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기의 부인은 대학을 다니며 강의하는 의사였다고함. 내과쪽이라나.
나이는 비슷하며(내 기억으로는 같은 나이였던것같다) 30살 초에 연애결혼했고, 결혼 후 적어도 신혼때까진 사실 성재기가 고향에서 잘나가던 나이트클럽들 등등 여러회사들을 운영하고 있었어서, 형편이 어렵진 않았었음
비록 남편의 직업이 부인과 같은 고액연봉의 전문직종(의사 등등)은 아니었지만, 사업이 잘되어서 원래는 성재기 이 남자의 돈벌이가 좋았다고한다.
그가 한국남자만을 위한 투사가 되어 여기에 미쳐서 남성연대인지 하는 단체를 만들기 전까지는.
고재기가, 하느님께서나 아실만한 알 수 없는 곳으로 갑자기 떠나가버린 이후에
그의 부인이 사람들에게 남긴 편지에서 전하기로는
성재기가 생전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본인의 엄마와 부인이고 이들을 위해서는 목숨도 바칠수있다고 주장했었다나.
여기까지만 들으면 겁나 사랑돋는 스윗한 로맨티스트 같은데 그 후에 그의 행보가 그렇지 않았음
참고로 그는 남성연대 대표였으나 정작 아이들은 딸만 2명이였고 아들도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남성연대를 만든걸까?
사람들의 추측으로는, 성재기의 아내가 그보다 경제적으로 유능하며 사회적으로도 가치가 높게 인정받는 직업에서 일하니까 여기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해
그 남자가 그렇게 엉뚱하게 흑화된것같다고도 하고
의견이 많은데
어쨌거나 그는
.
.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어느날 갑자기 생업도 때려치고 한국남자를 위한 무한자선 복지활동들을 시작했다.
참고로 그의 고향과 근거지는 한때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동네로 불리던 대구광역시 지역인데
(대구 출생/영남대 문과졸), 그가 여기서 나고 자란 사실이 위와같은 이상한 결심에 영향을 끼쳤을까?
결혼 후 애들도 있었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뭔 뉴스를보고 돌변을 했다고 그랬나 어쨌나.
하튼 어느날 무릎을 탁!!치고 뭔각성을 하였는지
아님 마귀나 잡귀가 들었는지
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는
돈벌이가 잘되던 개인사업들을 접고 사비를 털어서
'생물학적 성별이 남성에 해당되는,이 땅위의 모든 인간들'을 위한 무분별한 퍼주기식 활동들-남성 복지사업(?)-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않아 거덜이 났다.
그가 만든 '남성연대'는 만성적인 적자,재정난에 시달렸으며 뚜렷한 수입원이 없었다.
그는 재벌도 아니었고 처가 벌어온 돈을 끌어다가 쪼개어서 호응도 시원찮은 저 단체를 운영하였었다.
이곳은, 생길 당시에 한국에서 마침 김치녀 등등의 신조어가 생기며 여혐이 시작되고 있었어서 이런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 일부 남성들의 호응을 얻긴 했다.
그는 예상하지 못한 돌발적인 행동들(여가부 침입 후 다짜고짜 인터뷰 등등)로 화제가 되어
티비에도 종종 나왔었고 방송에서 낸시랭과 토론을 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든 꿈과 희망이던' 남성연대라는 단체의 재정상황은 놀랍도록 저조해서 이것은 늘 그의 근심거리였다
그가 죽기전까지
이곳은 사실상 전적으로 창립자 성재기의 사비로써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는데
그것의 정체는 다름아닌 성재기의 부인이 의사로 일하며 벌고다닌 피같은 돈들이었다.
만약 그녀가 의사가 아닌, 최저임금을 웃도는 저소득직종에서 일했었더라면
성재기는 결코 남성연대와 같은 '돈잡아먹는 하마나 다름없는'만년적자신세의 시민단체를 몇년씩이나 운영해나가는 미친짓을 해낼 수 없었을것이다.
