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사고로 머리를 다쳐서 부모도 모르고 혼자서 자란 나보다 여섯 살 아래 손위 동서 형님....
자란 환경 때문에 형님은 서른셋 이라는 젊은 나이인데도
안타깝게 글을 하나도 모르는 문맹입니다.
왜 내가 형님을 두고도 어머님 생신 때마다 김치서부터 온 같 것을
다 준비해서 아이스박스에 챙겨 가는지...
내가 준비해가지 않으면 어머님께서는 당신 생신에
친구들과 동네 분들을 초대하기위해 당신 손으로 김치를 담그고
음식을 준비해야합니다.
그래서 명절 때도 미리 내려가야 하지 않으면 안 되지요.
어머님께서는 당신이 아들 내외를 모시고 산다고 하십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남편은 시골에 내려갈 일이 없을 거라고
가끔씩 이야기를 합니다.
엄마가 없는데 무슨 재미로 누구를 보러 가냐고 하면서...
아주버님이 이젠 좀 정신을 차리시고 가족을 위해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술담배 많이하는 아주버님이 혹시 어떻게 되면
어린 두 조카들과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어린 형님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머님이 안 계신 시골집은 상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7살이 된 큰 조카가 예비소집일 이었는데 조카는 젊은 엄마 대신에 일흔이 넘은 할머니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갔습니다.
형님은 문맹이기에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지금도 어렸을 적 머리를 다친 후유증인지 보통사람 과는 어딘지 모르게 차이가 납니다.
그러하기에 일흔을 넘기신 어머님은 어린 조카의 어머니가 되어야했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유치원 입학하게 되는 조카를 위해 크레파스, 색연필, 싸인펜, 가위, 풀, 셀로판테이프, 스케치북을 사서 견출지로 크레파스며 색연필, 싸인펜에 일일이 하나하나에 조카의 이름을 써서 붙이고 떨어지지 않게 그곳을 또 투명테이프로 한번씩 꼭꼭 휘감아 우체국에 가서 소포로 부쳤습니다.
물론 가위며 풀,스케치북에도 다 조카 녀석의 이름을 써서 붙혔지요. 그리고 남은 견출지를 큰 것 작은 것 몇 장을 함께 넣어서 보냈습니다. 혹시 필통이며 다른 학용품을 샀을 때 내가 한 것처럼 이름을 써서 붙여주라고 보낸 거랍니다.
내 생각에는 아주버님이 학교 다닐 때는 그런 것이 없었으니 처음으로 유치원 입학시키는 아들 녀석에게 무얼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모를 것 같았지요.
왜 나는 누구를 위해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을까요. 조카를 위해서..형님 내외를 위해서...아니요... 어머님을 위해서랍니다.
언젠가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내가 작은 녀석의 싸인펜에 견출지로 하나하나 이름을 써서 붙이는 것을 보시더니 어머님은 깊은 관심을 기지시고 바라보시며 물으셨지요.
얘 애미야... 그건 그렇게 일일이 다 이름을 써야하냐..라고 물으시는 어머님께
예~~ 어머님...이렇게 해야지 잊어버려도 이름보고 찾아주고
또 선생님께도 보시고 이 아이는 집에서 부모가 많이 신경을 써주는 아이구나..라고 생각하거든요.
늘 우리 집에 오시면 며느리가 손주 녀석들 돌보는 모습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떼시지 않고 지켜보시는 어머님..
그 모습은 마치 내게 아이들 돌보는 모습을
배워서 가시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얘 어멈아~~하루 종일 잠시도 쉴 틈이 없구나..이제 좀 앉아서 쉬어라.. 하시면서도 시골 손주들은 누가 살뜰히 돌보나 싶어 걱정을 하시며 이내 한숨을 몰아쉬시는 어머님..
그때 저는 어머님 얼굴에 잠시 근심스러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것을 보았었지요.
어머님은 제게 대놓고 말씀은 안하셨지만 유치원 들어가는 조카에게 그렇게 해 줄 사람이 없는 게 마음에 걸리셨던 게지요...
어린 손주 녀석이 걱정스러우셨던 것입니다.
설에 나는 조카 녀석의 학용품을 준비해가고 싶었는데 바빠서 정신이 없어 잊어버리고 말았었습니다.
16일 날 보통우편으로 부친 그 소포는 우체국 직원이 삼사일 후에나 들어간다고 했었는데 어찌된 건지 그 다음날인 17일에 벌써 도착을 했나봅니다.
그날밤 시조부님 기일이라서 큰 녀석에게 할머니께 전화해서 얘기한 후에 엄마 좀 바꿔줘라 했더니..
