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싶어 남기는 인생후기

ㅇㅇ202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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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때 죽더라도 속에 다 품고있긴 억울해서 제 얘기를 해볼까합니다.길 수 있지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의상 문어체로 쓰겠습니다.


어디서부터 써야할지 모르겠지만 찬찬히 나의 이야기를 해보겠다.돌아보니 내 인생 참 기구하다싶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다. 두 분은 자주 싸우셨다. 말로도 몸으로도.이유는 아빠가 술을 마셨기 때문이었고 엄마가 남자인친구와 놀았었기 때문이었고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집안일이 안돼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빠 얘기부터 해보자면아빠는 어렸을 적 학원강사를 했었는데 지금은 그만두시고 다른일을 하시는데 무슨일인진 정확히 모르겠다.아빠는 친구들과 놀러다니는걸 좋아했다. 담배도피고 술도 많이 마셨다.아주 어렸을 적에는 술에 취해 물건을 부수기도 엄마를 때리기도했다.그럴때마다 나는 방에서 숨죽여 울거나 거실로 뛰쳐나가 울면서 아빠를 말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쯤 되었을때부터 부모님 두분의 교류가 없어지기 시작했다.아빠가 엄마에게 월급을 주지않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엄마는 아빠가 집에서 먹는 것, 씻는 것등을 아까워했고 집에 있는 음식에 손을 못대게했다.아빠는 평일엔 밖에서 끼니를 때우고 주말엔 내게 치킨을 시켜 같이 먹자고했다.내게만은 바보같았던 아빠였기에 배고파하는 모습이 안돼보여 같이 먹어줬는데엄마 눈치가보여 몇 번 거절했을때 배고픔을 참는 아빠가 불쌍했다.지금 생각하면 아빠가 나빴지만 그땐 왜 그렇게 내가 서러웠는지 모르겠다.지금도 밥을 함께 먹어달라는 아빠의 눈빛이 선하다. 그렇게 지내다 두분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을때 이혼하셨다.

이제 엄마 얘기를 해보겠다.엄마는 나와 남동생이 아주 어렸을 적 화장품 방문판매원일을 하셨었다.그 이후엔 정확하진 않지만 노래방 도우미를 하셨다.밤이 되면 화장을 짙게하고 야한 옷을 입고 나가고 새벽이 되면 들어오셨다.내가 초등학생일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하셨다. 머리가 커지면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란걸알았지만 너무 어렸을적부터 매일 봐오던 모습이어서 그렇게나 잘못된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남들에게 엄마의 직업을 말하진 못했다. 엄마는 나와 남동생이 크면서 자연스럽게 팁을 많이 받아 신난다, 술을 많이 마셔 힘들다 하는 말들을 했다.엄마는 얘기하는걸 좋아했기 때문에 듣고싶지 않은것들도 다 들어야했다.

중학교 1학년 말 때 쯤 엄마가 외식을 하자고 하더니 어떤 아저씨를 소개시켜줬다.엄마가 그 아저씨랑 연애를 하고있고, 아저씨가 이사를 하기전까지 한달만 우리집에서 살아야한다고 했다. 싫으면 아빠한테 가던가 할머니집에서 살라고했다. 나와 동생에게 강요만 있었을뿐 사실상 선택지는 없었다.그렇게 한달간 한집에서 생활하다가 방이 세 개 딸린 빌라로 다같이 이사를 가게됐다.

아저씨와는 꽤 친해졌다. 존댓말은 반말이 되었고 아저씨란 호칭은 삼촌이 되었다.못생겼지만 호탕하고 자상했다. 정말 나를 딸처럼 여기는게 느껴졌다.한땐 엄마를 정말 미워했지만 그래, 이렇게 사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잠시나마의 안락함도 오래가진 못했다.
엄마는 아픈사람이다. 물론 이건 아주 나중에 안거지만 어떤 정신과약을 먹는다.어떤 병에 대한 것인진 모른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건 엄마는 가끔 사소한 것에도 눈이 뒤집혀 화를 낼때도 있다는 것과 모든 것을 남탓으로 돌린다는거다. 할말 못할말 구분을 못하고, 나를 감정쓰레기통으로 이용한다는거다.

중학교 2학년 시험기간 때 새벽에 공부한다고 하고 그냥 잠든적이 있다.다음 날 아침 머리카락을 다 잘라버리겠다며 가위를 들고 덤비다 새끼 손가락 살이 반쯤 잘렸다. 엄마가 무서워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에 반창꼬 하나를 얹고 울면서 학교에 갔다. 다행히 이른 아침이라 학생들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친구 한명이 교무실로 데려다줬는데교무실에선 응급실에 가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계속 왜 다쳤는지 물었는데 도저히 엄마가 했다는 말을 하지못해서 가위질을 실수했다고 했다. 응급실에 가는길에 담임쌤이 엄마한테 전화를 계속 걸었는데 엄만 오지 않았다.손을 꿰매고 붕대를 했다. 사과는 듣지 못했다. 

