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트판을 이용하시는 많은 분들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으로부터 약 12년전 정도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지금에와서 예전의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게 된 이유는 사건의 당사자는 제가 지금까지 그 일들로 인해서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게 지내는 지 전혀 알지 못하고 미안함과 죄책감없이 너무 잘 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라는 분들에게 제가 본인의 안좋은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녔다는듯이 이야기 하는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최소한 저를 가르쳐 주었던 첫 스승님이였고 그것에 대해서 만큼은 감사하다고 여겨왔는데 지금에 와서는 제자 취급도 받지 못하고 지불한 금액에 턱없이 부족한 교육을 받고 이렇게 좋지 못한 소리까지 들어야 하다니 너무 억울해서 여러분들이 직접 글을 읽어보시고 판단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정말 좋아해서 초등학생 시절부터 막연히 무언가를 만드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어서부터 제과제빵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자격증에 한정된 것 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 때 학원에서 기능대회반이라는 것이 생겼고 저는 자연스럽게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기능경기대회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그렇게 중학교 3학년때부터 기능경기대회반에 들어가 꼬박 1년정도를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한달에 수강료는 백만원. 거기에 재료비 별도. 지금의 제게도 정말 큰 금액이지만 부모님은 처음으로 한가지에 집중하는 제 모습을 보시고 어려운 형편에도 열심히 해보라며 묵묵히 지원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인원수는 아니였지만 친구들과 같이 하루하루 배워나갔습니다.
하지만 세상물정 모르던 그때의 저조차도 조금 이상하다고 느낀 것들이 있었어요. 학원에서 외부의 학교 친구들이 와서 특별활동을 하거나 다른 사업체에서 오면 실습실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연습을 할 수가 없었고 저희가 보조로 빵을 구워주고 뒷정리 청소를 하는 일이 주마다 한두번씩 있었습니다. 왜 이걸 해야하는거지?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해야하는가보다 라는 생각으로 하였습니다. 아무도 그것이 잘못된 일인지 알려주지 않았으니까요.
또한 담당하셨던 선생님은 매번 서울에 일이 있다면서 리허설을 하거나 과제를 주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검사를 받는 식이 잦았었는데 나중에 가서 알게 된 일이지만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한다는 이유로 오지 않았던 것이였습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학원기구를 사용하여 실습을 하였었는데 학원기물이 망가지니 개인이 별도로 구매를 해서 사용하라는 말에 스텐볼부터 믹서기 등등 작업대 외의 기구들을 전부 구매해서 사용하였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학원의 새 기구와 저희가 쓰던 헌 기구를 바꿔갔다 철판이 너희 때문에 너무 형편없어졌다 등의 핀잔을 매일같이 들었어야만 했습니다.
첫 잔에 배부르랴. 보기좋게 첫 대회에서 떨어진 저는 다시 한번 도전을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1년을 다시 기능경기대회를 혼자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첫 기능경기대회에서 떨어진 이후 저희가 쓴 실습실에 저희들이 약 한달 반정도 방과후 매일매일와서 청소를 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쓴 실습실이고 그때문에 더러워졌다면 한달 반동안 청소해도 깨끗해지지 않았더라면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즈음에 학원 한편에서는 원장님이 식당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루종일 실습을 하는 저희에게 원장 선생님이 밥을 자주 해주셨었는데 그곳의 설거지며 정리정돈도 저희의 몫이였습니다. 매번 원장님이 밥을 해주시는데 이정도는 당연한거 아니냐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러한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서도 전 반드시 무언가 성과를 이뤄내고 싶다 이만큼 할 수 있다는걸 증명해보이고 싶다 라는 마음 하나로 다시 1년을 꾸준히 다니고 전국대회를 나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전국대회에 나가게 되니 학원비는 물론이고 재료비도 올랐고 학교에서도 도 대표로 나가게 되었으니 많은 관심을 주었고 교장선생님과 담당선생님도 직접 학원까지 오셔서 응원해주셨습니다. 도대표로 인정되면서 교육청에서 학교로 어느정도의 저를 위한 지원금을 보내주었는데 학원에서는 당장 어떤 재료를 얼마나 쓰는 지 알수 없으니까 일단은 재료 리스트를 만들어서 학교에 제출하고 학교에다가는 그 금액을 학원으로 입금해달라고 하고 그 금액은 매달 내는 재료비에서 삭감하는 식으로 하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전 아무것도 모르고 학교에다가 그렇게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교육청에서 학교로 내려오는 돈을 개인계좌로 입금을 한다거나 하는 일을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었고 명목상으로 만든 리스트의 재료들은 학원에 재료로 도착하였습니다. 정말 엄청나게 혼이 났었죠. 저는 그때 지원받은 재료는 전부 쓰지도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재료비는 또 별도로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부모님이 해외에서 일을 하고 계셔서 학원비 입금은 항상 삼촌이 해주셨었는데 돈이 제때 안들어오면 입금을 왜 하지 않냐면서 하루에도 몇번이나 재촉하기도 했습니다. 제때 입금을 했지만 본인들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놓고 안들어왔다고 재촉한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사과 한마디도 듣지 못했습니다.
