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친아버지가 죽었다네요.

ㅎㅎ2021.02.24
조회82,456
안녕하세요,방이 다르지만 여기에 사람들이 많은듯하여 올립니다.ㅜㅜ속이 답답해서 조언 좀 얻고자..

저는 아주 평범한 20대 후반 직장인 여성입니다.제가 2~3살쯤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어머님이 저의 양육권을 가져가셨어요.친아버지는 약 30년전쯤 여의도에서 돈을 꽤나 버셨지만, 도박과 유흥같은 나쁜길로 빠지셨더랬죠.어머니가 유치장도 빼오고, 불륜도 잡고 하면서 아주 질려서 양육비나 위자료도 일체 안받고 이혼하셨습니다.돈보다는 그 사람과의 인연을 한시라도 빨리 잘라내고 싶으셨다네요.

그렇게 저는 강원도의 외갓댁에서 자랐고, 어머님은 서울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내주기 바쁘셨어요.2개월에 한번 씩 서울에 사는 엄마를 만났고, 1년에 2~3번 정도는 엄마와 함께 헤어진 친아버지를 만났었습니다.5살배기때, 엄마에게 "엄마는 왜 이혼했어?" 하고 물어봤었습니다."엄마는 짜장면을 좋아하는데, 아빠는 짬뽕을 좋아해서 싸워서 이혼했어" 하고 대답하시던 엄마에게"엄마가 양보하지.." 하고 어린 마음에 엄마 마음을 아프게했던 기억이 납니다.이혼가정 자녀는 인격이 형성됨과 동시에 눈치를 배우더라구요.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 쯤, 어머님은 지금의 양아버지를 만나 재혼하셨고, 저는 8살때 성본이 변경됐습니다.그와 동시에 밑으로 남동생 둘이 생기며 다섯가족이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양아버지를 만나 부모님슬하에서 지낸 20년간 아쉬운것 하나 없이 충분한 사랑 받고 컸습니다.저는 엄마의 아픈손가락이었으니, 아픈만큼 저를 많이 챙겨주셨어요.

그렇게 20년을 살았고, 개명하기 전의 성을 점차 잊고살았습니다.제가 8살때 재혼하셨기에, 이혼과 재혼 그 사이의 제 유년기를 기억하지만 남동생 둘은 제가 친누나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기에 굳이 들출일도 아니었습니다.이혼가정, 어머니의 재혼, 그게 그리 흔한일도 아니지만 그리 특이한 일도 아니라 생각했습니다.이혼은 부모나, 자식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더라도 필요하면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친아버지는 어머니 재혼이후 단 한번도 본적도, 소식을 들은적도 없었기에 남이었습니다.다만 제가 40대쯤 되었을때 흥신소에 행적을 문의는 해볼까 하는 단순 호기심정도만 들었었어요.

얼마전에 법원에서 등기가 왔다고, 문앞에 딱지가 붙어있더라구요.수취인이 친아버지의 상속인 개명전 이름이더군요.보자마자 '돌아가셨구나' 짐작했습니다.친아버지의 만행을 어머니에게 간혹 들어서 대충은 알고있었기에, 길에서 객사햇거나, 빚을 못이겨 자살했거나 싶더라구요.

그래도 신기하게 슬프지 않았습니다.슬픈감정이 하나도 들지않는데, 하다못해 싱숭생숭도 들지않으니 그냥 감정이 '무'였습니다.언제갔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가서, 친딸이 애도할 마음조차 안들다니,고인에게 미안하기도 하더라구요.. ㅋ

부채면 얼말까? 3천? 5천?재혼을 안했나? 대출때문에 혼인신고도 못했나?그 이후로 나 말고 다른 자식은 없었나?우체국에서 등기받아서 막상 서류가 두꺼운걸보니, 집에오는 길에 여러 생각이 들더라구요.(출퇴근때문에 낮에는 집을 비워서 우체국으로 받으러 갔거든요)

저도 행정일을 해서 알지만, 유산 중 재산이 있어 법원에서 등기를 보낼 확율은 매우 희박하죠.확인해보니 역시나 대부에서 채무자가 저에게 넘어온 서류더라구요.짐작했던 것이고 부채야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하면 되는 것이니, 마음 편하게 금액 확인했어요.

마음 좀 잡고 열어보니,,2000년도에 한미은행에서 빌린 200만원이더라구요..중간에 '당사자 표시정정신청서'에 피고인 친아버지가 사망하였으니 상속인 저로 피고를 변경한단 내용이 있더라구요.그게 다였어요..그 200만원 때문에 대부업체가 이렇게 저한테 친아버지 사망소식을 알려주더라구요..