그 해에 친구들과 바다에 놀러가기로 했던날이 있었다.물건을 챙기다가 엄마와 의견이 안맞았는데 그날 방문을 잠구고 가둬서 놀러가지 못했다.뺏어갔던 휴대폰을 사정사정해서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문자만 남겼던 기억이 있다.
또 중학교 때 있었던 일인데 어떤 일로(지금은 생각이 안나지만 사소했었다.) 무차별적으로 맞았던 때가 있다.의자를 내게 던지고 발로 밟고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으면서.맞던 일은 많아서 익숙했는데 그 날은 너무 아팠다. 이대로 맞다간 죽을것 같았다.소리를 질렀다. 신고할거라고그때 엄마가 했던 말은 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그럼 내가 널 가만둘거같아? 차라리 반병신으로 만들어서 감방가지"
그러다가 엄마와 삼촌이 싸워서 남처럼 지낼때나는 오히려 삼촌과 대화하고, 삼촌에게 의지했다. 삼촌에게도 딸이 한명있었는데그렇게 셋이서 엄마가 너무하다(엄마가 언니에게 못할말을 많이했다.) 하는 얘기를 했는데 그때 위의 서러웠던 얘기를했다.삼촌은 바로 엄마의 방문을 열어 네가 사람이냐고 크게 화를냈고 언니는 나를 감쌌다.엄마는 바로 헤어지자고 맞받아쳤고 삼촌은 그래 헤어지자 하고 갈라서는걸로 했다.엄마는 그 직후 이모들을 불러서 짐을 싸기 시작했고 난 울면서 싫다고했다.삼촌은 날 자신이 키우겠다고 했고 나 또한 그렇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내 사정을 모르는 이모들은 말도안됀다고하며 말렸다.
어찌어찌 주변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갔다.그곳에서는 안정적인 삶을 살길 원했다.그런데 그러지못했다.
하루는 남동생이 생일이었는데 일주일 전부터 함께 축하를 하기로 약속한 엄마가일이 바빴는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우리끼리 케익을 사서 초를 불었다.그래선지 동생이 이렇게 쓸쓸한 생일은 처음이라며 머쓱하게 웃었는데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그래서 새벽에 엄마가 들어오고 나서 동생때문에 마음 아픈 얘길했다.지치고 피곤한 엄마에게 말이 곱게나가지 못한 나도 잘못하긴 했다.엄마는 바로 나에게 그냥 죽어버리라고했다. 나도 죽어줄게 하고 언쟁을 하다가또 무차별적으로 맞았다. 죽으라고 소리소리를 지르며 때리길래 나도 악을 쓰며 막다가 그냥 쓰러져 맞았다. 내가 미동하지 않은채 누워있자 엄마는 날 놔두고 자기시작했고, 난 그제서야 일어나방으로 갔다. 커터칼을 들고 손목에 대서 한시간을 서있었던것같다. 그으면 엄청 아프겠지, 아니야 보란듯이 처참하게 죽어주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홧김에 한번 찔러 그었는데 사이로 피가 맺히는걸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려 다시 시도하진 못했다. 아침에 엄마가 방에 들어와 커터칼을 보더니 "죽으려고 했는데 못죽겠지?" 비웃다가 손목을 잡고 옆으로 누워있던 나를 보고선 방문을 닫았다.

고등학교 3학년때부터 엄마가 집에 잘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는데 그게 새로운 남친이 생겨그런것이란건 얼마후에 알았다. 하교한후 집에갔는데 낯선 남자가 엄마와 함께 있는걸 보고나서.눈치채고 아무말 없으니 엄마는 아예 남친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살림살이 물건을 옮겨두고 그곳에서 살았다. 일주일이나 이주에 한번씩 나와 동생이 학교에 가있는동안 집안일과 음식을 해두면서.
또 남친과 함께 낚시에도 빠져 일년동안 낚시만 하러 다녔었다.맨날 돈없다하면서 비싼 낚시용품과 갈때마다의 미끼등을 사는게 아니꼬왔다.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학원 두세번 정도 다니던 학원도 돈이없어 끊기 일수였는데.그렇게 점점 공부를 손에서 놓으면서 성적이 안좋았다.그런데 이렇게 대학에가면 너무 후회할것같아 재수를 졸랐고 지원받아 재수해서 이름있는 대학에 갈 성적이 나왔다. 그런데 그 즈음 집이 너무 기울면서 (나중에 안거지만 파산직전까지갔었다고한다.) 대학을 못갈뻔도 했지만 아빠가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내주면서 서울로 올 수 있게 됐다. 
엄마와 지내는 것이 지옥이었던 터라 빨리 독립하고싶어 굳이 올라온건 맞다.아빠가 그동안 못해준거 앞으로 해주겠다며 학비를 대주셔서 다행히 큰 걱정은 없다.
그런데 엄마가 매주주던 용돈을 마음대로 끊어서 용돈 달라고 연락을 보내면명절때 받은 돈을 다썻냐며 멋대로 단정하면서 그렇게 돈 팡팡 쓸거면 내려오라고한다.사실 방금 주고받은 톡이다.

그냥 우리집은 왜 이렇게 돈이 없을까.. 엄마도 있으면 해주고싶겠지만 돈이 없어 못해주는걸 왜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는걸까.. 왜 용돈 달라는 한마디에 온갖 욕에 양심없냐는 말을 들어야할까..
내가 고집부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온것은 맞지만 매번 끼니도 해결해야하고 돈 들어갈데 많은데 엄마에겐 일주일에 오만원이 너무 벅찬가보다.
이젠 받을 상처 다 받아서 무뎌졌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법을 배웠다고생각했는데 아닌가보다.그동안 누구에게도 못한 말을 갑자기 이렇게 하고싶어진것을 보면 내 안에 무언가가다 차서 넘쳐버렸기 때문인것같다.모든 사람에게 말해버리고 속편히 죽고싶기 때문인것 같다.주변인들한테 다 말해버리면 자존심에 확 죽을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