이곳은 성재기의 취향에 맞춰 독자적인 행보를 하기 위해 정부보조금도 거부했기때문에 더더욱 자금난이 심각했다.
저 남성우월주의 단체가 연명해나가던 산소공급줄은 창립자가 아닌, 창립자의 부인이 노동해서 벌어오던 윌급이었다. 그게 코미디이다.
이것 이외엔 고정적인 액수의 수입원이 달리 없었다.
고재기네 집에는 돈버는사람과 쓰는사람이 따로 있었다.
돈잘버는 황금알낳는 암탉 그거 하나믿고서
흥청망청(가족들이 전부 기꺼이 다동의한것도 아니고) 혼자만의 활동에 심취해서 여기다 돈집어쓰던게 고재기이다
의사랑 결혼안했음 어쩔뻔했나.
그가 결혼하지않은 독신이었거나 이혼한 솔로였으면 차라리 욕을 덜먹었을텐데 그것도 아니였단거다.
믿어지진않지만 그는 죽는날까지 법적으로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빠였다.
고재기가 늘 퍼주기 정책만 쥐어짜느라 바빴어서 자신의 돈벌이는 포기했기 때문에 그는 집안의 생활비를 쪼개어다 엉뚱한 데에 끌어썼고
월급쟁이 남편의 월급으로 도박하고 명품백들을 사모으는 외벌이가정의 전업주부들 이상으로 그 역시
가장이 동의하지않은, 가정경제에 어떠한 기여도 없이 해악만 끼치는 저런 무익한 활동들에 '지칠줄모르고' 거액의 소비들을 이어나갔다.(수백명의 한국남자들을 위해서 도시락을 지원하기 등등 가지가지 활동들.)
그가 유언으로도 가족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걸보면
( '여보 미안해' 등 죽음을 앞두고 뒤늦은 참회의 말을 할 법도 한데 그는 전혀 그런게 없었다)
그의 관심사에 딸들과 아내는 아예 없었던것같다.
그런데도 이혼하지 않은 이유는
이렇게 되면 처의 수입을 끌어쓸수 없게 되니
이리 되면 남성연대는 당장 문을닫아야하기 때문에 그래서 (남성연대를 유지하기 위해)그러한 것일까?
가족과 부인의 희생을 모른척하고 이들의 고혈을 빨아서 본인주도하에 진행된 그 모든것들에 대해,
성재기 당사자는 이걸 취미라고 가볍게 생각하진 않았다.
아마도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한국남성들을 구원할 메시아의 역할을 하고있다는 거대한 착각속에서 살고 있었던 듯 하다.
이미 관짝에 들어간 시대착오적이고 현실성없는 한물 간 남성우월주의를 다시 들추어 꺼내어 부흥하려는 이런 헛된 일련의 시도들을
언젠간 누군가들이 알아줄것이며 숭고하고 위대한 업적으로 여겨지는 날이 올것이라고 그는 굳게 믿었고
여기에서 죽을때까지도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는 자기자신을 위한 신념을 신봉하는 사이비교주였고 , 이뤄질 수 없는 꿈에 목을 매달며 이러한 정신적 위안에 투신하여 죽었다.
그의 반대자들은 조소하는 의미에서 흔히 그를 고재기,성고재기, 고재기밥 등등으로 부른다
고재기는,
딸 두 명을 키우며 집밖에서 일하며 돈을벌어오는 자신의 아내를 갈아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 시도했고
남성연대를 이끌었으나
막상 그가 짝사랑하던 한국남자들은 이곳을 위해서 거의 기부하지 않았다.
그는, 이 나라 인구의 절반에 해당되는 2500만명 이상의 한국남성들을 사랑하였으나 그들 중에서 그가 원하는대로 그의 간절한 호소에 응답하는 지지자들은 극소수였다. 수십명인지 수백명인지 안팎밖에 안될듯하다.