기능경기대회는 과제라는것이 주어집니다. 그 과제에 걸맞는 작품과 제품을 내야하는데 저는 제빵품목 제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대회 직전이 되어서도 알지 못하였고 디저트 과제에서는 제품에 사용해서는 안되는 재료를 사용한 레시피로 계속 연습을 해왔기 때문에 급작스럽게 대체재료로 레시피를 바꾼 탓에 식감이 좋지 못한 제품을 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선생님이 필요한 시기에 아니, 전국대회를 시작하고부터 거의 대부분을 혼자서 실습을 하였었고 대회 전 한 두달 정도 전이 되어서는 너무 큰 불안함과 부담감에 불안하고 무서워서 학원을 쉬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다녔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정신과를 다녀오느라 학원을 쉬겠다는 이야기를 하는게 약한 모습을 보여서 혼날까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사나흘동안 병원 치료를 다녔습니다. 그게 제 유일한 반항이였습니다. 여태까지 해온게 있는데 이대로 포기하면 너무 후회할것 같다 라는 생각으로 아직 치료중이였지만 다시 학원에 나갔고 약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내 앞에서 아픈척하려고 약 먹냐는 핀잔을 들었었고 저는 아무말없이 웃어 넘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회 직전에 선생님께서 다른 참가자가 기구를 훔쳐가거나 버리는 경우도 있으니 전날에 가서 옆에서 잘 지키고 있어라 하여 대회 전날 밤에 대회장 앞에다가 기구를 놓고 하루종일 밤을 샜습니다. 선생님은 물론 오지 않았구요. 대회 당일 전날까지도 저는 제빵 과제의 품목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방법조차 알지 못하여 첫날 대회를 마치고 그 먼 대회장에서부터 학원까지 KTX를 타고 밤을 새서 다시 다음날 대회를 치뤄야 했습니다. 물론 제대로 제품을 만드는 방법은 모른 채로 말이죠.
