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렇겠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당시에도 배구라는 스포츠가 월드컵 축구만큼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해당 종목 선수들 개개인의 인기도 그러했고직접 즐기는 스포츠로의 위상은 차이가 더 컸다 그럼에도 P 그는 당시에 학원배구계에서는 슈퍼스타였고 실력도 실력이지만 외모마저 호남형이었던지라 인근 여학생들에게도굉장히 유명했다 하지만 그 선하고 호감가는 표정을 온전히 나와 내 동기들을 위해서 내지어보였던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코치선생님들이 없고, 중계카메라가 없는공간에서 P는 그야말로 폭군 그 자체였다 아마 지금도 그의 은사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할 배구계 원로들은 꿈에도 생각못했겠지만P는 당시에 엄청난 골초였다. 하루에 담배를 몇갑씩 피워대면서도 체력테스트에선 누구에게도지지않았으니 이 역시 그의 천재성을 증명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그게 아니다. 내 기억에 그는 하루에 몇갑씩 되는 담배를 본인 돈으로 사 피운 적이 없었다. 담뱃값은 언제나 나와 내 동기, 후배들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가 담배를 갈취할 때 쓰는 은어는 간단했다. "필까?" 이 한마디만 하면. 우리는 후배가 됐든 동기가 됐든 담배를 피우든 피우지 않든 상관없이 그를 만족시켜야했다. 가끔은 누가 더 빨리 충성스럽게 갖다 바치는가 내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자괴감을 느꼈냐고? 아니 그럴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그가 담배를 원할때 그 어느 누구도 담배를 못 주는 일이 벌어지면, 견디기 힘든 폭력이 뒤따랐다.
나도 그 폭행의 단골 피해자였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가 뺨만 때려도 그 충격이 보통 또래들의 주먹질의 그것보다 강했다. 그런 그가 마치 내 얼굴이 배구공처럼 무차별로 후려갈겼던 날, 눈깜짝할새에 수십번 휘몰아치는 뺨때리기에 코뼈가 부러졌고 응급성형을 받았지만 후유증으로 평생 콧날의 변형을 지닌채 살게 됐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그가 행한 폭행은 이 정도로 인간적인 수준에서 멈춘 게 아니었다.
그가 가장 좋아한 폭행수단은 전기고문이었다.지금은 보기 어려워졌지만 예전엔 흔했던 빨간 손전등. 어른들이 후라쉬, 후래시 라고 불렀던 그 제품에 들어가는 네모난 배터리를 어떻게 했는지 빨간색 파란색 전선을 꼬아 집게에 연결해 동기들 몸에 전기를 흘려보내는 짓을 즐겨했다. 직전까지도 엄청난 화가 나있었으면서도 이 짓을 할 때면 이게 장난인지 폭행인지 피해자도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몹시 신나했다. 그 악마같은 행위가 주는 재미도 점점 내성이 생기는지 고문에 사용하는 배터리는 점점 커져서 급기야 화물자동차에서 쓰는 배터리를 가져다가 고슬고슬 탄내가 날 정도로 애들을 지져댔고 이 폭주는 후배 한 명이 거품물고 졸도하는 사고로 119에 실려가는 사태가 벌어질 때까지 계속됐다고 한다. (눈치챘겠지만 계속됐다고 한다, 라고 표현한 이유는 난 코뼈 골절 사건 이후 학교를 옮겼기 때문이다) 학교측에서 어떻게 막았는지 이 일이 언론에 소개된 일은 없었다. 당연히 징계도 없었다. 그렇게 그의 배구생활은 화려하게 지속됐고, 선수로 승승장구했고 배구계에서 은퇴한 지금도 여전히 슈퍼스타다. 그렇게 끝난 이야기였다. 적어도 며칠전까지. 인터넷 사이트에 모 배구선수의 학창시절 폭행 고발글이 올라오기 전까지 말이다.
이제 나도 용기를 내기로 했다. 어딘가에 흩어져 살고 있을 그 시절 나의 동기들 후배들이 함께 해준다면 더 힘이 날 것 같다. "필까?" 몇년에 한번씩 가위눌림과 함께 찾아오는 그 소름끼치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서 나도 이제는 놓여나고 싶어졌다
배구선수 P의 학창시절 폭력..
