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가 만든 빚을 다 떠안고 있는데 며칠 전부터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타셨네. 아하하...
오늘 해결을 못하더라도 어떻게 됐는지 제발 말 한마디 해달라는 부탁이 그렇게 어려운걸까. 제일 죽고 싶고 미칠 것 같고 피가 마르는건 난데, 안됐으면 안될 것 같다고 말이라도 들으면 이해하고 기다릴수나 있지 그냥 연락을 안해버리면 난 무슨 심정과 마음으로 버티고 기다려야 할까? 다른 거래처 사람들 전화마냥 일부러 안받고 연락도 안해버리면 아무것도 모르는 난 도대체 어떻게 해야돼?
팔자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이건 너무한 것 같아. 진짜 죽고 싶다.
어떻된 된 삶인지 쭉 설명을 해볼게.
원래 우리 아부지는 수영장 제조업을 하셨어. 오랜 시간 공장을 하셨는데 내가 집에서 말도 안듣고 공부도 못했고 앞날이 안보이니까 아부지가 같이 일하면서 일 배워서 물려받으라고 해서 대학교도 자퇴하고 같이 일을 했어. 그런데 그게 지옥길인줄 몰랐었지.
계속되는 메르스, 촛불혁명, 세월호, 코로나 등등의 사건들로 여름마다 사회적으로 놀면 안되는 분위기가 매년 있었고 그래서 아빠 회사엔 점점 빚이 쌓여갔어. 그런데 그게 그냥 빚이 아니야. 아부지는 어떤 책임감으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세금을 안내셨어. 그래서 회사 세금이 1억 3천인데 그게 다 나한테 떨어졌어. 아빠가 이미 빚이 쌓이고 신용불량되고 그래서 내 명의로 회사대표 이름을 해놓으셨거든. 그리고 엄마 돈도 엄청 끌어다쓰고 엄마 이름으로도 세금 빚을 엄청 만들어놓으셨어. 심지어 지금 아빠가 쓰고 있는 카드도 내 명의 카드야.
놀고싶은것 하고싶은것 다 포기하고 아빠 말 한마디 믿고 20대 청춘 다바쳐서 일했어. 혼자 주변에 논밭만 있는 깡촌의 공장에서 친구없어 일만하며 썩었는데. 잘 안되어서 힘들다고 내 명의 쓰자고 할 때, 내 명의로는 절대로 빚 안만들고 아무걱정 없게 한다고 꼭 지켜준다고 다짐하고 약속햇던게 상황이라는게 따라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던 건 이해해. 그런데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하는거지?
내가 나이가 28살인데 아무 경력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고, 개인회생이나 파산도 안되는 국세 빚이 1억3천에 사업빚 소송까지 당하고 내 카드는 죄다 연체에 독촉에 하나둘씩 압류되고 있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만약에 매달 월300을 번다고 하여도 원금은 커녕 이자만 내기도 벅찬 수준이야.
내 20년, 30년 미래의 삶은 이미 망가졌고 아무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나중에 조그만 월셋방 얻을 보증금이라도 대출받을 수 있게 작은 돈 대출조차 받을 수 없고, 사업빚 뿐 아니라 국세가 엮여있어 틈틈히 압류가 들어올 것이라서 국세 소멸시효도 끝없이 연장되는 상황이라 떼어낼 수 없는 족쇄가 됐어.
후우 진짜 내가 이렇게까지 절망적인 생각을 하고 매일 울며 힘들어 하고, 그나마 가지던 작은 희망조차 놓아버리고 끝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지경에 온 것이 전부 다 당사자인 나에게 아무 이야기도 안하고 기다리라고 이야기만 하는 탓인데. 왜 그걸 모를까.
내딴엔 국세는 해결못한다 해도 사업빚이라도 어떻게 해보려고 내 앞으로 있는 모든 빚과 줘야될 돈을 알아야지 회생신청을 하는데 도무지 그것조차 말을 안해줘버리면 내가 무슨 방법이 있지?