그의 사망 이후 빈소를 조문하는 이들이 몇몇 있었으나, 과연 그의 단체를 위해 기부금을 내본이들이 있는지 있다면 액수가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다.
이 남자가 다른이들에게 바란것은 본인의 장례식장 조문이 아니고 오로지,'남성연대를 위한 후원금 모금' 이것 하나였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명수도 그리 많지 않았으나,
지지자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이들조차도
그가 살아있던 생전에 '그의 소망에 부합하는 행동들'을 해본일이 거의 없다.
성재기는 본인에게 딸린 식솔인 처와딸들까지 외면해가며 한결같이 진심으로(?) 한국남자들을 위해 바쳤으나
이것은 보답받은적이 없는 일방적인 짝사랑에 가까웠고
고재기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던 그들의 관심사는 사실
진지하게는, '예쁜 한국여자와 결혼해서 애들 낳고사는것'내지는 '돈많이벌고 혼자 잘먹고 잘사는것'등등
각자 자기자신의 개인적인 영달과 입신양명에 있었으며
남성연대같은 집단이나 이곳의 창립자 성재기에게 향하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남성들의 돈은 어지간해선 이곳을 향하지 않았다
종종 후원비(?)가 들어오긴 했으나 그 액수는
어떤 때엔 700원 이런식으로 무슨 애들장난처럼 터무니없는 경우들도 있었으며(마치 비웃는듯한)
거액의 기부금은 거의 없고 사실상 있으나 없으나 한 정도로 미미하고 적은 금액들이 대부분이라
단체의 조직 운영에는 도움이 별로 되지를 않아서
이를 보고 실망한 성재기는 생전에 자신의 몇 안되는 금전적 지지자(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하지만 이것 이외에는 달리 부를 말이 없으니 이렇게 칭하기로 한다)들을 향해
한결같이 저조한 기부금 액수에 대하여 이따금씩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그의 자살이유도 사실은 여기에 있었다. 단체 운영비용 모금이 하도 안되어서)
오로지 자나깨나 한국남성들만을 위해오던 고재기의 애처로운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의 지대한 관심과 사랑을 받아오던 그 '한국남자들'은 이상하게도 그의 간절한 바람과는 정반대로
'남성연대를 위해 금전을 기부해달라'는 고재기의 호소를 철저히 외면했고
그들이 이따금씩 필요할땐 그의 주장에 '옳소' 라고 잠깐씩 공감하고 동의하기는 했어도
정작 중요한 결정적 순간에 그들은 한결같이 무슨 단체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신기하리만큼 이곳을 위해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이곳의 재정이 풍요로운 일은 없었다
성재기가 자살하던 그날에도, 남성연대를 향한 기부금의 액수가 높아지는 일 따위는 없었다. (이걸 기대하고 저런건데)
집안의 유일한 돈줄인 고재기의 아내가 스트레스로 가출한 사건도 있었고
(고재기 본인이 당시 트위터에 남긴 말에 따르면 아내에게 우울증이 있다고도 했다.
한편 그의 사후 그의 처는 편지를 통해 그의 사망을 촬영한 kbs의 기자 및 그의 지지자들을 포함 기타 모든이들에게 감사를 표했으며 '아름다운 사람 성재기를 기억해달라'며 차분하고 논리정연한 어조로 글을 남겼다. ?????)
징그러운 재정자금난에 시달리다 버티다버티다 못해 그가 자살예고와 촬영
(kbs기자 한국남자가 당시 이 광경을 아무렇지않게 버젓이 촬영용 카메라로 찍고 있었다.사진으로도 남아있다.) 및 실행이라는 처절하고 극단적인 선택, 눈물의 똥꼬쇼를 하는 최후의 발악 마지막 그순간까지도 남성연대의 적자현상은 조금도 나아지지를 않았다
성재기가 한국남자들을향해, 남성연대클 끌어갈 돈이필요하니 돈을 달라고 하자 그들은 듣기싫은소리로 여겼고 억지떼를 쓴다며 성질을 냈다.
