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그녀를 그리지 못하는 이유2

전선인간200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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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그리지 못하는 이유2 [부제 : 모나리자]

 

// 전편에 이은 글입니다. 1편을 읽고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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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망막쇠퇴와 각막격리입니다”

“네?”

“휴....왜 이제야 병원을 찾으신 겁니까. 눈이 어떻게 이렇게 되시도록 모르신건지? 눈에 무슨 약품이 들어간 적 있나요?”


의사는 안타까운 듯 한숨이 섞인 말들을 내뱉고 있다.


“그게..요즘 눈이 조금 흐려지고 가끔 안보이긴 했지만.....그게..”


진료의자에 앉은 청년은 두 손을 모은 체 자신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만지작대고 있다.

남자손톱 답지 않게 빨갛게 매니큐어가 칠해진.....




“은경아 머해 빨리 가자니까?”


우원은 예매해놓은 영화표의 시간이 촉박한 듯 은경의 어깨를 흔들어 대고 있다.


“아아.. 오빠 조금만... 에잇! 오빠 때문에 망쳤잖아. 물어내 내 손톱!”

책상에 앉아 매니큐어를 칠하고 있던 은경은 우원이 어깨를 흔들어 대는 바람에 손톱의 위 손가락까지 매니큐어가 칠해지고 말았다.


“정말 오빠 이럴래? 내가 빨리하고 간다니까. 오빠 때메 손톱 다 망쳤잖아. 지우고 다시 칠해야겠네. 아세톤이 어딨더라. 아. 오빠 거기 선반 위 액체 보이지. 그거 좀 갖다 줘 얼렁”


우원은 선반위에 투명한 액체가 담긴 용기를 손에 쥐고 다시 은경에게 말한다.


“걍! 영화보고 와서 해라 응.. 가자 응”


“알았다니까 얼렁 안줘! 이것만 지우고 금방 칠하고 간다니까 남자가 디게 좀스럽게 그러네 얼렁줘”


은경은 자신을 계속 재촉하는 우원이 미운 듯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야! 영화보고 와서 하면 안되냐? 그깟 손톱 칠이 중요해 나랑 데이트가 중요해 응?”

우원의 언성도 높아지고


“알았다니까 어서 이리 안줘”

은경은 우원의 손에서 아세톤 용기를 뺏으려 하고 우원은 은경이 얄미운 듯 주지 않기 위해 팔을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어서 달라니까 에잇”


“아악..”

아세톤용기를 뺏기 위한 실랑이가 벌어지고 그 작은 소동 중에 느슨하게 닫아진 용기의 두껑이 열리고 용기 안의 액체가 우원의 얼굴에 쏟아졌다.


“아악..따까워”

우원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비벼대기 시작했다.


“어어..오빠 괜찮아? 괜찮아.? 정말 괜찮아? 어서..어서 씻어”


“오빠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은경이 우원을 세면대로 데려간 후 흐르는 물에 우원의 얼굴을 계속 해서 씻어 내려가며 말을 하고 있다.


10분쯤의 세면이 끝난 후 한바탕 소동을 벌린 우원과 은경은 이미 늦어버린 영화를 포기한체 사이좋게 은경의 자취방에 누워 DVD를 보고 있었다.


“은경아?”

“응”

“근데 그거 손톱에 칠하는 거 그게 그렇게 좋아? 그렇게 이뻐?”

“응 오빠 손톱에 이쁘게 칠해놓으면 기분이 무척 좋아. 한주가 정말 상쾌해진다니까 이거 이쁘게 칠하고 오빠랑 손잡고 영화보러 가고 싶었는데..... 난 정말 그랬는데..”


“음....미안해 은경아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시간 없는데 꾸물정 대는 니가 좀 얄미워서 그래서..미안해.. ”


“아냐 오빠.. 내가 더 미안하지? 근데 눈은 괜찮아?”


“응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볼래?”


우원은 두손가락으로 두눈을 크게 벌린 후 은경에게 보여준다.


“오빠 내가 오빠 새끼손가락에 매니큐어 칠 해줄까?”


“남자가 칠하는 거 좀 그렇지않나?”

우원은 멋 적은 듯 말했다.


“머 새끼손가락인데 어때 줘봐”

은경은 우원의 오른손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린 후 붉은색 매니큐어를 정성스레 칠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운명의 붉은 실 보다 더 진하고 강렬한 붉은색 매니큐어로 엮어지는 거네. 오빠 이 색 절대 지우면 안된다. 알겠지?”


“으응 그래”


우원은 이내 은경의 마음을 모른 체 떼를 썼던 자신이 미안한지 남자답지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조용히 오른쪽 새끼손가락에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은경이 무척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듣고 계십니까? 지금 환자분의 눈은 심각하다구요?”

