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2020년 11월26일 19시경 청량리역에서 있었던 한 남자(본인)의 실화를 바탕으로함.
별다른 내용은 없으나 그날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여 글이 지나치게 쓸데없이 장황하게 묘사되었으며 담담하게 웹소설풍의 다나까체로 풀어썼으니 시간이 남아도는 분들만 읽고 소견을 주기바람.
난 서른 일곱살이다.
전 여친과 헤어진지도 어언 1년하고 5개월.
다시는 연애를 하지않으리라 세상을 향해 부르짖으며 썰물처럼 흘려보낸 시간들과
뼈가 시리다못해 녹아내리는듯한 고독함마저 서서히 익숙해져갈 무렵.
인터넷에 떠도는 연애세포 자가진단에서 임종 판정을 받은 나는 한 지인 분의 소개로 근 몇년만에 소개팅을 했고 헤어스타일과 눈매가 아이유를 몹시 닮은 소개팅녀에게 애프터를 거절 당한 후 몹시도 흔들리는 멘탈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길.
지하철 1호선 청량리행 열차 안에서 한 여인을 보았다.
흑발의 긴생머리, 얇은 겹의 쌍꺼풀진 큰 눈, 백설같이 새하얀 피부색에 170은 되어보이는 시원한 기럭지.
블랙코트와 청바지, 웨지힐로 완성한 코디는 세련된 도시여성의 이미지였고, 내가 찾던 이상형에 가까운 여성의 모습이었다.
지하철 맨 끝의 칸, 벽에 기대어 서있던 나는 약 3미터쯤 떨어진 곳의 문 앞에 서있던 그녀를 본능적으로 쳐다보았고, 나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약 1초간 우린 눈을 마주쳤고, 당황한 나는 눈동자를 살짝돌려 다음 역을 확인하는 듯 안내전광판을 바라본 후 이내 고개를 떨구고 자연스레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휴대폰을 보다 지하철 행선지 안내방송이 나올 때마다 나는 도착역을 확인하듯 전광판을 바라보는 척하며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고, 그러다가 또 그녀와 눈을 몇 번 더 마주쳤다.
기분 탓인가.. 왠지 그녀도 나를 힐끔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혹시 그녀도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신호인걸까.
나는 자자의 버스 안에서란 노래를 떠올리며 부담스럽게 도도해보이는 그녀에게 어떤 말도 붙일 자신이 없는 자신을 책망하며 다시 휴대폰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번 역은 우리 열차의 종점인 청량리역이라는 안내멘트에 나는 지하철에서 내리기 위해 문앞에 자리를 잡았고 역에 도착하기 한 10초 전 쯤.
내가 서있던 문과 의자를 사이에 두고 옆의 문 앞에 서 있던 그녀가 갑자기 내가 있는 쪽 문으로 걸어오더니 내 바로 뒤에 자리를 잡고 섰다.
설마 진짜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었나?
아까 나와 마주쳤던 그 눈빛은 정녕 나에게 보내는 그린라이트였던 것인가?
아니겠지.. 그냥 여기가 출구와 가장 가까운 문이어서일꺼야..
라며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하는 동안 지하철은 이윽고 역에 도착했고 문이 열리자 나는 문을 빠져나와 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내 팔을 툭툭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뒤돌아 그 대상을 확인했다.
이럴수가!
바로 그녀였다!
설마 나에게도 이런 일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 나에게 먼저 수줍게 대쉬하던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그런 기적과도 같은 일이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것인가!!
그녀가 나에게 무언가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기분좋게 놀란 가슴과 요동치는 심장소리를 뒤로하고 귀에 꼽고있던 버즈이어폰을 빼고 귀기울였다.
그녀가 물었다.
'혹시 이(땡)학씨 아니에요?'
(혹시 몰라 이름 가운데는 땡처리한다)
'예? 누구요?'
난 약간의 실망감과 함께 되물었고 그녀가 대답했다.
'아, 죄송해요. 제가 알던 분하고 닮으셔서 제가 착각했어요'
하고 그녀는 급한 발걸음으로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순간, 나는 왠지 모를 아쉬움과 이(땡)학이 도대체 누굴까하는 궁금증.
그리고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순간만큼은 내가 이(땡)학이가 되고싶다는 마음이 교차하며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이것도 혹시 인연은 아닐까, 얽히고 섥힌 운명의 실타래가 이(땡)학이 매개체가되어 우리를 이어주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하며 갑자기 그녀의 번호를 알고싶다는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에 나는 그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한 30미터쯤 달렸을까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고 갈림길에서 계단을 따라 급히 달려내려가자 다행히 저 멀리서 개찰구 밖으로 빠져나가는 그녀의 뒷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여기서 개찰구를 나간다면 지하철요금 1200원을 또 다시 내고 돌아와야한다는 사실을 알고있었기 때문에.
