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일기 9 (민원서 휘날리며~~)

스마일202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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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동네에 방앗간이 있었다.
엄마 심부름으로 가래떡도 뽑아오고, 콩국물도 받아오며 자주 오가던 곳이다.
항상 방앗간은 쿵덕! 쿵! 드르르르! 소리를 내며 먼지가 나는 나의 추억의 장소이다.  

아침마다 나의 추억의 장소가 머릿속에 강제소환된다.
드르르르르! 잉잉잉잉! 쿵쿵쿵! 쿵덕쿵!
오늘도 어김없이 알 수 없는 기계소리 합창으로 우리집은 70년대 방앗간을 방불케한다.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이기문물이 역으로 부메랑이 되어 사람을 괴롭힌다는 생각에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음을 깨닫는다.  

맘속에 두놈이 싸운다.

-이사가면 끝이야! 귀찮게 뭘 또 하려고 해? 너 원래 귀차니즘의 대명사잖아? 일 만들지말고 그냥 도망가. 다들 그렇게 살아.
-다음에 들어올 새로운 세입자를 생각해봐. 너가 그 고통을 알쟎아. 어떻게 그냥 가니? 그리고 2년간 말못하고 참아온 주변 이웃들도 돌아봐. 네가 아니면 누가 하니?  

하루에도 몇 번씩 두놈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흔들린다. 2년간의 소소한 싸움에 이미 지칠대로 지쳤고 지극히 개인주의인 나는 원래 나대로 살기로 결심하고 귀마개를 꽂는다. 그런 나를 일깨우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어~~~허! 에~~~헤이!!!’

아저씨가 목욕탕의 에코를 즐기며 창을 하신다.
참 나름의 고상한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승승장구를 하셨나보다.
대화도 쪽지로 주고 받겠다 하셨던 분이 화장실에서 창을??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거 잘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밟은 사람은 꿈틀한 것 조차 모른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적어도 바위에 계란의 흔적과 비린내는 남길수 있으므로 김여사는 이사 전에 마지막 복수혈전을 꿈꾼다.  

-안녕하세요? 000호인데요, 혹시 소음에 힘드시진 않으신가요?

작성한 민원서를 들고 주변세대를 돌며 물어본다.
다들 경계어린 시선으로 주저하다가 각자의 고충을 털어놓기 시작한다.생각보다 많은 세대가 고통을 겪고 있었고 다양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잠을 못자는건 기본, 언제 터질지 모르는 소음테러에 불안감을 느끼고 재택근무하는 총각은 일에 집중을 못하고, 서로 본인들 윗집인줄 착각해서 오해를 하고,시끄러운 방은 제 역할을 못하고 창고나 옷방으로 전락하는등.....  

응원과 함께 싸인을 받은 민원서를 들고 김여사는 마치 17살 유관순이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전의를 다지듯
민원서를 가슴에 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