그의 사망 이후 고인에게 창조적인 고인모독드립을 치던 이들이 있었는데 , 이들은 그가 평생 적대시해온 한국여자들이 아닌, 그의 사랑을 듬뿍 받던 '한국남성들' 중에 있었다.
고재기의 장례식장에서 부조금으로 꼴랑 500원을 내고서 육개장등등을 얻어먹고 돌아온것을 사진까지 찍어서 인증한
(이들은, 당시에 그의 지지자들이 그나마 제일 많이 있는듯해보였던 '일베'웹사이트에서 활동하던 한국남성들이었다.)남성들이 꽤 되어서 이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고재기의 아내가 번 돈은 그녀의 남편의 오락인, '끝도없는 지출만이 예정되어있는'남성연대라는 알수없는 단체를 유지하는 데에 들어가는 유지비 이외에도
그녀의 딸2명과 남편,본인자신을 비롯한 4인가족의 생계비로도 쓰여야 했으니 많은 고심과 갈등이 있었을것이다.
누군가의 말로는 식당에서 일하는 고재기의 처를 봤다고도 하고, 이 말이 진짜라면 고재기의 허황된 꿈때문에 쪼들리는 생활비를 메꾸기 위해 아내가 본업이외에 투잡으로 식당서빙?주방?알바까지 했다는 소리인데
확인되진 않았으나
만일 사실이면 정말 우울증이 오고도 남을만한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고재기의 꿈은 그의 사후에도 이뤄지는날이 오기는 커녕, 그나마 있던 지지자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으니
살아서도 죽어서도 외면받는 신세를 면치 못하는 고재기가 이 모든일들을 그가 눈으로 직접 보지못하고 그전에 저세상을 간 것이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증거가, 그의 자살을 조소하며 만들어진 수많은 짤방들이며 그들중 유명한 하나가 '고재기밥'으로
죽어서 물의요정이된 고재기를 바다속에사는 만화속 주인공 스펀지밥에 비유한것이다
+그가 한강 마포대교에 다이빙해서 suicide하던 날,
정치적으로 우left파 성향인(좌 아니다) 디시인사이드 의 '남성연대'갤러리에는
'우와 지금 수돗물 틀어봐 성 고재기님 나온다' 하고 킬킬대는 글들이 올라오곤 했다
이외에도
'여기가 그 유명한 어그로(뜻: 인터넷게시판에 화제의 떡밥을 던져서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사람)연습 갤러리인가요? 풉~~'
'저는 남자이지만 남성연대가 싫습니다. 남자끼리 뭉쳐서 뭐합니까? 저는 여자의 가슴과 엉덩이가좋고 여자에게 안기고 싶습니다(+여자가 달리느라 큰 슴가가 흔들리는 짤방첨부)여자랑 같이 살고싶습니다'등등
남성연대를 배척하는 엉뚱한글들만 자꾸 올라와서
여기에 남아있던 몇몇 지지자들이 골머리를 썩더니
다른 마이너한 남성연대 후속 파생단체를 만들었다고도 하고, 이들이 모인 네이버카페가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몆년전에 들은 소식이고
2021년 현재엔 어찌되었는지 근황을 모른다.
일베 애들도 고재기같은거 아예 잊어버린거같고 가보니 맨날 비트코인타령이나 하고 있던데.
평생 허공에 삽질만하다 죽은 고재기
얘가 죽은거 불쌍하진 않은데
진짜 철근에 ??했단소문이 ㄹㅇ이었다니 .ㅎㄷㄷ
합성인줄 알았는데 .
