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천사- 1

늙은마녀200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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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호 천 사-1




매년 그렇듯 어김없이 12월의 칼날같은 바람이 여린 피부를 도려내듯 스쳐가는 겨울이 찾아왔다. 채 해가뜨기 전에 집을 나서 한쪽어깨를 휘어잡고있는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학교에 갈때만 해도 나에게 이런일이 닥쳐오리란걸 상상할수조차 없었다.


열일곱의 삶의 무게가 가방에 고스란히 담긴 듯 터덜거리며 무거워진 발걸음을 간신히 옮겨 집으로 향하는 연주의 뒷모습은 누가봐도 한눈에 상당히 지친 듯 보였지만 그래도 집에가면 편히 누울수있을거란 생각에 좀더 발을 빨리 놀리며 가방을 들썩여 어깨에 제대로 자리잡게한 후 초인종을 눌렀다.


“어? 왜 불이 다 꺼져있지?”


시계를 들여다 보니 어느새 시침이 일곱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겨울의 해는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서둘러 지평선을 넘어가 숨어버렸다. 몇시간 뒤척거리다 보면 어느새 다시 새초롬히 떠오르긴하지만 이런 겨울이 맘에 안드는 연주는 인상을 찌푸리며 가방을 뒤적여 열쇠를 찾기시작했다.


무거운 책들에 짖눌려 보이지도 않는 열쇠를 간신히 찾아내어 문을 열어보니 마당에 듬성듬성 늘어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뭇가지들이 을씨년스럽게 팔을 벌리고있었다.


“엄마, 나왔어~~~~~~”


이 시간에 불이 껴져있는 창문을 바라보며 현관의 문을 열어제친 연주는 무언가 기분나쁜 감각에 한차례 몸을 부르르떨었다.


“아씨, 엄마는 어디간거야? 도대체”


신경질적으로 가방을 쇼파에 내동댕이치고 온집안의 스위치를 모두 눌러 불을 환하게 밝혔다. 하지만 이 기분나쁜 감각은 뱀이 몸을 휘감고 올라오듯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어휴~ 금자아줌네가 갔나? 그래도 그렇지 딸래미가 올시간이 됐으면 집에 와야할거 아냐~ 에이씨, 집은 또 왜이렇게 무서운거야”


벌써 십년을 넘게 살아온 집이지만 무서움을 잘타는 연주로서는 혼자있는 이시간이 당연히 맘에 안들 수밖에 없었다. 괜시리 집을 비운 엄마를 향해 누구도 듣지못하는 공간에서 투덜거릴뿐이였다.


뚜르르르르르~ 뚜르르르르르~


“여보세요?”


“금자아줌마, 저 연주에요”


“아, 그래 연주니가 이시간에 왠일이야?”


“엥? 아줌마 우리엄마 거기 없어요?”


“얘는, 호호호 니네엄마가 이시간에 왜 여길있니? 놀다가도 딸래미 올시간되면 불이나케 뛰어가는 사람인데 안그래?”


“아 알았어요. 안녕히계세요”


아닌게 아니라 우리엄마는 동네에서도 딸사랑으로 유명한 엄마였다.

여기저기서 저정도면 병이라고 할정도로 나에 대해서 만큼은 지독히도 철저하게 보호심을 발휘하는 엄마를 볼때마다 남편이 없는 스트레스를 나한테 푸는거라고 생각하며 커왔다.


티비를 켜서 대충 아무채널이나 돌려놓고 주방으로 들어가 먹을것이 없는지 냉장고를 열었다. 다행이 먹다남은 반찬과 밥으로 한없이 허기지는 배고픔을 달래고 물잔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아우~ 엄마는 왜이렇게 늦는거야 진짜! 짜증나 죽겠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연주의 마음한켠에선 심한 경고음이 울리고있었다.

열일곱 평생에 이렇게 늦은시간까지 연주를 내버려두는 엄마가 아니였다.

외출했다가 사고라도 난건지 아니면 어디선가에서 딸은 잊은채 신나게 고스톱이라도 치고있던지...수많은 생각이 드는한편, 티비에서 잔인하게 떠들어대고 있는 부녀자납치사건이 다른 생각들을 밀어내고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엄마.......빨리 좀와~ 아씨, 어디서 뭐하는건데 일케 늦는거야~”


괜시리 짜증을 내며 쿠션을 집어던지고 아까부터 살살아파오기 시작한 배를 움켜잡고 화장실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어라?’


화장실에서 위를 자극하는 이상한 냄새가 풍겨나왔다.

뒷목에 자리잡고 있는 솜털들이 모두 날을 새우고 일어서는듯했다.

더 이상을 발을 옮길 용기가 나질않아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스위치를 켰다.

질끈 감은 두눈이 떨어지질 않았다. 다만, 코를 통해 비릿하게 풍기는 역겨운 냄새가 비위를 자극하는 통에 화장실문을 쎄게 닫아버렸다.


굳게 닫혀진 화장실문을 노려보며 심호흡을 크게 하는 연주의 얼굴에 비장함이 서렸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 하얀 뼈마디가 들어나도록 힘을 주어 비틀었다.

문을 열어 화장실안을 본 연주는 다시금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석고상마냥 굳어져 움직일수가 없었다.


뿌연 수증기가 아직도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욕조에선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욕조를 타고 흘러나온 물들이 한줄기로 모여 하수구로 흘러들어가는 모양을 한동안 멍하니 보고있었다.


