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는 내 첫사랑에게

쓰니2021.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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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하얗고 차분했던 너는 다른 남자애들처럼 뛰어놀기보다는 나와 소꿉놀이를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마다 엄마 아빠 흉내 내는 부부 역할이었던 것 같은데, 기억하려는진 모르겠다. 너를 유독 좋아하던 나는 네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는 얘길 들을 때마다 많이 슬퍼했던 것 같다.네가 빨리 나아서 나랑 다시 놀아주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었다. 네가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건 점점 커가면서 알았던 것 같다. 유난히 왜소한 체격에 밥을 먹은 뒤엔 항상 약을 먹어야만 했고, 며칠 간 병원에 있는다는 잦은 소식과 너와 절대 뛰어놀아선 안된다는 어머니의 말씀. 왜인지 모르게 널 보면 금방 부서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지켜줘야겠다는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네가 힘이 없다는 이유로 널 괴롭혔던 남자애들을 내가 물리쳐 주고 항상 내가 누나인 것 마냥 행동했었다. 그땐 그런 행동에 왜 정의감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나는 널 나약한 존재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이 되고 여름방학 동안 학원에만 치어 살다가, 개학식날 널 다시 보게 됐는데, 고개를 한참 들어야 네 얼굴이 보일 정도로 너는 갑자기 커져있었다. 그때가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넌 내가 지켜야만 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걸 느꼈던 것이. 그 이후로 널 보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했다. 변해버린 네 모습에 혼란스러워서 그땐 너에게 괜한 짜증도 냈었던 것 같다. 주변 여자애들이 너에 대해 관심을 갖는 얘기가 들리면 괜히 너에 대한 험담 아닌 험담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린 그렇게 사춘기에 접어들어서도 왠지 모를 유대감에 항상 함께 다니곤 했다. 등굣길에 네가 없으면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는데, 너도 그랬는진 모르겠다. 그러나, 중학교 때까지 줄곧 같은 학교를 다니던 너와 난 다른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다. 괜히 섭섭한 마음에 너와 같은 학교를 진학하는 친구에게 나 대신 널 잘 챙겨주라고 그렇게 당부를 해댔다. 집까지 같이 걸어가던 길에 나랑 다른 학교를 가는 게 섭섭하지 않냐는 너의 말이 아직도 떠오른다. 너도 섭섭해서 했던 말이었겠지만, 집도 가까운데 뭘 그리 아쉬워하냐며 난 괜히 담담한 척을 해댔다. 고등학교를 올라가니 너와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학교 가는 방향 조차 달라져서 네가 없는 등굣길도 익숙해졌다. 유달리 약했던 몸이 나빠지진 않았는지 걱정되었지만, 금새 잊고 내 삶을 살기에 바빴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집안사정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꽤나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했던 난 네 얼굴이라도 보고싶었지만, 왠지 모를 낯간지러움에 문자로 메세지만 주고 받았다. 나 서울 가니까 놀러오라고. 너는 언제나 그랬듯 담백한 말투로 알았다고 답했다. 그렇게 아쉬움만 남긴 채 이사를 가고, 유독 힘들었던 고삼과 재수까지의 수험생활을 세상과 단절된 채 지냈다. 학교에 합격하고는 만나지 못했던 인연들과 연락을 하고 만남을 가졌다. 너에게도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전화를 걸어 번호가 바꼈다는 얘길 들었을 때 이걸 어쩌나 싶었다. 너는 언제나 그래왔듯 sns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도 왜인지 인연이 닿아 연락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 동창들 근황을 묻고 답하던 중 내가 너의 소식을 묻게 되었다. 그 물음을 듣자마자 친구들은 하나같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너 아는 거 아니었냐고. 재수하느라 소식 들은 게 하나 없다는 나의 말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친구 한명이 네 소식을 전해주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이미 생을 마감했다고. 원래 있던 지병에 의한 돌연사였다고 했다. 난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거의 쓰러질 뻔 하였다. 갑자기 머리가 핑핑 돌고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너와의 추억이 머리 속에서 스쳐지나가면서 마음이 너무 아려왔다. 그날 이후 집에서 며칠을 벙쩌있었다. 네가 죽은지 1년도 넘게 모르고 있었다는 게 말이 안됐다. 그걸 모르고 아무렇지 않게 살았던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어린 나이부터 죽음이란 단어에 남다르게 생각해야만 했고, 건강한 삶에 대한 너의 욕구가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알았기에 더욱 슬펐다. 왜 세상은 그리 간절했던 너에게, 죄없는 너에게 그 많은 고통을 줘놓고선 목숨마저 앗아갔던 것일까.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그 순간 너는 얼마나 억울하고 허무했을까? 그저 부끄러웠던 마음에 서울 올라가기 전 마지막 인사 제대로 못해줘서 미안해. 아팠던 너 걱정 하나 못해주고 내 인생 신경 쓰느라 안부 하나 못물어봐줘서 미안해. 지금 생각해보면 넌 나에게 정말 소중하고 애틋한 존재였는데, 너에 대한 내 새로운 감정들을 모른 척 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