말을 못하는 이유라던지 왜 하라고 안하는건지 단 한가지도 이야기를 안하고 저번주에 그렇게 사정을 해서 주말에 이야기하겟다 하고 또 아무말없이 지나가고, 남들과 술자리던 식사자리던 아빠가 내야되는 성격이라구 감당도 못할 내 카드로 긁을 때 난 돈한푼없이 친구들도 안만나고 혼자 바람쐬고 산책하고 다닌지가 벌써 오래됐는데,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점점 더 지치고 힘들수록 이번 삶은 실패한 삶이다, 시작도 해보기 전에 꺾이고 부러지고 만 삶이다, 하는 생각만 들어.
그리고 얼마 전에 친형이 살고 있는 서울로 가서 형 집에서 하루 자고왔어.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니까 형이 놀라더라. 우리 형은 음악을 하고 있는데 20살에 서울로 대학을 간 뒤로 정착해서 계속 서울에 살고 있어. 다들 우리 형제는 그날 둘이 밤에 치킨과 술을 놓고 얘기한게 마주보고 처음 얘기를 한 날이였어.
그냥 형이 보고 싶더라. 그리고 형이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어렸을 때 형이 한 말들을 흘려들었던 것도 후회되고 형은 소소하게 여기서 우리 가족과 얽히지 않고 무사히 잘 살았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부탁인데 혹시 이 글을 읽은 사람이 있다면 우리 형 음악 좀 많이 들어줘! 진짜 고군분투하면서 어떻게든 음악활동을 하고있는 것 같아.
우리 형은 같은 집에서 살았지만 나와 완전 반대의 다른 삶을 산 사람이야. 우리 집에 어렸을 때 IMF가 오기 전에 망했는데 IMF 오면서 더 망했었거든. 그때 아빠가 독일에 노동자로 가있었고 엄마는 여기저기 일하러 다녔어. 그리고 나랑 형은 친척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얹혀 살았는데 그러다 고모네 집이 형과 나를 돌봐주고 키워주셨어.
그런 어렸을 때의 기억이 나는 잘 없는데 그날 얘기해보니까 형은 어렸을 때 일들 다 기억하고 있더라고. 집안에 어른들한테도 기억하고 있는거 말 안하고 조용히 있었더라고.
나랑 형은 형이 중학교를 가면서부터 같은 집에서 살지만 얼굴을 볼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 됐어. 형은 어렸을 때 계속 전교 1등을 했거든. 근데 그때가 외고입시열풍이 한창 불때였어서 형은 학원에서도 외고 입시 시킨다고 매일 새벽 2시에 집에 들어와서 6시에 일어나 학교를 가는 생활을 매일 했어. 그러니까 당연히 가족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은 아침밥을 먹는 시간 잠깐 뿐이었어. 부모님에게 특히나 엄마에게 형은 자랑이였지.
그런데 그런 형이 푹 빠져있던 건 음악이였어. 내가 형의 영향을 받은게 유일하게 음악 취향인데 그때 형이 여러 인디밴드들과 해외 록음악에 빠져서 나에게 공유해주곤 했어. 그게 내 음악취향이 되기도 했고. 형은 중학교에서 첫 시험에서부터 1등을 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전부터 이미 음악을 하고 싶어 했어.
반면에 나는 형과 달리 성적은 말할 것도 없고 그냥 공부를 안했어. 학교에서도 다른 애들하고 싸우거나 선생님들하고 싸워서 엄마랑 아부지가 학교에 불려간 적도 많았어. 나는 그때 형하고 비교도 많이 당해서 자격지심도 있었고 반항심도 있었어. 완전히 다른 캐릭터니까 그때 나는 형은 어른들이 다 좋아하는데 나만 싫어한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형은 본인 나름대로 어른들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그날 밤에 같이 얘기하면서 처음 들은 얘긴데 형은 스스로 자기는 우등생이긴 했는데 모범생은 아니었대. 매일 하루에 3시간 정도만 자는 생활을 6년 동안 하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고 했어. 그리고 음악을 하겠다고 얘기하면서 학교 선생님들이나 학원 선생님들, 부모님하고도 트러블이 있었는데 그냥 결국 중간부터는 말을 안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척을 하면서 새벽에 집에 오면 방문을 닫아놓고 몰래 혼자 일렉기타를 쳤대.