갈아타기 위해 청량리 종점에서 내렸던 나는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것과 1200원의 매몰비용과의 경제적가치 사이의 고민을 잠시했으나 내 몸은 어느새 개찰구를 빠져나와 그녀에게 달려가고있었다.
점점 그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져갔고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의 위치에 도달했을 무렵.
난 가파라진 호흡을 가다듬은 후 그녀의 팔을 툭 건드렸다.
나름 호기롭게 다가섰으나 결전의 순간 머리속이 갑자기 새하얘진 나는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라 문득 그녀가 찾던 사람에 대해 물어보았다.
'저기 혹시 이(땡)학씨 찾으신다고 하셨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이(땡)학이 누군지 모른다...
그녀가 약간 놀란 모습으로 돌아보곤 나를 확인한 후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아.. 맞아요. 예전에 알던 친군데 닮으셔서 이(땡)학씬줄 알았어요... 키하고 덩치도 비슷하셔서...'
(참고로 내키는 188에 몸무게는 84키로 정도이다.)
이(땡)학이 누군진 모르지만 더욱 궁금해졌다.
'저기... 혹시 번호 좀 알수 있을까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길바닥에서 이름모를 여인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봤다.
잠시 후 그녀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그녀가 말을 내뱉었다.
'저 나이 많아요...!'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역병이 창궐한 이 시대에 마스크로 낯짝의 반을 가린 상태에서 서로가 서로의 나이를 짐작하기란 과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난, 문득 그녀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몇살이길래 불혹의 나이를 향해 달려가고있는 내 앞에서 나이를 논하는 것인가.
나는 다시 물었다.
'몇살...이신데요?'
그녀가 대답했다.
'서른 둘이요'
서른 둘이면 계산해보건데 89년생 뱀띠.
그래도 나와 같은 80년대생이니 내가 복학생일 때 갓들어온 신입생들과 오빠 동생하던 나름 뽀송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다섯살 차이정도야 생각하고 괜찮겠다 싶어 바로 대답했다.
'전 더 많습니다!'
나이가 벼슬은 아니나 서른 둘이 나이가많다고 하는 그녀가 살짝 귀엽게 느껴져서인지 아님 내가 더 어릴 것이라 착각하는 그녀의 마음을 안심시키기위해서였는지 나도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몇살..이신데요?'
그녀가 묻자 난 대답했다.
'서른일곱이요!'
그러자 안그래도 이 상황을 당황해하던 그녀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무겁고도 슬픈 정적만이 흐르는 지하철 대합실에서 난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눈빛의 의미를.
그녀는 대답했다.
'죄송해요....'
손 윗사람을 대하듯 짧지만 정중한 그녀의 거절멘트는 그 말의 리듬과 템포,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었던 표정에서 나타난 생생한 감정의 표현만으로 더 이상의 그 어떤 말도 필요치않았다.
'예.. 들어가세요..'하고 난 어색하게 미소로 대답한 후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렇게 다시 1200원을 내고 마치 패잔병과도 같은 발걸음으로 지하철을 타러 돌아오는 동안 난 평소 쉽게 느낄 수 없었던 몇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나이먹고 헌팅이란걸 시도했다는 부끄러움과 거절당한 순간의 민망함, 그리고 비록 실패로 끝이 나긴 했지만 만약 물어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며칠 동안은 후회했을, 그럼에도 후련한 이 감정.
2주 정도 지난 지금도 가끔 그 순간이 생각난다.
그리고 궁금하다.
그녀가 전화번호를 주지 않은 이유가.
그래서 난 그 원인을 분석하고자 아래와 같이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1. 그녀는 내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번호를 주지 않았다.(나와 동갑 유명인으로 이제훈, 유연석, 쌈디, 민경훈, 기안84, 개그맨 이용진 등이 있다. 물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전혀 없다.)
2. 그녀는 나의 외모가 맘에 들지 않아 번호를 주지 않았다.(그녀피셜 이(땡)학씨 닮은 외모. feat 마스크)
3. 그녀의 번호를 따기엔 나의 멘트가 너무 어설펐다.(이 순간이 떠오를 때마다 난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러움과 민망함에 몸부림치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4. 그녀는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번호를 준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있어 번호를 주지 않았다.(지금와서 입장바꿔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됨)
5. 1,2,3,4가 모두 해당한다.(이게 왠지 맞는 것 같음)
여튼 이 날의 작은 깨달음으로 난 다시는 낯선 이성을 당황하게 만들 헌팅을 하지않을 것을 다짐했고, 이 날의 일은 내 인생 최초이자 최후의 헌팅으로 내 인생에 기록될 것이다.
