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사병으로 고통받은 이탈리아

0002020.12.23
조회60
저주받은 이탈리아

1347년 10월 초 흑사병이 시칠리아에 도착하고 석 달 뒤에 이탈리아 본토에 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12척의 제노바 겔리선에 의해 메시나 항에 전염병이 유입되었다고 한다. 이 배는 몇개월 전 크림 지방에서 출발했음이 분명하다. 며칠 후 페스트는 도시를 완전히 휩쓸었다. 시민들은 방어할 수 없는 재난의 짐을 가져온 선원들을 항구에서 몰아냈다. 선원들은 떠다니면서 흑사병은 지중해로 퍼지게 되었다. 재난을 수습하려던 공무원들이 피해를 당했고 멀리 남부 들판이나 포도원으로 피신 안전을 도모하려다 페스트는 시골까지 퍼졌다.

성수(聖水)도 성모(聖母)의 성상(聖像)도 소용이 없는 막막한 현실(現實)


메시나 인들은 카타니아의 대주교에게 성 애거서의 유해를 메시나로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카타니아인들의 반발도 거셌다. 대 주교는 유해의 일부를 물에 적시고 그 물을 메시나로 가져가겠다고 해서 중재를 했다. 대주교는 성수(聖水)를 들고 메시나에 도착했다. 도시는 개들이 시신을 훼손하고 있었다. 대주교가 원(願)했고 여론도 그러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연도(煉禱)를 외우며 시를 돌았는데 메시나 인들은 무시무시한 환영(幻影)에 시달리고 공포(恐怖)에 압도(壓倒) 됐다. 중세인들은 무서울 정도로 깊은 무지와 미신(迷信)을 기저(基底)에 깔고 있는 지식이라는 얇은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셈이었다. 성 애거서의 유해에 실망한 메시나 사람들은 대단한 능력이 있다고 알려진 동정녀 성상이 있는 성전까지 6마일을 맨발로 달려가 모셔왔지만 결국 소용이 없었다. 용감한 대주교는 메시나에서 돌아온 후 병에 걸려 카타니아 대성당(大聖堂)에 안치(安置)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