어차피 잘 시간 별로 없으니까 아예 안자고 일렉기타는 앰프 안 꽂으면 소리 작아서 모르니까 그렇게 했나봐. 그리고 아침에 학교가서 점심시간까지 그냥 대놓고 잤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공부는 학원가서 하고. 어차피 눈 감는 순간까지 공부를 해야하니까 오전수업때 자도 공부할 시간은 넘쳤다고 해.
그러다가 형은 광명에 있는 진성고를 진학했어. 전교생이 기숙사생활을 하는 공부를 엄청 잘하는 학교였대. 나는 나중에 실업계를 가서 유명한 학굔지는 잘 모르겠는대 그런 것 같았어. 그리고 형은 그 학교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는데 어느 순간 다시 우리 집 근처 학교로 전학을 오더니 혼자 원서를 넣어서 음대 작곡과를 갔어. 고등학교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얘기 안해주는데 나름대로 그 학교에 계속 있으면 음악을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나봐. 나도 그때 놀랐던 건 따로 음악레슨을 받지 않았는데 클래식 음대 작곡과를 가더라고.
그리고 그 이후로 형은 쭉 서울에 살았어. 나는 계속 집에 머물렀고. 그 이후로 형이 어떻게 살았는지 몰랐어. 형은 엄마에게는 간간히 연락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빠한테는 연락을 아예 안했다고 했어. 나는 지방대를 갔다가 아빠가 아빠 회사에서 일하라고 해서 그걸 믿고 들어갔지.
근데 그때 엄마랑 형이 날 말렸어. 두 사람은 아빠가 이런 사람인지 알고 있었던 거야. 이제야 안건데 형은 아빠와 연락을 끊은 건 살기 위해서 일부러였대. 어렸을 때 형은 아빠가 엄마 몰래 집문서들고 돌아다니다가 걸린 것도 다 알고 있었고 아빠가 얼마나 엄마한테 빚을 덤태기 씌웠는지도 알고있었어. 그리고 엄마도 아부지가 형 명의만은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형도 관계를 차단하는게 살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중간에 자기 형의로는 차를 할 수가 없어서 형 명의로 차를 끌고 다녔다고 하더라고. 근데 그때 범칙금이나 과태료를 하나도 안내고 몇 년을 쌓았나봐. 그게 형 명의로 되어있으니까 다 형한테 날아오고 형은 통장 압류된다는 통지를 받고 형이 200만원 가량되는 그 벌금들을 다 냈다고 하더라고. 그 이후로는 다행히 아빠가 형 명의를 쓰는 건 없나봐.
아빠는 내가 아부지 회사에 들어가니까 대학 다 필요없다고 그만두고 나와서 매일 일하라고 했거든. 형과 엄마는 학점은 상관없으니까 졸업장이라도 따랬어. 근데 내가 학교 가기가 싫고 공부하기 싫어서 말을 안듣고 아빠 말을 따랐어. 그게 핑계인거 알면서도. 아빠 회사니까 취업계 내면 된다고 형이 알려줫는데도 아빠는 그걸 처리를 안해줬어. 지금은 그게 너무 후회된다.
형은 서울에 간 뒤에 20살부터 졸업하는 27살까지 하루에 3개씩의 알바를 매일했대. 서울에서는 또 다른 지옥이었대. 그렇게 벌어서 생활비, 월세, 학비 등을 겨우 다 메꾸고 아무리 일해도 단지 살아 숨쉬는 정도의 자격밖에 얻을 수있는게 없었대. 미래를 볼 수 없었다고. 그래서 스무살에 다짐했던게 어차피 무리하면서 살아왔으니까 졸업할때까지만 무리하면서 살자고 다짐했다고 해.
