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의 이별

황기주2021.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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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6월말쯤 아버지께서 다발성 골수종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

그때 당시에 나는 군 복무중이었고 훈련갔다가 폰을받고 나서 엄마에게 전화를 받아서

알게 되었다 그당시 선임들도 있었지만서도 생활관 안에서 펑펑 울었었다.

그렇게 휴가를 나와서 아버지 병원에 갔다 많이 편찮으신 아버지의 모습,

내 남동생과 여동생 2명은 아직 모르는 상태,

장남인 나는, 이제 어떡해야할까 라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그래도 서울 병원이로 이송 해서 자가이식으로 많이 호전되셨다.

2020년 아버지가 항암치료를 주기적으로 받으면서 퇴원을 하셨다.

정말 다행이다. 라는 생각과 엄마와 나는 아빠의 면연력을 조심하면서 아빠의 더 나은

호전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며 2주에 한번씩 서울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아버지는 서울을 왔다갔다 하시고 나는 군 전역을 하고 가게에 직원으로 채용이 되어

일을하면서 평화로운 날을 보내며 다같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일이 바뻐 저녁에 일어나 아침에 퇴근해 쉬지않고 일을 하느라 가족과의 가까운 시간을 자주 가지지 못했다.

내 생일 전날 나는 생일 기념에서 일을 쉴 타이밍을 맞추게 되었고 간만에 휴식이라 편하게 쉴생각이었다.2020년 12월9일 생일전날, 아침7시에 평소와 같이 아버지는 일어나셔서 아침뉴스를 보셔야하는데 일어나지 않으셨다. 엄마가 안방에 들어가 아버지를 보니 많이 아파하셨다. 열을재니 39도 이렇게 나오니 당장에 보이는건 코로나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기때문에 근처 응급실로 급하게 나갔다. 차를 주차하고 아버지를 부축하며 응급실을 가던중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급하게 격리실로 이송하였다.이송뒤 검사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고,아빠는 머리가 아프다는 말밖에 하지 않아했다.코로나가 아니라는 결과와 함께 폐렴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다발성 골수종 혈액암 이 면연력을 낮추는 병이기에 감염이 위험한 병인데, 폐렴이라니,,

항생제 치료와 함께 아버지 바이탈은 급격하게 떨어졌고 내가 막막함에 하나 피러 갔다온사이에 아버지 정지가 왔다 급하게 응급실에서는 cpr을 진행하였고 나는 드라마에서만 보던 장면에 너무 놀라 엄마에게 전화해 '아빠 심정지 왔다 빨리 병원으로 와라'(격리실이라 엄마는 다시 서울 병원으로 올라갈 준비를 하고있었다.) 급하게 병원으로 온 엄마 다행이 맥박은 다시 뛰지만 의식을 잃으셨다 그렇게 인공호흡기에 의존한체 지금 상태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는 의사의 말과 함께 하루를밤새며 음압격리실에 있는 아버지를 창문너머로 회복이 되기많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원래 항암치료를 하던 서울병원에서 전원 가능 하다는 말과 함께 인공호흡기를 준비해, 몇일뒤 서울로 올라갔다. 다행이 폐렴은 많이 호전된 상황이라고 한다. 그렇게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가진채로 잘 치료해달라.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혈액암이 아빠의 몸을 계속 괴롭혔다. 의식은 돌아오지 않으시고, 오랜기간 동안 삽관한 기관 튜브때문에 목이부어 기관절개로 변경, 열은 계속올라 배양검사 실시, 결과 2021년 1월10일 패혈증 진단을 받았고 이통해 항생제와 24시간제 투석을 이용해 치료를 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의 컨디션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아 이번주가 고비라고 하였다.

2020년 1월 11일 서울에서 대기하고있던 나에게 주보호자 내과 중환자실 담당 의사님 면담과 혈액내과 교수님 면담을 잡아주셨다.오후5시 교수님과 면담을 했다. 교수님께서는 이제는 보내주셔야 하는게 맞다고 하셨다. 환자의 컨디션이 너무 좋지않아. 항암치료는 할수 없는 상태고 지금 상태에서는 할수있는게 없다라고 하셨다. 이제는 가족들이랑 남은시간 같이 보내라고 하셨다. 나는 너무 절망적이었고, 너무 많은 생각에 넋을 놨다.