큰 녀석은 전화를 해서는 곧바로 내게 전화기를 가지고 옵니다. 할머니가 얼른 엄마 바꾸래...하면서 말이예요.
저는 전화기를 들고 어머님 오늘 할아버지 제사인데 못 내려가서 죄송해요..라고 말하니
얘 어멈마 오늘 소포 잘 받았다..고맙다 ..
어머님은 제가 하는 말은 듣지도 않으시고 소포 잘 받았다는 말씀만 하십니다.
큰 걱정거리를 해결하신 듯이 전화기를 타고 들리는 어머님의 목소리는 밝았습니다.
설 쇠고 며칠 후에 어머님은 남편과 나 그리고 큰 녀석까지 운세를 보시고 열 두 달치 운세를 쓴 종이와 부적을 함께 등기로 부쳐주셨습니다.
그때 전화를 드려서 어머님이 보내주신 부적 잘 받았어요.....라고 했더니 그래... 애비 차에도 넣고 지갑에도 넣어줘라..
그리고 올해는 애미 니가 삼재가 들어서 부적을 두 개 썼으니 지갑에 잘 넣고 다녀야한다..비싼거다.
그런 어머님께 저는 농담을 한마디 던졌습니다. 어머님~~이거 얼마 줬는데요? 제가 어머님께 부적 값 드려야해요? 하하~~
어머님은 큰 녀석의 운세도 보셨습니다. 작은 녀석은 아직 10살이 안 넘어서 못 본다더라...라고 하시면서..
1월 달에 부부동반으로 필리핀 여행갈 때 어머님께서는 우리 집 녀석들을 봐 주신다며 오셨습니다.
집 걱정은 하지 말고 재미있게 잘 놀다 오너라...하시며 제게 건네주신 20만원.. 만 원권 10장과 수표 한 장...
여행갈 때 넣어가지고 갔지만 쓰지 않았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어머님은 내게 맡겨두셨던 설을 넘기면 만기되어 찾는 통장을 두 개 가지고 내려가셨지요.
여행 짐이 어느 정도 정리된 후
나는 어머님께서 주신 수표를 우연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 수표에는 신기하게도 이곳 내가 사는 부개동지점에서 발행한 수표이고 발행 날짜는 지난해 6월 25일이었습니다.
저는 이내 짐작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수표는 바로 지난해 어머님 생신 때 내려가서 생신해드리고 올라오며 어머님께 친구 분들과 술 한 잔 하시라며 내가 어머님께 드렸던 수표였지요.
어머님께 전화를 드려서 수표 얘기를 했더니 애 어멈아~~타 지역 수표는 그냥 통장에 넣으려고 해도 수수료를 달라고 하더라...
어머님은 몇 푼의 수수료가 아까워서 수표를 통장에 넣어
저금도 못 하셨던 것입니다.
나는 그런 어머님께 어머님~~ 그래서 그때 수표를 지금까지 두셨다가 도로 저한테 온거예요? 하하하~~~
어머님 그럼 다음부터는 그냥 옥천에서 물건사실 때 쓰세요..그럼 손해 보는 것 없거든요..라고 말씀드렸지만
다음부터는 어머님께 꼭 현금으로 드려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답니다.
평소에는 택시 값도 아까워 못 타시는 어머님이 늘 우리에게 쓰시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집에 다니러 오시면 두 손주 녀석들에게 3만원이든 5만원이든 똑같이 나누어 주시는 어머님..
어머님께서는 작은 손주 녀석이 욕심이 많아서 형아와 차별해서 주면 싫어한다는 걸 알고 계시는 유일한 분이시지요.
큰 녀석이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모으기 시작한 두 녀석들의 통장에 지금은 각각 이백만원이 넘는 돈이 쌓여있습니다. 세뱃돈, 용돈, 돼지 저금통의 동전...등등 녀석들이 모은 돈은 남편이 모두 녀석들 통장에
꾸준히 저금을 시켜준 결과지요.
그래서 엄마아빠는 가난한데 녀석들은 부자랍니다. 녀석들의 통장 속에는 할머니께서 주신 돈이 가장 많이 들어있겠지요. 어머님은 그런 녀석들의 통장을 보여 드리니 흐뭇하고 놀라워했습니다. 절약이 몸에 베인 할머니 눈엔 손주 녀석들이 대견스러웠나 봅니다.
어머님은 또 제게 소중히 모으신 통장을 두개 맡겨두실 겁니다. 아주버님 친구 한 분이 은행에 근무하는 사람이 있어 무심코 아주버님이 다 알고 계신 어머님 통장..