그렇게 졸업을 할때까지 나름대로 계속 연습하고 곡을 쓰고 노력하고 졸업 하고 난 뒤에도 다른 쪽으로 취업을 해서 일을 하면서 음악을 계속 했대. 지하방과 옥탑을 전전하며 버텼고 뜻이 맞는 친구가 생기고 해서 아직까지 음악생활을 하고 있어. 그래도 전보다 점점 커리어가 쌓이고 상황이 나아져가고 잘 지내고 있나봐. 그래도 최근에 드라마ost에 곡을 팔고 점점 뭔가 성취하고 있는 것 같아. 매일매일이 더 기대된다는 모습을 보니까 내가 다 뿌듯하더라. 형이라도 서울에서 평범하게 잘 지냈음 좋겠어.
혹시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있다면 멜론이나 다른 음원사이트들에게 Vlinds 와 오늘의 코믹스라는 팀의 노래를 많이 들어주고 팬맺기 별표랑 곡 좋아요 좀 많이 눌러주길 부탁해. 형이 대학교 동기인 친구와 Vlinds라는 프로듀싱 팀을 하고 있는데 자체 앨범을 계속 내고 있나봐. 그리고 ‘오늘의 코믹스’라는 팀을 따로 하면서 본인만의 음악도 하고 있어.
고군분투는 하고 있는데 뭔가 반응이 많지 않아서 본인 음악을 하는 인디펜던트로서 유통사나 다른 분들의 압박이나 눈치 보이는게 있나봐. 그리고 자기를 믿고 도와주는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다는데 매번 노출되는 것에 실패하고 그러면 친구들을 실망시킨 것 같아서 슬프다고 하더라고.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없어서 안타깝지만 이 글을 읽은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건 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부탁하도록 할게!
이 글을 쓴 오늘 난 아빠 덕분에 신용 불량자가 됐어.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행복한 인생을 잘 살기 바래!
29살에 아빠 때문에 억대 빚지고 인생 망함(+우리 형 좀 도와줘)
나는 이제 29살이고 세종시에서 마스크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
그냥 한참 우울함에 며칠을 보내다가 속풀이 할 겸 글을 남겨.
아부지가 만든 빚을 다 떠안고 있는데 며칠 전부터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타셨네. 아하하...
오늘 해결을 못하더라도 어떻게 됐는지 제발 말 한마디 해달라는 부탁이 그렇게 어려운걸까. 제일 죽고 싶고 미칠 것 같고 피가 마르는건 난데, 안됐으면 안될 것 같다고 말이라도 들으면 이해하고 기다릴수나 있지 그냥 연락을 안해버리면 난 무슨 심정과 마음으로 버티고 기다려야 할까? 다른 거래처 사람들 전화마냥 일부러 안받고 연락도 안해버리면 아무것도 모르는 난 도대체 어떻게 해야돼?
팔자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이건 너무한 것 같아. 진짜 죽고 싶다.
어떻된 된 삶인지 쭉 설명을 해볼게.
원래 우리 아부지는 수영장 제조업을 하셨어. 오랜 시간 공장을 하셨는데 내가 집에서 말도 안듣고 공부도 못했고 앞날이 안보이니까 아부지가 같이 일하면서 일 배워서 물려받으라고 해서 대학교도 자퇴하고 같이 일을 했어. 그런데 그게 지옥길인줄 몰랐었지.
계속되는 메르스, 촛불혁명, 세월호, 코로나 등등의 사건들로 여름마다 사회적으로 놀면 안되는 분위기가 매년 있었고 그래서 아빠 회사엔 점점 빚이 쌓여갔어. 그런데 그게 그냥 빚이 아니야. 아부지는 어떤 책임감으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세금을 안내셨어. 그래서 회사 세금이 1억 3천인데 그게 다 나한테 떨어졌어. 아빠가 이미 빚이 쌓이고 신용불량되고 그래서 내 명의로 회사대표 이름을 해놓으셨거든. 그리고 엄마 돈도 엄청 끌어다쓰고 엄마 이름으로도 세금 빚을 엄청 만들어놓으셨어. 심지어 지금 아빠가 쓰고 있는 카드도 내 명의 카드야.