지금도 그렇겠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당시에도 배구라는 스포츠가 월드컵 축구만큼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해당 종목 선수들 개개인의 인기도 그러했고직접 즐기는 스포츠로의 위상은 차이가 더 컸다
그럼에도 P 그는 당시에 학원배구계에서는 슈퍼스타였고 실력도 실력이지만 외모마저 호남형이었던지라 인근 여학생들에게도굉장히 유명했다
하지만 그 선하고 호감가는 표정을 온전히 나와 내 동기들을 위해서 내지어보였던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코치선생님들이 없고, 중계카메라가 없는공간에서 P는 그야말로 폭군 그 자체였다
아마 지금도 그의 은사였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할 배구계 원로들은 꿈에도 생각못했겠지만P는 당시에 엄청난 골초였다. 하루에 담배를 몇갑씩 피워대면서도 체력테스트에선 누구에게도지지않았으니 이 역시 그의 천재성을 증명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그게 아니다.
내 기억에 그는 하루에 몇갑씩 되는 담배를 본인 돈으로 사 피운 적이 없었다. 담뱃값은 언제나 나와 내 동기, 후배들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그가 담배를 갈취할 때 쓰는 은어는 간단했다. "필까?"
이 한마디만 하면. 우리는 후배가 됐든 동기가 됐든 담배를 피우든 피우지 않든 상관없이 그를 만족시켜야했다. 가끔은 누가 더 빨리 충성스럽게 갖다 바치는가 내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자괴감을 느꼈냐고? 아니 그럴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그가 담배를 원할때 그 어느 누구도 담배를 못 주는 일이 벌어지면, 견디기 힘든 폭력이 뒤따랐다.
나도 그 폭행의 단골 피해자였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가 뺨만 때려도 그 충격이 보통 또래들의 주먹질의 그것보다 강했다. 그런 그가 마치 내 얼굴이 배구공처럼 무차별로 후려갈겼던 날, 눈깜짝할새에 수십번 휘몰아치는 뺨때리기에 코뼈가 부러졌고 응급성형을 받았지만 후유증으로 평생 콧날의 변형을 지닌채 살게 됐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그가 행한 폭행은 이 정도로 인간적인 수준에서 멈춘 게 아니었다.
그가 가장 좋아한 폭행수단은 전기고문이었다.지금은 보기 어려워졌지만 예전엔 흔했던 빨간 손전등. 어른들이 후라쉬, 후래시 라고 불렀던 그 제품에 들어가는 네모난 배터리를 어떻게 했는지 빨간색 파란색 전선을 꼬아 집게에 연결해 동기들 몸에 전기를 흘려보내는 짓을 즐겨했다.
직전까지도 엄청난 화가 나있었으면서도 이 짓을 할 때면 이게 장난인지 폭행인지 피해자도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몹시 신나했다. 그 악마같은 행위가 주는 재미도 점점 내성이 생기는지 고문에 사용하는 배터리는 점점 커져서 급기야 화물자동차에서 쓰는 배터리를 가져다가 고슬고슬 탄내가 날 정도로 애들을 지져댔고 이 폭주는 후배 한 명이 거품물고 졸도하는 사고로 119에 실려가는 사태가 벌어질 때까지 계속됐다고 한다. (눈치챘겠지만 계속됐다고 한다, 라고 표현한 이유는 난 코뼈 골절 사건 이후 학교를 옮겼기 때문이다)
학교측에서 어떻게 막았는지 이 일이 언론에 소개된 일은 없었다. 당연히 징계도 없었다. 그렇게 그의 배구생활은 화려하게 지속됐고, 선수로 승승장구했고 배구계에서 은퇴한 지금도 여전히 슈퍼스타다. 그렇게 끝난 이야기였다. 적어도 며칠전까지. 인터넷 사이트에 모 배구선수의 학창시절 폭행 고발글이 올라오기 전까지 말이다.
이제 나도 용기를 내기로 했다. 어딘가에 흩어져 살고 있을 그 시절 나의 동기들 후배들이 함께 해준다면 더 힘이 날 것 같다. "필까?" 몇년에 한번씩 가위눌림과 함께 찾아오는 그 소름끼치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서 나도 이제는 놓여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