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아내와 나 그리고 그놈

그남자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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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남자와 그여자의 이야기

 

그남자의 이야기

오늘도 그냥 하루가 간 걸까?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막연한 불안감. 사람에 대한 배신감.

친근함 허탈감이 이제 어색하지 않은거 같다. 힘드니까 잊기위해 몰두하고, 위로받기 위해 자극적인 감각을 찾으려 하고, 어디서 부터어떻게 잘못된걸까? 우리도 행복하려고 만나고 사랑했는데 남들은 그져 그렇게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는데. 나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되었는데, 이제는 먼 남의 이야기 처럼 늦겨진다.

5년 전이었다.  그놈의 흔적을 아내의 핸드폰에서 발견한날이, 예전부터 그놈의 가족과 우리 가족은 서로 알고 있었기에,  이웃의 친숙한 안부인사인줄 알았다. 그놈의 아내와도 그정도 인사는

나도 하고 있었으니까?  인터넷 시대의 기록은 무서울정도로 한인간의 역사를 기록한다. 그리고 그 기록으 사실들은 본인에게도 타인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때도 있다. 솔직한 그들의 사랑의 속삭임이 한단어 한단어가 비수로 내 가슴에 박혀, 1초에 수천장의 사진을 연사하는것처럼 그리고 1초라는 시간의 한글자 한글자가

1시간의 느낌으로 올때는 두뇌가 멈춰 버리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솔직한 사랑의 글들이 아름다움이 아니라 강력한 비수가 될수있다라는걸 난 처음 느꼈다.

어디서부터 아내에게 그리고 무슨말을 어떻게 꺼내야 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아들이 있다. 결혼하지 15년차다. 이건 연애할때 헤어지는것과는 또 다른 게임이였다. 아내가 친숙하게 말을 건다. 오늘 하루는 어땠냐고, 무슨말을 해야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멍하게

아내를 쳐다볼 뿐이다.

우리는 고시공부를 할 때 만났다. 난 외교관이 되려 외무고시를 준비했고 아내는 재경직 공무원을 준비했다.  우리는 스터디 모임에서 만났고, 8년 어린 아내의 수수하지만 아름다운 모습에 첫눈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그녀는 그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져, 싱글이였고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남들이 하는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엔 서툰 마음의 표현으로 어떨때는 열적적으로 어떨때는 편안한 친구같이 사랑을 했고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고시합격이 아닌 서로의 배우자를 얻게 되었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고시생에 신분에서 덜컥 결혼을 하다 보니,  당장 어떻게 먹고 살고 어떻게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가는것에 대한 고민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둘다 금수저는 아니더라도 은수저 집안에 태어나 양가의 도움으로 집도 장만하였고,  아내와 나는 남들이 부러워 한는 직장에 취직을 하여 맞벌이 부부가 되었다.

결혼은 현실이다. 사랑의 풋풋함과 분홍빛이  아니라 부부는 딱딱한 현실과 분홍빛 보다는 원색인 빨간색의 생활을 해야 된다. 한달한달 관리비도 내야되고, 카드값도 내야되고, 할인상품사러 코스트코 카드도 만들고,  미래를 위해 남들 다하는 적금도 하게 되고 워렌버핏이 된것처럼 주식도 해본다.

운이 좋아 돈이 모였고, 인플루언서 인스타 그램처럼 우리도 잘살고 있다라는걸 사진으로 올리곤 했다. 적당한 동네에서 적당한 아파트에 적당한 외제차 적당한 휴가처를 찾아 여행도 가고 맛집도 찾아 다니며 그런 신혼을 보냈다. 우리는 행복했고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부부가 되어 같이산다는건 서로의 가정에서 자라온 습관들의 충돌이다. 그 여자의 설걷이 방법 그남자의 설걷이 방법, 그여자의 빨래하는 법과 그 남자의 빨래하는 법은 서로의 다른 외국어처럼

통역이 필요할 때도 있엇고 아예 서로의 사전에 없는 단어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해지려 아니면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아니 아내가 더욱더 나에게 익숙해지려 나는 아내에게 길들여 지려 노력했다. 아내라는 여자의 위대함을 느꼈을 때가 이맘때이다. 여자란 포용할수 있는

능력이 남자보다 앞선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신혼이란 시간도 지나, 서로에게 감정에 익숙해지고 생활에 익숙해 졌을때쯤, 열정적 사랑보다는

서로의 익숙함에서 주는 편안함이 삶의 안정감을 주었다. 남자에게는 결혼이 좋은 선택이다.

요즘 남자도 가사분담을 한다지만, 집안일의 대부분은 아내에 손길이 깃들어 져 있다.

그여자는 그남자의 삶의 패턴을 파악했고 받아 들였다. 그리고 그남자는 그여자가 주는 편안함에

길들여져 간다. 

