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며칠째 잠에 들지 못하고 있다.
너와 내 인연이 완전히 끊긴지 10년이 되었다.
긴 시간 안에서 고등학생이던 너는 원하던 명문대생이 되었고, 갓 스물을 넘긴 왈가닥 소녀는 한남자의 아내가 되어 어엿한 가정이 생겼다.
내 첫사랑.
10년이 지난 지금도 네 생각을 하면 마음이 간지럽고 몽글몽글 따뜻해지고 여전히 내 마음 속 한구석에 자리잡아 애틋하고 보고싶고 그리운 사람.
그런데 이젠 볼 수 없는 사람.
오랜만에 본집에 와서 너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펼쳤다.
낯설지는 않다.
간혹 니 소식이 궁금할때마다 한번씩 꺼내 추억하던 소중한 편지들이다.
소식을 듣고 니가 너무 보고싶어서 가만히 있을수가 없어서.. 너와 함께 나눈 시간들을 느끼고 싶은데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같이 찍은 사진 한장, 함께 나눈 대화 하나 남아있지 않지만 편지가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버리지 않길 잘했다. 간직하길 잘했다. 정말 잘했다.
편지에는 너가 보내준 네 사진도 한장이 있다.
내가 좋아하던 미소가 한가득 담긴 반듯한 네 얼굴.
2010년 12월, 편지속 너는 고등학교 2학년을 앞두고 있다. 너는 앞으로 2년, 고3 수험생이 끝날때까지 기다려주길 바란다며 간절하게 부탁한다.
그 사이 내게 다른 남자가 생긴다면 성인이 되어 뺏어오겠다며 자신있게 귀엽게 포부를 피력한다.
첫문장부터 끝문장까지 사랑과 애정표현으로 꽉 찬 문장들 속에 유난히 마음이 저린 문장이 있다.
"시간은 소중하니깐 아껴써야지"
공부에 집중하고싶어 그 흔한 핸드폰도 자의로 만들지 않던 너는,
또래들처럼 친구들과 피시방에서 희희낙락 게임을 하며 어울리는것도 포기했던 너는,
연인과 마음놓고 전화통화 한번을 하기 위해 쉬는시간 10분 마저 공부에 할애하던 너는, 너가 바라던대로 명문대생이 되었다.
그런 너를 알기에 나는 더 사무치게 아프다.
시간이 아까워 늘 시간을 쪼개쓰던 너였는데 지금의 너는 왜 너의 시간이 멈추길 바란걸까.
나는 내가 없던 너의 10년이란 세월을 알지 못한다.
그게 새삼 참 아쉽고 사무친다.
편지 중간중간 나에게 자랑스런 명문대생 남자친구가 되어주겠다며 패기를 부린다.
그러나 나는 너의 대학 입학 소식에도 그 흔한 축하 한마디를 전하지 못했다.
수험생 생활을 기다려달라던 너는 고3이 되기도 전에 나에게 이별통보를 했다.
당시 핸드폰이 없던 너라서 우리는 문자가 가능한 너희집 유선전화, 와이파이를 이용한 스카이프 영상통화, 싸이월드, 편지, 메일을 주로 이용했는데 어떤 경로로 어떤 이유로 이별을 통보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기억나는건, 우리 둘의 문제나 다툼으로 인해 이별을 한건 아니며 당장은 공부에 더 매진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나는 너랑 헤어지고도 너가 있는 지역까지 왕복 6-8시간 거리를 한두달 사이에 5번을 더 갔었다.
너를 만날 생각으로 간건 아니였으나 너가 보고싶어서 너를 느끼고 싶어서 갔다. 같은 지역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녀오면 숨통이 트이고 마음이 편해졌다.
이렇게 아름답게 끝났다면 나는 네 장례식장에 갈 수 있었을까.
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수 있었을까.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이미 끝이 난 우리 상태가 쑥대밭이 되었다.
분명 너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니였으나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아마도 너를 놓지 못한 내 미련 탓이 10할 일 것이다.
그러니 내 잘못이 맞다.
못되쳐먹은 나는 그걸 이제야 인정한다.
쑥대밭이 되어서도 너는 내게 단 한번도 싫은소리나 큰소리를 내지 않았다.
내 탓도 원망도 한적 없으며 잘잘못을 따지지도 않았다.
