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안녕202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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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오랜만이야.

나는 아직도 너와 헤어지던 날, 혼자 덩그러니 남아 울었던 그 빌라 앞 주차장에 가서 종종 울곤 해.
넌 잘 지내는것 같던데 난 아직도 과거의 시간에 묶여있어.
이런 내가 참 바보같은걸 알면서도 네 생일날이 되니 또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대낮부터 한 잔 했어.

우린 참 지겹게도 오래 만났어.
딱 9년. 너와 나는 스물에 만나 스물아홉까지 참 오래도 붙어있었다.

9년이라는 시간동안 우리는 참 행복했고 힘들었어.
너와 나 사이에 아이가 생겨 결혼을 결심했을 때, 그리고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이의 심장이 멈추고 결혼을 포기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너와 헤어지던 날까지.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는 날을 꿈꾸며 설레하던 나였던걸 넌 잘 알잖아.
아버지가 정해주신 꿈이었지만 나는 그 꿈을 꼭 이루고 싶었고 그 꿈을 사랑했어.

하지만 너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어머니의 자랑인 아들을 내조하는 집안 살림 잘하는 좋은 아내가 되어야 했어.

그래도 그때는 널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내 꿈 따위는 버려도 좋다고, 회계사가 되는 꿈과 너와 가족이 되는 꿈 중 하나를 선택해야한다면 널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때는 네가 내 세상의 전부 같았거든.

그래서 나는 회계사 시험을 포기하고 너와 결혼해 뱃속의 아이를 낳겠다고 했고 망설임없이 다니던 회사에도 사직서를 냈어.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가 내 앞에 주저앉아 우셨어.

장교 아들을 둔 예비 시어머니는 너무나도 아들을 사랑하셨고 아무것도 아닌 보잘것 없는 나를 너무나도 하찮게 여기셨지만 괜찮았어.

너와 함께라면 내 꿈 하나쯤은 버려도 괜찮았고 집안살림을 잘 못하는 나를 못마땅해하는 너의 가족들의 눈초리도 괜찮았어.

괜찮다, 괜찮다 하다보니 다 괜찮았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엔 모든게 괜찮지가 않더라.

갑작스러운 사고였고 마음의 준비 없이 하루아침에 텅 빈 아버지의 자리가 너무 감당이 안되더라.
아버지의 빈 자리는 생각보다 컸어.

결국 아이의 심장은 멈췄고 나는 다시 취직을 해야했어.
어머니와 어린 동생, 그리고 엄청난 빚까지..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책임지기 위해 밤낮 없이 퇴근 후에도 알바를 했어.
그리고 너와 조금씩 멀어졌지.

너는 슬퍼했어.
내가 너를 이젠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밥 먹을 시간, 화장실에 갈 시간은 있으면서 연락 한 통 없다고.

난 사실 그때 정말 밥 먹을 시간도, 화장실에 갈 시간도, 잠을 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일을 했는데 네 말을 듣고나니 내가 정말 나쁜 사람처럼 느껴지더라.

결국 우린 헤어졌어.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함께 살던 우리 집에 내 짐만 덩그러니 남아있더라.

너는 잔인하게도 우리가 함께 한 추억까지 몽땅 가지고 가버렸어.
그 날 네가 없는 우리집 앞 주차장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너는 알까?

그래도 다행히 사는게 너무 고단하고 힘들어서 하루하루가 견뎌는지더라.
그렇게 견뎌서 지금은 회계사는 아니지만 세무사가 됐어.

나는 꽤 행복해.
그래도 종종 네 생각이 나서 울어.
참 바보같지만 나는 아직도 핸드폰에서 네 번호를 지우지 못했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보고 알았어.
너 결혼하더라.
네가 행복했으면 해.
나도 꽤 행복하니까.

행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