 올해 총선 때 왜 따님과 함께 낙선운동을 하고 다니셨나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인생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반복을 통해 자아를 발견할 수 있고 내 자신의 삻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생에 오르막길만 있다면 주색잡기(酒色雜技), 노름, 마약 등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반복은 정신건강이나 자기자신(自己自身)의 발견(發見)을 위해 매우 좋다는 뜻입니다.
올해 총선에서 낙선한 것이 나경원 전 의원깨는 오히려 약이 될 것입니다.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선되는 계기가 될 것이니까요.
낙선운동을 즐겨 사용하시면 안됩니다. 그거 묘수(妙手)는 아닙니다. 당연히 악수(惡手)입니다.
// ( KaKaoStory ID : vvcdw1962 ) // // ( v v c d w 1 9 6 2 ) //
자중지란(自中之亂) 과 고육지책(苦肉之策)은 붙어 다닙니다. 요녀석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늘 붙어 다녀서 마이동풍(馬耳東風)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에서 보면 검찰총장은 앓턴 이를 빼내는 격이니까 당연히 고육지책의 희생양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군가요?
설마 대 . . . . . .?
더 이상은 안되겠습니다.
자중지란 -> 마이동풍 -> 고육지책으로 이어진 전형적(典型的)인 악(惡)의 축(築) 상황에서 고육지책으로 그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의 희생양으로 내어준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고육지책으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으로 내어준 것은 그 한번으로도 차고 넘쳐서 더 이상은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참고) 악(惡)의 축(築) 3총사 : 자중지란(自中之亂), 마이동풍(馬耳東風), 고육지책(苦肉之策). 여기서 맏형은 누구? 힌트 : 자자로 시작하며, 마자로 시작하는 녀석은 맏형이 될 수 없음.
제 목 : 걱정스러운 개혁
작성자 : 최대우
작성일 : 2020. 11. 25.
검찰청내부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윤석열총장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해야 합니다.
검찰개혁은 60년대나 70년대에는 절실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방증(傍證)은 외면하고 입증(立證)에만 연연(戀戀)했던 그런 감정적으로만 처리했던 사법농단(司法壟斷) 세력들에 의해 고문(拷問)이라는 악행(惡行)을 저지르던 그런 시절도 있었으므로 아마도 검찰개혁은 절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그 후로 50년이나 지나버린 현재에는 검찰개혁은 말이 안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궂이 검찰개혁이 필요한 부분이 발생한다면 검찰청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듯이 파악하고 있는 윤석열총장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개혁해 나갈 것 입니다. 그러한 윤석열총장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해야 합니다.
현 법무부장관으로 인하여 오히려 필요악(必要惡)으로 전락(轉落)해버린 검찰개혁에 더는 매달리시면 안되겠습니다.
한편 그는 저서를 통해 정치 입문의 계기가 된 사건에 대해서도 밝혔다.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그를 정치의 길로 이끌었다고 했다. 나 전 의원은 “‘엄마, 꿈 깨’라는 한마디에 정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며 “판사인 나를 바꾼 이 말은 자녀들이 한 말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첫딸을 낳고 돌 반쯤 지났을 때 나는 첫 부임지인 부산으로 발령 받았다. 타지에서 당장 어린이집을 찾는 것부터가 전쟁이었다”며 “장애가 있는 아이를 기꺼이 받아줄 어린이집이 얼마나 되겠는가. 큰 기대를 하지도 않았지만, 실제로 찾아간 어린이집마다 말로는 안타까워해 주면서도 손을 내저었다. 그런 그분들을 원망할 수만도 없는 것이 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벽”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가 다가왔을 시점에 우연히 모 유명 사립 초등학교가 ‘개별화·특성화 교육’을 한다는 문구를 발견했고, 원서를 내고 교장선생님과 면담을 하던 중 겪은 일은 나를 180도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았다”며 “이 분야 교육의 ‘개척자’로 잘 알려진, 인터넷 검색 창에 넣으면 주르륵 뜨는 교장선생님이 나를 바라보며 ‘엄마! 장애 아이를 교육시킨다고 해서 보통 아이처럼 되는 줄 알아? 꿈 깨!’라고 말했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교육자라면 모름지기 보듬어주지 않을까 하는 꿈이 깨졌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세상은 충분히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꿈에서 깨어났다”며 “교육청에 편지를 썼다. 