2021년 1월 12일 항생제가 말을 들어 열이 내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불행중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안도하며 서울에서 대기를 하고있었다.

2021년 1월 14일.방금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폐경색 까지 왔다는 것이다. 혈소판 수치가 낮아 지금 약물치료가 안되는 상태이다 이렇게 악화가 되면 이번주가 고비라고 말을 하시며 코로나때문에 면회가 안되던 시국에 직계가족 우리동생들 엄마와 함께 면회를 하게 해준다고 하는것이었다.

 

지금나는 이런글을쓰고있다.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고싶은걸까.

아버지와의 이별, 받아들이기 힘들다. 모두 그럴것이다.

23살인 나와 이제 고등학교 졸업하는 남동생 고2인 여동생을 두고 보내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원망스럽다.

하지만 내자신에게 더 원망 스럽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어버렸다. 내머리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돌고있다. 한평생 나는 후회를 하며 살것이다. 아빠가 할아버지를 그리워 했던 그 모습이, 아버지가 이제는 없는 우리 가족, 아빠가 없는 내동생들, 아직 어린데 어떡하지, 장남이라며 너가 가족을 지켜야지 너가 무너지면 되겠냐는 말이 나에게는 더 고통 스럽다. 나는 할줄 아는게 없다. 내동생들 우리엄마 어떻게 지켜내야 할지, 정신과 약을 먹고 있는 나에게는 더 고통 스럽다 나도 아빠를 잃기는 싫다. 나도 우리 아빠 정말 보고싶다. 울음이 목까지 올라오지만 울면 안된다. 나는 장남이니까,, 내가 우리 가족들 지켜야하기 때문에,

 

한평생 고생 많으셨던 우리 아버지,

어찌 이렇게 고생만 하시다 가시는건지요, 지금의 고통은 얼마나 아프실련지요,

저는 제가 아직 어리다고 생각해요, 아직 아빠에게 어리장을 부리고 싶은 나이에요

아빠를 보내야 한다는 이 손끝이 아직 놓고 싶지가 않네요, 나는 마음을 먹었다 생각을 하는데,

나는 아직 아빠 없으면 안돼, 매일 듣기 귀찮았던, 아빠의 스토리, 왔냐 자기가 더 아픈데 고생많다고 춥지 손시려울텐데라고 말하시는 아빠한테 죄송하네요, 한평생 우리 가족을 위해서 고생하시다가 이렇게 아프게 죽어가는걸 봐야하는 아빠의 아들로서는 정말 지옥의 벌인거 같습니다. 아버지 생신때 선물하나 못해드리고, 결혼 기념일 어버이날 축하드린다고 말밖에 못했던 내가 불효자요, 내가 잘못했어요, 아직 보내고 싶지 않아요, 보고싶어, 아빠, 내가 미안해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배웠던 주도를 이제는 우리 둘째에게도 가르치셔야지요, 같이 술한잔 못하시더라도 우리 가족 같이 있어야지요, 아빠가 그렇게 아끼시던 공주 성인되고 결혼하고 손자 낳는거 까지 보셔야지요 뭐가 그리 급하시다고, 그렇게 고생만 하시다가 벌써 가실려고 하시는 건가요, 아버지의 박힌 못을 내 가슴에 박아두고 저는 한평생 후회할겁니다. 그리고 나는 커서 내 자식에게 아빠의 가르침을 그대로 가르치며 아빠를 그리워 하겠지요, 많이 고생하셨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아빠가 나에게 준 사랑 받기만해서 이 불효자 평생 잊지않고 이 고통 안고 살겠습니다.

이런 불효자를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안아프셨으면 좋겠어요, 다들 똑같이 말하겠지요,

나는 다음 생에도 아빠를 만나고 싶어요, 아빠몫까지 우리가족 내가 잘챙기면서 아빠가 맘편히 있을수 있게 할게요, 이생에 고생 했던 기억들 다 잊으시고 우리 가족 행복했던 기억만 갖고 가시길 바랄게요. 사랑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미안해요 우리아빠.

아빠가 사랑하는 매일부르는 맏상주 첫째 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