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이야기다 실화고 약간의 혐오성과 폭력성 그리고 실화라는 점을 알아두길 바란다. 전편 유치장과 구치소에서 알았듯이 나는 죄가 없다. 이점 알아줬음 한다
나는 대전소년원에 처음 들어갔을땐 모든게 새로웠다. 구치소의 수번이 아니라 이름으로 된 명찰을 지급받았기 때문이다.
난 신입으로 온거라 처음에 소년원 피복으로 갈아입고 신입 교육을 들었다. 신입생 분류심사 하는 선생님이 여기서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만 살면 나간다고 했다. 생활하는게 다 기록이 되기 때문에 최대한 아무런 기록이 없는게 가장 유리하다고 했다.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이었다. 좀만 더 버티면 다시 사회에 나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때는 5월11일이였다. 신입생 교육을 마치자마자 소방훈련에 들어갔다.
위탁생 애들 전부 다 소방교육을 하러 건물 밖으로 나갔다.
유난히 풀이 많아서 그런가 날파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소방훈련을 마치고 신입이 오면 몇일간 1방 2방 3방을 쓴다
나는 3방에서 생활을 했다. 방에 들어오니 개인 책상? 비슷한게 있었다 방의 크기는 사람 10명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었다.
첫날엔 혼자 썼었다.소년원에선 감성일기라는 일기장을 나눠주는데 하루에 하나씩은 꼭 썼던 것 같다.
일과를 마치고 밥을 먹고 ..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삼일째 되는 날인가 신입이 들어왔다 같은방을 썼는데
나이는 나보다 두살 많았다 . 근데 얘기를 들어보니 생활 즉 건달생활을 하다가 들어왔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생활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 사실 나는 건달 이런건 영화에서나 봤었다 나이가 많은.. 사람 패고 죽이는 그런 건달인 줄 알았었는데 나이가 너무 어려서 오히려 놀랐다.
그뒤에 대전이나 공주에서도 생활 하다가 온 사람들ㅇ 많았다 온몸에 전신문신이 있고 참으로 뭐랄까.. 안타까웠다
난 시간이 지나서 본방에 배치가 되었다 4호실로 가게 되었다. 나 포함해서 4명이 방을 썼다. 일과를 마치고 호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
한놈은 나보다 어린 애였는데 형들이 시키는건 다 했다. 그래서 형들한텐 아주 이쁨을 받았지만 선생님들은 그렇지 못했다. 하나하나 다 체크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가 변호인 접견이 왔다.
소년재판에서는 변호사가 아니라 보조인이라고 부르더라 .
아무튼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보조인이 나한테 그러더라
이 말이 사실이면 너는 소년보호처분을 받아선 안된다고 .
그나마 내 편이 있는 것 같아서 다행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 동생들 형들도 변호인 접견을 마치고 ..
그렇게 있었다/
참 자세한 생활을 잠깐 하자면 여기도 똑같이 점호가 있다
화장실은 공동화장실이라 선생님한테 허락을 맡고 가야한다 .
화장실엔 CCTV가 달려있다. 폭행을 방지하기 위해 달아놨다고 한다. 다행히 변기가 있는 곳엔 없었다. 소변기가 있는곳만 있었다.
아 그리고 샤워실이 따로 또 있는데 이것도 공동시설이다. 샤워하는 시간이 정해져있고 사람이 많다보니 한사람당 샤워시간은 10분으로 제한되어있다. 샴푸는 겁나게 큰걸 다같이 쓰고 수건이나 비누는 각자 갖고 다닌다.
이얘기는 이쯤 하고 .
소년분류심사원에 있는 사람들은 소수의 인원만 빼고 다 정신 못차렸다. 사회에서 자기가 어땠는지 자랑하는 사람도 있었고 범죄를 대단한거마냥 자랑하던 친구도 있었다.
선생님한테 대드는 친구도 있었고 . 남을 괴롭히던 사람도 있었다. 다 잘못해서 들어온 판국에 남을 괴롭히고
나이는 98부터 03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반성하는 사람은 극 소수였다.
참고로 여기엔 생청이라는 게 있는데 생활관 청소를 줄인 말이다.
그걸 하면 선생들이 좋게 써주니 너나나나 할거없이 다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전에 하던 생청이 다음 누군갈 지목해야지 할 수 있어서 거의 사람들은 생청한테 소위 똥꼬를 많이 빨아재꼈다.
세상에 미친놈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기 위해 본 모습을 가리고 가식적으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덧 재판날인 5월 30일이 되었다. 청주에서 재판을 봤는데 . 난 이날 나갈 줄 알았다.
재판장 안에서 수갑을 차고 내 순서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왠걸 마약으로 뒤집어 씌웠던 놈이 같은 재판장에 있었다 ㅋ 그 친구는 먼저 재판을 봤는데 10호처분을 받은 상태였다. 울고있더라 .
재판장 안에서 들려오는 판결소리.. 10호처분 3명에 9호 4명. 6호가 2명 그리고 1 2 3 4 세트가 6명이었다.
