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오늘 헤어지려고 데이트 신청했어 처음으로 너가 만나고 싶지 않다

ㅇㅇ2021.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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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안되는 사람들 마저 이해가 안 간다고 하는데, 하물며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정도로 안타깝고 속상한 이별이라고 생각해야겠다. 주작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할 정신도 없고, 그럴 성격도 못 된다.
너와의 이야기는 내가 읽었었던 여느 소설처럼 행복했길 바랬으니까 이런 얘기도 쓰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 글 쓰다가 너무 울어서 눈이 부었다. 이런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줄 생각하니 속상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으려면 여기서 떠나야할테니까.

운명은 참 신기하더랬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알게 되었는지 아직도 신기하다.
너는 남들보다 키가 컸고, 나는 그런 너가 신경 쓰였다.
막연한 이상형 탓이었을까. 눈을 덮는 앞머리가 거슬려서 그랬을까.

어렸고 마냥 밝기만 했던 나는 감정에 휩쓸려 너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궁금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어쪄면 차가운 그 성격이.
다가갈수록, 나만 아는 그 사람의 수줍음, 소심함 그리고 다정함이 좋았다.
지극히 평범한 소설의 남주가 쓸 법한 말투에 나는 그 소설의 여주가 되고 싶어졌다.
차마 맨정신으로 마음을 전달할 용기가 없어서 너에게 단 둘이 술을 먹자고 했다.
나는 아마 너에게 데려다달라고 했을 것이다. 잠바를 바로 집어드는 널 보면서 그마저도 귀엽다고 생각한 참이었다.
맞다. 지긋지긋하게 귀여웠다. 덩치에 안 맞는 말을 듣고 덩치에 안 맞게 얼굴이며 귀며 붉어지는 것도 귀여웠다.
귀엽다는 말을 들을때마다 뭐라는거냐며 말 끝을 흐리는 너가 좋았다.
집으로 바로 가진 않았다. 공원이 가고싶다 했고 너는 가자고 했다. 나는 그렇게 늦은 시간 공원, 희미한 불빛들 아래서 너에게 고백했다.
너가 나를 안아주었을때의 그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옷에 희미하게 베어 나오던 향도 기억이 난다.

진심으로 웃는 날이 많아졌고, 너 또한 그랬다.
서로 없으면 죽을 것 처럼 굴었던 그 기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너는 알지 모르겠다.
매일 적어내려가던 일기에는 너의 이름이 빠지질 않았다.
너무 좋아서 너가 없어지면 어떡하나 그런 바보 같은 걱정에 울며 밤을 보낸 적도 있었다.
너는 참 거짓말을 못했다. 그래서 아예 하지 않는다는 그 담백한 사고마저 좋았다.
그래서 권태가 왔을때 참 많이 울었고 참 구질구질하게 굴었다.
그 기간동안에 너는 사랑한단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감정에서조차 솔직한 너가 많이 밉기도 했었다.
다른 사람에겐 잘만 매정하게 굴었던 내가 너에게는 그렇게 안됐다.
너가 없는 내 미래는 상상도 못 하게 된 지는 이미 오래였다.
다시 사랑한단 소리를 듣게 된 뒤로 또 다시 미련하게 영원을 믿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을, 겨울, 봄 세 계절을 함께 보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무거운 것이었다. 서로의 인생을 돌보느라 바빠지게 되면서
너에게서 답장이 3시간 만에 오면 빠른 것이 되버렸고, 일주일에 두 번 보면 많이 보는 것이 되었다.
두번째 권태는 생각보다 길어졌고, 나는 그것을 되돌릴 힘이 없었다.
취업 준비로 바빴던 너와 나는 그렇게 멀어졌다. 누구는 핑계라고 할 것이다.
맞다, 보기 좋은 핑계일 뿐이다. 마음이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으니까.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선 소중함을 잃기 쉽다고 했다.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을 차마 볼 용기가 없었다.
사계절을 함께 보내고 싶었던 건 내 욕심이었나보다.
널 원망하지는 않는다. 이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
참 간결하게 적히지만 이 생각을 가슴에 억지로 욱여넣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더랬다.
몇 번을 연습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좋은 사람, 좋은 감정으로 남을지 몇 번이고 생각했다.
욕심을 부리려다 마지막 배려라 생각하고 그냥 별 말 없이 헤어짐을 고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약속을 잡았다.
헤어진 뒤의 우울이 나를 얼마나 무너뜨릴지 감도 안 잡힌다.
속도 모르는지 시간은 참 빨리도 왔다.

가끔은 후회한다. 내가 너에게 다가가지 않았더라면,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그렇게 모르고 살았더라면.
아니 사실 지금과 같은 결말을 알았더라도 널 사랑했을 것 같다.
보고싶다. 오늘이 너와의 마지막 데이트가 될텐데,
꿈에서라도 한 번 더 보게 얼른 자야겠다.

아까도 너에게 들려주었지만, 마지막이니까 한 번 더 말해도 되겠지. 좋은 꿈 꿔.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