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직장에서 단박에 결론이나 해결이 되지 않은일이 생기면, “생각해보자”나 “시간을 두고 보자” 이렇게 이야기 한다. 그리고 당장 해결되지 않을 악재가 생기면 “일희일비 하지말자” 라는 말을 한다. 난 이런 단어가 회피이자 위로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나 조직이나 당장 해결할수 없는 문제는 회피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당장 해결할수 없는 악재가 발생했을 경우 서로 위로 하며 절망적이지 말자 생각한다.
나도 그랬던거 같다 그 날이후 몇 달이 지나갔다 여전희 우리 부부는 한지붕안에 살고 있다. 아내가 울면서 안방을 나간후 다음 월요일 나는 평상시 처럼 아내와 같이 같은 차를 타고 회사에 출근했고
또 퇴근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내는 의식적으로 자신의 동선이나 자신이 누구를 만났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문자로 보내왔다. 사실 난 그때 아내가 무생물 처럼 보였다. 움직이는 로톳 청소기나 아니면 AI인형 같아 보였다. 우리는 그 날이후 난 아내에게 필요이상 대화를 하지 않았다
아들 앞에서만 아내에게 따듯한 말을 하는 연기를 했을 뿐. 아내는 처음에 그런 따뜻한 말투에 안도하는 것 처럼 생각했으나 나의 의도를 알고는 실망했다. 아들 앞에선 우리는 쇼원도우 부부 아니 부모 였다.
솔직히 지쳐갔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나 생각이 되었다. 아들앞에서의 부모로써의 대화 말고는 우리는 집에서도 문자로 소통했다. 답답하고 숨막히는 시간들이 그날이후 몇 개월 동안 계속됬다.
몇 개월 후 난 서재에서 업무로 인해 자료를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있었다. 인테넷에 검색항목이라는 기능은 참 무섭다. 불화수소라는 불자를 치자 불륜극복이라는 최근 검색어가 나왔다. 아내였다. 나는 아내가 검색한 흔적을 추척해 봤다. 불륜 극복 사과 행복해지는 법…….그리고 검색했던 사이트를 읽어보기 시작했다. 눈물이 나왔다. 아내를 용서하는 눈물이 아니라. 불륜에 대한 극복한 사례나 배우자를 용서했던 사례를 읽어봤을 때 눈물이 나왔다.
다 내 이야기 인 것 같고 다 내 고통인거 같았다. 다시 생각해봤다 아내를. 아내는 나에게 미안하다고만 했지 왜 그랬는지 왜 그놈이였는지 말하지 않았었다. 사실 난 그렇게 아내에게
닥달하며 몰아세우면 물어보지 않았었다. 갑자기 마음 한구석에서 이혼대신 용서라는 단어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용서를 할려면 이해를 해야된다. 왜 아내가 그랬는지 왜 그놈이였는지.
출근할 때 우리는 차안에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아내만 차에 내리면서 “갈께” 라는 말만 나에게 했다. 대화는 간결했다. 갈께라는 말이 그날은 가고 싶지 않아 라는 의미로 들렸다. 몇주후 난 아들이 주말 피아노 학원을 갔을 때, 아내에게 서먹하게 말을 걸었다. “왜 그랬어” 몰아세우는 말투가 아니라 정말 알고 싶어하는 어투로 차분하게 이야기 했다. 아내는 당황했다. 필요한 말 이외에는 문자로 하는 남편이 말을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질문으로 했으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난 아내보고 앉아보라 했다. 처음 그놈과 그런건 술김에 예전 싱가폴 생각에 그랬다고 했다 그건 정말 실수였고, 자신이 생각해도 수치스럽다고 했다. 난 그 말을 믿었다. 그놈이 이야기 했던말도 그랬으니까. 그놈은 우리가 만난 다음날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죽을죄를 지었다. 용서를 해달라고 했다 난 답장을 하지 않았다. 나를 좀 내버려 두었으면 했다. 용서란 가해자의 시계로 움직이는 단어가 아니다 피해자의 마음이 추스려 지고 피해자의 마음속 시계가 용서를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야 용서는 성립된다.
아내는 첫 불장난 이후 만난 이유에 대해선 머믓머뭇 거렸다. 그럼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는 그놈 사랑해서 였니 라고 내가 물었다. 그건 아니라고 했다. 난 이왕 이렇게 된거 맘편하게 다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내는 자신을 여자로 봐주는 사람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난 그때 어이없게도 “너 여자야 그럼 니가 남자야” 라고 나의 뇌가 아닌 말초신경이 아내에게 대답을 한거 같다.
외로웠다고 한다. 출산이후 스킨쉽이 없어진것도 외로웠고, 출산이후 서로의 잠자리가 뜸해진것도 외로웠다고 한다. 그래서 직장을 다니고 싶었고 자신을 찾고 싶었다고 한다. 나에게 너무 의존적이고 싶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하던데. 이럴때는 슬기로운 결혼생활을 가르켜 주는 학교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해서 졸업하고 졸업장주는 슬기로운 결혼생활 학교.
아이가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인다. 더 이상 우리는 대화를 할수 없었고 다시 서먹함으로 돌아갔다.