장애 아동을 차별적으로 대한 교장선생님과 학교에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교육청도 소극적이었다. 나의 하소연을 잘 들어주고 위로를 해주면서도 실제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다시 전화하고 찾아가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나 전 의원은 그러면서 “그때까지 나는 판사라는 신분을 굳이 밝히지 않고, 남과 똑같은 한 명의 학부모로서 아이의 교육받을 권리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이대로 멈출 수는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어느 지방법원 아무개 판사’라고 나를 소개했더니 교육청의 태도가 바뀌는 게 대번에 느껴졌다.”며 “‘교육청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직무 유기로 고발하는 수밖에……’ 한마디에 곧바로 처분이 내려졌다. 세상은 그렇게 변하는 것이었다. 나는 거기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 하나를 발견했다. 나의 딸과 같은 약자가 눈물 흘리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가장 빠른 길. ‘정치’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뜻하지 않게 학교와 사법부 대선배이신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연이 닿았다. 나는 꿈꾸듯 물 흐르듯 정치권으로 흘러들어 갔다”고 밝혔다.
자아의 발견, 오르막길 과 내리막길의 반복
저는 나경원 전 원내대표께 단도직입적으로 묻고싶은 말이 있습니다. 물론 지난번에도 드렸던 질문이지만요. 올해 총선 때 왜 따님과 함께 낙선운동을 하고 다니셨나요?
사람들은 집안에 있을 때는 헝클어진 모습에 아주 편안한 복장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밖에 외출 나갈 때는 온갖 멋이란 멋은 다 부리면서 나갑니다. 자신의 내면보다는 외모가 더 중요해서 그렇게 멋을 부리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온갖 멋을 다 부리고 나가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거 같아서 별 뜻 없이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나경원 전 원내대표께서는 올해 총선 때 왜 따님과 함께 낙선운동을 하고 다니셨나요?
저는 그 낙선운동이 너무 궁금했고 언뜻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남자라고 해서 외출할 때 수염도 안깍고 눈꼽도 안떼고 나가는 것이 개성이며 자랑거리인가요? 제 생각에는 개성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자랑거리는 아닌거 같아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경원 전 원내대표께는 올해 총선 때 왜 따님과 함께 낙선운동을 하고 다니셨나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인생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반복을 통해 자아를 발견할 수 있고 내 자신의 삻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인생에 오르막길만 있다면 주색잡기(酒色雜技), 노름, 마약 등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반복은 정신건강이나 자기자신(自己自身)의 발견(發見)을 위해 매우 좋다는 뜻입니다.
올해 총선에서 낙선한 것이 나경원 전 의원깨는 오히려 약이 될 것입니다.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선되는 계기가 될 것이니까요.
낙선운동을 즐겨 사용하시면 안됩니다. 그거 묘수(妙手)는 아닙니다. 당연히 악수(惡手)입니다.
// ( KaKaoStory ID : vvcdw1962 ) // // ( v v c d w 1 9 6 2 ) //
제목 : 자중지란, 고육지책 그리고 마이동풍
작성자 : 최대우
작성일 : 2020. 11. 26.
자중지란(自中之亂) 과 고육지책(苦肉之策)은 붙어 다닙니다. 요녀석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늘 붙어 다녀서 마이동풍(馬耳東風)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에서 보면 검찰총장은 앓턴 이를 빼내는 격이니까 당연히 고육지책의 희생양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군가요?
설마 대 . . . . . .?
더 이상은 안되겠습니다.
자중지란 -> 마이동풍 -> 고육지책으로 이어진 전형적(典型的)인 악(惡)의 축(築) 상황에서 고육지책으로 그당시 현직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의 희생양으로 내어준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고육지책으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으로 내어준 것은 그 한번으로도 차고 넘쳐서 더 이상은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참고) 악(惡)의 축(築) 3총사 : 자중지란(自中之亂), 마이동풍(馬耳東風), 고육지책(苦肉之策). 여기서 맏형은 누구? 힌트 : 자자로 시작하며, 마자로 시작하는 녀석은 맏형이 될 수 없음.