놀고싶은것 하고싶은것 다 포기하고 아빠 말 한마디 믿고 20대 청춘 다바쳐서 일했어. 혼자 주변에 논밭만 있는 깡촌의 공장에서 친구없어 일만하며 썩었는데. 잘 안되어서 힘들다고 내 명의 쓰자고 할 때, 내 명의로는 절대로 빚 안만들고 아무걱정 없게 한다고 꼭 지켜준다고 다짐하고 약속햇던게 상황이라는게 따라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던 건 이해해. 그런데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하는거지?
내가 나이가 28살인데 아무 경력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고, 개인회생이나 파산도 안되는 국세 빚이 1억3천에 사업빚 소송까지 당하고 내 카드는 죄다 연체에 독촉에 하나둘씩 압류되고 있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만약에 매달 월300을 번다고 하여도 원금은 커녕 이자만 내기도 벅찬 수준이야.
내 20년, 30년 미래의 삶은 이미 망가졌고 아무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나중에 조그만 월셋방 얻을 보증금이라도 대출받을 수 있게 작은 돈 대출조차 받을 수 없고, 사업빚 뿐 아니라 국세가 엮여있어 틈틈히 압류가 들어올 것이라서 국세 소멸시효도 끝없이 연장되는 상황이라 떼어낼 수 없는 족쇄가 됐어.
후우 진짜 내가 이렇게까지 절망적인 생각을 하고 매일 울며 힘들어 하고, 그나마 가지던 작은 희망조차 놓아버리고 끝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지경에 온 것이 전부 다 당사자인 나에게 아무 이야기도 안하고 기다리라고 이야기만 하는 탓인데. 왜 그걸 모를까.
내딴엔 국세는 해결못한다 해도 사업빚이라도 어떻게 해보려고 내 앞으로 있는 모든 빚과 줘야될 돈을 알아야지 회생신청을 하는데 도무지 그것조차 말을 안해줘버리면 내가 무슨 방법이 있지?
말을 못하는 이유라던지 왜 하라고 안하는건지 단 한가지도 이야기를 안하고 저번주에 그렇게 사정을 해서 주말에 이야기하겟다 하고 또 아무말없이 지나가고, 남들과 술자리던 식사자리던 아빠가 내야되는 성격이라구 감당도 못할 내 카드로 긁을 때 난 돈한푼없이 친구들도 안만나고 혼자 바람쐬고 산책하고 다닌지가 벌써 오래됐는데,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점점 더 지치고 힘들수록 이번 삶은 실패한 삶이다, 시작도 해보기 전에 꺾이고 부러지고 만 삶이다, 하는 생각만 들어.
그리고 얼마 전에 친형이 살고 있는 서울로 가서 형 집에서 하루 자고왔어.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니까 형이 놀라더라. 우리 형은 음악을 하고 있는데 20살에 서울로 대학을 간 뒤로 정착해서 계속 서울에 살고 있어. 다들 우리 형제는 그날 둘이 밤에 치킨과 술을 놓고 얘기한게 마주보고 처음 얘기를 한 날이였어.
그냥 형이 보고 싶더라. 그리고 형이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어렸을 때 형이 한 말들을 흘려들었던 것도 후회되고 형은 소소하게 여기서 우리 가족과 얽히지 않고 무사히 잘 살았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부탁인데 혹시 이 글을 읽은 사람이 있다면 우리 형 음악 좀 많이 들어줘! 진짜 고군분투하면서 어떻게든 음악활동을 하고있는 것 같아.
우리 형은 같은 집에서 살았지만 나와 완전 반대의 다른 삶을 산 사람이야. 우리 집에 어렸을 때 IMF가 오기 전에 망했는데 IMF 오면서 더 망했었거든. 그때 아빠가 독일에 노동자로 가있었고 엄마는 여기저기 일하러 다녔어. 그리고 나랑 형은 친척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얹혀 살았는데 그러다 고모네 집이 형과 나를 돌봐주고 키워주셨어.
그런 어렸을 때의 기억이 나는 잘 없는데 그날 얘기해보니까 형은 어렸을 때 일들 다 기억하고 있더라고. 집안에 어른들한테도 기억하고 있는거 말 안하고 조용히 있었더라고.