서른일곱살 한 남자의 생애 첫, 그리고 마지막 헌팅시도 실패 썰(스압주의)
별다른 내용은 없으나 그날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여 글이 지나치게 쓸데없이 장황하게 묘사되었으며 담담하게 웹소설풍의 다나까체로 풀어썼으니 시간이 남아도는 분들만 읽고 소견을 주기바람.
난 서른 일곱살이다.
전 여친과 헤어진지도 어언 1년하고 5개월.
다시는 연애를 하지않으리라 세상을 향해 부르짖으며 썰물처럼 흘려보낸 시간들과
뼈가 시리다못해 녹아내리는듯한 고독함마저 서서히 익숙해져갈 무렵.
인터넷에 떠도는 연애세포 자가진단에서 임종 판정을 받은 나는 한 지인 분의 소개로 근 몇년만에 소개팅을 했고 헤어스타일과 눈매가 아이유를 몹시 닮은 소개팅녀에게 애프터를 거절 당한 후 몹시도 흔들리는 멘탈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길.
지하철 1호선 청량리행 열차 안에서 한 여인을 보았다.
흑발의 긴생머리, 얇은 겹의 쌍꺼풀진 큰 눈, 백설같이 새하얀 피부색에 170은 되어보이는 시원한 기럭지.
블랙코트와 청바지, 웨지힐로 완성한 코디는 세련된 도시여성의 이미지였고, 내가 찾던 이상형에 가까운 여성의 모습이었다.
지하철 맨 끝의 칸, 벽에 기대어 서있던 나는 약 3미터쯤 떨어진 곳의 문 앞에 서있던 그녀를 본능적으로 쳐다보았고, 나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약 1초간 우린 눈을 마주쳤고, 당황한 나는 눈동자를 살짝돌려 다음 역을 확인하는 듯 안내전광판을 바라본 후 이내 고개를 떨구고 자연스레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휴대폰을 보다 지하철 행선지 안내방송이 나올 때마다 나는 도착역을 확인하듯 전광판을 바라보는 척하며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고, 그러다가 또 그녀와 눈을 몇 번 더 마주쳤다.
기분 탓인가.. 왠지 그녀도 나를 힐끔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혹시 그녀도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신호인걸까.
나는 자자의 버스 안에서란 노래를 떠올리며 부담스럽게 도도해보이는 그녀에게 어떤 말도 붙일 자신이 없는 자신을 책망하며 다시 휴대폰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번 역은 우리 열차의 종점인 청량리역이라는 안내멘트에 나는 지하철에서 내리기 위해 문앞에 자리를 잡았고 역에 도착하기 한 10초 전 쯤.
내가 서있던 문과 의자를 사이에 두고 옆의 문 앞에 서 있던 그녀가 갑자기 내가 있는 쪽 문으로 걸어오더니 내 바로 뒤에 자리를 잡고 섰다.
설마 진짜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었나?
아까 나와 마주쳤던 그 눈빛은 정녕 나에게 보내는 그린라이트였던 것인가?
아니겠지.. 그냥 여기가 출구와 가장 가까운 문이어서일꺼야..
라며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하는 동안 지하철은 이윽고 역에 도착했고 문이 열리자 나는 문을 빠져나와 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내 팔을 툭툭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뒤돌아 그 대상을 확인했다.
이럴수가!
바로 그녀였다!
설마 나에게도 이런 일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 나에게 먼저 수줍게 대쉬하던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그런 기적과도 같은 일이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것인가!!
그녀가 나에게 무언가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기분좋게 놀란 가슴과 요동치는 심장소리를 뒤로하고 귀에 꼽고있던 버즈이어폰을 빼고 귀기울였다.
그녀가 물었다.
'혹시 이(땡)학씨 아니에요?'
(혹시 몰라 이름 가운데는 땡처리한다)
'예? 누구요?'
난 약간의 실망감과 함께 되물었고 그녀가 대답했다.
'아, 죄송해요. 제가 알던 분하고 닮으셔서 제가 착각했어요'
하고 그녀는 급한 발걸음으로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순간, 나는 왠지 모를 아쉬움과 이(땡)학이 도대체 누굴까하는 궁금증.
그리고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순간만큼은 내가 이(땡)학이가 되고싶다는 마음이 교차하며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이것도 혹시 인연은 아닐까, 얽히고 섥힌 운명의 실타래가 이(땡)학이 매개체가되어 우리를 이어주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하며 갑자기 그녀의 번호를 알고싶다는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에 나는 그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한 30미터쯤 달렸을까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고 갈림길에서 계단을 따라 급히 달려내려가자 다행히 저 멀리서 개찰구 밖으로 빠져나가는 그녀의 뒷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여기서 개찰구를 나간다면 지하철요금 1200원을 또 다시 내고 돌아와야한다는 사실을 알고있었기 때문에.
