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에 왕복(往겖)이라는 정직하고 심성이 아주 착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늙은 어머니와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그의 집안은 조상대대로 약재를 캐며 연명해 왔었는데, 왕복의 대에 와서는 부근 산의 약재들이 점점 줄어들어 부득이 200리 밖의 노군산(老君山)이라는 깊은 산 속으로 약초를 캐러 가야만 했다. 노군산은 맹수들이 많고 낮에도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누구도 접근하기 힘든 첩첩산중이라 귀중한 약재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왕복은 그 산에 입산할 것을 결심하고 나서 어머니와 상의를 해 억지로 허락을 받았지만, 어머니는 왕복이 결혼 후에 입산할 것을 조건으로 허락해 주었다.
왕복의 나이 20살이 되자 이웃마을 이씨의 딸과 결혼을 했다. 결혼 3개월 후에 왕복은 아내에게“나는 약초를 캐러 노군산에 입산을 하니 만약에 삼년이 지난 후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죽은 줄 알고 개가를 하시오.”라고 말을 남긴 뒤 입산을 했다.
입산 후에 아내는 매일매일 기도하며 오매불망 남편을 기다렸고 어느덧 해가 세번이나 바뀌었지만 남편의 소식은 전혀 없어 아내는 남편의 죽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지만 개가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왕복은 아내가 개가를 한 지 한 달이 지나자 집으로 돌아왔고 아내의 개가 사실을 알게 되어 슬픔을 감출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두 사람은 상봉을 하게 되었지만 서로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말없이 울고 나서야 왕복이 말문을 열었다.
“당신은 개가를 했지만 난 당신을 원망할 자격이 없소. 이 약을 당신에게 선물하리라.”라는 말을 남기고는 고향을 떠나 아주 먼 곳으로 가버렸다.
아내는 왕복이 떠난 후 밤낮으로 그리워했고 끝내 병에 걸렸다. 생리가 불규칙하며, 얼굴이 병자처럼 누렇고, 몸은 야위고, 머리가 어지럽고 현기증이 나며, 사지에 힘이 없었다. 매번 왕복이 선물한 약재 꾸러미를 볼때마다 왕복을 보고 싶은 생각은 더욱 간절했다. 그가 생각이 날 때마다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누지 못해 약재 뿌리를 씹기도 하고, 약재를 달여 복용하기도 했는데 이게 웬 일인가! 그의 얼굴에는 핏기가 돌고, 생리도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나머지 증상도 회복되었다.
이후 많은 여인들이 같은 약을 복용하여 여러 부인병이 낫게 되었다. 그리하여 부인과의 전용 약이 되었으며, 당나라 때의 시 가운데‘정당귀시우불귀(正當歸時又不歸)’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곧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것을 인용해‘남편이 당연히 돌아온다’는 뜻인 당귀를 사용하여 그 약초의 이름으로 쓰게 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에도 당귀의 유래를 찾을 수 있는데, 중국 명나라 때 왕용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왕용은 결혼한 지 일 년이 채 안 되었을 때 새색시를 남겨두고 약초를 캐기 위해 산으로 들어간 이후 소식이 끊겼다. 아내는 3년여 동안 남편을 기다리다 결국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개가를 했다. 그 후 그녀는 월경이 끊어지고 몸이 쇠약해져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병에 걸리게 되었는데, 때마침 산에서 돌아온 왕용이 캐온 약재를 얻어 달여 먹고 그녀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의 여자가 된 처지라서 왕용은‘마땅히 돌아올 사람은 돌아온다’는 뜻인‘장부당귀(丈夫當歸)’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아내에 대한 야속함이 서린 그 말은, 그 후 그가 사용한 약재에‘당귀’라는 이름으로 길이 남았다.
