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같이

000202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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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철학)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같이』

라고 말한다.

 

만일 당신이 죽었고 또 죽은 것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세상 사람들과 같이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위치는 바로 죽음이다.

 

만일 당신이 죽지 않았다면 왜 침례를 받았는가?

사람은 먼저 죽는가 아니면 먼저 장사되는가?

물론 먼저 죽고 그 다음 장사한다.

 

만일 장사가 먼저 있고 죽음이 다음이라면 이것은 생매장이다.

 

오직 죽은 사람만 장사할 수 있다.

여러분이 받는 침례는 바로 매장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가서 장사지내는 것이다.

함께 죽은 것은 사실이다.

 

장사는 우리 자신을 묻는 것이다.

죽음은 주님이 나를 그분의 죽으심 안에 포함시킨 것이고,

 장사는 내 자신이 죽은 사실을 보고 알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나를 장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죽은 사람임을 보았기 때문에

가서 자신을 매장시키려고 침례받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죽고 장사되었다면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같이 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금욕주의를 실행하는 사람은

여전히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는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라고 말한다.

이것이 금욕주의자들의 주창하는 바임을 기억하라.

 

그들은 많은 것들을 맛보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붙잡지 못하며 만지지도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 속에 있는 정욕을 두려워하여

많은 것들을 붙잡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며 맛보지 못한다.

 

골로새 지방에서는 금욕주의가 상당히 심했다.

그들 가운데에는 많은 규례들이 있었다.

그들은 정욕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물질과 정욕을 분리시키기 위해

자신의 정욕을 격동케 하는 것들에 대해

붙잡지 말고 만지지 말고 맛보지 말며, 듣지 말라는 등의

엄격한 규례들을 정해 놓았다.

 

정욕과 물질을 분리함으로써

욕심을 극복하려는 것이 당시의 철학이었다.

그들은 만질 것들이 없다면 욕심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은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보여준다.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같이 의문(금욕의 규례들)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런 규례들을 이행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만일 당신이 이미 죽은 사실을 믿었다면

어찌 금지할 어떤 것을 구하는가?

당신은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에

붙잡지 말고 맛보지 말며 만지지 말라는 규례들을 이행하는 것이다.

 

금욕주의는 아직 죽지 않은 사람에게나 필요하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금욕주의는 불필요하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우리의 육체와 정과 욕심을 이미 십자가에 못 박았다(갈 5:24).

만일 당신이 물질에서 탈피하고 정욕적인 사상을 피함으로써

자신을 묶으려 한다면

당신을 죽지 않은 위치에 두는 것이지

그리스도인의 위치에 두는 것이 아니다.

 

죽지 않고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고

자신을 십자가 안에 포함시키지 않은 사람도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몰라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죽은 교리를 전하고 있지만

함께 죽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함께 죽은 것은 우리에게 하나의 사실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함께 죽기를 추구하고 있는데

우리는 함께 죽은 것이 우리의 종착지가 아닌 기점임을 보아야 한다.

함께 죽는 것을 종점으로 삼아 추구하는 것은 신비파의 행위이지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니다.

함께 죽은 것은 우리의 출발점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만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았다면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어느 누구도 함께 죽는 것을 추구할 수 없다.

함께 죽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요

그 안에는 빛이 조금도 없다.

 

만일 사람이 빛을 얻어 함께 죽은 진리를 보았다면

다만 찬미할 뿐, 그것을 추구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주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을 볼 때

추구하지 않고 다만 찬미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으로서

세상의 철학과 금욕의 모든 규례들에서 해방된 것을 보여준다.

이에 관한 비유를 하나 들어보자.

 

가령 당신이 도둑질을 하던 어떤 사람을 무덤 속에 묻었다 하자.

무덤 앞에서 당신은 그가 다시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함께 죽은 사람은 도둑질에서 해방되었을 뿐 아니라

도둑질하지 말라는 명령에서도 해방되었다.

 

말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이 되었다면

당신은 말 많은 데서 해방된 것이다.

 

오늘 우리가 죽지 않았다면 금욕주의는 필요하다.

만일 그리스도가 이미 우리를 못 박았다면

금욕주의는 너무 늦게 온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세상 철학에서 해방된 나는 또한

세상의 모든 금욕주의에서도 해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