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적 부모님이 이혼하고 아버지와 같이 자라오다가초등학교 즈음 새 어머니와 결혼후 동생과 넷이서 자랐어요 그러다 중학교 2학년 중순즈음 부모님이 잠시 일이 있어 할아버지네 잠시 있으라고 하셨어요그당시 웬지 낌세가 이상해서 "정말 할아버지네 이야기 한거에요?"라고 되물었었던기억이 있었어요.부모님은 그래 이야기 잘해놨다 라고 듣고 엘리베이터 위에 저와 제동생 짐을 올려놓고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셨어요 그이후 벨을 누르고 할아버지 저희 왔어요 하니 할머니가 나오셨었습니다.사정을 이야기 했더니할머니께서는 " 여긴 우리집이니까 들어올생각 마라!" 라고 소리치시고문을 쾅 닫고 손잡이 잠금장치를 잠그고 위에 달린 보조 자물쇠도 철컥 잠그고 보조장금장치의 위에 안열리게 하는버튼도 탁 소리나게 닫고 그위 달린 문걸이까지 탁하고 잠그는 소리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동생과 같이 아파트 계단에 앉아서 정말 서럽게 울었었습니다. 좀이따 들어가기는 했지만 중학생이었던 제게는 너무 충격적이었고 나이든 아직도 문잠그는 소리가 아직도 들릴정도로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너무 서러웠어요. 그후 오랫동안 부모님은 행방불명상태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그이후 저희에게 부모님욕을 매일 매일 들었었습니다.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욕들 살면서 그렇게 욕이 많다는걸 처음알았습니다. 중학교때부터 고등학교다닐때까지계속 들었었어요.아무리 우릴 버린 부모님이라도 아무리 할아버지더라도 부모님 욕하는건 도저히 참기 힘들더군요그래서 많이 아버지는 그럴사람이 아니라고 대들었었죠.하지만 돌아오는건 구타였어요.한때는 공장에나 있을 법한 큰시계를 집어던지고 간적도 있고 그땐 업드려 많이 울었는데한참 울고나니 시계에 있는 두꺼운 유리가 깨져있고 바닥에 피가 한강이 되었더라구요.어린마음에 할아버지가 다치신건아닌지 깜짝 놀라서 마루로 나가 안방에 계신걸 슬쩍 봣는데 피는 안나셧더라구요. 뭐지 하면서 돌아가서 앉았는데 발에서 따끔 하더라구요 알고보니 제피였어요.그래서 돌아가서 마루에 있는 피도 다 닦고 방에 있던 피도 다 닦으면서 더 서러웠었죠.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학교 다닐땐 학비도 한두분기 매일 밀려있어서 선생님 눈치 학생들 눈치 보느라정말 힘들었었어요.학교는 왜 다니고 있는건지 나는 왜 살고 있는건지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몇년동안 침대에서 매일 이불 뒤집어 쓰고 소리 내지 못하고 울고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자살을 하고 싶었는지 고통의 나날이었어요.일기장에도 죽고싶다 살고싶지 않다 쓰는게 일과였고학교도 다니고 싶지 않았었어요.어렸을적에 인생극장을 보면서 가출하는 아이들을 보며 왜 좋은 집을 놔두고 가출하는지 이해를 할수가 없었어요.하지만 이때 저는 왜 가출하는지 직접 알게 되었죠.가출도 몇번하기도 하고 아마 제가 교회를 다니지 않았었다면 일찍 생을 마감했었을거에요. 그리고 19살이 되면서 아르바이트를 할수 있게 되면서 학교도 안나가고 기숙사 있는곳에서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아라고 생각하면서 혼자 살게 되었죠. 이때 동생을 두고 나온건 조금 후회 합니다. 하지만 내가 사는거에도 벅찼어요.너무 정신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웠어요. 다 잊고 살고 있을때 20대 중반좀 안되서 아버지한테서 처음으로 연락이 왔죠.동생좀 데리고 있으라고... 갈데가 없다고.. 한달만 데리고 있으라고..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모은돈 다 모으고 퇴직금 다 받고 해서 방둘 월세방을 구했습니다.한달만 기다리라고 해서 한달간 알바하기는 뭐하고 해서 그냥 기다렸죠..하지만 아버지는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 한달이면 된다 고 말하기를 계속 하셨죠 한달만 알바하기는 좀 그렇고 직장을 구하기도 너무 힘들었어요.그렇게 모은돈 다 까먹고 거지가 되었죠. 어쩔수 없이 우리둘은 다시 다른곳으로 가게 되었고그 이후로도 집안 때문에 다시 너무 힘들었어요. 그이후 계속 모은 돈과 재산들 아버지 말 믿고 다시 또 보관 이사짐 센터에 보관하고조금만 기다리는 말에 모든 재산 모든 내 추억들 사진들 수집품들 모든것이 다 없어졌어요