저 소문듣고서
00에 환장하는 ddong고충들(바텀이 90%라는, 남자 dong성애자 게이gay들)이
성재기는 의사부인덕에 먹고살던 딸2명의 dad였음
나이는 비슷하며(내 기억으로는 같은 나이였던것같다) 30살 초에 연애결혼했고, 결혼 후 적어도 신혼때까진 사실 성재기가 고향에서 잘나가던 나이트클럽들 등등 여러회사들을 운영하고 있었어서, 형편이 어렵진 않았었음
비록 남편의 직업이 부인과 같은 고액연봉의 전문직종(의사 등등)은 아니었지만, 사업이 잘되어서 원래는 성재기 이 남자의 돈벌이가 좋았다고한다.
그가 한국남자만을 위한 투사가 되어 여기에 미쳐서 남성연대인지 하는 단체를 만들기 전까지는.
고재기가, 하느님께서나 아실만한 알 수 없는 곳으로 갑자기 떠나가버린 이후에
그의 부인이 사람들에게 남긴 편지에서 전하기로는
성재기가 생전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본인의 엄마와 부인이고 이들을 위해서는 목숨도 바칠수있다고 주장했었다나.
여기까지만 들으면 겁나 사랑돋는 스윗한 로맨티스트 같은데 그 후에 그의 행보가 그렇지 않았음
참고로 그는 남성연대 대표였으나 정작 아이들은 딸만 2명이였고 아들도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남성연대를 만든걸까?
사람들의 추측으로는, 성재기의 아내가 그보다 경제적으로 유능하며 사회적으로도 가치가 높게 인정받는 직업에서 일하니까 여기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해
그 남자가 그렇게 엉뚱하게 흑화된것같다고도 하고
의견이 많은데
어쨌거나 그는
.
.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어느날 갑자기 생업도 때려치고 한국남자를 위한 무한자선 복지활동들을 시작했다.
참고로 그의 고향과 근거지는 한때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동네로 불리던 대구광역시 지역인데
(대구 출생/영남대 문과졸), 그가 여기서 나고 자란 사실이 위와같은 이상한 결심에 영향을 끼쳤을까?
결혼 후 애들도 있었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뭔 뉴스를보고 돌변을 했다고 그랬나 어쨌나.
하튼 어느날 무릎을 탁!!치고 뭔각성을 하였는지
아님 마귀나 잡귀가 들었는지
뭔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는
돈벌이가 잘되던 개인사업들을 접고 사비를 털어서
'생물학적 성별이 남성에 해당되는,이 땅위의 모든 인간들'을 위한 무분별한 퍼주기식 활동들-남성 복지사업(?)-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않아 거덜이 났다.
그가 만든 '남성연대'는 만성적인 적자,재정난에 시달렸으며 뚜렷한 수입원이 없었다.
그는 재벌도 아니었고 처가 벌어온 돈을 끌어다가 쪼개어서 호응도 시원찮은 저 단체를 운영하였었다.
이곳은, 생길 당시에 한국에서 마침 김치녀 등등의 신조어가 생기며 여혐이 시작되고 있었어서 이런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 일부 남성들의 호응을 얻긴 했다.
그는 예상하지 못한 돌발적인 행동들(여가부 침입 후 다짜고짜 인터뷰 등등)로 화제가 되어
티비에도 종종 나왔었고 방송에서 낸시랭과 토론을 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든 꿈과 희망이던' 남성연대라는 단체의 재정상황은 놀랍도록 저조해서 이것은 늘 그의 근심거리였다
그가 죽기전까지
이곳은 사실상 전적으로 창립자 성재기의 사비로써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는데
그것의 정체는 다름아닌 성재기의 부인이 의사로 일하며 벌고다닌 피같은 돈들이었다.
만약 그녀가 의사가 아닌, 최저임금을 웃도는 저소득직종에서 일했었더라면
성재기는 결코 남성연대와 같은 '돈잡아먹는 하마나 다름없는'만년적자신세의 시민단체를 몇년씩이나 운영해나가는 미친짓을 해낼 수 없었을것이다.