(7)아내와 나 그리고 그놈
보통 직장에서 단박에 결론이나 해결이 되지 않은일이 생기면, “생각해보자”나 “시간을 두고 보자” 이렇게 이야기 한다. 그리고 당장 해결되지 않을 악재가 생기면 “일희일비 하지말자” 라는 말을 한다. 난 이런 단어가 회피이자 위로라고 생각한다.
인간이나 조직이나 당장 해결할수 없는 문제는 회피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당장 해결할수 없는 악재가 발생했을 경우 서로 위로 하며 절망적이지 말자 생각한다.
나도 그랬던거 같다 그 날이후 몇 달이 지나갔다 여전희 우리 부부는 한지붕안에 살고 있다. 아내가 울면서 안방을 나간후 다음 월요일 나는 평상시 처럼 아내와 같이 같은 차를 타고 회사에 출근했고
또 퇴근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내는 의식적으로 자신의 동선이나 자신이 누구를 만났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문자로 보내왔다. 사실 난 그때 아내가 무생물 처럼 보였다. 움직이는 로톳 청소기나 아니면 AI인형 같아 보였다. 우리는 그 날이후 난 아내에게 필요이상 대화를 하지 않았다
아들 앞에서만 아내에게 따듯한 말을 하는 연기를 했을 뿐. 아내는 처음에 그런 따뜻한 말투에 안도하는 것 처럼 생각했으나 나의 의도를 알고는 실망했다. 아들 앞에선 우리는 쇼원도우 부부 아니 부모 였다.
솔직히 지쳐갔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나 생각이 되었다. 아들앞에서의 부모로써의 대화 말고는 우리는 집에서도 문자로 소통했다. 답답하고 숨막히는 시간들이 그날이후 몇 개월 동안 계속됬다.
몇 개월 후 난 서재에서 업무로 인해 자료를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있었다. 인테넷에 검색항목이라는 기능은 참 무섭다. 불화수소라는 불자를 치자 불륜극복이라는 최근 검색어가 나왔다. 아내였다. 나는 아내가 검색한 흔적을 추척해 봤다. 불륜 극복 사과 행복해지는 법…….그리고 검색했던 사이트를 읽어보기 시작했다. 눈물이 나왔다. 아내를 용서하는 눈물이 아니라. 불륜에 대한 극복한 사례나 배우자를 용서했던 사례를 읽어봤을 때 눈물이 나왔다.
다 내 이야기 인 것 같고 다 내 고통인거 같았다. 다시 생각해봤다 아내를. 아내는 나에게 미안하다고만 했지 왜 그랬는지 왜 그놈이였는지 말하지 않았었다. 사실 난 그렇게 아내에게
닥달하며 몰아세우면 물어보지 않았었다. 갑자기 마음 한구석에서 이혼대신 용서라는 단어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용서를 할려면 이해를 해야된다. 왜 아내가 그랬는지 왜 그놈이였는지.
출근할 때 우리는 차안에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아내만 차에 내리면서 “갈께” 라는 말만 나에게 했다. 대화는 간결했다. 갈께라는 말이 그날은 가고 싶지 않아 라는 의미로 들렸다. 몇주후 난 아들이 주말 피아노 학원을 갔을 때, 아내에게 서먹하게 말을 걸었다. “왜 그랬어” 몰아세우는 말투가 아니라 정말 알고 싶어하는 어투로 차분하게 이야기 했다. 아내는 당황했다. 필요한 말 이외에는 문자로 하는 남편이 말을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질문으로 했으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난 아내보고 앉아보라 했다. 처음 그놈과 그런건 술김에 예전 싱가폴 생각에 그랬다고 했다 그건 정말 실수였고, 자신이 생각해도 수치스럽다고 했다. 난 그 말을 믿었다. 그놈이 이야기 했던말도 그랬으니까. 그놈은 우리가 만난 다음날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죽을죄를 지었다. 용서를 해달라고 했다 난 답장을 하지 않았다. 나를 좀 내버려 두었으면 했다. 용서란 가해자의 시계로 움직이는 단어가 아니다 피해자의 마음이 추스려 지고 피해자의 마음속 시계가 용서를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야 용서는 성립된다.
아내는 첫 불장난 이후 만난 이유에 대해선 머믓머뭇 거렸다. 그럼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는 그놈 사랑해서 였니 라고 내가 물었다. 그건 아니라고 했다. 난 이왕 이렇게 된거 맘편하게 다 이야기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내는 자신을 여자로 봐주는 사람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난 그때 어이없게도 “너 여자야 그럼 니가 남자야” 라고 나의 뇌가 아닌 말초신경이 아내에게 대답을 한거 같다.
외로웠다고 한다. 출산이후 스킨쉽이 없어진것도 외로웠고, 출산이후 서로의 잠자리가 뜸해진것도 외로웠다고 한다. 그래서 직장을 다니고 싶었고 자신을 찾고 싶었다고 한다. 나에게 너무 의존적이고 싶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하던데. 이럴때는 슬기로운 결혼생활을 가르켜 주는 학교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해서 졸업하고 졸업장주는 슬기로운 결혼생활 학교.
아이가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인다. 더 이상 우리는 대화를 할수 없었고 다시 서먹함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