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우리집은 아빠와 술이 문제이다. 19년 동안 불안 속에서 살아왔다. 내 첫 유년 시절의 기억 역시 그리 달가운 기억은 아니다. 그냥 끔찍하다. 두 살 차이나는 동생의 돌잔치 때였다. 식이 끝나고 하객들과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아빠는 어김없이 술을 마셨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술 먹지 말라며 울고불고 때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 뒤, 집에 가는 차 안에서도 난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울었고, 집에 도착해 우유를 마시고 나서야 진정했다. 사실, 유년 시절에 가족끼리 여행도 많이 갔었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런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아빠가 술 마시고 우리 셋에게 불안감을 줬던 기억만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 당시에는 낮에도 술 먹고 오는 일이 잦았는데, 낮에 취해서 복도를 걸어오는 아빠를 보고 술먹고 오지 말라고 울며 소리쳤던 기억이 난다. 술 먹은 아빠는 그저 나에겐 공포스러운 존재일 뿐이었다. 얼마나 술을 자주 먹었으면 유치원에서 그리는 가족 그림에도 아빠 얼굴만 빨갛게 그렸다고 하더라. 아빠가 술마시는 날에는 종종 멀리 사는 지인 분의 집에 가서 하룻밤 잔 적도 있었다. 글을 쓰다보니 하나 더 기억났다. 지금은 그러지 않지만, 옛날에 할머니댁에 오갈 때 차 안에서 싸우던 엄마아빠가 생각난다. 왜 싸웠는지는 모르겠다. 근데, 싸울 때마다 아빠는 엄마에게 고함을 치며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내리라고 했었다. 소리지르는 아빠가 너무 무서웠다.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은 정확하게 나질 않지만, 9살 때부터의 기억은 정말 생생하다. 엄마에게 행사했던 신체적 폭력과 언어적 폭력이 기억난다. 물론 그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의 기억은 너무 어렸을 때의 일이라 나는 9살 때부터의 일만 생생하게 기억난다. 우리집의 경제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고, 아빠는 괜히 술 먹고 엄마 탓만 했다. 어느날은 아빠가 술 마시고 그 높은 집에서 뛰어내리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반사적으로 가서 아빠를 붙잡고 울면서 매달렸는데, 그때의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나는 아직도 아빠가 술만 마시면 무슨 일이 생길까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다. 흉기를 든 적도 많기에, 어렸을 적의 나는 큰 소리만 나면 엄마아빠가 싸우는 곳으로 곧장 달려가곤 했었다. 물론 지금도 경제 상황이 그닥 좋은 편은 아니지만, 초등학교~중학교 시절 보단 나아진 편이다. 우리집 경제 상황이 정말 최악이었을 때, 술만 마시면 위험한 수준까지 폭력을 휘두르던 아빠가 생각난다. 칼을 들고 문을 수차례 내리 찍었던 적도 있었고, 언제는 가위를 들고 설치길래 내가 막으려 가위를 붙잡았다가 피가 난 적이 있었다. 아직도 한 손가락을 보면 하얗게 흉터가 남아있다. 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두려워 아빠가 술 마시는 날마다 자는 척하며 밖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들을 귀기울여 듣고 있었다. 그건 아직도 그런다. 아빠는 방 문만 닫으면 소리가 안 들릴 줄 알겠지만, 아빠가 소리치는 소리는 생생하게 들린다. 행복했던 일도 분명있었다. 마냥 매일매일이 암울한 집안은 아니었다. 여행 갈 때는 나름 행복했었지만, 그런 행복한 기억들을 나쁜 기억들이 다 갉아먹어 잘 기억나지 않을 뿐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마냥 밝고 당당하던 내 성격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방어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와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밖에서 그걸 숨기지 못했지만, 중학교 2학년이 되자 비로소 학교, 학원에서 만큼은 밝은 척 연기할 수 있었다. 지금 내 친구들이 이런 속사정을 안다면 정말 놀랄지도 모른다. 작은 고민이라도, 조금 힘든일이라도 친구들한테는 단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 많은 스트레스 탓인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새치는 늘어났고,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제어할 수 있는 정도로 작게 틱까지 생겼다. 또, 성격자체가 긍정적이지 못하고 걱정많은 성격이 되었다. 작은 소리 하나에도 굉장히 예민해지게 되었다.