얼마나 끔찍했으면 아직도 그 인원을 기억한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서 들어갔다. 재판장엔 아빠가 옆에 앉았다. 술냄새가 심하게 났다.
그때의 대화 내용을 서술하겠다 전부 기억나거든.
판사 " ㅇㅇㅇ 학생 처음 비행을 저지른 것 치곤 범죄의 양이 상당이 커요 할말 있나요?"
나 "저는 그간 형사재판을 받아오면서 잘못이 없음을 어필하려고 했습니다 . 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판사" 학생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건가요? 아직 반성을 덜했구만 .. "
그 이후에 판사가 보조인한테 할말 있음 하라고 했다.
"이 학생은 심사원 내에서도 열심히 생활하고 반성을 하며
어떤 잘못이 있더라도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뭔 개떡같은 소리야 잘못이 없다니까?
판사가 우리 아빠한테 물었다.
"아들이 왜 이렇게 비행의 늪으로 빠진건가요? 왜 보호를 제대로 안해주신거죠?"
아빠는 술에 쩔은 상태로 대답을 했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보호의 여부였다.
"우리 아들놈이 못난 탓입니다 저는 아들을 데리고 있기가 너무 힘듭니다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
망했다. 난 잘못이 없는데 왜 못난 놈이 되었는가?
판사가 마지막으로 할말이 없냐고 물었다
난 잘못한게 없고 결백하다고 말했다 . 죄송할게 있어야 죄송하다고 말을 할 거다 . 라고 했다.
"처분하겠습니다. ㅇㅇㅇ 학생은 10호처분을 받을거에요. 일주일 이내에 항고할 수 있습니다" 그 뒤에 내용은 기억이 안난다 .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원망의 눈으로 아빠를 쳐다봤다. 나보고 미안하다고 하더라.
몸의 힘이 빠지고 초점은 풀린채로 다시 수갑을 차고 들어왔다 .
대체 왜? 이유가 뭐야? 나는 잘못이 없고 결백하다는 걸 알리고 싶었는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거기서 위로를 해준건 선생님들 뿐이었다. 항고를 꼭 해야 한다고 .
정말 인생이 다 무너진 기분이었다. 17살이라는 나이에 2년이란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같혀있는 상태로 . 눈물이 났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는 절망감 내 편일줄 알았던 아빠마저 키우기 힘들다고 했다.
정작 그 범죄의 범인들은 잘 살고 있다 한명 빼고.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온건가? 내가 뭘 잘못했다고?
착하게 살았다는 이유로 이렇게 호구가 되는 건가?
결국 나는 10호 처분을 받게 되었고 . 소년원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유치장,구치소,소년원,경험담실화 소년원 1편
나는 대전소년원에 처음 들어갔을땐 모든게 새로웠다. 구치소의 수번이 아니라 이름으로 된 명찰을 지급받았기 때문이다.
난 신입으로 온거라 처음에 소년원 피복으로 갈아입고 신입 교육을 들었다. 신입생 분류심사 하는 선생님이 여기서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만 살면 나간다고 했다. 생활하는게 다 기록이 되기 때문에 최대한 아무런 기록이 없는게 가장 유리하다고 했다.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이었다. 좀만 더 버티면 다시 사회에 나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때는 5월11일이였다. 신입생 교육을 마치자마자 소방훈련에 들어갔다.
위탁생 애들 전부 다 소방교육을 하러 건물 밖으로 나갔다.
유난히 풀이 많아서 그런가 날파리가 장난이 아니었다.
소방훈련을 마치고 신입이 오면 몇일간 1방 2방 3방을 쓴다
나는 3방에서 생활을 했다. 방에 들어오니 개인 책상? 비슷한게 있었다 방의 크기는 사람 10명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었다.
첫날엔 혼자 썼었다.소년원에선 감성일기라는 일기장을 나눠주는데 하루에 하나씩은 꼭 썼던 것 같다.
일과를 마치고 밥을 먹고 ..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삼일째 되는 날인가 신입이 들어왔다 같은방을 썼는데
나이는 나보다 두살 많았다 . 근데 얘기를 들어보니 생활 즉 건달생활을 하다가 들어왔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생활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 사실 나는 건달 이런건 영화에서나 봤었다 나이가 많은.. 사람 패고 죽이는 그런 건달인 줄 알았었는데 나이가 너무 어려서 오히려 놀랐다.
그뒤에 대전이나 공주에서도 생활 하다가 온 사람들ㅇ 많았다 온몸에 전신문신이 있고 참으로 뭐랄까.. 안타까웠다
난 시간이 지나서 본방에 배치가 되었다 4호실로 가게 되었다. 나 포함해서 4명이 방을 썼다. 일과를 마치고 호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
한놈은 나보다 어린 애였는데 형들이 시키는건 다 했다. 그래서 형들한텐 아주 이쁨을 받았지만 선생님들은 그렇지 못했다. 하나하나 다 체크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가 변호인 접견이 왔다.
소년재판에서는 변호사가 아니라 보조인이라고 부르더라 .