어머님은 그 통장을 애지중지 하시지요..
저는 번거롭게 통장을 가지고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그냥 시골 마당 뒤켠에
비닐봉지에 넣어서 묻어 두라고 어머님께 말씀드렸었지요.
그랬더니 어머님께서는 그러면 나 죽으면 어쩌냐?
니 큰애비가 다 찾아 쓰라고?
어머님 그냥 두죠 뭐..아주버님이 찾아 다 쓰시던지 말던지..
그냥 땅속에서 썩든지..말든지..
저는 몰라요..
우린 어머님 돈 필요치도 않아요...욕심도 없구요..
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했었습니다.
나는 어머님께서 힘들게 한 푼 두 푼 모으신 돈이
돈으로 보이질않습니다.
아끼시고 절약하시며 평생을 두고 모아온 어머님의 땀방울이지요.
어머님은 몇 년 전에 제게 이러셨지요.
애미야..
나 그냥 이돈 큰애비하고 애비한테 나눠 줄란다.
그러시는 어머님께 어머님 그냥 가지고 계세요.
어머님께서 가지고 계시면 한푼이라도 더 붙지만 나눠주면 다 흐지부지 써서 없어지고 말아요.
깊어가는 설날 밤 고부간에 술 한 잔 나눈 이야기 속엔...
..
깊어가는 설날 밤 고부간에 술 한 잔 나눈 이야기 속엔...
어머님 생각을 하면 눈시울부터 뜨거워지는 건 왜인지...
지난 설날 밤에 저는 어머님과 마주앉아 술 한 잔을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픈 이야기를 해야 하기에 이곳에 글을 올린다는 게 많이 망설여졌습니다.
그러는 시간 속에 어느새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네요.
그럼 지금부터 설날 밤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깊어만 가는 설날 밤.
동네 친목계에서 얼큰하게 취하고 오신 아주버님도 형님과 안채와는 멀찍이 떨어진
사랑방에서 일찍 잠들고 옥천 시내에 나가서 고교 동창모임을 하고 온
그이도 과하게 마신 술 때문인지 10시가 조금 넘어서 이내 코를 골고 자더군요.
어머님은 손주들도 자고 아들들도 잠든 밤이 적적하신가봅니다.
저는 얼른 어머님 저와 술 한잔해요. 하면서 부엌으로가서 찌게와 전을 데워서
남편이 코골고 정신없이 자는 윗방에서 어머님과 마주 앉았습니다.
어머님은 소주를 한 잔 따라 드리고 어머님은 그런 내게 매실주를 한 잔 따라주셨습니다.
어머님 드시라고 조금 비싼 매실주를 사왔는데 어머님은 동네 어르신들과 어울려서
소주를 드시기에 소주를 더 좋아하십니다.
그렇게 깊어가는 겨울의 설날 밤은 고부간의 두런거리는 소리로 깊어가고..
둘이서 서로 따라주던 술잔은 몇 번씩 오가고 어머님과 저는 적당히 취기가 돌았지요.
그래서 저는 어머님께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머님.. 어머님 적금하고 우리가도 조금 보태고 그래서 집 좀 새로 지어요.
어머님도 좋은 집에서 한번 살아 보셔야지요....라고 말하는 내게
어머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애미야..내 적금은 내가 죽거든 장례비용으로 써라..사람들 사흘간 먹이는 일이
보통이 아니더구나..얘기 들어보니 한 8백은 든다더라...
나 : 어머님 그런 걱정은 마세요.
어머님 장례식에 쓸 그만한 돈은 우리도 있어요..별 걱정을 다 하세요.
어머님 맛난 것 사서 드시고 동네 친구 분들과 여행 가셔서도 쓰시고 시내 나가셨다가
택시도 타고 들어오시고 하세요.
어머님: 애미야 ..나는 지금 니들 집에서 통장을 가지고 내려와서도 이걸 찾아서
어디에 감춰 두어야할지 불안하구나..설이 지나고 만기가 되면 다시 정기예금을 들어서
니들 집에 갔다두어야 하는데 그동안 어디에 둬야하나 ....하고는 걱정을 하십니다.
어머님은 벌써 몇 해 전부터 제게 일년마다 만기되는 정기예금 통장을 맡기셨습니다.
1년짜리 정기예금을 드신 후에 제게 맡기시고 만기 날짜가 돌아올 때면
우리 집으로 오셔서 가지고 가십니다.