사람이 어찌 그리 못났는지..아비노릇 한번을 안하다가 자기 죽었다고 이런식으로 알리는게 어딨어,몇천도 아니고 200만원을 20년동안 못 갚아서, 이렇게 비참한 삶으로 가는게 어딨어,죽었으면 죽었다 미안하면 미안하다 한마디 없이 먼저 가서, 나한테 빚갚으라고 오는게 어딧냐고돈도 너무 소액이라 알 수 없는 감정에 복받쳐 울었습니다.미운건지, 안쓰러운건지 분간이 안되었습니다.

얼굴도 가물가물한 아비가, 20년간 연락한번 없었던 아비가, 멀리도 아니고 서울-경기 차로 30분거리에 살았더라구요.서로 지나쳐도 못 알아봤을 그분은 그렇게 먼저 가셨더라구요.사실 고마움을 가지기에 너무 엄마만 고생한 기억이 나서 애도하는 마음조차 쉽게 안 듭니다.엄마는 저에게 심란하다 미안하다 하시는데, "엄마, 난 추억이 없어서 아무렇지도 않아. 뭐가 미안해 엄마 없었음 나 지금 고아야" 하고 말았습니다.저도 지금 결혼준비중인데, 남자친구랑 이혼하고 20년뒤에 죽었다는 소식을 딸에게 듣는다 생각해보니 너무 복잡하더군요. 그게 딱 엄마의 감정일텐데요.

그깟 200만원 갚아 버리는게 이 분을 가는 길 편하게 해드리는걸까 싶었지만앞으로 다른 대부 업체에서 또 연락 올 지를 몰라 상속 포기를 진행하려합니다.내일 당장 친아버지의 제적등본, 혼인관계증명서,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 말소자 초본 등 발급진행할 것입니다. 그 서류를 보는 것 조차 저에게는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사람의 행적을 본다는 게 이렇게 부담스러운건 처음이네요.

지금 당장 어떤 감정이 드는지 조차 스스로 구분을 못하고 있습니다.남과 같던 친아버지의 죽음. 저는 눈매가 친아버지와 많이 닮은편으로 기억하는데,지금은 거울을 봐도 그 사람이 생각나네요...감정 정리는 차츰 해야겠지만,53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친아버지의 삶은 어땠을지,버겁기도, 알고 싶기도 한 그런 기분입니다.

제가 아직 어려서 그런 듯 해요.저녁에 서류를 보고 계속 넋이 나가있다가 답답해서 잠도 안 오고 하니 적었습니다.제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일말의 남겨진 애도이겠죠?



--------------------------------그저께 밤에 글을 올리고 어제는 일하며 틈틈히 달린 댓글을 확인하였습니다.법률적인 조언도, 마음을 위로해주시는 따뜻한 말도 전부 감사합니다.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조언과 같이 상속포기 말고 한정승인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어제 아버지의 서류를 떼 보았습니다.2018년 11월에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돌아가셨더라구요.생각보다 돌아가신지 오래됐고,, 길에서 객사하신게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죽는 날까지 옆에 아무도 없었는지 사망신고 해준 사람이 입원한 병원동장이더군요..할머니 할아버지 전부 돌아가신듯 하고,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형제자매 전부 해외에 있을거라네요.
안심상속서비스로 재산을 조회하려 했지만, 사망일로부터 6개월이 지나 조회 불가능 하더라구요.. ㅋㅋ그냥 돈 주고 법무사나 변호사에게 맡겨야겠습니다.어머니는 제게 너무 감정을 깊게 파고들지 마라 위로해주시긴 합니다만 어제까지는 생각을 쉽게 떨칠 수 없었던건 사실입니다.빨리 일을 마무리 해야 살아오면서 하나의 헤프닝으로, 언젠간 그런일이 있었지 정도로 기억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생각보다 다들 제 걱정을 많이 해주시던데, 감사합니다.저는 유복하게 자랐습니다.직장도 공부도 연애도 취미생활도 부족하지 않게 지내고 있습니다.어머니가 재혼 전에는 일가 친척들 중 어린아이가 저 혼자라서,그런 제가 혹시 부모님의 이혼으로 삐뚤어질까봐 모든 어른들이 저만 보고 지냈습니다.사춘기 시절, 어느 모든 딸들과 같이 대못으로 엄마 가슴을 그었고, 또 어른이 되어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지나온 어려운 시절을 탓만 하기보다는각자 인생의 굴곡이 겹치고 겹쳤을 때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해준 어른들에게 존경심이 듭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