모든 대회가 다 끝난 그 날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허망했는지 모릅니다. 내가 3년 간 실습실에서 보내며 해왔던 것들은 정말 이것 뿐이였는지. 고등학교 시절도 거의 반납하고 수학여행도 포기하고 해왔던 것들이 이렇게 끝나버렸다니. 스스로가 너무나도 보잘것 없고 작게 느껴졌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일하여 번 돈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던 부모님에게도 너무 죄송하고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절 가르쳐주신 선생님이였으니까 대학교에 가서도 선생님이 대회를 준비할때면 서울까지 가서 밤새 도와드리고 항상 연락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고맙다는 말을 한 적도 차비를 준적도 밥 한번을 사준적도 없었습니다. 그저 선생님들이 먹는다며 시킨 치킨 3조각을 받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몇년 전부터는 디저트팀이라고 ㅇㅌㄹㅁ라는 디저트 교육반을 꾸며서 자기의 제자들 이라며 제자들과 아주 사이 좋아보이는 사진들을 올리시더라구요. 유명한 파티스리나 레스토랑을 같이 다니면서 이것도 공부라며 올리신 글들을 보았을 때 저는 생각했죠. 나만 선생님을 첫 스승님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지 정작 선생님은 나를 제자로 생각하지도 않았었구나 라고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해외로 유학을 가기로 결정이 되어서 인사를 드리러 학원으로 찾아갔었는데 수업중이라며 잠시 기다리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4시간을 기다렸고 수업이 끝나니 본인이 병원을 가야한다며 저에게는 눈길 한번도 주지 않으시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떠난 모습이 제가 본 선생님의 마지막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선생님이 ㄷㅋㄴㅅㅌ이라는 디저트 가게를 열었는데 다른 친구가 그 가게를 찾아갔을때 제 이야기를 하였다고 하더라구요. 그친구는 나를 많이 싫어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제가 잘못들은건가 싶어서 그 친구에게 몇번이고 다시 되물어봤습니다. 제가 그동안 얼마나 선생님을 따르고 선생님에게 칭찬 한번 들으려고 노력했는지는 알고 계신가요? 뒤에서까지 끝까지 저를 처참히 나쁜 사람으로 몰아 가시는 모습에 정을 다 떼버렸습니다.
학원을 다니고 대회 준비를 하면서 대락적인 금액만 약 1억원 이상을 지불하였습니다. 부모님께서는 1억원의 큰 인생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자며 이야기 하셨지만 전 아직도 그때의 트라우마가 남아있고 다시 시작하는것이 너무 두렵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1억원의 금액을 지불해야 받는 인생 공부라면 차라리 이 길을 걷지 말걸 하는 생각도 합니다. 제가 그토록 좋아하던 제과제빵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다시 시작해보자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고있지만 아직까지 그때의 공포, 불안감에 무서워서 두렵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악몽을 꾸고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비용을 지불한 만큼의 충당한 교육을 받지도 못하였고 제자라는 대우 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개명도 하신것 같더라구요.
아무리 저에게 있어서는 나쁜 사람일지 몰라도 지금은 한 사람의 남편이자 아버지이고, 대표이니 책임을 져야 하는 많은 것들이 있으시니 지금의 위치를 잃고 싶지 않으시겠죠. 하지만 저는요? 그 때부터 약 12년동안을 고통받고 제가 그토록 좋아하던 일들도 겁이나서 두려워서 다시 시작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사과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사과 하신다고 하더라도 용서 못합니다. 그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렇게 한 사람에게 트라우마가 남을 정도의 행동을 하셨다는 것 최소한 그에 대한 죄책감,미안한 마음을 한 구석에 가지시고 평생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그런 행동을 하는것이 잘못된 일이라는걸 아시는 분이라면,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 해주셨더라면 애초에 제가 글을 쓰지도 않았겠죠. 미처 글로 다 쓰지 못할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저에게 한 행동들 말고도 제 친구들과 은사님에게 한 행동들까지 말한다면 책을 내야 할 정도로 길어지니 그것까진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본인 주변 사람들한테 이야기 하면서 선동하려고 하신것 또한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 다 제 귀로 들어오는건 알고 계신가요? 두번 다시 같은 행동 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당한사람은 얼마나의 시간이 지난다고 한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한 행동들은 반드시 돌아오기 마련이라는 것 반드시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같은 직종은 물론이거니와 전문직종의 기능대회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계시다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저와 같이 당하고 있지만 마시고 목소리를 내주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정말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버리니까요. 저와 같은 길을 걷는 어린 피해자 친구들이 없길 바라며 글 마치겠습니다.