그리고 또 다시 그 돈과 조금 모아두신 돈을 모아 정기적금을
또 드십니다. 그리고 또 통장을 제게 맡기시지요.
어머님 통장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돈이 모여집니다.
겨울이면 집에서 약을 만들어 버시고
봄에는 산에 고사리를 꺾어 장에 내다가 파셔서 몇 푼 버시고..
늘 다리 아프시다기에..
어머님 제발 산에 그만 다니세요.
우리가 어머니가 버시는 만큼 용돈 드리면 되잖아요...라고 하면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러냐?
그냥 재미로 하는 게지...집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고사리가 눈앞에서 손짓을 하니 어쩌냐?
잠시도 가만히 안 계시는 바지런한 어머님..
어머님은 같이 사는 큰 아들을 절대 믿지 않습니다.
언젠가 어머님은 그러셨지요.
저 놈을 낳고 그래도 아들 났다고 미역국을 먹은 게 부끄럽다고...
어머님은 며느리인 내 앞에서 긴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한 분뿐인 아주버님..
남한테는 한없이 한없이 퍼주고 가족들은 나 몰라라 하시는 분..
술 좋아하시고 친구 좋아하고 놀음 좋아하고...그런 분이시죠.
집짓는 일을 맡아서 하시지만
늘 벌어온 돈은 놀음 밑천으로 들어가고..
이야기가 좀 다른 방향으로 흘렀군요.
다시 술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나: 어머님 그럼 땅속에 파묻으세요...아참 어머님 돈하고 우리가 조금 보태고 해서
제발 집 좀 따뜻하게 짓고 살아요.
이젠 추워서 명절에 와도 오래 못 있겠어요 .
어머님: 난 그냥 이게 편하다 이렇게 살다가 갈련다.
집을 새로 지어봤자 큰 애비가 팔아먹을까 겁난다.
어린것들이 불쌍하기는 하지만..어쩔 수 있냐..
내가 지들 가족들 그래도 먹고 살게 해줄려고
소를 스무 마리 채워줄려고 안했나...
스무 마리면 지들 네 식구는 먹고 살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애미 너도 알듯이 18마리 되었을 때부터 한 마리 두 마리 다 놀음 빚으로
큰 애비가 새벽마다 우시장에다 내다 팔았잖냐..
그 소만 지금까지 붙들고 있어도 부잔데...
논도 팔아서 놀음 빚으로 날리고..지금 거기 땅값이 몇 배나 뛰었는지 모른다..후유..
니 큰 애비는 인간되기는 다 글렀다.
내가 안다.. 니 큰 애비는 내가 다 안다.
니들한테는 애미로서 미안할 뿐이다.
집살 때 한 푼도 못 보태주고...
그러시며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님..
나: 어머님 무슨 말씀이세요..어머님이 우리한테 얼마나 잘해 주셨는데요
우린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피아노도 사 주셨잖아요.
어머님께서 얼마나 도움을 주셨는데요.
저는 그냥 아범을 낳아 주신 것만으로도 고마운데요.
어머님..어머님이 제게는 오로지 한 분밖에 안 계신
부모님이시라는 걸아시잖아요.
물론 새어머니가 계시기는 하지만.....
저는 어머님이 세월이 흘러도 항상 우리 곁에 계실 것 같아요.
왜 다른 분들은 때되면 다 돌아가셔도 어머님만은 안 돌아가시고
이대로 영원히 우리 곁에 계실 것 같지요? 저는....
어머님: 얘는...별소리를 다 한다.
더 나이 먹어서 아프기나 해서 너희들 고생시키면 어쩌냐..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면 그 병원비는 다 어쩌고..
나 : 어머니 걱정 마세요.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하셔서 큰 돈이 든다면 집을 다 팔아서라도
병원비 댈 거예요.
우리는 아직 젊은데요...뭘..
어머님: 애미야 나 아무래도 나중에 아프기라도 하면 니들 걱정안시키고
그냥 조용히 갈 생각으로 지금부터 조금씩 수면제 사서 모으려고 한다.
이 얘기는 아무한테도 안했는데 너한테만 하는 거다.
난 그날 어머님의 수면제 얘기에 너무 놀랐다.
나: 어머님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
어머님은 우리가 끝까지 모실 거예요.
그런 생각은 절대하시지 마세요.
어머님이 똥을 싸서 뭉갠대도 그것도 제 복이 그만큼 인 것이고
어머님이 정말 편안하게 주무시다가 자는 듯이 가신다 해도 그것도 제 복 이예요.
그러니 수면제사서 모으실 생각은 절대하지 마세요.
