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요청메뉴: 랍스터 3코스

Nitro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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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랍스터를 한마리 먹어볼까 싶어서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지 평소라면 킹크랩, 대게, 랍스터가 득실거리던 수조가 텅 비었습니다.


이유인즉슨 물이 별로 안좋은데 가격은 비싸서 그냥 장사 공친다 생각하고 안 들여놓았다고 하더군요.


속으로 '역시 잘나가는 가게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가게들은 수조 가득 채워넣었던데 그 가게들만 천상계에서 물건 떼어오는 건 아닐테고, 


살이 좀 덜 차있어도 돈은 벌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비싼 값에라도 들여왔을 테지요.


반면에 장사 잘되는 집은 하루나 이틀정도 장사 접어도 그 이름값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한 것일 테구요.  


 

그래도 이왕 발걸음을 한 것, 살이 좀 덜 차있어도 좋으니 얼마 남아있지 않은 랍스터 중 한 마리를 달라고 했습니다.


"오늘 랍스터 시세가 어떻게 돼요? 이 정도 크기면 키로당 X만원 맞나? (시세 훤히 알고 왔다)" 


"네, 1.5kg정도 나올 거 같으니 X만원 정도 하겠네요. 한 번 재 볼까요?"


"아이고, 이놈아 물 털고 올라가라! (횟집 수조 물이 세상에서 제일 비싼 물인것도 알고 왔다)"


"(랍스터 몇 번 털어서 물기 빼고) 네, 딱 1.5kg짜리네요. (어때? 딱 맞췄지?)" 


"근데 오늘은 물이 별로 안좋담서요. 깎아주셔야쥬?"


"아이고, 이거 남는 거 없는데..."


"사장님은 오늘 안나오셨나 보네요? 물건이 안들어와서 그런가, 지난 번 설날에 보곤 못 뵙네요 (나 단골이거든?)"


"예, 아마 오후에 나오실 거예요. 그래도 다른 해산물은 팔아야 되니까"


"전복 중짜는 키로당 X만원 맞죠? 저게 중짜린가? (시세 훤히 알고 왔다2)


"그건 큰 거고 그거 옆에거가 중짜리 (아는척 하더만 잘 모르네)"


"그럼 이건 키로에 여덟마리쯤 되겠네요? (아니야! 나도 전복 자주 먹어봤어!)"


"네, 그렇게 드릴까요?"


"그러면... 이거 랍스터가 X만원이라고 하셨죠? 거기에 전복 합쳐서 현금가로 10만원 맞춰서 주세요 (다 알지만 믿는데이)"


이렇게 평화로운 대화를 가장한 피튀기는 신경전을 벌이고 업어 온 랍스터, 전복, 그리고 서비스로 받은 홍조개입니다. 


 

랍스터는 칼로 머리 한 번 자르고 쪄 줍니다.


모기 한 마리 때려잡을 때도 '내세에는 좀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나거라'하는 마음을 담아 "발보리심發菩提心(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좋은 마음을 품는다)"를 외치곤 하는데,


랍스터 머리에 칼을 찌르며 "발보리심! 에구에구..." 할 때마다 내가 먹자고 남을 죽이면서 명복을 빌어준다는 게 위선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게 어쩔 수 없이 업을 쌓는 일인지라 피할 수 없으니 최대한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다는 다짐같기도 합니다.


머리에 칼집을 안 내면 찌는 와중에 내장을 뱉기도 하고 덜그럭거리다가 찜기가 뒤집어지기도 하니 인도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좀 무섭고 힘들더라도 꼭 필요한 작업이긴 합니다.



랍스터 크기마다 찌는 시간은 다 다른데, 1.5kg짜리는 대략 20분 정도 찌면 됩니다.


하지만 이건 완전히 익힐 경우이고 살아있는 싱싱한 랍스터는 회로도 먹을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좀 덜 익혀 먹는게 보통이지요.


15분 찌고 뜸 좀 들인 다음, 꼬리와 집게발을 분리해서 살을 먼저 먹어줍니다.


녹인 버터에 찍어먹거나 생강간장 소스에 찍어먹거나 레몬즙만 살작 뿌려먹는 등 다양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물이 별로 안좋다고 했는데 살이 꽉꽉 차있는데다가 탱탱하고 단단해서 "완전 이득봤다"는 느낌이 절로 듭니다. 


 

머리 부분에서는 내장도 많이 나오고, 군데군데 숨어있는 살을 다 파내고 집게 관절 부위의 살까지 알뜰하게 흝어내면 그것만으로도 랍스터 살이 한 접시는 나옵니다.


커다란 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밥을 볶다가 내장과 랍스터 살 남은 것을 다 붓고


굴소스 약간과 참기름, 김가루 등을 뿌려서 볶음밥을 만듭니다.


 

랍스터 내장으로 코팅한 볶음밥. 랍스터 살도 듬뿍 들어있어서 굉장히 호사스러운 느낌입니다.


랍스터 많이 잡히던 시절에는 죄수들이나 먹던 음식이었는데


어느 새 이렇게 고급 음식 취급을 받는 걸 보면 역시 희소성이 음식의 위상에 차지하는 몫이 큰가 봅니다.


그렇다고 이게 단순히 사람들의 착각이나 허영심만이라고 볼 수도 없는게,


한 연구팀에서 음식을 먹을 때 사람의 두뇌 사진을 찍어보니 "비싼 음식을 먹는다"고 들었을 때 맛을 느끼는 두뇌 부위가 훨씬 더 활발하게 반응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거든요.


사람들은 흔히 혀를 통해 음식맛을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감각이 다 동원되는 복합적인 활동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점적인 역할을 하는 건 쉽게 속아넘어가는 것으로 유명한 우리의 뇌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합니다.


 

볶음밥을 했던 팬은 그대로 뒀다가 다시 물을 붓고 라면을 끓입니다.


밥을 볶으면서 눌어붙었던 것이 라면 국물에 우러나면서 뭔가 깊은 맛을 냅니다.


설거지하기 편해지는 것도 부수적인 장점이지요.


서비스로 받은 홍조개를 다 넣고, 발라먹기엔 귀찮고 버리기엔 아까운 계륵같던 작은 랍스터 다리들도 함께 넣어 끓입니다.


 

그리하여 랍스터 3코스의 대미는 라면이 장식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식당에서 끓여주는 매운탕보다도 이게 더 낫지 않나 싶습니다.


싱크대에서부터 입을 뻐끔거리던 싱싱한 홍조개는 설탕 뿌린것마냥 달달한 맛이 나고


라면 국물에 끓여서 부드러워진 랍스터 다리는 아폴로 과자 빨아먹듯 이빨로 잘근잘근 씹어가며 살을 빼 먹습니다.


라면을 다 해치우고 국물까지 들이키고 나면 "어~ 잘 먹었다" 소리가 절로 나오지요.


이제 랍스터 먹어서 생긴 에너지로 전복 손질해서 전복찜과 전복죽을 만들어야 겠네요.


PS. 요리사서의 추천도서 칼럼은 2주에 한번씩 계속 연재중입니다 https://www.nslib.or.kr/info/dataroom2.asp?mode=view&number=52&gub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