갈아타기 위해 청량리 종점에서 내렸던 나는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것과 1200원의 매몰비용과의 경제적가치 사이의 고민을 잠시했으나 내 몸은 어느새 개찰구를 빠져나와 그녀에게 달려가고있었다.
점점 그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져갔고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의 위치에 도달했을 무렵.
난 가파라진 호흡을 가다듬은 후 그녀의 팔을 툭 건드렸다.
나름 호기롭게 다가섰으나 결전의 순간 머리속이 갑자기 새하얘진 나는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라 문득 그녀가 찾던 사람에 대해 물어보았다.
'저기 혹시 이(땡)학씨 찾으신다고 하셨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이(땡)학이 누군지 모른다...
그녀가 약간 놀란 모습으로 돌아보곤 나를 확인한 후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아.. 맞아요. 예전에 알던 친군데 닮으셔서 이(땡)학씬줄 알았어요... 키하고 덩치도 비슷하셔서...'
(참고로 내키는 188에 몸무게는 84키로 정도이다.)
이(땡)학이 누군진 모르지만 더욱 궁금해졌다.
'저기... 혹시 번호 좀 알수 있을까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길바닥에서 이름모를 여인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봤다.
잠시 후 그녀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그녀가 말을 내뱉었다.
'저 나이 많아요...!'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역병이 창궐한 이 시대에 마스크로 낯짝의 반을 가린 상태에서 서로가 서로의 나이를 짐작하기란 과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난, 문득 그녀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몇살이길래 불혹의 나이를 향해 달려가고있는 내 앞에서 나이를 논하는 것인가.
나는 다시 물었다.
'몇살...이신데요?'
그녀가 대답했다.
'서른 둘이요'
서른 둘이면 계산해보건데 89년생 뱀띠.
그래도 나와 같은 80년대생이니 내가 복학생일 때 갓들어온 신입생들과 오빠 동생하던 나름 뽀송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다섯살 차이정도야 생각하고 괜찮겠다 싶어 바로 대답했다.
'전 더 많습니다!'
나이가 벼슬은 아니나 서른 둘이 나이가많다고 하는 그녀가 살짝 귀엽게 느껴져서인지 아님 내가 더 어릴 것이라 착각하는 그녀의 마음을 안심시키기위해서였는지 나도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몇살..이신데요?'
그녀가 묻자 난 대답했다.
'서른일곱이요!'
그러자 안그래도 이 상황을 당황해하던 그녀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무겁고도 슬픈 정적만이 흐르는 지하철 대합실에서 난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눈빛의 의미를.
그녀는 대답했다.
'죄송해요....'
손 윗사람을 대하듯 짧지만 정중한 그녀의 거절멘트는 그 말의 리듬과 템포,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었던 표정에서 나타난 생생한 감정의 표현만으로 더 이상의 그 어떤 말도 필요치않았다.
'예.. 들어가세요..'하고 난 어색하게 미소로 대답한 후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렇게 다시 1200원을 내고 마치 패잔병과도 같은 발걸음으로 지하철을 타러 돌아오는 동안 난 평소 쉽게 느낄 수 없었던 몇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나이먹고 헌팅이란걸 시도했다는 부끄러움과 거절당한 순간의 민망함, 그리고 비록 실패로 끝이 나긴 했지만 만약 물어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며칠 동안은 후회했을, 그럼에도 후련한 이 감정.
2주 정도 지난 지금도 가끔 그 순간이 생각난다.
그리고 궁금하다.
그녀가 전화번호를 주지 않은 이유가.
그래서 난 그 원인을 분석하고자 아래와 같이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1. 그녀는 내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번호를 주지 않았다.(나와 동갑 유명인으로 이제훈, 유연석, 쌈디, 민경훈, 기안84, 개그맨 이용진 등이 있다. 물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전혀 없다.)
2. 그녀는 나의 외모가 맘에 들지 않아 번호를 주지 않았다.(그녀피셜 이(땡)학씨 닮은 외모. feat 마스크)
3. 그녀의 번호를 따기엔 나의 멘트가 너무 어설펐다.(이 순간이 떠오를 때마다 난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러움과 민망함에 몸부림치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4. 그녀는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번호를 준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있어 번호를 주지 않았다.(지금와서 입장바꿔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가 됨)
5. 1,2,3,4가 모두 해당한다.(이게 왠지 맞는 것 같음)
여튼 이 날의 작은 깨달음으로 난 다시는 낯선 이성을 당황하게 만들 헌팅을 하지않을 것을 다짐했고, 이 날의 일은 내 인생 최초이자 최후의 헌팅으로 내 인생에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