이곳은 성재기의 취향에 맞춰 독자적인 행보를 하기 위해 정부보조금도 거부했기때문에 더더욱 자금난이 심각했다.
저 남성우월주의 단체가 연명해나가던 산소공급줄은 창립자가 아닌, 창립자의 부인이 노동해서 벌어오던 윌급이었다. 그게 코미디이다.
이것 이외엔 고정적인 액수의 수입원이 달리 없었다.
고재기네 집에는 돈버는사람과 쓰는사람이 따로 있었다.
돈잘버는 황금알낳는 암탉 그거 하나믿고서
흥청망청(가족들이 전부 기꺼이 다동의한것도 아니고) 혼자만의 활동에 심취해서 여기다 돈집어쓰던게 고재기이다
의사랑 결혼안했음 어쩔뻔했나.
그가 결혼하지않은 독신이었거나 이혼한 솔로였으면 차라리 욕을 덜먹었을텐데 그것도 아니였단거다.
믿어지진않지만 그는 죽는날까지 법적으로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빠였다.
고재기가 늘 퍼주기 정책만 쥐어짜느라 바빴어서 자신의 돈벌이는 포기했기 때문에 그는 집안의 생활비를 쪼개어다 엉뚱한 데에 끌어썼고
월급쟁이 남편의 월급으로 도박하고 명품백들을 사모으는 외벌이가정의 전업주부들 이상으로 그 역시
가장이 동의하지않은, 가정경제에 어떠한 기여도 없이 해악만 끼치는 저런 무익한 활동들에 '지칠줄모르고' 거액의 소비들을 이어나갔다.(수백명의 한국남자들을 위해서 도시락을 지원하기 등등 가지가지 활동들.)
그가 유언으로도 가족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걸보면
( '여보 미안해' 등 죽음을 앞두고 뒤늦은 참회의 말을 할 법도 한데 그는 전혀 그런게 없었다)
그의 관심사에 딸들과 아내는 아예 없었던것같다.
그런데도 이혼하지 않은 이유는
이렇게 되면 처의 수입을 끌어쓸수 없게 되니
이리 되면 남성연대는 당장 문을닫아야하기 때문에 그래서 (남성연대를 유지하기 위해)그러한 것일까?
가족과 부인의 희생을 모른척하고 이들의 고혈을 빨아서 본인주도하에 진행된 그 모든것들에 대해,
성재기 당사자는 이걸 취미라고 가볍게 생각하진 않았다.
아마도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한국남성들을 구원할 메시아의 역할을 하고있다는 거대한 착각속에서 살고 있었던 듯 하다.
이미 관짝에 들어간 시대착오적이고 현실성없는 한물 간 남성우월주의를 다시 들추어 꺼내어 부흥하려는 이런 헛된 일련의 시도들을
언젠간 누군가들이 알아줄것이며 숭고하고 위대한 업적으로 여겨지는 날이 올것이라고 그는 굳게 믿었고
여기에서 죽을때까지도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는 자기자신을 위한 신념을 신봉하는 사이비교주였고 , 이뤄질 수 없는 꿈에 목을 매달며 이러한 정신적 위안에 투신하여 죽었다.
그의 반대자들은 조소하는 의미에서 흔히 그를 고재기,성고재기, 고재기밥 등등으로 부른다
고재기는,
딸 두 명을 키우며 집밖에서 일하며 돈을벌어오는 자신의 아내를 갈아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 시도했고
남성연대를 이끌었으나
막상 그가 짝사랑하던 한국남자들은 이곳을 위해서 거의 기부하지 않았다.
그는, 이 나라 인구의 절반에 해당되는 2500만명 이상의 한국남성들을 사랑하였으나 그들 중에서 그가 원하는대로 그의 간절한 호소에 응답하는 지지자들은 극소수였다. 수십명인지 수백명인지 안팎밖에 안될듯하다.