넌 그렇게 끝까지 너다워서 내가 끝끝내 너를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한동안 너를 앓았다.
시간이 흐르고 내게서 너의 존재가 옅어져가며 나는 너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있었다.
숱한 연애와 헤어짐을 반복하며 내 삶을 살았고 2년정도 시간이 흘렀을때 나는 지금의 신랑을 만났다.
착하고 사람좋고 똑똑한 사람.
능력있고 존경할정도로 내면도 외면도 멋있는 사람.
무엇보다 내가 너무 사랑하고 나를 너무 사랑해주는 신랑을 만나 행복이 넘칠정도로 빛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나만 마냥 행복하게 살아온것같아 그게 너무 미안하다.
그시절 우린 둘 다 어렸고 서툴렀고 그렇기에 미안한것도 아쉬운것도 많은, 그립고 순수했던 우리로 남아있었다.
가끔 문득 니생각이 날때마다 어떻게 살고 있으려나 궁금하고, 원하는 바 이루며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너는 나랑 헤어지고나서 3-4년 가량을 연애를 하지 않는것 같았다. 그래서 너의 연애 소식은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우리가 연인으로 지낸 시간은 짧았지만 긴 시간 누나동생 사이로 두텁게 지냈던만큼 친했던 남동생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기분이였다.
무엇보다 나와의 끝이 좋지 않았기에 배신감이나 마음의 상처가 회복이 되지않아서 연애를 안하나, 나는 행복한데 나만 행복해서 어쩌지 하는 죄책감을 갖고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기적이게도 그때부턴 마음놓고 너를 향한 미안함과 죄책감도 내려놓았다.
너의 연애 소식을 알게된 후로도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그 이후로 너의 소식은 모른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내가 아는 너의 소식은, 대학교 입학과 여자친구가 생긴 너. 그 두가지가 전부였다.
우리의 주변엔 연결고리가 없기에 간혹 너의 소식이 궁금해도 물어볼 사람도 물어볼 곳도 없었다.
가끔 너가 다니는 대학가 주변을 지나갈때 혹시라도 우연히 마주치면 웃으면서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달려갈만큼 반갑겠다 라는 상상을 종종 했다.
너의 지역에서만 만나던 너를 서울에서 만났다면 얼마나 신기하고 기특하고 반가웠을까.
네 동창들, 네 동기들, 네 지인들이 부럽다.
그들은 너가 없는 세상에서 언제든 저들끼리 너와의 추억을 공유할수 있고 너에 대한 그리움을 나눌수 있다.
나는 그 누구와도 너를 나눌수가 없다.
너와 나의 인연은 이제 이 세상에 나 말곤 아무도 모른다.
너의 부고 소식을 듣고 미련과 후회와 죄책감이 나를 억누른다.
그시절 우리는 어리고 서툴렀지만 내가 너에게 했던 행동, 내뱉은 말들이 후회되었으며
대학교 입학 소식을 알게되었을때 사과와 함께 축하를 해줬더라면, 그때가 아니더라도 10년의 시간 안에서 내가 한번이라도 용기를 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이 사무치게 남는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내가 가끔 너를 추억하며 웃었을때 너도 가끔 내 생각을 했을까, 너도 나를 웃으면서 추억했을까, 아니면 혹여나 너의 부정적인 감정들에 내가 조금이라도 자리를 차지했을까.
나는 끝끝내 너의 마지막을 배웅해주지 못했다.
너가 나를 보기 싫어할것 같다는 생각에 감히 갈수가 없었다.
끝까지 이기적이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너에게 미움받을까봐 무섭다.
너가 떠나던 날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 왔다.
많은 사람들이 나만큼이나 너의 마지막을 슬퍼했나 보다.
학창시절 시절 내내 전교회장을 도맡아 할만큼 리더쉽 있고 영향력 있는 너였다.
늘 또래들의 동경을 받던 빛나는 사람이였다.
다른 사람들은 너란 사람을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하다.
강하고 여렸던 내 첫사랑
내게는 여전히 열여덟에 멈춰있는 내 첫사랑
아쉽고 애틋한 내 첫사랑
내 처음 사랑
상처줘서 미안해
나만 행복하게 살고있어서 미안해
정말 많이 좋아했어
순수하고 늘 당차던 너를 평생 기억할게
잘가
며칠째 잠에 들지 못하고 있다.
