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귀신이 들렸다고, 공부안한다고 같은 이유로 부모는 자식을 폭행해 숨지게 만들었다. 그것도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30대가 부모에게 맞아죽었다.
원인도 나이도 환경도 다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사건과 정인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 자격없는 사람들이 자식을 애완동물 다루듯이 아니 마치 도구처럼 생각해서 일어난 일이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분노하며 그 부모를 욕한다. 맞다 그 부모들이 무조건 잘못한게 맞고 당연히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할 범죄자들이다.
부모에게 버림받는다 or 죽는다 라는 거에 있어서는 낙태도 그다지 다를게 없지만 낙태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많다. 아무것도 모를때 죽는거라면 마치 세포가 사멸하는거랑 크게 다를게 없어 보여서 일지도 모른다.나는 낙태되는 태아가 고통을 느끼는지 뭔지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딱히 낙태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 입장에서 본다면 아동 학대로 죽는거보단 낙태가 낫다고 본다. 적어도 세상에 나오기전에, 이 부조리한 사회의 모순을 깨달기 전에 죽는거니 말이다. 하지만 나도 모순된 사람이다.
그럼 30대가 부모에게 맞아 죽는거보다 아동이 부모에게 맞아 죽는게 나은가? 위에 논리대로라면 맞다고 하는게 일관된 입장이겠지만 아닌 것 같다. 이걸 긍정한다면 수능보기전 사고로 떠난 친구가 더 큰 고통을 받기전에 잘 빠져나갔다는 개 헛소리가 되고만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전부 틀린 선택지에서 뭐가 더 옳은 선택인지 고르는 것 만큼 힘든게 없는 것처럼 이것도 마찬가지다. 정답은 없다.
그렇다면 지켜야할 선,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선, 모순으로 가득찬 사회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당연하게도 그걸 구분짓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그런게 있고 모두가 잘 알고 지킨다면 이런일들은 없겠지만 말이다.
항상 이런 사건들이 있을때마다 마음속 깊은곳에서 분노가 생긴다. 단순하게 그 사람들 때문이 아닌 이런 모순을 만든 이 사회 전체에 향하는 분노. 그리고 분노가 사라질때쯤 생기는 허무함.
모순된 사회에서 죽음.
또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귀신이 들렸다고, 공부안한다고 같은 이유로 부모는 자식을 폭행해 숨지게 만들었다. 그것도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30대가 부모에게 맞아죽었다.
원인도 나이도 환경도 다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사건과 정인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 자격없는 사람들이 자식을 애완동물 다루듯이 아니 마치 도구처럼 생각해서 일어난 일이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분노하며 그 부모를 욕한다. 맞다 그 부모들이 무조건 잘못한게 맞고 당연히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할 범죄자들이다.
부모에게 버림받는다 or 죽는다 라는 거에 있어서는 낙태도 그다지 다를게 없지만 낙태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많다. 아무것도 모를때 죽는거라면 마치 세포가 사멸하는거랑 크게 다를게 없어 보여서 일지도 모른다.나는 낙태되는 태아가 고통을 느끼는지 뭔지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딱히 낙태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 입장에서 본다면 아동 학대로 죽는거보단 낙태가 낫다고 본다. 적어도 세상에 나오기전에, 이 부조리한 사회의 모순을 깨달기 전에 죽는거니 말이다. 하지만 나도 모순된 사람이다.
그럼 30대가 부모에게 맞아 죽는거보다 아동이 부모에게 맞아 죽는게 나은가? 위에 논리대로라면 맞다고 하는게 일관된 입장이겠지만 아닌 것 같다. 이걸 긍정한다면 수능보기전 사고로 떠난 친구가 더 큰 고통을 받기전에 잘 빠져나갔다는 개 헛소리가 되고만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전부 틀린 선택지에서 뭐가 더 옳은 선택인지 고르는 것 만큼 힘든게 없는 것처럼 이것도 마찬가지다. 정답은 없다.
그렇다면 지켜야할 선,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선, 모순으로 가득찬 사회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당연하게도 그걸 구분짓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그런게 있고 모두가 잘 알고 지킨다면 이런일들은 없겠지만 말이다.
항상 이런 사건들이 있을때마다 마음속 깊은곳에서 분노가 생긴다. 단순하게 그 사람들 때문이 아닌 이런 모순을 만든 이 사회 전체에 향하는 분노. 그리고 분노가 사라질때쯤 생기는 허무함.
금방 잊어버리고 살아가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다시 내 앞에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