그의 사망 이후 빈소를 조문하는 이들이 몇몇 있었으나, 과연 그의 단체를 위해 기부금을 내본이들이 있는지 있다면 액수가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다.
이 남자가 다른이들에게 바란것은 본인의 장례식장 조문이 아니고 오로지,'남성연대를 위한 후원금 모금' 이것 하나였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명수도 그리 많지 않았으나,
지지자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이들조차도
그가 살아있던 생전에 '그의 소망에 부합하는 행동들'을 해본일이 거의 없다.
성재기는 본인에게 딸린 식솔인 처와딸들까지 외면해가며 한결같이 진심으로(?) 한국남자들을 위해 바쳤으나
이것은 보답받은적이 없는 일방적인 짝사랑에 가까웠고
고재기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던 그들의 관심사는 사실
진지하게는, '예쁜 한국여자와 결혼해서 애들 낳고사는것'내지는 '돈많이벌고 혼자 잘먹고 잘사는것'등등
각자 자기자신의 개인적인 영달과 입신양명에 있었으며
남성연대같은 집단이나 이곳의 창립자 성재기에게 향하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남성들의 돈은 어지간해선 이곳을 향하지 않았다
종종 후원비(?)가 들어오긴 했으나 그 액수는
어떤 때엔 700원 이런식으로 무슨 애들장난처럼 터무니없는 경우들도 있었으며(마치 비웃는듯한)
거액의 기부금은 거의 없고 사실상 있으나 없으나 한 정도로 미미하고 적은 금액들이 대부분이라
단체의 조직 운영에는 도움이 별로 되지를 않아서
이를 보고 실망한 성재기는 생전에 자신의 몇 안되는 금전적 지지자(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하지만 이것 이외에는 달리 부를 말이 없으니 이렇게 칭하기로 한다)들을 향해
한결같이 저조한 기부금 액수에 대하여 이따금씩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그의 자살이유도 사실은 여기에 있었다. 단체 운영비용 모금이 하도 안되어서)
오로지 자나깨나 한국남성들만을 위해오던 고재기의 애처로운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의 지대한 관심과 사랑을 받아오던 그 '한국남자들'은 이상하게도 그의 간절한 바람과는 정반대로
'남성연대를 위해 금전을 기부해달라'는 고재기의 호소를 철저히 외면했고
그들이 이따금씩 필요할땐 그의 주장에 '옳소' 라고 잠깐씩 공감하고 동의하기는 했어도
정작 중요한 결정적 순간에 그들은 한결같이 무슨 단체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신기하리만큼 이곳을 위해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이곳의 재정이 풍요로운 일은 없었다
성재기가 자살하던 그날에도, 남성연대를 향한 기부금의 액수가 높아지는 일 따위는 없었다. (이걸 기대하고 저런건데)
집안의 유일한 돈줄인 고재기의 아내가 스트레스로 가출한 사건도 있었고
(고재기 본인이 당시 트위터에 남긴 말에 따르면 아내에게 우울증이 있다고도 했다.
한편 그의 사후 그의 처는 편지를 통해 그의 사망을 촬영한 kbs의 기자 및 그의 지지자들을 포함 기타 모든이들에게 감사를 표했으며 '아름다운 사람 성재기를 기억해달라'며 차분하고 논리정연한 어조로 글을 남겼다. ?????)
징그러운 재정자금난에 시달리다 버티다버티다 못해 그가 자살예고와 촬영
(kbs기자 한국남자가 당시 이 광경을 아무렇지않게 버젓이 촬영용 카메라로 찍고 있었다.사진으로도 남아있다.) 및 실행이라는 처절하고 극단적인 선택, 눈물의 똥꼬쇼를 하는 최후의 발악 마지막 그순간까지도 남성연대의 적자현상은 조금도 나아지지를 않았다
성재기가 한국남자들을향해, 남성연대클 끌어갈 돈이필요하니 돈을 달라고 하자 그들은 듣기싫은소리로 여겼고 억지떼를 쓴다며 성질을 냈다.
