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분의 글을 읽고 제 경험을 공유합니다.

쓰니2021.03.19
조회829

<사상검증 면접 경험>


안녕하세요.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 분의 글을 읽고 용기를 얻어 제 경험담을 공유합니다. 먼저 글을 쓰기 전에 공유의 목적은 대한민국에서 더이상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길 바람에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이미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일이고 해당 회사를 비난하거나 사과 받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피해자 분의 글을 읽고 힘을 얻었듯이 저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작은 힘이 되길 바랍니다. 


지난해 A 회사에서 면접을 진행했습니다. A 회사는 애니메이션 관련 업계의 중소기업이었고, 평소에 별로 가고 싶던 회사도 아니었지만 이 때에는 취직이 급했기에 물불 가릴 때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최대한 깔끔하게 차려입고 면접장소에 갔고, 최대한 밝은 미소로 면접에 응했습니다. 면접은 저와 면접관님, 이렇게 1:1로 진행했고 편안한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면접 볼 당시에 머리가 짧은 숏컷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요란한 머리는 아니었고 그냥 짧고 평범한 숏컷 머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분께는 별로 평범하지 않았나봅니다. 


갑자기 저한테 대뜸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면접관: 아 근데 머리는 왜 자르신거에요? 


나: 아 그냥 제가 짧은게 좋고.. 편하기도 하고 그래서 잘랐습니다


면접관: 아 그러시구나~ ㅎㅎ


(잠시 다른 얘기)


면접관: 아 근데 저희 회사 분위기가 되게 좋아요. 직원들끼리도 엄청 친하고 다들 좋은 친구들이여서요. 


나: 아 정말요? 너무 좋네요~


면접관: 아 근데 요즘 사회적으로 좀 뭐랄까, 예민한 분위기 잖아요. 뭐… 이런저런 사건들이 많아서. 그래서 혹시 종교가 있으시다던가, 정치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나: (띠용) 네??????


면접관: 아 그냥 편하게 말씀하셔도 되요. 


나: 아… 정치요…?


면접관: 아 정말 편하게 말씀하셔도 되요. 막 문재인을 엄청 좋아한다! 하셔도 전혀 상관 없습니다. 


나: … 


면접관: …


나: 아 원래 면접 때 이런 질문을 다 하시나요? 


면접관: 아 왜냐하면 저희 회사 분위기가 좋은데, 미꾸라지 한마리가 들어와서 물 흐리면 안되잖아요.


나: 하.하.하. 그렇죠.


결국 저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고 업무에 관련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갔습니다. 그러다가 또 사상검증을 하셨고 (정확히 어떤 질문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제 머리에 관련된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계속되는 사상검증과 돌려 돌려서 ‘님 혹시 페미임?’ 이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 너무 투명하게 보여서 불쾌했습니다. 면접의 거의 절반이 제 머리카락과 사상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어떤 종교를 갖고 어떤 정치적 사상을 갖고 있는지가, 그리고 제가 왜 머리가 짧은지가 면접에서 필요한 질문이었을까요? 제 직무는 전혀 종교 정치와 상관이 없고 더더욱 제 머리카락 길이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 면접이 끝난 후에 저는 좌절감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이었다면 이 면접이 그렇게 절망스럽지 않았겠지만, 취직이 급한 상황이었기에 더욱 크게 다가왔습니다.

‘머리카락이 짧아서 그런가. 그냥 머리가 ‘평범하게’ 길고 화장도 했다면 이런 질문은 안 받았을까? 취업을 위해서라면 어쩔수 없이 내 외모를 ‘평범하게’ 가꾸어야하나?’ 등등 자책의 질문들에 한동안 괴로웠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금방 다른 더 좋은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지만 그 시기의 저는 자책과 불안에 괴로웠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냥 ‘평범한’ 외모를 하지 그랬냐고 말씀하실수도 있습니다. 제가 종사하고 있는 업계는 다행히도 대부분의 경우 다른 업계에 비해 외적인 부분이 크게 중요하지 않고 복장에 대한 규제도 크게 없는 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분들이 취업을 위해 성형을 하고, 화장을 하고 정상범주안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 정상범주는 아주 좁디 좁아 단지 머리가 짧을 뿐인데도 그 범주 안에 들수 없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비록 취직에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저는 현실과 타협하고 싶지 않았고, 저를 외모로 판단하거나 사상 검증을 하지 않는 정상적인 회사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제 모습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런 회사를 정상이라고 말하기에는 다수의 비정상 회사들이 존재한다는 점이 절망스럽습니다. 머리가 길든 짧든, 화장을 하든 안하든, 성별, 외모 상관 없이 업무 능력과 개인 역량으로 정당하게 평가받고싶습니다. 더이상 이런 말도 안되는 사상검증 질문을 면접에서 듣는 일이 없길 바라며 글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