세월이 지나면, 그 고마움을 당연함으로 받아들인다. 세상에서 다른이가 배푸는 선행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 있다는걸 사람들은 망각한다. 길들여진다는건 세상에 고마운것들을 망각하게 만든다는 말일수도 있다. 어느새 나는 아내에게 길들여지고 말았다.

편안함은 직장생활의 탄력감을 주었고. 편안함에서 오는 안정감은 직장생활 성공의 밑바탕이 되었다. 수컷이란 암컷이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 이성적이다.  이 무렵 나는 성공이라는 단어에 매몰되게 되었다. 수컷들은 싸우고 싸워 내영역을 만들고, 그걸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매달리며, 몰두한다. 특히나 그 수컷옆에 지킬 암컷과 암컷과의 새끼가  있다면, 그리고 그 성공은 세속적이며 물질적인 결과물로 귀결된다  자본주의라는 세상에선.

 

결혼한지 1년쯤 지났을까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아내는 산부인과에서 가임시기를 확인했고, 신혼이 지난 우리는 서로의 강렬한 끌림 보다는 새로운 생명을 남기기 위해 사랑을 나누었던 것 같다. 부모님 세대에는 살다보니 아기가 생긴다고 하던데 우리세대는 모든걸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계획된 우리의 노력은 쉽게 결과를 낳지 못했다

유명하던 한의원도 가서 보약도 먹어보고,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도 받아봤지만 새생명은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계획된 모든일들이 그렇듯이 계획대로 되어가지 않으면 인간은 지쳐간다. 아내와 나도 이때즘 지쳐가기 시작했다. 사랑해서 하는 사랑의 행위가 아닌 핸드폰의 알람처럼 가임기의 시계가 사랑행위를 할때를 알려주면, 우리는 기계적으로 사랑을 나누었다. 이런 행위의 반복은 아내도 지쳐가게 만들었다. 매월 하는 생리가 멈추지 않으면 아내는 실망하고 지쳐갔다. 반복된 실망감은

서로의 감정의 생채기를 내었고 그런 생채기는 서로에게 날카로운 말이나 제스쳐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소한것도 예민하게 서로 반응했고 서운한 감정과 서로의 불만으로 표현되어 졌다,

꽃은 마음에 꽃이 있을 때 아름답게 보인다고 누군가가 이야기 했다. 예전에는 봄에 피는 벗꽃이

바람에 흩나릴때의 향기를 눈으로 볼수 있었다. 그때는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가 아닌 산소를 내 뱉는 기분이였다.  하지만 임신의 실패가 반복될때에는 벗꽃이 눈에 들어오는게 아닌 다른 부부가 끄는 유모차가 귀로  들리기 시작했고. 엄마와 아빠들과 같이 걷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로 들리기 시작했다. 아내와 남편이라는 말보다는 아빠와 엄마라는 말이 눈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갓태어난 애기들의 칭얼거림이 눈으로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말이 없어졌다. 서로에게.

 

 

어떤 시련이 누군가에게 다가오면 사람들은 새출발이나 새로운 계기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환경을 찾거나 새로운 무언가를 갈망한다. 당시 회사에서는 싱가폴 지사에 주재원을 발령하는 공고가 계시되었다. 그 당시 차장이였던 나는 외국에서 공부한덕에 지원하면 선발되겠다라는 생각을 했고, 선발되었다. 서로 지친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출발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당시 아내는 반복된 임신실패로 직장을 휴직할까 고민중이였다.

조심스럽게 나는 아내에게 싱가폴 발령을 제안했고 아내는 고민없이 떠나자고 했다.

서로에게 우리는 새로운 계기와 환경이 필요했다고 생각했고. 새로 닥쳐올 미래에 대해 들떠 있었다. 사람들이 준비를 할 때 더 흥분하고 흥미로워 한다. 보통 결혼을 하면 결혼을 준비하는 것이 아닌 결혼식 준비에 더 정성을 들인다. 스드메.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커업 . 결혼식장. 페백등.

대한민국의 결혼식은 둘만의 축복된 행사이지만 두 낯선가정의 만남이다. 그리고 그걸  준비하는 과정들은 고차원의 방정식 같다.

새로운 환경의 이주는 결혼식 준비와 비슷했다.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것 보다 새로운 삶의 형식과 절차에 대하여 흥분했던 것 같다. 새로운 아파트 구하기, 새로운 동네의 환경이 어떠한지 준비하는 과정들은 오래간만에 공통 관심사를 가지게 해주었고, 강한 유대감을 서로에게 주기 시작했다.