의사선생의 큰 소리 때문이었을까?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만지작대던 왼손에 가볍게 힘이 들어가고 그는 과거의 기억에서 서둘러 돌아왔다.


“아! 네.. 저어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선생님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흠....그게... 흠... 죄송하지만 환자분의 눈은 앞으로 60일 이내에 완전히 시력을 잃을 것같습니다.”


“그럼... 제가 장님이 된다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 선생님! 지금 그저 흐리고 침침해서 잘안보이는 정도 일 뿐인데...정말 제가 ...제가 장님이 되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


애써 태연한척 하던 청년은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네... 죄송하지만 60일 이내에는......”

의사는 한참을 망설이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고 치료방법이나 이식수술의 경우등 많은 방법이 있으니 우선은 입원 하시는게.....”


“이제는 더 이상 못본다는 말씀이지요. 이제는 이 새끼손가락의 빨간 매니큐어도 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쾅”

우원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진료실의 문을 닫고 나와선 후 두 손을 눈에 대고 열심히 자신의 눈알을 만지작대고 서있었다. 흐릿해져가는 자신의 시력을 멈추기라도 할려는 듯이.......








Ⅴ.


“야! 안은경 여름 방학 럭셔리 하게 보냈냐?  이 언니는 이번 방학을 캐리비안베이에서 멋진 보이들과 판타스틱 하게 보냈지 않았겠어”

지인은 방학동안 새까맣게 탄 피부를 자랑하며 은경에게 나타났다.


“으응...그냥 난 머 그저...”

은경은 더욱 하예진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다 지인에게 힘없이 대답을 하고 나섰다.


“흠... 머야. 은경아. 아직 오빠한테 연락없는 거야? 이제 조금만 있음 너네 만난지도 200일이잖아. 대체 오빠는 어디로 간거지. 정말 소식도 없어?”


“으응. 오빠 이제 내가 싫어졌나봐. 이제 오빠는 날 잊어버렸나봐”

은경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눈물방울이 떨어질 듯이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흠...아냐..아냐 이 년아. 힘내 분명히 오빠 어디서 너 깜짝 놀래켜 줄려구 지금 작전 하고 있는 걸 거야! 좀 있음 멋진 선물을 한아름 들고 니 앞에 나타날 거야! 힘내”

지인은 은경의 처진 어깨가 안쓰러운 듯 은경의 어깨를 천천히 쥐었다.


“그럴까? 정말 그렇겠지? 지인아?”


“응! 그래 걱정마. 내가 누구야! 20년간 수련해온 지리산 산신 도사잖아. 나만 탁 믿어! 야 우리 기분도 꿀꿀한데 테트리스 한판 어때? 지는 사람이 오늘 영화랑 저녁쏘기?”




“어서오세요 손님은 34번 손님은 35번 자리에 앉아 사용하시면 됩니다.”

학교 앞 pc방에 나란히 앉은 둘은 게임사이트에 접속을 시작했다.


“지인아 나 147번에 방만들었어? 빨리 안들어오고 머해?”

테트리스 게임의 방을 개설한 은경은 지인이 접속하지 않자 고개를 들어 지인과 지인의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응. 나 여기서 문자 좀 보내고 인터넷으로 문자보내면 무료거든”

지인은 포털 사이트의 로그인시 제공되는 무료문자를 보내려고 하고 있었고 은경은 그런 지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헌데 순간 은경의 눈엔 사이트의 오른쪽에 제공되는 뉴스 제목이 크게 들어왔다.

‘어느 눈먼 화가의 말없는 선행’

[단편소설] 그녀를 그리지 못하는 이유2


은경은 무언가에 홀린 듯 문자를 보내는 지인을 밀쳐낸 뒤 그 뉴스를 클릭해 보았다.

이내 뉴스 기사의 전문이 뜨고 은경은 찬찬히 뉴스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제목 : 어느 눈먼 화가의 말없는 선행


가정이나 사회에서 버림받은 노인, 장애자. 행려환자 등 우리시야에서 잊혀져 가는 소외된 사람들의 영정그림과 초상화를 그려주는 어느 화가의 말없는 선행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에 위치한 오순절 평화의 마을에 3개월 전에 몸을 의탁한 최라파엘 씨가 그 화제의 주인공.