나는 길치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내신기간에 독서실에 오가는 일이 많아져 당연히 아빠와의 대화는 더 줄어들었고, 원래 그리 친한 편도 아니었지만 더 서먹해졌다. 의문이 들더라. 아빠는 나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아는가? 아마 내가 길치라는 것도 모를 것이다. 내 친구들은 내가 엄청난 길치라는 걸 다 알고 있음에도. 아빠는 모른다. 물론 나도 아빠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학원을 멀리 다니고, 늦게 끝나는 날이 많아져 아빠가 종종 데리러 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무서웠다. 아빠는 다혈질 기질이 있고 급한 성격이기에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꼴을 못 본다. 그렇다. 나는 길치이기에 아빠가 데리러 온다고 하는 장소를 잘 찾지 못했다. 찾지 못해서 내가 계속 시간을 끌면 아빠는 나에게 다시 전화를 해 소리를 질렀다. 그럴 때면 나는 늘 공포에 질려 심장에 떨어질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아빠가 술 마시고 심각한 폭력을 휘두르는 횟수가 조금 잦아지나 싶었는데, 두 달 전?부터 다시 심해지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자습하러 학교에 나갔는데,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엎드려서 울고, 괜한 반발심이 들어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었다. 설마 나 수능 볼 때도 술마시려나 싶었지만, 역시나였다. 수능 이틀전에도 술을 마시더라. 나 없을 때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대학 기숙사도 못 들어가겠다. 아예 통학을 해야할지.
아빠가 이럴 때마다 자살 생각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늘 창 밖을 바라보면서 뛰어내리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손목을 긋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근데, 난 용기가 없어서, 두려워서 실천하지 못했다. 내가 유서라도 써놓고 죽으면, 아빠는 그제서야 멈출까?라고 종종 생각하긴 한다. 이것보다 더 한 일은 많지만 어디에다 말하기 쪽팔려서 더 쓰지도 못하겠다. 이혼했으면 좋겠는데, 엄마는 우리 때문에 이혼하지 못하시는 것 같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이럴 때마다 아빠가 밉지만, 또 아빠라고 마냥 미워하지만은 못하겠다. 이런 내가 싫다. 그냥 매일 속이 타들어가고 사는 게 지칠 뿐이다. 나보다 더한 세월을 고통받으며 살아온 엄마가 불쌍할 뿐이다. 점점 가족들 앞에서는 방어적으로 변해가는 동생을 보고 내 속이 아플 뿐이다. 이혼을 하든, 뭔가 조치를 취했으면.
19년 동안 살아온 끔찍한 우리집
나는 길치다.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내신기간에 독서실에 오가는 일이 많아져 당연히 아빠와의 대화는 더 줄어들었고, 원래 그리 친한 편도 아니었지만 더 서먹해졌다. 의문이 들더라. 아빠는 나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아는가? 아마 내가 길치라는 것도 모를 것이다. 내 친구들은 내가 엄청난 길치라는 걸 다 알고 있음에도. 아빠는 모른다. 물론 나도 아빠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학원을 멀리 다니고, 늦게 끝나는 날이 많아져 아빠가 종종 데리러 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무서웠다. 아빠는 다혈질 기질이 있고 급한 성격이기에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꼴을 못 본다. 그렇다. 나는 길치이기에 아빠가 데리러 온다고 하는 장소를 잘 찾지 못했다. 찾지 못해서 내가 계속 시간을 끌면 아빠는 나에게 다시 전화를 해 소리를 질렀다. 그럴 때면 나는 늘 공포에 질려 심장에 떨어질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아빠가 술 마시고 심각한 폭력을 휘두르는 횟수가 조금 잦아지나 싶었는데, 두 달 전?부터 다시 심해지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자습하러 학교에 나갔는데,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엎드려서 울고, 괜한 반발심이 들어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었다. 설마 나 수능 볼 때도 술마시려나 싶었지만, 역시나였다. 수능 이틀전에도 술을 마시더라. 나 없을 때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대학 기숙사도 못 들어가겠다. 아예 통학을 해야할지.
아빠가 이럴 때마다 자살 생각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늘 창 밖을 바라보면서 뛰어내리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손목을 긋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근데, 난 용기가 없어서, 두려워서 실천하지 못했다. 내가 유서라도 써놓고 죽으면, 아빠는 그제서야 멈출까?라고 종종 생각하긴 한다.
이것보다 더 한 일은 많지만 어디에다 말하기 쪽팔려서 더 쓰지도 못하겠다. 이혼했으면 좋겠는데, 엄마는 우리 때문에 이혼하지 못하시는 것 같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이럴 때마다 아빠가 밉지만, 또 아빠라고 마냥 미워하지만은 못하겠다. 이런 내가 싫다. 그냥 매일 속이 타들어가고 사는 게 지칠 뿐이다. 나보다 더한 세월을 고통받으며 살아온 엄마가 불쌍할 뿐이다. 점점 가족들 앞에서는 방어적으로 변해가는 동생을 보고 내 속이 아플 뿐이다. 이혼을 하든, 뭔가 조치를 취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