제가 와서 다 찾아 낼거예요..네?아셨죠?
어머님:니 까짓게 내가 어디에 감춘 줄 알고 찾아?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걱정하지마라 ..자는 듯이 가는데 뭐가 어떠냐..다들 편한거지..
혹시 모아 두었다가도 아파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면 어디다가 뒀는지도
모를텐데 뭘....
나는 그만 그런 어머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그러지 마시라고...
저를 평생 죄인으로 만드실 거냐고..
그런 저를 보시며 그렇게 늘 강하기만 하신줄 알았던
어머님 눈에서도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나: 어머님 제발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죽이되 든 밥이되 든 어머님은 우리가 끝까지 모실거예요.
제사도 물론 제가 다 모실거예요.걱정마세요 어머님...
하지만 어머님...저는 제가 혹시 저 어린 조카들까지 맡아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가끔 들어요.
그런 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얼른 되받아 하시는 어머님 ....
어머님: 얘 애미야..너 생각 깊이 잘했다...
그래..잘 생각했다.
나: 어머님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몰라요..조카들은 몰라요.
어머님이 다 키워서 장가까지 보내고 돌아가시던지 말던지하세요.
저는 몰라요.
저는 어머님만 모실거예요.조카들은 모른다구요.저는...
어머님: 내가 저놈들은 다 키워놓고 장가까지 보내고 죽으라고?
그러면 내가 몇 살이냐?
나: 어머님은 참...몇 살은 몇 살 이예요. 한 20년만 더 사시면 되지요.
그러면 뭐 아흔둘이네요.
어머님:뭐 ?나보고 그 나이까지 살으라고?
나: 아흔둘이 뭐가 많아요? 요즘은 100살도 거뜬히 넘게 사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어머님: 하하하~~~그래~~그러마~~내가 저놈들 다 키워서 장가 보내놓고 죽지 뭐..
나 죽으면 힘들겠지만 제사는 니가 다 모셔라..
아마 얼마 안가서 이제는 제사도 없어질 세상이 올 테니
힘들더라도 그때까지만 부탁한다..애미야..
그이가 세상모르고 코를 골며 깊은 꿈속을 헤매고 있는 윗방에서 ..
마주 앉아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은 고부지간의 술자리는
설날밤이 깊도록 이어졌고 어머님은 소주 한 병을 다 비우시고
저는 매실주 반병을 다 비웠습니다.
=========================================================
가족들에 대해 아무런 계획이 없으신 너무나 답답하신 아주버님..
아주버님은 벌써 마흔다섯..
수중엔 돈 한 푼 가진게 없고..
어느새 머리는 너무 희어 염색을 하시고..
서른 여덟이란 늦은 나이에 띠 동갑의 어린 신부를 아내로 맞으신 아주버님..
남편과 내가 결혼할 때 버릇없이 형을 앞서 먼저 결혼한다며
못마땅해 하시고...
결혼한 후 우리가 명절에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날이면
아주버님은 우리의 모습을 안 볼려고 집에 없었습니다.그러기를 몇 해..
그리고 몇 해 동안은 꼼짝 않고 방 안에서 문 닫고 인사를 받으셨던 분..
그런 아주버님이 일이년 전부터는 우리가 떠나는
모습을 차 앞에까지 와서 보십니다.
제수씨 고생 많았어요...라는 말 한마디까지 덧 부치면서 말이예요.
제게는 그렇게 세월 흐를수록 많이 변한 아주버님이 보이는데
어머님께서는 아주버님이 나한테만 잘하는 거라고 말씀하시네요.
어렸을 때 사고로 머리를 다쳐서 부모도 모르고 혼자서 자란 나보다
여섯 살 아래 손위 동서 형님....
자란 환경 때문에 형님은 서른셋 이라는 젊은 나이인데도
안타깝게 글을 하나도 모르는 문맹입니다.
왜 내가 형님을 두고도 어머님 생신 때마다 김치서부터 온 같 것을
다 준비해서 아이스박스에 챙겨 가는지...
내가 준비해가지 않으면 어머님께서는 당신 생신에
친구들과 동네 분들을 초대하기위해 당신 손으로 김치를 담그고
음식을 준비해야합니다.
그래서 명절 때도 미리 내려가야 하지 않으면 안 되지요.
어머님께서는 당신이 아들 내외를 모시고 산다고 하십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남편은 시골에 내려갈 일이 없을 거라고
가끔씩 이야기를 합니다.
엄마가 없는데 무슨 재미로 누구를 보러 가냐고 하면서...