아버지 연락온걸 받지 않았으면 아무 생각없이 혼자 최소한 불행하지는 않앗을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매번 힘든일 남이 할일도 다 내가 해가며 무리하던탓에몸이 많이 망가지고 어깨도 완전 맛이 간건지 아침마다 너무 아프고코로나로인해 일자리 구하기도 안좋고해서 아버지 집에 잠시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일이 할아버지 제사입니다. 아버지는 제사는 꼭 가야 한다 고 할아버지가 아무리 모질게 했어도 제사는 가라고 하십니다. 저도 제사는 치르는게 백번 맞다고 생각은 하기는 하지만옛날에 수년간 치른 고통에 도저히 가고싶지가 않아요.아버지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적도 있긴하지만아버지 제사는 지낼지언정 할아버지 제사는 도저히 가고 싶지 않네요.ㅠ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너를 먹여살릴 의무는 없다.당연히 먹여주고 재워준것에 감사해야 한다.제사는 꼭 가는게 맞다.등등 라고 말씀하시네요. 맞는 말이긴하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할 도리가 있듯이부모도 자식에게 당연히 해야할 도리가 있는것 아닌가요?위에서부터 도리를 아주 많이 버렸는데제가 할아버지 제사를 가야하는게 맞는건지... 제가 나쁜걸까요? 한국만의 예는 무슨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걸까요?제사를 가는게 맞는지 다른분들의 의견이 듣고싶습니다 ㅠㅠ욕을해도 좋으니 많은 의견이 듣고 싶습니다. 긴글 읽어주시고 답글주시는 모든분들 감사하고 지금 시국이 어렵고 힘들지만모두 건강히 행복한 삶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_ _)
========================추가 요약글 부모는 중학교때 버리고 떠나고 성인이 된후에 가끔 연락함그래서 어릴때 할아버지네 사는데 할아버지가 어렸을적 학대를함 할어버지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할아버지 제사 참가 해야한다고함 이거 제사 가야하는겁니까?
제사를 꼭 가야 하는가?
그러다 중학교 2학년 중순즈음 부모님이 잠시 일이 있어 할아버지네 잠시 있으라고 하셨어요그당시 웬지 낌세가 이상해서 "정말 할아버지네 이야기 한거에요?"라고 되물었었던기억이 있었어요.부모님은 그래 이야기 잘해놨다 라고 듣고 엘리베이터 위에 저와 제동생 짐을 올려놓고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셨어요
그이후 벨을 누르고 할아버지 저희 왔어요 하니 할머니가 나오셨었습니다.사정을 이야기 했더니할머니께서는 " 여긴 우리집이니까 들어올생각 마라!" 라고 소리치시고문을 쾅 닫고 손잡이 잠금장치를 잠그고 위에 달린 보조 자물쇠도 철컥 잠그고 보조장금장치의 위에 안열리게 하는버튼도 탁 소리나게 닫고 그위 달린 문걸이까지 탁하고 잠그는 소리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동생과 같이 아파트 계단에 앉아서 정말 서럽게 울었었습니다.
좀이따 들어가기는 했지만 중학생이었던 제게는 너무 충격적이었고 나이든 아직도 문잠그는 소리가 아직도 들릴정도로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너무 서러웠어요.
그후 오랫동안 부모님은 행방불명상태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그이후 저희에게 부모님욕을 매일 매일 들었었습니다.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욕들 살면서 그렇게 욕이 많다는걸 처음알았습니다. 중학교때부터 고등학교다닐때까지계속 들었었어요.아무리 우릴 버린 부모님이라도 아무리 할아버지더라도 부모님 욕하는건 도저히 참기 힘들더군요그래서 많이 아버지는 그럴사람이 아니라고 대들었었죠.하지만 돌아오는건 구타였어요.한때는 공장에나 있을 법한 큰시계를 집어던지고 간적도 있고 그땐 업드려 많이 울었는데한참 울고나니 시계에 있는 두꺼운 유리가 깨져있고 바닥에 피가 한강이 되었더라구요.어린마음에 할아버지가 다치신건아닌지 깜짝 놀라서 마루로 나가 안방에 계신걸 슬쩍 봣는데 피는 안나셧더라구요.