제 목 : 걱정스러운 개혁
작성자 : 최대우
작성일 : 2020. 11. 25.
검찰청내부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윤석열총장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해야 합니다.
검찰개혁은 60년대나 70년대에는 절실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방증(傍證)은 외면하고 입증(立證)에만 연연(戀戀)했던 그런 감정적으로만 처리했던 사법농단(司法壟斷) 세력들에 의해 고문(拷問)이라는 악행(惡行)을 저지르던 그런 시절도 있었으므로 아마도 검찰개혁은 절실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그 후로 50년이나 지나버린 현재에는 검찰개혁은 말이 안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궂이 검찰개혁이 필요한 부분이 발생한다면 검찰청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듯이 파악하고 있는 윤석열총장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개혁해 나갈 것 입니다. 그러한 윤석열총장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해야 합니다.
현 법무부장관으로 인하여 오히려 필요악(必要惡)으로 전락(轉落)해버린 검찰개혁에 더는 매달리시면 안되겠습니다.
[펀글] 나경원 회고록 ‘나경원의 증언’
출간 - 여성소비자신문 한지안 기자 (2020. 11. 27)
- "원내 대표 1년 중심으로 회고...제가 생각하는 올바른 정치에 대해 썼다"
(중략)
정치의 꿈을 꾸게 한 말 “엄마, 꿈 깨”
한편 그는 저서를 통해 정치 입문의 계기가 된 사건에 대해서도 밝혔다.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그를 정치의 길로 이끌었다고 했다. 나 전 의원은 “‘엄마, 꿈 깨’라는 한마디에 정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며 “판사인 나를 바꾼 이 말은 자녀들이 한 말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첫딸을 낳고 돌 반쯤 지났을 때 나는 첫 부임지인 부산으로 발령 받았다. 타지에서 당장 어린이집을 찾는 것부터가 전쟁이었다”며 “장애가 있는 아이를 기꺼이 받아줄 어린이집이 얼마나 되겠는가. 큰 기대를 하지도 않았지만, 실제로 찾아간 어린이집마다 말로는 안타까워해 주면서도 손을 내저었다. 그런 그분들을 원망할 수만도 없는 것이 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벽”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가 다가왔을 시점에 우연히 모 유명 사립 초등학교가 ‘개별화·특성화 교육’을 한다는 문구를 발견했고, 원서를 내고 교장선생님과 면담을 하던 중 겪은 일은 나를 180도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았다”며 “이 분야 교육의 ‘개척자’로 잘 알려진, 인터넷 검색 창에 넣으면 주르륵 뜨는 교장선생님이 나를 바라보며 ‘엄마! 장애 아이를 교육시킨다고 해서 보통 아이처럼 되는 줄 알아? 꿈 깨!’라고 말했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교육자라면 모름지기 보듬어주지 않을까 하는 꿈이 깨졌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세상은 충분히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꿈에서 깨어났다”며 “교육청에 편지를 썼다. 장애 아동을 차별적으로 대한 교장선생님과 학교에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교육청도 소극적이었다. 나의 하소연을 잘 들어주고 위로를 해주면서도 실제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다시 전화하고 찾아가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나 전 의원은 그러면서 “그때까지 나는 판사라는 신분을 굳이 밝히지 않고, 남과 똑같은 한 명의 학부모로서 아이의 교육받을 권리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이대로 멈출 수는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어느 지방법원 아무개 판사’라고 나를 소개했더니 교육청의 태도가 바뀌는 게 대번에 느껴졌다.”며 “‘교육청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직무 유기로 고발하는 수밖에……’ 한마디에 곧바로 처분이 내려졌다. 세상은 그렇게 변하는 것이었다. 나는 거기서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 하나를 발견했다. 나의 딸과 같은 약자가 눈물 흘리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가장 빠른 길. ‘정치’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뜻하지 않게 학교와 사법부 대선배이신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연이 닿았다. 나는 꿈꾸듯 물 흐르듯 정치권으로 흘러들어 갔다”고 밝혔다.
한지안 기자 hann9239@wsobi.com
(사진 설명)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