그의 사망 이후 고인에게 창조적인 고인모독드립을 치던 이들이 있었는데 , 이들은 그가 평생 적대시해온 한국여자들이 아닌, 그의 사랑을 듬뿍 받던 '한국남성들' 중에 있었다.
고재기의 장례식장에서 부조금으로 꼴랑 500원을 내고서 육개장등등을 얻어먹고 돌아온것을 사진까지 찍어서 인증한
(이들은, 당시에 그의 지지자들이 그나마 제일 많이 있는듯해보였던 '일베'웹사이트에서 활동하던 한국남성들이었다.)남성들이 꽤 되어서 이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고재기의 아내가 번 돈은 그녀의 남편의 오락인, '끝도없는 지출만이 예정되어있는'남성연대라는 알수없는 단체를 유지하는 데에 들어가는 유지비 이외에도
그녀의 딸2명과 남편,본인자신을 비롯한 4인가족의 생계비로도 쓰여야 했으니 많은 고심과 갈등이 있었을것이다.
누군가의 말로는 식당에서 일하는 고재기의 처를 봤다고도 하고, 이 말이 진짜라면 고재기의 허황된 꿈때문에 쪼들리는 생활비를 메꾸기 위해 아내가 본업이외에 투잡으로 식당서빙?주방?알바까지 했다는 소리인데
확인되진 않았으나
만일 사실이면 정말 우울증이 오고도 남을만한 상황이라고 생각된다.
고재기의 꿈은 그의 사후에도 이뤄지는날이 오기는 커녕, 그나마 있던 지지자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으니
살아서도 죽어서도 외면받는 신세를 면치 못하는 고재기가 이 모든일들을 그가 눈으로 직접 보지못하고 그전에 저세상을 간 것이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증거가, 그의 자살을 조소하며 만들어진 수많은 짤방들이며 그들중 유명한 하나가 '고재기밥'으로
죽어서 물의요정이된 고재기를 바다속에사는 만화속 주인공 스펀지밥에 비유한것이다
+그가 한강 마포대교에 다이빙해서 suicide하던 날,
정치적으로 우left파 성향인(좌 아니다) 디시인사이드 의 '남성연대'갤러리에는
'우와 지금 수돗물 틀어봐 성 고재기님 나온다' 하고 킬킬대는 글들이 올라오곤 했다
이외에도
'여기가 그 유명한 어그로(뜻: 인터넷게시판에 화제의 떡밥을 던져서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사람)연습 갤러리인가요? 풉~~'
'저는 남자이지만 남성연대가 싫습니다. 남자끼리 뭉쳐서 뭐합니까? 저는 여자의 가슴과 엉덩이가좋고 여자에게 안기고 싶습니다(+여자가 달리느라 큰 슴가가 흔들리는 짤방첨부)여자랑 같이 살고싶습니다'등등
남성연대를 배척하는 엉뚱한글들만 자꾸 올라와서
여기에 남아있던 몇몇 지지자들이 골머리를 썩더니
다른 마이너한 남성연대 후속 파생단체를 만들었다고도 하고, 이들이 모인 네이버카페가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몆년전에 들은 소식이고
2021년 현재엔 어찌되었는지 근황을 모른다.
일베 애들도 고재기같은거 아예 잊어버린거같고 가보니 맨날 비트코인타령이나 하고 있던데.
평생 허공에 삽질만하다 죽은 고재기
얘가 죽은거 불쌍하진 않은데
진짜 철근에 ??했단소문이 ㄹㅇ이었다니 .ㅎㄷㄷ
합성인줄 알았는데 .
저 소문듣고서
00에 환장하는 ddong고충들(바텀이 90%라는, 남자 dong성애자 게이gay들)이
고재기 괄약근에 철근박힌걸 부러워했다나 뭐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