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너무나도 찾고 싶은 분들이 있어서 누나 아이디 빌려서 글을 씁니다. 성인이 된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찾아보려고 했지만, 찾을수가 없어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라도 이렇게 커뮤니티에 글을 써봅니다. 혹시 주위에 비슷한 분들이 있다면 꼭 연락 부탁 드립니다 ... 저는 1994년생 개띠이고, 올해 28살입니다. 어린시절 제 나이 5살때쯤 부모님 사정으로 2년정도 다른 가정에서 자란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가지고 있던 기억들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서 지금이라도 꼭 한번 뵙고 감사 인사 드리고 싶습니다. 그 당시 저는 고향시 별빛마을 인지 은빛마을 인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비슷한 곳에서 거주 했습니다. 그 당시 아주머니 아저씨와 두명의 누나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큰 누나는 그 당시 고3 이였고, 작은 누나는 초등학교 4학년 이였습니다. 아저씨께서는 기타 리스트였으며, 평상시에는 공연을 하시면서 시간이 남을때는 늘 어린 저와 놀아주셨습니다. 제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것은, 제가 친 아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두분은 항상 저를 두분 사이에 두시고 잠을 주무셨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였지만 엄마와 떨어져 지내던 제게 두분 사이에서 잠들었던 그 시간들은 위안이되었고, 따듯한 시간들이였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장난을 치는 것을 좋아해서 항상 고 3인 누나 방에 들어가서 말썽도 부리고 장난감 총을 가지고 가서 놀아달라고 하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누나는 혼내기 보다는 웃으면서 저를 대해주었고, 둘째누나도 저를 귀찮아 하지않고 같이 잘 놀아주었습니다. 아주머니 아저씨와 비디오 가게에 가서 호빵맨 만화영화 비디오를 빌려 거실에서 함께 비디오를 보고, 항상 반찬도 제가 좋아하는 소세지나 고기 위주로 차려주시고, 어머니께 받으신 양육비는 제 옷을 사거나 장난감을 사주시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직접적으로 이름을 적는게 혹시라도 피해가 될수도 있어서 일부분만 적어봅니다. 친 어머니처럼 사랑으로 키워주신 61년생 김혜o 아주머니, 산만했던 제가 귀찮을 법도 한데 항상 귀여워해주시던 방유o 아저씨.. 그리고 갑작스레 생긴 새 식구에 화가 날법도 한데 친동생 이상으로 더 예뻐해주던 누나들.. 방o실, 방o영 누나들... 2년이란 시간이 그냥 지나가는 찰나일수도 있지만 제게는 너무나도 행복했고 그리운 시간입니다. 제가 어머니와 함께 돌아가던날 아주머니께서 너무 힘들어하시며 다시는 아이를 맡아서 돌봐주지 못하실거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떠난 그 후 몇 개월 동안 아프셨다는것도 들었습니다. 그만큼 저를 진심으로 대해주셨고 사랑했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너무나도 어린아이여서 그 당시에는 아주머니 아저씨가 제 부모님인줄 알았고, 한동안을 어머니에게 돌아가서도 적응을 못했던 기억도 납니다. 혹시라도 이렇게라고 못찾는다고 해도 저는 계속 찾으려고 노력할거고 꼭 얼굴 뵙고 손잡으며 감사하다는 인사 드리고 싶습니다. 사랑으로 보살펴주시던 치호가 이렇게 자라 성인이 되었고 올바르게 자라 유학도 다녀오고 잘살고있습니다, 제게는 또 다른 가족인 아주머니 아저씨.. 누나들도 잘살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주위에 비슷한 분들이 있다면,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 코로나로 어지러운 세상, 다들 잘 견뎌내시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찾고싶은 분들이 있습니다 한번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너무나도 찾고 싶은 분들이 있어서 누나 아이디 빌려서 글을 씁니다. 성인이 된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찾아보려고 했지만, 찾을수가 없어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라도 이렇게 커뮤니티에 글을 써봅니다. 혹시 주위에 비슷한 분들이 있다면 꼭 연락 부탁 드립니다 ... 저는 1994년생 개띠이고, 올해 28살입니다. 어린시절 제 나이 5살때쯤 부모님 사정으로 2년정도 다른 가정에서 자란 적이 있습니다. 그때 가지고 있던 기억들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서 지금이라도 꼭 한번 뵙고 감사 인사 드리고 싶습니다. 그 당시 저는 고향시 별빛마을 인지 은빛마을 인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비슷한 곳에서 거주 했습니다. 그 당시 아주머니 아저씨와 두명의 누나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큰 누나는 그 당시 고3 이였고, 작은 누나는 초등학교 4학년 이였습니다. 아저씨께서는 기타 리스트였으며, 평상시에는 공연을 하시면서 시간이 남을때는 늘 어린 저와 놀아주셨습니다. 제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것은, 제가 친 아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두분은 항상 저를 두분 사이에 두시고 잠을 주무셨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였지만 엄마와 떨어져 지내던 제게 두분 사이에서 잠들었던 그 시간들은 위안이되었고, 따듯한 시간들이였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장난을 치는 것을 좋아해서 항상 고 3인 누나 방에 들어가서 말썽도 부리고 장난감 총을 가지고 가서 놀아달라고 하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누나는 혼내기 보다는 웃으면서 저를 대해주었고, 둘째누나도 저를 귀찮아 하지않고 같이 잘 놀아주었습니다. 아주머니 아저씨와 비디오 가게에 가서 호빵맨 만화영화 비디오를 빌려 거실에서 함께 비디오를 보고, 항상 반찬도 제가 좋아하는 소세지나 고기 위주로 차려주시고, 어머니께 받으신 양육비는 제 옷을 사거나 장난감을 사주시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직접적으로 이름을 적는게 혹시라도 피해가 될수도 있어서 일부분만 적어봅니다. 친 어머니처럼 사랑으로 키워주신 61년생 김혜o 아주머니, 산만했던 제가 귀찮을 법도 한데 항상 귀여워해주시던 방유o 아저씨.. 그리고 갑작스레 생긴 새 식구에 화가 날법도 한데 친동생 이상으로 더 예뻐해주던 누나들.. 방o실, 방o영 누나들... 2년이란 시간이 그냥 지나가는 찰나일수도 있지만 제게는 너무나도 행복했고 그리운 시간입니다. 제가 어머니와 함께 돌아가던날 아주머니께서 너무 힘들어하시며 다시는 아이를 맡아서 돌봐주지 못하실거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떠난 그 후 몇 개월 동안 아프셨다는것도 들었습니다. 그만큼 저를 진심으로 대해주셨고 사랑했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너무나도 어린아이여서 그 당시에는 아주머니 아저씨가 제 부모님인줄 알았고, 한동안을 어머니에게 돌아가서도 적응을 못했던 기억도 납니다. 혹시라도 이렇게라고 못찾는다고 해도 저는 계속 찾으려고 노력할거고 꼭 얼굴 뵙고 손잡으며 감사하다는 인사 드리고 싶습니다. 사랑으로 보살펴주시던 치호가 이렇게 자라 성인이 되었고 올바르게 자라 유학도 다녀오고 잘살고있습니다, 제게는 또 다른 가족인 아주머니 아저씨.. 누나들도 잘살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주위에 비슷한 분들이 있다면, 꼭 연락 부탁드립니다. 코로나로 어지러운 세상, 다들 잘 견뎌내시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