아주버님이 이젠 좀 정신을 차리시고 가족을 위해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술담배 많이하는 아주버님이 혹시 어떻게 되면
어린 두 조카들과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어린 형님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머님이 안 계신 시골집은 상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7살이 된 큰 조카가 예비소집일 이었는데
조카는 젊은 엄마 대신에 일흔이 넘은 할머니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갔습니다.
형님은 문맹이기에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지금도 어렸을 적 머리를 다친 후유증인지
보통사람 과는 어딘지 모르게 차이가 납니다.
그러하기에 일흔을 넘기신 어머님은 어린 조카의 어머니가 되어야했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유치원 입학하게 되는 조카를 위해 크레파스, 색연필, 싸인펜,
가위, 풀, 셀로판테이프, 스케치북을 사서 견출지로 크레파스며 색연필, 싸인펜에
일일이 하나하나에 조카의 이름을 써서 붙이고 떨어지지 않게
그곳을 또 투명테이프로 한번씩 꼭꼭 휘감아 우체국에 가서
소포로 부쳤습니다.
물론 가위며 풀,스케치북에도 다 조카 녀석의 이름을 써서 붙혔지요.
그리고 남은 견출지를 큰 것 작은 것 몇 장을 함께 넣어서 보냈습니다.
혹시 필통이며 다른 학용품을 샀을 때 내가 한 것처럼 이름을
써서 붙여주라고 보낸 거랍니다.
내 생각에는
아주버님이 학교 다닐 때는 그런 것이 없었으니
처음으로 유치원 입학시키는 아들 녀석에게 무얼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모를 것 같았지요.
왜 나는 누구를 위해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을까요.
조카를 위해서..형님 내외를 위해서...아니요...
어머님을 위해서랍니다.
언젠가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내가 작은 녀석의 싸인펜에 견출지로
하나하나 이름을 써서 붙이는 것을 보시더니 어머님은 깊은 관심을
기지시고 바라보시며 물으셨지요.
얘 애미야...
그건 그렇게 일일이 다 이름을 써야하냐..라고 물으시는 어머님께
예~~ 어머님...이렇게 해야지 잊어버려도 이름보고 찾아주고
또 선생님께도 보시고 이 아이는 집에서 부모가 많이 신경을 써주는
아이구나..라고 생각하거든요.
늘 우리 집에 오시면 며느리가 손주 녀석들 돌보는 모습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떼시지 않고 지켜보시는 어머님..
그 모습은 마치 내게 아이들 돌보는 모습을
배워서 가시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얘 어멈아~~하루 종일 잠시도 쉴 틈이 없구나..이제 좀 앉아서 쉬어라..
하시면서도 시골 손주들은 누가 살뜰히 돌보나 싶어 걱정을 하시며
이내 한숨을 몰아쉬시는 어머님..
그때 저는 어머님 얼굴에 잠시 근심스러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것을 보았었지요.
어머님은 제게 대놓고 말씀은 안하셨지만
유치원 들어가는 조카에게 그렇게 해 줄 사람이 없는 게
마음에 걸리셨던 게지요...
어린 손주 녀석이 걱정스러우셨던 것입니다.
설에 나는 조카 녀석의 학용품을 준비해가고 싶었는데
바빠서 정신이 없어 잊어버리고 말았었습니다.
16일 날 보통우편으로 부친 그 소포는 우체국 직원이 삼사일 후에나 들어간다고 했었는데
어찌된 건지 그 다음날인 17일에 벌써 도착을 했나봅니다.
그날밤 시조부님 기일이라서 큰 녀석에게 할머니께 전화해서 얘기한 후에
엄마 좀 바꿔줘라 했더니..
큰 녀석은 전화를 해서는 곧바로 내게 전화기를 가지고 옵니다.
할머니가 얼른 엄마 바꾸래...하면서 말이예요.
저는 전화기를 들고 어머님 오늘 할아버지 제사인데
못 내려가서 죄송해요..라고 말하니
얘 어멈마 오늘 소포 잘 받았다..고맙다 ..
어머님은 제가 하는 말은 듣지도 않으시고 소포 잘 받았다는 말씀만 하십니다.
큰 걱정거리를 해결하신 듯이 전화기를 타고 들리는
어머님의 목소리는 밝았습니다.
설 쇠고 며칠 후에 어머님은 남편과 나 그리고 큰 녀석까지 운세를 보시고
열 두 달치 운세를 쓴 종이와 부적을 함께 등기로 부쳐주셨습니다.