너와 내 인연이 완전히 끊긴지 10년이 되었다.
긴 시간 안에서 고등학생이던 너는 원하던 명문대생이 되었고, 갓 스물을 넘긴 왈가닥 소녀는 한남자의 아내가 되어 어엿한 가정이 생겼다.
내 첫사랑.
10년이 지난 지금도 네 생각을 하면 마음이 간지럽고 몽글몽글 따뜻해지고 여전히 내 마음 속 한구석에 자리잡아 애틋하고 보고싶고 그리운 사람.
그런데 이젠 볼 수 없는 사람.
오랜만에 본집에 와서 너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펼쳤다.
낯설지는 않다.
간혹 니 소식이 궁금할때마다 한번씩 꺼내 추억하던 소중한 편지들이다.
소식을 듣고 니가 너무 보고싶어서 가만히 있을수가 없어서.. 너와 함께 나눈 시간들을 느끼고 싶은데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같이 찍은 사진 한장, 함께 나눈 대화 하나 남아있지 않지만 편지가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버리지 않길 잘했다. 간직하길 잘했다. 정말 잘했다.
편지에는 너가 보내준 네 사진도 한장이 있다.
내가 좋아하던 미소가 한가득 담긴 반듯한 네 얼굴.
2010년 12월, 편지속 너는 고등학교 2학년을 앞두고 있다. 너는 앞으로 2년, 고3 수험생이 끝날때까지 기다려주길 바란다며 간절하게 부탁한다.
그 사이 내게 다른 남자가 생긴다면 성인이 되어 뺏어오겠다며 자신있게 귀엽게 포부를 피력한다.
첫문장부터 끝문장까지 사랑과 애정표현으로 꽉 찬 문장들 속에 유난히 마음이 저린 문장이 있다.
"시간은 소중하니깐 아껴써야지"
공부에 집중하고싶어 그 흔한 핸드폰도 자의로 만들지 않던 너는,
또래들처럼 친구들과 피시방에서 희희낙락 게임을 하며 어울리는것도 포기했던 너는,
연인과 마음놓고 전화통화 한번을 하기 위해 쉬는시간 10분 마저 공부에 할애하던 너는, 너가 바라던대로 명문대생이 되었다.
그런 너를 알기에 나는 더 사무치게 아프다.
시간이 아까워 늘 시간을 쪼개쓰던 너였는데 지금의 너는 왜 너의 시간이 멈추길 바란걸까.
나는 내가 없던 너의 10년이란 세월을 알지 못한다.
그게 새삼 참 아쉽고 사무친다.
편지 중간중간 나에게 자랑스런 명문대생 남자친구가 되어주겠다며 패기를 부린다.
그러나 나는 너의 대학 입학 소식에도 그 흔한 축하 한마디를 전하지 못했다.
수험생 생활을 기다려달라던 너는 고3이 되기도 전에 나에게 이별통보를 했다.
당시 핸드폰이 없던 너라서 우리는 문자가 가능한 너희집 유선전화, 와이파이를 이용한 스카이프 영상통화, 싸이월드, 편지, 메일을 주로 이용했는데 어떤 경로로 어떤 이유로 이별을 통보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기억나는건, 우리 둘의 문제나 다툼으로 인해 이별을 한건 아니며 당장은 공부에 더 매진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나는 너랑 헤어지고도 너가 있는 지역까지 왕복 6-8시간 거리를 한두달 사이에 5번을 더 갔었다.
너를 만날 생각으로 간건 아니였으나 너가 보고싶어서 너를 느끼고 싶어서 갔다. 같은 지역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녀오면 숨통이 트이고 마음이 편해졌다.
이렇게 아름답게 끝났다면 나는 네 장례식장에 갈 수 있었을까.
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수 있었을까.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이미 끝이 난 우리 상태가 쑥대밭이 되었다.
분명 너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니였으나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아마도 너를 놓지 못한 내 미련 탓이 10할 일 것이다.
그러니 내 잘못이 맞다.
못되쳐먹은 나는 그걸 이제야 인정한다.
쑥대밭이 되어서도 너는 내게 단 한번도 싫은소리나 큰소리를 내지 않았다.
내 탓도 원망도 한적 없으며 잘잘못을 따지지도 않았다.