나랑 형은 형이 중학교를 가면서부터 같은 집에서 살지만 얼굴을 볼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 됐어. 형은 어렸을 때 계속 전교 1등을 했거든. 근데 그때가 외고입시열풍이 한창 불때였어서 형은 학원에서도 외고 입시 시킨다고 매일 새벽 2시에 집에 들어와서 6시에 일어나 학교를 가는 생활을 매일 했어. 그러니까 당연히 가족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은 아침밥을 먹는 시간 잠깐 뿐이었어. 부모님에게 특히나 엄마에게 형은 자랑이였지.
그런데 그런 형이 푹 빠져있던 건 음악이였어. 내가 형의 영향을 받은게 유일하게 음악 취향인데 그때 형이 여러 인디밴드들과 해외 록음악에 빠져서 나에게 공유해주곤 했어. 그게 내 음악취향이 되기도 했고. 형은 중학교에서 첫 시험에서부터 1등을 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전부터 이미 음악을 하고 싶어 했어.
반면에 나는 형과 달리 성적은 말할 것도 없고 그냥 공부를 안했어. 학교에서도 다른 애들하고 싸우거나 선생님들하고 싸워서 엄마랑 아부지가 학교에 불려간 적도 많았어. 나는 그때 형하고 비교도 많이 당해서 자격지심도 있었고 반항심도 있었어. 완전히 다른 캐릭터니까 그때 나는 형은 어른들이 다 좋아하는데 나만 싫어한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형은 본인 나름대로 어른들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그날 밤에 같이 얘기하면서 처음 들은 얘긴데 형은 스스로 자기는 우등생이긴 했는데 모범생은 아니었대. 매일 하루에 3시간 정도만 자는 생활을 6년 동안 하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고 했어. 그리고 음악을 하겠다고 얘기하면서 학교 선생님들이나 학원 선생님들, 부모님하고도 트러블이 있었는데 그냥 결국 중간부터는 말을 안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척을 하면서 새벽에 집에 오면 방문을 닫아놓고 몰래 혼자 일렉기타를 쳤대.
어차피 잘 시간 별로 없으니까 아예 안자고 일렉기타는 앰프 안 꽂으면 소리 작아서 모르니까 그렇게 했나봐. 그리고 아침에 학교가서 점심시간까지 그냥 대놓고 잤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공부는 학원가서 하고. 어차피 눈 감는 순간까지 공부를 해야하니까 오전수업때 자도 공부할 시간은 넘쳤다고 해.
그러다가 형은 광명에 있는 진성고를 진학했어. 전교생이 기숙사생활을 하는 공부를 엄청 잘하는 학교였대. 나는 나중에 실업계를 가서 유명한 학굔지는 잘 모르겠는대 그런 것 같았어. 그리고 형은 그 학교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는데 어느 순간 다시 우리 집 근처 학교로 전학을 오더니 혼자 원서를 넣어서 음대 작곡과를 갔어. 고등학교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얘기 안해주는데 나름대로 그 학교에 계속 있으면 음악을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나봐. 나도 그때 놀랐던 건 따로 음악레슨을 받지 않았는데 클래식 음대 작곡과를 가더라고.
그리고 그 이후로 형은 쭉 서울에 살았어. 나는 계속 집에 머물렀고. 그 이후로 형이 어떻게 살았는지 몰랐어. 형은 엄마에게는 간간히 연락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빠한테는 연락을 아예 안했다고 했어. 나는 지방대를 갔다가 아빠가 아빠 회사에서 일하라고 해서 그걸 믿고 들어갔지.