그때 전화를 드려서 어머님이 보내주신 부적 잘 받았어요.....라고
했더니 그래... 애비 차에도 넣고 지갑에도 넣어줘라..
그리고 올해는 애미 니가 삼재가 들어서 부적을 두 개 썼으니
지갑에 잘 넣고 다녀야한다..비싼거다.
그런 어머님께 저는 농담을 한마디 던졌습니다.
어머님~~이거 얼마 줬는데요?
제가 어머님께 부적 값 드려야해요? 하하~~
어머님은 큰 녀석의 운세도 보셨습니다.
작은 녀석은 아직 10살이 안 넘어서 못 본다더라...라고 하시면서..
1월 달에 부부동반으로 필리핀 여행갈 때 어머님께서는
우리 집 녀석들을 봐 주신다며 오셨습니다.
집 걱정은 하지 말고 재미있게 잘 놀다 오너라...하시며 제게 건네주신 20만원..
만 원권 10장과 수표 한 장...
여행갈 때 넣어가지고 갔지만 쓰지 않았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어머님은 내게 맡겨두셨던
설을 넘기면 만기되어 찾는 통장을 두 개 가지고 내려가셨지요.
여행 짐이 어느 정도 정리된 후
나는 어머님께서 주신 수표를 우연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 수표에는 신기하게도 이곳 내가 사는 부개동지점에서 발행한 수표이고
발행 날짜는 지난해 6월 25일이었습니다.
저는 이내 짐작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수표는 바로 지난해 어머님 생신 때 내려가서 생신해드리고
올라오며 어머님께 친구 분들과 술 한 잔 하시라며
내가 어머님께 드렸던 수표였지요.
어머님께 전화를 드려서 수표 얘기를 했더니
애 어멈아~~타 지역 수표는 그냥 통장에 넣으려고 해도
수수료를 달라고 하더라...
어머님은 몇 푼의 수수료가 아까워서 수표를 통장에 넣어
저금도 못 하셨던 것입니다.
나는 그런 어머님께
어머님~~ 그래서 그때 수표를 지금까지 두셨다가
도로 저한테 온거예요? 하하하~~~
어머님 그럼 다음부터는 그냥 옥천에서 물건사실 때
쓰세요..그럼 손해 보는 것 없거든요..라고 말씀드렸지만
다음부터는 어머님께 꼭 현금으로 드려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답니다.
평소에는 택시 값도 아까워 못 타시는 어머님이
늘 우리에게 쓰시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집에 다니러 오시면 두 손주 녀석들에게
3만원이든 5만원이든 똑같이 나누어 주시는 어머님..
어머님께서는 작은 손주 녀석이 욕심이 많아서 형아와
차별해서 주면 싫어한다는 걸 알고 계시는 유일한 분이시지요.
큰 녀석이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모으기 시작한
두 녀석들의 통장에 지금은 각각 이백만원이 넘는 돈이 쌓여있습니다.
세뱃돈, 용돈, 돼지 저금통의 동전...등등
녀석들이 모은 돈은 남편이 모두 녀석들 통장에
꾸준히 저금을 시켜준 결과지요.
그래서 엄마아빠는 가난한데 녀석들은 부자랍니다.
녀석들의 통장 속에는 할머니께서 주신 돈이 가장 많이 들어있겠지요.
어머님은 그런 녀석들의 통장을 보여 드리니 흐뭇하고 놀라워했습니다.
절약이 몸에 베인 할머니 눈엔 손주 녀석들이 대견스러웠나 봅니다.
어머님은 또 제게 소중히 모으신 통장을 두개 맡겨두실 겁니다.
아주버님 친구 한 분이 은행에 근무하는 사람이 있어 무심코
아주버님이 다 알고 계신 어머님 통장..
어머님은 그 통장을 애지중지 하시지요..
저는 번거롭게 통장을 가지고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그냥 시골 마당 뒤켠에
비닐봉지에 넣어서 묻어 두라고 어머님께 말씀드렸었지요.
그랬더니 어머님께서는 그러면 나 죽으면 어쩌냐?
니 큰애비가 다 찾아 쓰라고?
어머님 그냥 두죠 뭐..아주버님이 찾아 다 쓰시던지 말던지..
그냥 땅속에서 썩든지..말든지..
저는 몰라요..
우린 어머님 돈 필요치도 않아요...욕심도 없구요..
라고 농담 아닌 농담을 했었습니다.
나는 어머님께서 힘들게 한 푼 두 푼 모으신 돈이
돈으로 보이질않습니다.
아끼시고 절약하시며 평생을 두고 모아온 어머님의 땀방울이지요.