아무튼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보조인이 나한테 그러더라
이 말이 사실이면 너는 소년보호처분을 받아선 안된다고 .
그나마 내 편이 있는 것 같아서 다행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 동생들 형들도 변호인 접견을 마치고 ..
그렇게 있었다/
참 자세한 생활을 잠깐 하자면 여기도 똑같이 점호가 있다
화장실은 공동화장실이라 선생님한테 허락을 맡고 가야한다 .
화장실엔 CCTV가 달려있다. 폭행을 방지하기 위해 달아놨다고 한다. 다행히 변기가 있는 곳엔 없었다. 소변기가 있는곳만 있었다.
아 그리고 샤워실이 따로 또 있는데 이것도 공동시설이다. 샤워하는 시간이 정해져있고 사람이 많다보니 한사람당 샤워시간은 10분으로 제한되어있다. 샴푸는 겁나게 큰걸 다같이 쓰고 수건이나 비누는 각자 갖고 다닌다.
이얘기는 이쯤 하고 .
소년분류심사원에 있는 사람들은 소수의 인원만 빼고 다 정신 못차렸다. 사회에서 자기가 어땠는지 자랑하는 사람도 있었고 범죄를 대단한거마냥 자랑하던 친구도 있었다.
선생님한테 대드는 친구도 있었고 . 남을 괴롭히던 사람도 있었다. 다 잘못해서 들어온 판국에 남을 괴롭히고
나이는 98부터 03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반성하는 사람은 극 소수였다.
참고로 여기엔 생청이라는 게 있는데 생활관 청소를 줄인 말이다.
그걸 하면 선생들이 좋게 써주니 너나나나 할거없이 다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전에 하던 생청이 다음 누군갈 지목해야지 할 수 있어서 거의 사람들은 생청한테 소위 똥꼬를 많이 빨아재꼈다.
세상에 미친놈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기 위해 본 모습을 가리고 가식적으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덧 재판날인 5월 30일이 되었다. 청주에서 재판을 봤는데 . 난 이날 나갈 줄 알았다.
재판장 안에서 수갑을 차고 내 순서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왠걸 마약으로 뒤집어 씌웠던 놈이 같은 재판장에 있었다 ㅋ 그 친구는 먼저 재판을 봤는데 10호처분을 받은 상태였다. 울고있더라 .
재판장 안에서 들려오는 판결소리.. 10호처분 3명에 9호 4명. 6호가 2명 그리고 1 2 3 4 세트가 6명이었다.
얼마나 끔찍했으면 아직도 그 인원을 기억한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서 들어갔다. 재판장엔 아빠가 옆에 앉았다. 술냄새가 심하게 났다.
그때의 대화 내용을 서술하겠다 전부 기억나거든.
판사 " ㅇㅇㅇ 학생 처음 비행을 저지른 것 치곤 범죄의 양이 상당이 커요 할말 있나요?"
나 "저는 그간 형사재판을 받아오면서 잘못이 없음을 어필하려고 했습니다 . 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판사" 학생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건가요? 아직 반성을 덜했구만 .. "
그 이후에 판사가 보조인한테 할말 있음 하라고 했다.
"이 학생은 심사원 내에서도 열심히 생활하고 반성을 하며
어떤 잘못이 있더라도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뭔 개떡같은 소리야 잘못이 없다니까?
판사가 우리 아빠한테 물었다.
"아들이 왜 이렇게 비행의 늪으로 빠진건가요? 왜 보호를 제대로 안해주신거죠?"
아빠는 술에 쩔은 상태로 대답을 했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보호의 여부였다.
"우리 아들놈이 못난 탓입니다 저는 아들을 데리고 있기가 너무 힘듭니다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
망했다. 난 잘못이 없는데 왜 못난 놈이 되었는가?
판사가 마지막으로 할말이 없냐고 물었다
난 잘못한게 없고 결백하다고 말했다 . 죄송할게 있어야 죄송하다고 말을 할 거다 . 라고 했다.
"처분하겠습니다. ㅇㅇㅇ 학생은 10호처분을 받을거에요. 일주일 이내에 항고할 수 있습니다" 그 뒤에 내용은 기억이 안난다 .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원망의 눈으로 아빠를 쳐다봤다. 나보고 미안하다고 하더라.
몸의 힘이 빠지고 초점은 풀린채로 다시 수갑을 차고 들어왔다 .
대체 왜? 이유가 뭐야? 나는 잘못이 없고 결백하다는 걸 알리고 싶었는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거기서 위로를 해준건 선생님들 뿐이었다. 항고를 꼭 해야 한다고 .
정말 인생이 다 무너진 기분이었다. 17살이라는 나이에 2년이란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같혀있는 상태로 . 눈물이 났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는 절망감 내 편일줄 알았던 아빠마저 키우기 힘들다고 했다.
정작 그 범죄의 범인들은 잘 살고 있다 한명 빼고.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온건가? 내가 뭘 잘못했다고?
착하게 살았다는 이유로 이렇게 호구가 되는 건가?
결국 나는 10호 처분을 받게 되었고 . 소년원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