근데 그때 엄마랑 형이 날 말렸어. 두 사람은 아빠가 이런 사람인지 알고 있었던 거야. 이제야 안건데 형은 아빠와 연락을 끊은 건 살기 위해서 일부러였대. 어렸을 때 형은 아빠가 엄마 몰래 집문서들고 돌아다니다가 걸린 것도 다 알고 있었고 아빠가 얼마나 엄마한테 빚을 덤태기 씌웠는지도 알고있었어. 그리고 엄마도 아부지가 형 명의만은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형도 관계를 차단하는게 살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중간에 자기 형의로는 차를 할 수가 없어서 형 명의로 차를 끌고 다녔다고 하더라고. 근데 그때 범칙금이나 과태료를 하나도 안내고 몇 년을 쌓았나봐. 그게 형 명의로 되어있으니까 다 형한테 날아오고 형은 통장 압류된다는 통지를 받고 형이 200만원 가량되는 그 벌금들을 다 냈다고 하더라고. 그 이후로는 다행히 아빠가 형 명의를 쓰는 건 없나봐.
아빠는 내가 아부지 회사에 들어가니까 대학 다 필요없다고 그만두고 나와서 매일 일하라고 했거든. 형과 엄마는 학점은 상관없으니까 졸업장이라도 따랬어. 근데 내가 학교 가기가 싫고 공부하기 싫어서 말을 안듣고 아빠 말을 따랐어. 그게 핑계인거 알면서도. 아빠 회사니까 취업계 내면 된다고 형이 알려줫는데도 아빠는 그걸 처리를 안해줬어. 지금은 그게 너무 후회된다.
형은 서울에 간 뒤에 20살부터 졸업하는 27살까지 하루에 3개씩의 알바를 매일했대. 서울에서는 또 다른 지옥이었대. 그렇게 벌어서 생활비, 월세, 학비 등을 겨우 다 메꾸고 아무리 일해도 단지 살아 숨쉬는 정도의 자격밖에 얻을 수있는게 없었대. 미래를 볼 수 없었다고. 그래서 스무살에 다짐했던게 어차피 무리하면서 살아왔으니까 졸업할때까지만 무리하면서 살자고 다짐했다고 해.
그렇게 졸업을 할때까지 나름대로 계속 연습하고 곡을 쓰고 노력하고 졸업 하고 난 뒤에도 다른 쪽으로 취업을 해서 일을 하면서 음악을 계속 했대. 지하방과 옥탑을 전전하며 버텼고 뜻이 맞는 친구가 생기고 해서 아직까지 음악생활을 하고 있어. 그래도 전보다 점점 커리어가 쌓이고 상황이 나아져가고 잘 지내고 있나봐. 그래도 최근에 드라마ost에 곡을 팔고 점점 뭔가 성취하고 있는 것 같아. 매일매일이 더 기대된다는 모습을 보니까 내가 다 뿌듯하더라. 형이라도 서울에서 평범하게 잘 지냈음 좋겠어.
혹시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있다면 멜론이나 다른 음원사이트들에게 Vlinds 와 오늘의 코믹스라는 팀의 노래를 많이 들어주고 팬맺기 별표랑 곡 좋아요 좀 많이 눌러주길 부탁해. 형이 대학교 동기인 친구와 Vlinds라는 프로듀싱 팀을 하고 있는데 자체 앨범을 계속 내고 있나봐. 그리고 ‘오늘의 코믹스’라는 팀을 따로 하면서 본인만의 음악도 하고 있어.
고군분투는 하고 있는데 뭔가 반응이 많지 않아서 본인 음악을 하는 인디펜던트로서 유통사나 다른 분들의 압박이나 눈치 보이는게 있나봐. 그리고 자기를 믿고 도와주는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싶다는데 매번 노출되는 것에 실패하고 그러면 친구들을 실망시킨 것 같아서 슬프다고 하더라고.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없어서 안타깝지만 이 글을 읽은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건 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부탁하도록 할게!
이 글을 쓴 오늘 난 아빠 덕분에 신용 불량자가 됐어.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행복한 인생을 잘 살기 바래!
- 너무 길어서 3줄 요약
1. 아빠 믿고 같이 일했는데 억대 빚지고 국세라서 파산신청도 안됨. 인생망함.
2. 형은 서울에서 혼자 음악하면서 다른 길로 고군분투하는 중.
3. 우리 형 음악좀 들어줘 Vlinds랑 오늘의 코믹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