우리는 새로운 아파트의 평면도를 찾아  어떤 침대와 어떤 식탁 어떤 소품들과 어떤 블라인드가

어울릴까를 생각하며 들떠 있었고, 이사가 끝날즈음에 거실과 침실과 부엌은 이케아 카다로그처럼 되어있었고 신용카드의 고지서에는 평소보다 0자가 더 붙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임신실패로 인한 허털감이나 감정의 매마름의 허기가 새로운시작의 흥분으로 인해 소비의 폭식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사람이 고독하거나 외롭거나 힘들 때 야밤에 달콤한 야식을 찾듯이.

허기졌던 야밤 폭식의 포만감은 아침의 더부룩함으로 남듯이, 처음 이쁘게 꾸몄던 새로운 우리의 보금자리는 시간에 흐름에 따라 무더져 갔다. 일상은 감동을 반감시키며 영속시키지 못한다. 익숙함은 편하지만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 처럼.

새로운 환경은 생각보다 녹녹치 않았다. 회사는 나에게 싱가폴이란 휴양지로 보낸게 아니라 무덥고 습한 동남아의 일터로 보낸것이다. 이국에서의 여행은 매혹적이며 새로운 유혹을 주지만

이국에서의 생활은 환경이 바뀐 생계의 연속이며,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이다.

가족과 친구를 떠나온 우리는 외로웠다. 아니 새로운 생활의 적응이 또 다른 피곤함과 불편함을 만들었다.

싱가폴로 오기전, 우리는 서로에게 임신에 대해서 당분간 고민하지 말자고 했다. 우리가 처음 만날 때 처럼 서로에게 충실하고 솔직하고 열정적으로 대하자고 했다. 새로운 환경의 준비와 새로운 환경은 어느정도의 삶의 텐션을 주었고, 주말 늦은 아침에 딤섬브런치와 오후의 애프터눈 티는

어린아이가 태어나 쵸콜렛을 처음 먹을때 처럼 엄청난 자극이 되어  세상의 첫 달콤함과 같았다

칠리크랩의 자극적이면서 시며 달콤한 소스는 서로의 혀에게 새로운 향연을 선사해 주었다.

아내와 나는 서로 우리의 선택이 나쁘지 않았고 우리는 잘될수 있을거라 이야기 했다.

하지만 새로운 신선함은 시간에 지남에 따라 일상과 익숙함으로 바뀌어 간다. 아파트에 채워 넣었던 그 가구들 처럼.

그런 우리는 어느 외국 생활 처럼 한인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한국교민 주재원 생활은 종교단체가 친목의 장소가 된다. 일요일에 교회를 나가 한국인들을 만나고, 정보를 교환하고 어디가 학교가 좋은지 어디서 한국식재료를 살수 있는지 주변 맛집은 어디인지 주변 휴가지는 어디가 좋은지, 아내와 나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는 나는 일터에서 여러 사람을 만날수 있었지만 일을 하다 휴직을 한 아내는 막상 직장을 나가지 않으니 외로움을 많이 탓다. 교회는 아내에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수 있는 좋은 장소 였다.

이국에서 주재원의 삶이란 여러 국가의 사람들과의 만남도 있지만 다른 기업들에서 파견된 주재원과의 교류도 중요하다.  주재원은 일상적인 업무도 수행해야 되지만 본사에서는 출장자들을

살뜰히 채기는것도 중요한 업무중 하나다. 어짜피 주재원이란 언제가는 돌아가야 되니, 본사의 담당자들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본사로부터 잊혀지지 않게 출장자들을 살뜰히 챙기는 의전이 필요하다. 이런 업무에서 타기업의 먼저온 주재원들과의 교류는 필수 이며, 정보와 조언을 얻으려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그놈을 만난것도 그 이유 였다. 아내와 나보다 3년전 싱가폴에 온 그는 나보다 3살이 어렸다. 건장한 체격에, 잘생긴 얼굴 그리고 아름다운 아내 교회행사로 인해

간단한 눈인사로부터 시작하여, 주재원 미팅에서 그를 만나 부부동반으로 식사도 하고 골프도 치는 사이가 되었다. 와이프도 외롭던 차에 친절한 부부의 만남이 싫지는 않은 모습이였다.

아내는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중학교때 혼자 미국으로 유학가서 고등학교때 돌아와 그리 정을 붙일만한 교우관계가 있는 사람도 아니다. 대학때도 직장을 다닐때도 학부모가 됬을때도, 주위사람들과 왕래를 하는 사람이 아니였다. 친한친구 몇 명만 소통하며 이야기 하는 정도였다

그놈의 부부와의 교류떄도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었다. 몇번의 부부동반 식사나 골프를 칠때도

먼저 살갑게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눈치를 나에게 주었다.

다만 딱히 만날사람이 없는 이국에서는 상상이상으로 낯선이들과 친해진다. 고립된 환경이 사람의

친목감을 높혀 주듯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아내도 그놈 부부에게 마음의 경계를 풀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