최씨는 지난 5월 이 마을에 몸을 의탁한 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생을 얼마 남기지 않은 노인들의 영정그림과 자신의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장애인들을 위해서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최씨 역시 지금은 눈이 전혀 보이지 않은 지체장애 1급의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려 3개월 전에 본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한 후 그들의 영정그림과 초상화를 똑같이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선행은 최씨가 기거하는 오순절 마을의 김 막달레나 수녀가 자신의 눈조차 보이지 않으면서 오래전 본 사람들의 얼굴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려내는 최씨의 재능이 바로 하느님께서 내려준 작은 기적이라고 전파하기 시작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기자는 최씨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갔으나 최씨는 알려질 만한 선행이 아니라며 인터뷰를 거절했고 기자는 그저 눈먼 최씨가 그리고 있는 모나리자 그림만을 보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각박해져 가는 세상살이 속에서 어느 눈먼 화가의 말없는 선행이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nate.com 서인교 기자 @


“은경아! 왜 그래?”


지인은 마우스가 부셔져라 꼬옥 쥐고 있는 은경을 보며 말한다.


“응..지인아! 미안...나 지금 가봐야겠다. 미안. 게임은 다음에 하자.”


은경의 이마에는 식은 땀이 맺혀있었다.






Ⅵ.


‘왜 일까? 왜 나는 어쩌면 흔한 기사일 수 도 있는 그 기사에 여기까지 왔을까? 대체 왜? 난 무엇을 기대하고 여기까지 왔을까?“


오순절 마을을 향하는 언덕 위에서 은경은 무엇이 자신을 서울에서 밀양까지 이끌어 왔는지 의아해 하며 답답한 걸음을 한 발짝 한 발짝 걷고 있었다.


“자매님 어떻게 오셨나요?”

마을의 문 앞에서 만난 한 수녀는 너무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은경을 반겨주었다.


“아네. 안녕하세요 수녀님! 저 김 막달레나 수녀님을 뵈러 왔는데요”

수녀의 온화한 미소 때문인지 금방 전까지 알 수 없는 갑갑함에 휩싸였던 은경의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제가 막달레나 수녀입니다만 혹시 전화주신 은경자매님이신가요?”


“네 수녀님 제가 전화드린 안은경입니다.”


“네 은경자매님 반갑습니다. 근데 지금 최 라파엘 형제님께서 어디에 계신지 찾아볼 수 가 없네요. 숙소나 아니면 언덕 위 플라타너스 나무아래서 그림을 그리고 계실텐데....”


“플라타너스 나무요?”

은경은 무언지 모를 반가움이 가슴을 감싸는 것을 느낀다.


“네 라파엘 형제님은 언제나 플라타너스 나무아래서 캔버스를 펼치고 그림을 그리신답니다. 참 하느님의 은총이 많은 분이시죠”


“저기 수녀님 그럼 죄송하지만 제가 그 분을 직접 찾아뵈어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저기가 바로 라파엘 형제님이 묵고 계시는 숙소입니다. 316호가 라파엘 형제님의 숙소입니다. 들어가실 때 노크하시는 거 이쁜 자매님의 에티켓인거 아시죠?”

수녀는 한손을 들어 숙소를 가르킨 후 이내 노크를 하는 동작을 보여주며 싱그럽게 은경에게 웃고 있었다.


“똑똑”

“저기 계시나요?”


몇 번째 노크를 하고 있지만 316호의 숙소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은경은 조심스레 손잡이를 돌려 당긴다.

문은 잠그지 않았는지 이내 열리고 은경은 316호로 들어갔다.


“어머! 어떻게 이럴 수 가..... 어떻게....”

숙소에 들어선 은경은 방안을 가득 채운 모나리자의 그림에 너무도 놀란다.

그리곤 이내 어쩌면 아니길 바랬던 그 눈 먼 화가가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던 오빠였음을 깨닫고 조금씩 눈가를 적셔오는 눈물을 막지 못하고 서있었다.


왼쪽 손으론 입을 막은 체 눈물을 감추며 오른 손을 곧게 편 체 은경은 하나하나 오빠가 어둠속에서 그린 캔버스위의 모나리자를 천천히 스다듬고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모나리자를 슬프도록 아름답게 그렸을까...눈도 안보이는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자신이 쓰러질까봐 그렇게 은경은 혼잣말을 하면서 천천히 그가 자신을 떠나 살았을 이 컴컴한 방안을 둘러보았다. 잠시 동안이라도 그의 아픔을 함께 느끼기 위해서....


방안의 중간엔 텔레비전이 놓여있었고 그 아랜 검은 글씨로 제목이 적혀진 비디오 테입이 꽂혀진 비디오플레이어가 있었다.


“그녀를 그리지 못하는 이유”

라고 적혀진....

 

은경은 천천히 비디오테입을 비디오 안으로 밀어넣었다.

아주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