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05학번 드디어 졸업합니다

0520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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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모 쓰는데 16년이 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중학생 시절부터 가세가 기울었고

고1 되던 해 집은 경매로 넘어갔어요.

네 식구가 반지하로 이사갔는데 가계빚은 무섭게 늘더라고요.

급식비 미납으로 부모님께 짜증이 늘고

집에 동생과 있으면 빚쟁이들이 찾아와서 없는 척 숨어 지내고

돈 쓰는 일이 있을 땐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힘들었어요.

하지만 제일 힘들었던 건 현실에 적응 못하고 부정하던 엄마의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예전의 씀씀이를 유지하니 빚이 줄기는 커녕 계속 계속 느는 것 같더라고요.

대학에 들어가긴 했는데 등록금 때문에 결국 한 학기만 다니고 휴학했네요.

휴학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았어요.

그런데 우리집이 힘드니 내가 모은 돈은 생활비가 되더라고요.



그날도 아르바이트 중 이었어요.

퇴근준비를 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고

받아보니 경찰서입니다.

대부업체에서 나를 사기로 고소했으니 경찰서로 나오라는 전화..


무슨 일인지 알게 된건 엄마를 통해서였어요.

내가 미성년 탈출 하자마자 내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하고

여기저기서 또 돈을 빌린거죠

엄마랑 아빠는 신용불량자라서 내 도움이 필요했어요.

처음에는 거절 할 수 없어서 몇 번 서명을 했지만

엄마의 비현실적인 경제관념을 잘 알아서 나중에는 거절했어요.

자꾸 거절하니 엄마랑 싸우게 되고 골은 깊어져 갔고요.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부끄러워 혼자 찾아간 경찰서 앞에서

얼마나 떨었는지 얼마나 서러웠는지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 시기에 남자친구로부터 프로포즈를 받았어요.

미국 사람이었는데 결혼해서 같이 가고 싶다고..


그 사람을 많이 사랑했고 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그리고 새 출발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스물 두살이 되던 해에 미국으로 오게 되었어요.

아직 어린 내 동생 혼자 버리고 오는 것 같아 마음 아팠지만

내가 살아야 동생도 산다고 생각했어요.



미국땅을 내려보던 비행기 속 창밖 풍경이 아직도 생생해요.

새 땅 이구나, 새 출발 이구나, 새로운 인생이구나.


아무런 준비도 연고도 없이 남편 따라서 몸만 딸랑 왔으니

미국에서 이민자로서의 삶은 또 다른 도전과 모험의 연속 이었어요



영어도 배워야지, 친구도 사귀어야지, 내 앞가림도 해야지..


동네 컬리지에서 외국인을 위한 영어 수업부터 시작했어요



미국 오고 몇 년 후 별거/이혼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투잡 뛰었네요.

누구는 이혼하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저는 돌아갈 곳이 없었어요.

남의 나라 이 땅이 내 삶을 꾸릴 곳이라 생각하니 아찔 하더라고요.



너무 바쁜 학기는 쉬기도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학교에 다녔어요.

이 곳 전문대는 학비가 저렴해서 부담 스럽지 않았고

공부가 재미있었거든요.



ESL 영어 코스를 끝내고

전공 수업을 들은 첫 학기에 은인 같은 분을 만나게 돼요.

학과장님이 가르치던 수업이었는데

첫 수업에서 제일 높은 점수를 받았어요.

영어도 잘 못 하는 내가 제일 높은 점수를 받았다니

믿어지지 않았고 너무너무 좋았어요.

그 성취감 그 만족감 그 자부심!



시험지를 돌려주면서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본인 사무실에서 봉사활동 하고 싶으면 말하라고..

(교수님은 학교 학과장 + 동네에서 저명한 유언/상속 변호사 + 퇴역 장교)


봉사활동 하러 찾아갔고

두달 후에 정식으로 채용되었어요.



주변에서 잘한다고 칭찬해주니 더 잘 하고 싶었어요.

돈은 많이 없었지만 한국에서의 삶보다 맛있었어요.



재밌어서 열심히 했고 로스쿨도 꿈 꾸면서 공부했어요.

그렇게 저는 장학금도 받고 1등으로 졸업했습니다.



허나 언어의 장벽은 쉽지 않았어요.

의뢰인 말도 잘 못 알아들을 때가 있는데

내가 미국 사람들 변호를 어떻게 한다고...

로스쿨을 포기했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 먹어요.

한국에서 교직 이수를 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는데

미국에서는 감히 생각도 못 했던 커리어였죠.


그런데 전문대도 졸업하고 이런 저런 경험이 쌓이니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전문대에서 다시 1년동안 필요한 수업 듣고

시험과 인터뷰 후 드디어 4년제 대학교에 2015년 편입 합니다


이제 2년만 더 공부하면 졸업하고 임용고시 보면 되는건데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를 만나 지옥같은 이별을 겪게 됩니다.

겨우 남자 때문에 그 딴 새끼 하나 때문에 나는 무너졌고

결국 도망치듯 멀리 멀리 이사를 합니다.



2016년 새로운 주에 정착.

주가 바뀌었으니 일단 대학은 보류 (학비가 너무 비싸요)

부랴부랴 취직하고 나를 추스려 갔습니다.



안정을 찾으니 학교 생각이 다시 나더라고요.

그렇게 작년에 다시 편입을 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해왔던 성적 덕분에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이제 마지막 남기를 남겨두고 있어요.

졸업 신청도 끝났고

오늘 교재도 다 주문 했는데 뭔가 기분이 오묘하네요.


가끔 초조하기도 하고

서른 넘어서 학사모 쓰는게 부끄럽기도 했는데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내가 기특해요


지난 달에는 대학원 원서도 냈어요.

따악 석사까지만 더 공부 하려고요.



모두의 시계는 다르게 흘러간다고 하죠?

스물 두살에 이민가서 서른 중반에 대학 졸업하는 아줌마도 있어요



누군가에겐 아무것 도 아닐 종이 한 장 이겠지만

나에게는 미국 이민생활 12년이 압축된 자랑스런 청춘이에요.



글이 두서가 없는 것 같은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