“훌쩍...훌쩍....흐흐흑....어 엄마”


아기들이 보채는듯한 훌쩍임에 이어 점점 커지는 흐느낌소리가 내입에서 흘러나왔다. 한발 한발 엄마를 향해 다다갔지만 엄마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만, 발을 서서히 적셔오는 따뜻한 물의 감촉이 느껴질뿐이였다.


“엄마? 어 엄마...........흡”


더 이상 소리를 낼수가 없었다. 내 목에서 뭔가가 올라오려했다. 소리를 냈다간 모든 것을 쏟아낼것만 같아서 더 이상은 울음소리조차 낼수가 없었다.

자꾸만 발을 적셔오던 물이 이젠 내 다리를 타고 스타킹을 물들이고 있었다.

발을 응시하던 시선이 어느새 시뻘건 색으로 변해버린 물줄기를 재차 확인을 하듯 흐름을 쫓고있었다.


욕실 천장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엄마를 향해 무릎을 꿇고 진득하게 늘어붙어 떼어지지않을 것 같은 엄마의 손목을 물을 적셔 닦아냈다.

한번....또 한번....그리고 다시 한번.....완전히 말라버린줄만 알았던 엄마의 하얀 손목에선 또다시 시뻘건 끈적한 무언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져갔다. 엄마의 손을 잡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차츰 차츰 슬픔이 고개를 들어갔다. 허리까지 적셔오는 따스한 엄마의 피조차도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엄마.....왜그랬어? 내가 뭐 잘못했어?”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몇 개의 단어가 내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엄마가 알아들을수 있을까? 엄마가 많이 아플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어 엄마 병원가자, 주사도 맞고 약먹으면 나을거야! 가 가자....흐흐흑 흑흑 가자니까? 엄마 좀 일어나봐 우아아앙~”


좀처럼 이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창백한 엄마의 얼굴이 많이 아파보여 병원으로 가자고 잡아끌었지만 반응이 없었다.

이마를 짚어보니 열도 없었다. 평소보다 많이 차가워진 체온이 거슬리긴 했지만 별일 없을거란 생각에 애써 걱정을 밀어냈다.


진열장을 열어 마른수건을 한 장 꺼내 손을닦고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119를 누르는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뚜르르르르 뚜르르르르르


“119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저 저기, 엄마가 많이 아프세요.”


“어디가 아프신지 자세히 말해주세요”


“저기, 그게 엄마가....................마 많이.........큭 흐흐흐흑”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에 이제야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욕조에 흥건했던 일렁이는 피들........욕조를 타고 흐르던 선명한 붉은줄기들...

멍해진 빛을 투과시키지 못하는 탁한 눈동자.....소름이 끼칠정도로 차가워진 엄마의 몸.....이런것들이 이제야 이해가 되기시작했다.


무슨말을 했는지 어떻게 설명을 했는지도 자각하지 못한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내가 걸어나온 발자국을 따라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몸에서 떨어져 내린 물방울들이 길다란 흔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몇초의 시간동안 그 흔적들은 말라붙어 비릿한 자국을 찍어냈다.


욕실의 문턱을 넘어 움직이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몸을 질질끌어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 아니지? 아니지? 아닌거지? 이건........아닐거야 그렇지?”


대답없는 엄마를 욕조에서 끌어낼생각도 하지못한채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소리없는 작은물줄기만 노려보았다. 그것이 이모든일에 원흉인것마냥.....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두드리며 소리치는 사람들, 어두운 밤을 번쩍이며 빛내고 있는 깜빡이는 불들, 평화로운 저녁시간을 망친일이 무엇인가 나와본 호기심에 찬 사람들의 웅성거림들,

그 모든 것이 멀게만 느껴졌다.

휘적휘적 일어나 굳게 잠궜던 현관문을 따자 언듯보기에 구급대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쏟아져들어왔다. 그사람들은 날 한번 훑어보더니 정신없이 집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밖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들어온 금자아줌마가 내몸에서 떨어지는 흐릿해진 핏물을 보더니 대경실색하며 날 잡고 흔들었다.


“연주야! 연주야! 얘, 정신좀차려.....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엉?”


“..........................”


“얘가 왜이렇게 넋이 나간거야? 연주야!”


금자아줌마의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귀찮게 느껴졌다. 안쪽을 기웃거리며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도 날 향한 것이 아닌 듯 무신경해졌다.

그러다 갑자기 모든소리가 일순간 정지했다.


“아이구, 도 도대체..........이게”


날잡고 있던 금자아줌마의 손에 힘이 스르륵 빠져나가며 그 자리에 소리를 내며 털썩 주저앉으셨다. 아마도 내가 본 것을 본거겠지.

잠시동안의 고요뒤에 여기저기서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흐느낌소리 궁금함을 참지못하는 사람들이 집요한 질문소리가 내 귀를 덮어버렸다.


날 흔들어대는 사람들..........그리고 새하얀 천에 덮여 미동조차 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그뒤에 찾아온........의식 저편에 세계에서 손짓하는 유혹을 뿌리칠수 없었다.


“아이구~ 아이구~ 연주 엄마야~ 어어어어엉~~~~”


대성통곡을 하시는 금자아줌마의 크나 큰 울부짖음이 어느새 귓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곤 차츰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내의식을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아악~ 연주야~ 연주야~ 아이구우~ 이어린 것을 두고......흐흐흐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