넌 그렇게 끝까지 너다워서 내가 끝끝내 너를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한동안 너를 앓았다.
시간이 흐르고 내게서 너의 존재가 옅어져가며 나는 너를 알기 전으로 돌아가있었다.
숱한 연애와 헤어짐을 반복하며 내 삶을 살았고 2년정도 시간이 흘렀을때 나는 지금의 신랑을 만났다.
착하고 사람좋고 똑똑한 사람.
능력있고 존경할정도로 내면도 외면도 멋있는 사람.
무엇보다 내가 너무 사랑하고 나를 너무 사랑해주는 신랑을 만나 행복이 넘칠정도로 빛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나만 마냥 행복하게 살아온것같아 그게 너무 미안하다.
그시절 우린 둘 다 어렸고 서툴렀고 그렇기에 미안한것도 아쉬운것도 많은, 그립고 순수했던 우리로 남아있었다.
가끔 문득 니생각이 날때마다 어떻게 살고 있으려나 궁금하고, 원하는 바 이루며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살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너는 나랑 헤어지고나서 3-4년 가량을 연애를 하지 않는것 같았다. 그래서 너의 연애 소식은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우리가 연인으로 지낸 시간은 짧았지만 긴 시간 누나동생 사이로 두텁게 지냈던만큼 친했던 남동생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기분이였다.
무엇보다 나와의 끝이 좋지 않았기에 배신감이나 마음의 상처가 회복이 되지않아서 연애를 안하나, 나는 행복한데 나만 행복해서 어쩌지 하는 죄책감을 갖고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기적이게도 그때부턴 마음놓고 너를 향한 미안함과 죄책감도 내려놓았다.
너의 연애 소식을 알게된 후로도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그 이후로 너의 소식은 모른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내가 아는 너의 소식은, 대학교 입학과 여자친구가 생긴 너. 그 두가지가 전부였다.
우리의 주변엔 연결고리가 없기에 간혹 너의 소식이 궁금해도 물어볼 사람도 물어볼 곳도 없었다.
가끔 너가 다니는 대학가 주변을 지나갈때 혹시라도 우연히 마주치면 웃으면서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달려갈만큼 반갑겠다 라는 상상을 종종 했다.
너의 지역에서만 만나던 너를 서울에서 만났다면 얼마나 신기하고 기특하고 반가웠을까.
네 동창들, 네 동기들, 네 지인들이 부럽다.
그들은 너가 없는 세상에서 언제든 저들끼리 너와의 추억을 공유할수 있고 너에 대한 그리움을 나눌수 있다.
나는 그 누구와도 너를 나눌수가 없다.
너와 나의 인연은 이제 이 세상에 나 말곤 아무도 모른다.
너의 부고 소식을 듣고 미련과 후회와 죄책감이 나를 억누른다.
그시절 우리는 어리고 서툴렀지만 내가 너에게 했던 행동, 내뱉은 말들이 후회되었으며
대학교 입학 소식을 알게되었을때 사과와 함께 축하를 해줬더라면, 그때가 아니더라도 10년의 시간 안에서 내가 한번이라도 용기를 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이 사무치게 남는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내가 가끔 너를 추억하며 웃었을때 너도 가끔 내 생각을 했을까, 너도 나를 웃으면서 추억했을까, 아니면 혹여나 너의 부정적인 감정들에 내가 조금이라도 자리를 차지했을까.
나는 끝끝내 너의 마지막을 배웅해주지 못했다.
너가 나를 보기 싫어할것 같다는 생각에 감히 갈수가 없었다.
끝까지 이기적이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너에게 미움받을까봐 무섭다.
너가 떠나던 날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 왔다.
많은 사람들이 나만큼이나 너의 마지막을 슬퍼했나 보다.
학창시절 시절 내내 전교회장을 도맡아 할만큼 리더쉽 있고 영향력 있는 너였다.
늘 또래들의 동경을 받던 빛나는 사람이였다.
다른 사람들은 너란 사람을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하다.
강하고 여렸던 내 첫사랑
내게는 여전히 열여덟에 멈춰있는 내 첫사랑
아쉽고 애틋한 내 첫사랑
내 처음 사랑
상처줘서 미안해
나만 행복하게 살고있어서 미안해
정말 많이 좋아했어
순수하고 늘 당차던 너를 평생 기억할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