선생님, 1억 받고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지금으로부터 약 12년전 정도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지금에와서 예전의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게 된 이유는 사건의 당사자는 제가 지금까지 그 일들로 인해서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게 지내는 지 전혀 알지 못하고 미안함과 죄책감없이 너무 잘 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라는 분들에게 제가 본인의 안좋은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녔다는듯이 이야기 하는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최소한 저를 가르쳐 주었던 첫 스승님이였고 그것에 대해서 만큼은 감사하다고 여겨왔는데 지금에 와서는 제자 취급도 받지 못하고 지불한 금액에 턱없이 부족한 교육을 받고 이렇게 좋지 못한 소리까지 들어야 하다니 너무 억울해서 여러분들이 직접 글을 읽어보시고 판단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정말 좋아해서 초등학생 시절부터 막연히 무언가를 만드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어서부터 제과제빵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자격증에 한정된 것 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 때 학원에서 기능대회반이라는 것이 생겼고 저는 자연스럽게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기능경기대회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그렇게 중학교 3학년때부터 기능경기대회반에 들어가 꼬박 1년정도를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한달에 수강료는 백만원. 거기에 재료비 별도. 지금의 제게도 정말 큰 금액이지만 부모님은 처음으로 한가지에 집중하는 제 모습을 보시고 어려운 형편에도 열심히 해보라며 묵묵히 지원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인원수는 아니였지만 친구들과 같이 하루하루 배워나갔습니다.
하지만 세상물정 모르던 그때의 저조차도 조금 이상하다고 느낀 것들이 있었어요. 학원에서 외부의 학교 친구들이 와서 특별활동을 하거나 다른 사업체에서 오면 실습실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연습을 할 수가 없었고 저희가 보조로 빵을 구워주고 뒷정리 청소를 하는 일이 주마다 한두번씩 있었습니다. 왜 이걸 해야하는거지?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해야하는가보다 라는 생각으로 하였습니다. 아무도 그것이 잘못된 일인지 알려주지 않았으니까요.
또한 담당하셨던 선생님은 매번 서울에 일이 있다면서 리허설을 하거나 과제를 주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검사를 받는 식이 잦았었는데 나중에 가서 알게 된 일이지만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한다는 이유로 오지 않았던 것이였습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학원기구를 사용하여 실습을 하였었는데 학원기물이 망가지니 개인이 별도로 구매를 해서 사용하라는 말에 스텐볼부터 믹서기 등등 작업대 외의 기구들을 전부 구매해서 사용하였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학원의 새 기구와 저희가 쓰던 헌 기구를 바꿔갔다 철판이 너희 때문에 너무 형편없어졌다 등의 핀잔을 매일같이 들었어야만 했습니다.
첫 잔에 배부르랴. 보기좋게 첫 대회에서 떨어진 저는 다시 한번 도전을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1년을 다시 기능경기대회를 혼자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첫 기능경기대회에서 떨어진 이후 저희가 쓴 실습실에 저희들이 약 한달 반정도 방과후 매일매일와서 청소를 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쓴 실습실이고 그때문에 더러워졌다면 한달 반동안 청소해도 깨끗해지지 않았더라면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즈음에 학원 한편에서는 원장님이 식당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루종일 실습을 하는 저희에게 원장 선생님이 밥을 자주 해주셨었는데 그곳의 설거지며 정리정돈도 저희의 몫이였습니다. 매번 원장님이 밥을 해주시는데 이정도는 당연한거 아니냐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러한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서도 전 반드시 무언가 성과를 이뤄내고 싶다 이만큼 할 수 있다는걸 증명해보이고 싶다 라는 마음 하나로 다시 1년을 꾸준히 다니고 전국대회를 나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전국대회에 나가게 되니 학원비는 물론이고 재료비도 올랐고 학교에서도 도 대표로 나가게 되었으니 많은 관심을 주었고 교장선생님과 담당선생님도 직접 학원까지 오셔서 응원해주셨습니다. 도대표로 인정되면서 교육청에서 학교로 어느정도의 저를 위한 지원금을 보내주었는데 학원에서는 당장 어떤 재료를 얼마나 쓰는 지 알수 없으니까 일단은 재료 리스트를 만들어서 학교에 제출하고 학교에다가는 그 금액을 학원으로 입금해달라고 하고 그 금액은 매달 내는 재료비에서 삭감하는 식으로 하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전 아무것도 모르고 학교에다가 그렇게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교육청에서 학교로 내려오는 돈을 개인계좌로 입금을 한다거나 하는 일을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었고 명목상으로 만든 리스트의 재료들은 학원에 재료로 도착하였습니다. 정말 엄청나게 혼이 났었죠. 저는 그때 지원받은 재료는 전부 쓰지도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재료비는 또 별도로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부모님이 해외에서 일을 하고 계셔서 학원비 입금은 항상 삼촌이 해주셨었는데 돈이 제때 안들어오면 입금을 왜 하지 않냐면서 하루에도 몇번이나 재촉하기도 했습니다. 제때 입금을 했지만 본인들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놓고 안들어왔다고 재촉한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사과 한마디도 듣지 못했습니다.