뭐지 하면서 돌아가서 앉았는데 발에서 따끔 하더라구요 알고보니 제피였어요.그래서 돌아가서 마루에 있는 피도 다 닦고 방에 있던 피도 다 닦으면서 더 서러웠었죠.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학교 다닐땐 학비도 한두분기 매일 밀려있어서 선생님 눈치 학생들 눈치 보느라정말 힘들었었어요.학교는 왜 다니고 있는건지 나는 왜 살고 있는건지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몇년동안 침대에서 매일 이불 뒤집어 쓰고 소리 내지 못하고 울고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자살을 하고 싶었는지 고통의 나날이었어요.일기장에도 죽고싶다 살고싶지 않다 쓰는게 일과였고학교도 다니고 싶지 않았었어요.어렸을적에 인생극장을 보면서 가출하는 아이들을 보며 왜 좋은 집을 놔두고 가출하는지 이해를 할수가 없었어요.하지만 이때 저는 왜 가출하는지 직접 알게 되었죠.가출도 몇번하기도 하고 아마 제가 교회를 다니지 않았었다면 일찍 생을 마감했었을거에요.
그리고 19살이 되면서 아르바이트를 할수 있게 되면서 학교도 안나가고 기숙사 있는곳에서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아라고 생각하면서 혼자 살게 되었죠.
이때 동생을 두고 나온건 조금 후회 합니다. 하지만 내가 사는거에도 벅찼어요.너무 정신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웠어요.
다 잊고 살고 있을때 20대 중반좀 안되서 아버지한테서 처음으로 연락이 왔죠.동생좀 데리고 있으라고... 갈데가 없다고.. 한달만 데리고 있으라고..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그동안 모은돈 다 모으고 퇴직금 다 받고 해서 방둘 월세방을 구했습니다.한달만 기다리라고 해서 한달간 알바하기는 뭐하고 해서 그냥 기다렸죠..하지만 아버지는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 한달이면 된다 고 말하기를 계속 하셨죠
한달만 알바하기는 좀 그렇고 직장을 구하기도 너무 힘들었어요.그렇게 모은돈 다 까먹고 거지가 되었죠. 어쩔수 없이 우리둘은 다시 다른곳으로 가게 되었고그 이후로도 집안 때문에 다시 너무 힘들었어요.
그이후 계속 모은 돈과 재산들 아버지 말 믿고 다시 또 보관 이사짐 센터에 보관하고조금만 기다리는 말에 모든 재산 모든 내 추억들 사진들 수집품들 모든것이 다 없어졌어요
아버지 연락온걸 받지 않았으면 아무 생각없이 혼자 최소한 불행하지는 않앗을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매번 힘든일 남이 할일도 다 내가 해가며 무리하던탓에몸이 많이 망가지고 어깨도 완전 맛이 간건지 아침마다 너무 아프고코로나로인해 일자리 구하기도 안좋고해서
아버지 집에 잠시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일이 할아버지 제사입니다.
아버지는 제사는 꼭 가야 한다 고 할아버지가 아무리 모질게 했어도 제사는 가라고 하십니다.
저도 제사는 치르는게 백번 맞다고 생각은 하기는 하지만옛날에 수년간 치른 고통에 도저히 가고싶지가 않아요.아버지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적도 있긴하지만아버지 제사는 지낼지언정 할아버지 제사는 도저히 가고 싶지 않네요.ㅠ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너를 먹여살릴 의무는 없다.당연히 먹여주고 재워준것에 감사해야 한다.제사는 꼭 가는게 맞다.등등 라고 말씀하시네요.
맞는 말이긴하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할 도리가 있듯이부모도 자식에게 당연히 해야할 도리가 있는것 아닌가요?위에서부터 도리를 아주 많이 버렸는데제가 할아버지 제사를 가야하는게 맞는건지...
제가 나쁜걸까요? 한국만의 예는 무슨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걸까요?제사를 가는게 맞는지 다른분들의 의견이 듣고싶습니다 ㅠㅠ욕을해도 좋으니 많은 의견이 듣고 싶습니다.
긴글 읽어주시고 답글주시는 모든분들 감사하고 지금 시국이 어렵고 힘들지만모두 건강히 행복한 삶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_ _)
========================추가 요약글
부모는 중학교때 버리고 떠나고 성인이 된후에 가끔 연락함그래서 어릴때 할아버지네 사는데 할아버지가 어렸을적 학대를함
할어버지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할아버지 제사 참가 해야한다고함
이거 제사 가야하는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