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에게

202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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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네가 이곳에 있는 글들을 보았던 것 같아 여기에 너에 대한 글을 남겨

처음 서점 추리소설 코너에서 생각에 잠긴듯 가만히 서 있는 너를 보고 첫눈에 반했어 난 그동안 첫눈에 반했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에이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첫눈에 반해?"라는 말을 줄곧 하곤 했었는데, 너를 보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딱 알겠더라 그날 네가 입은 옷, 나를 보며 동그랗게 커지던 네 눈, 부끄러운 듯 살짝 올라가던 너의 볼과 예쁘게 들어간 보조개, 너와 잘 어울리는 향수, 뭐 하나 빠짐없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전에 만났던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일들로 망가진 내 마음이 네 앞에서는 이상하게 울렁이더라 7년 넘게 만나는 동안 큰소리 한번 없이 잘 만나 왔다 우리 나한테 서운한 게 있으면 입을 삐죽 내밀고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눈치를 주던 네 모습도 그땐 왜 그렇게 귀여워 보였는지 몰라

어머니 없이 자란 나는 여자란 존재 자체가 서툴었어 그래서 연애 초반에 네게 의도치 않은 실수도 많이 했지 근데 너를 만나면서 하나둘 배우다 보니 이제는 나도 너만큼 너를 잘 알아 아니 어쩌면 너보다 너를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학을 졸업하고 점점 길어지는 취준생 생활에 지쳐갈 때 항상 옆에 있어 주던 것도 너였어 돈이 없어 밥 한끼 제대로 못 먹을 때면 어떻게 알고는 내 자취방 냉장고를 채워 놓고 생색 한번 안 내더라 그런 건 생색 좀 내도 됐는데 바보야 고작 대학생이 돈이 어디 있겠어 남자친구 밥 한끼 먹여 보겠다고 한달 꼬박 알바한 돈 본인 갖고 싶은 거 참고, 먹고 싶은 것도 참고, 친구랑 약속 한번 안 잡으면서 모은 돈으로 남자친구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며 쏟아 부었을 거야 너무 잘 알고 있었는데 그때는 내 삶이 너무 힘들어서 가냘픈 너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어엿한 직장에 취직하고 내 첫 월급은 우리 아버지도 아닌 너에게 선물했어 오빠가 힘들게 번 돈 못 받겠다며 손사레 치는 너에게 그동안 받은 거 갚으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몰라 백화점에서 예쁜 가방 하나 사서 이건 환불 안 되니까 그냥 쓰라며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몇분의 실랑이 끝에 너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좋은 선물 한번 해 줬다

한달 전 네 소식을 듣고 집에 와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밤새 울어 눈이며 코며 온갖 얼굴이 망가져버렸는데도 아직도 울게 남았는지 울다 결국엔 지쳐 잠이 들었어

비가 아주 많이 오던 날 고된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에 가는 중에 안타까운 사고가 났어 그 작은 몸이 차가운 바닥에 홀로 누워 있었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다행히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넌 아직도 내 얼굴 한번 보지 못하는구나 네가 너무 보고 싶다

언제쯤 다시 네가 내 손을 잡아줄까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은데 네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은데 왜 한번을 들려주지 않는 거니

네가 다시 일어나 나에게 오빠라고 불러 준다면 나는 가장 먼저 너와 함께 서점에 가고 싶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아파주면 안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