당귀의 또 다른 이름인 승검초(映尻遮)는 당귀의 효능과 관계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잦은 외침 때문에 많은 여인들이 사랑하는 임을 멀리 변방의 싸움터로 보내는 일이 많았는데, 이들 여인들은 사랑하는 임을 기다리며 당귀를 먹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몸이 튼튼해지고 피부도 아름다워져 사랑하는 임이 돌아왔을 때 맘껏 사랑을 나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귀를 먹어야만 사랑하는 임이 싸움터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귀를 먹으면 ‘임은 마땅히 돌아온다’는 뜻에서 당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남편이 당연히 돌아온단뜻의 '당귀'약초명의 유래
아주 먼 옛날에 왕복(往겖)이라는 정직하고 심성이 아주 착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늙은 어머니와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그의 집안은 조상대대로 약재를 캐며 연명해 왔었는데, 왕복의 대에 와서는 부근 산의 약재들이 점점 줄어들어 부득이 200리 밖의 노군산(老君山)이라는 깊은 산 속으로 약초를 캐러 가야만 했다. 노군산은 맹수들이 많고 낮에도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누구도 접근하기 힘든 첩첩산중이라 귀중한 약재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왕복은 그 산에 입산할 것을 결심하고 나서 어머니와 상의를 해 억지로 허락을 받았지만, 어머니는 왕복이 결혼 후에 입산할 것을 조건으로 허락해 주었다.
왕복의 나이 20살이 되자 이웃마을 이씨의 딸과 결혼을 했다. 결혼 3개월 후에 왕복은 아내에게“나는 약초를 캐러 노군산에 입산을 하니 만약에 삼년이 지난 후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죽은 줄 알고 개가를 하시오.”라고 말을 남긴 뒤 입산을 했다.
입산 후에 아내는 매일매일 기도하며 오매불망 남편을 기다렸고 어느덧 해가 세번이나 바뀌었지만 남편의 소식은 전혀 없어 아내는 남편의 죽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지만 개가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왕복은 아내가 개가를 한 지 한 달이 지나자 집으로 돌아왔고 아내의 개가 사실을 알게 되어 슬픔을 감출 수가 없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두 사람은 상봉을 하게 되었지만 서로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말없이 울고 나서야 왕복이 말문을 열었다.
“당신은 개가를 했지만 난 당신을 원망할 자격이 없소. 이 약을 당신에게 선물하리라.”라는 말을 남기고는 고향을 떠나 아주 먼 곳으로 가버렸다.
아내는 왕복이 떠난 후 밤낮으로 그리워했고 끝내 병에 걸렸다. 생리가 불규칙하며, 얼굴이 병자처럼 누렇고, 몸은 야위고, 머리가 어지럽고 현기증이 나며, 사지에 힘이 없었다. 매번 왕복이 선물한 약재 꾸러미를 볼때마다 왕복을 보고 싶은 생각은 더욱 간절했다. 그가 생각이 날 때마다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누지 못해 약재 뿌리를 씹기도 하고, 약재를 달여 복용하기도 했는데 이게 웬 일인가! 그의 얼굴에는 핏기가 돌고, 생리도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나머지 증상도 회복되었다.
이후 많은 여인들이 같은 약을 복용하여 여러 부인병이 낫게 되었다. 그리하여 부인과의 전용 약이 되었으며, 당나라 때의 시 가운데‘정당귀시우불귀(正當歸時又不歸)’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곧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것을 인용해‘남편이 당연히 돌아온다’는 뜻인 당귀를 사용하여 그 약초의 이름으로 쓰게 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에도 당귀의 유래를 찾을 수 있는데, 중국 명나라 때 왕용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왕용은 결혼한 지 일 년이 채 안 되었을 때 새색시를 남겨두고 약초를 캐기 위해 산으로 들어간 이후 소식이 끊겼다. 아내는 3년여 동안 남편을 기다리다 결국 가난을 견디지 못하고 개가를 했다. 그 후 그녀는 월경이 끊어지고 몸이 쇠약해져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병에 걸리게 되었는데, 때마침 산에서 돌아온 왕용이 캐온 약재를 얻어 달여 먹고 그녀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의 여자가 된 처지라서 왕용은‘마땅히 돌아올 사람은 돌아온다’는 뜻인‘장부당귀(丈夫當歸)’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아내에 대한 야속함이 서린 그 말은, 그 후 그가 사용한 약재에‘당귀’라는 이름으로 길이 남았다.
당귀의 또 다른 이름인 승검초(映尻遮)는 당귀의 효능과 관계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잦은 외침 때문에 많은 여인들이 사랑하는 임을 멀리 변방의 싸움터로 보내는 일이 많았는데, 이들 여인들은 사랑하는 임을 기다리며 당귀를 먹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몸이 튼튼해지고 피부도 아름다워져 사랑하는 임이 돌아왔을 때 맘껏 사랑을 나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귀를 먹어야만 사랑하는 임이 싸움터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귀를 먹으면 ‘임은 마땅히 돌아온다’는 뜻에서 당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