어머님은 몇 년 전에 제게 이러셨지요.
애미야..
나 그냥 이돈 큰애비하고 애비한테 나눠 줄란다.
그러시는 어머님께 어머님 그냥 가지고 계세요.
어머님께서 가지고 계시면 한푼이라도 더 붙지만 나눠주면 다 흐지부지 써서 없어지고 말아요.
그리고 어머님 혹시 돈 한 푼 없으면 아들들이 쳐다도 안보면 어쩌실거예요?
라는 농담도 한 마디 건네면서
그냥 어머님이 가지고 계세요..라고....
나는 어머님 통장을 가지고 있지만 얼마가 들어있는 지는 사실 잘 모릅니다.
제게는 어머님 통장에 돈이 얼마가 있는지
많든지 적든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나는 어머님이 날 믿고 통장을 맡기시는 그 마음만으로도
어머님께 모든 사랑을 다 받았다고 생각하니까요.
추석 때 그이 회사에서 추석 보너스가 나왔기에
나는 거기에 조금 더 보태서 어머님께 가스 순간온수기를 설치해 드렸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그때 저보고 그러셨지요..
너 돈 많다~~~
돈 아껴 써라...이런 허튼 곳에 쓰지 말고..
그런 어머님께 .. 나는
어머님 저는 가진 거라고는 돈밖에 없어요..라고 말하며 웃었지요..
평소에는 50원 100원을 아끼기 위해 동네 슈퍼도 따져보고 다니고
백화점이 어떤 곳인가 가보자며 남편을 끌고 갔다가 코트 한 번 입어보고
와 이쁘다 ..잘 어울린다..당신은 옷걸이가 좋아서 뭐든지 입으면 다 맞춤이네..
그거 하나 사 줄께..하는 남편 말에 사십 오만원이 넘는 코트의
가격표를 보고는 그만 놀라서 다시는 백화점을 안가는 내가
어머님께 드리는 돈은 왜 아깝지 않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어머님이 내게 주시는 사랑이 더 크기 때문이리라...
어머님은 설 쇠러 내려간 내게 그러셨습니다.
애미야..니가 사 준 온수기 덕분에 지금껏 난 한번도 목욕탕에를 안 갔다.
집에 샤워기만 틀면 더운물이 나오는데 목욕탕 갈 필요가 뭐 있냐..
애미 덕분에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애미야 고맙다..
우린 저런 편리한 게 있는지도 몰랐지 뭐냐..
시골 사람은 몰라서도 못해...하시는 어머님..
어머님 그렇다고 목욕탕을 안가시면 어떻게요.
집은 너무 추워요.
가끔 옥천 나가셔서 뜨끈한 물에 목욕하시고 오셔야지요..라고 말씀드려도
집에 더운물 나오는데 무슨 목욕탕엘 가냐...하시는 어머님..
언젠가 40대방에 "미친 며느리"란 동영상 올린 것을 보았지요.
인터넷에서는 아주 유명한 검색어라는 "미친 며느리"...
28세의 젊은 며느리가 치매에 걸려 4살짜리 아가가 되어버린 시어머님를
남편과 밤낮으로 하루 종일 어르고 달래며 정성을 다해 모시는 영상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보고는 차마 그 글 밑에 리플을 달지 못했습니다.
내 자신은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어머님을 모실 자신이 없었던 게지요.
동영상을 보면서 두려웠습니다.
내가 과연 저 상황이라면 견뎌낼 수 있을까..온갖 생각을 하며
며칠을 두고 마음이 우울했습니다.
일흔 둘 ..
150도 채 안되는 키에 45킬로 몸무게의 자그마하신 어머님..
내 남편을 낳아준 내겐 시어머님이신 어머님..
하지만 난 내 남편을 낳아준 시어머니가 아닌
여자로서 여자인 당신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비록 당신을 행복하게 해 드리고 만족스럽게 해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세상 떠나는 날까지 모시렵니다.
때로는 솔직히 걱정도 되고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머님...
당신께서는 늘 착한 일만 하시고 여생을 살아오셨으니
가시는 날에도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는 듯이 곱게 가시리라
저는 믿습니다.
설날 밤 어머님께 들었던 수면제 이야기를
차마 남편한테 말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영영 꺼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어머님....
당신께서 그냥 곁에 계셔만 주시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큰 힘이 됩니다.
어머님께 잘 해드리는 며느리는 못 되어도
여자 대 여자로서 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그날밤 더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님....
많은 걱정 저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시고
건강하게 오래도록 우리곁에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