기능경기대회는 과제라는것이 주어집니다. 그 과제에 걸맞는 작품과 제품을 내야하는데 저는 제빵품목 제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대회 직전이 되어서도 알지 못하였고 디저트 과제에서는 제품에 사용해서는 안되는 재료를 사용한 레시피로 계속 연습을 해왔기 때문에 급작스럽게 대체재료로 레시피를 바꾼 탓에 식감이 좋지 못한 제품을 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선생님이 필요한 시기에 아니, 전국대회를 시작하고부터 거의 대부분을 혼자서 실습을 하였었고 대회 전 한 두달 정도 전이 되어서는 너무 큰 불안함과 부담감에 불안하고 무서워서 학원을 쉬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다녔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정신과를 다녀오느라 학원을 쉬겠다는 이야기를 하는게 약한 모습을 보여서 혼날까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사나흘동안 병원 치료를 다녔습니다. 그게 제 유일한 반항이였습니다. 여태까지 해온게 있는데 이대로 포기하면 너무 후회할것 같다 라는 생각으로 아직 치료중이였지만 다시 학원에 나갔고 약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내 앞에서 아픈척하려고 약 먹냐는 핀잔을 들었었고 저는 아무말없이 웃어 넘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회 직전에 선생님께서 다른 참가자가 기구를 훔쳐가거나 버리는 경우도 있으니 전날에 가서 옆에서 잘 지키고 있어라 하여 대회 전날 밤에 대회장 앞에다가 기구를 놓고 하루종일 밤을 샜습니다. 선생님은 물론 오지 않았구요. 대회 당일 전날까지도 저는 제빵 과제의 품목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방법조차 알지 못하여 첫날 대회를 마치고 그 먼 대회장에서부터 학원까지 KTX를 타고 밤을 새서 다시 다음날 대회를 치뤄야 했습니다. 물론 제대로 제품을 만드는 방법은 모른 채로 말이죠.
모든 대회가 다 끝난 그 날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허망했는지 모릅니다. 내가 3년 간 실습실에서 보내며 해왔던 것들은 정말 이것 뿐이였는지. 고등학교 시절도 거의 반납하고 수학여행도 포기하고 해왔던 것들이 이렇게 끝나버렸다니. 스스로가 너무나도 보잘것 없고 작게 느껴졌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일하여 번 돈을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던 부모님에게도 너무 죄송하고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절 가르쳐주신 선생님이였으니까 대학교에 가서도 선생님이 대회를 준비할때면 서울까지 가서 밤새 도와드리고 항상 연락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고맙다는 말을 한 적도 차비를 준적도 밥 한번을 사준적도 없었습니다. 그저 선생님들이 먹는다며 시킨 치킨 3조각을 받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몇년 전부터는 디저트팀이라고 ㅇㅌㄹㅁ라는 디저트 교육반을 꾸며서 자기의 제자들 이라며 제자들과 아주 사이 좋아보이는 사진들을 올리시더라구요. 유명한 파티스리나 레스토랑을 같이 다니면서 이것도 공부라며 올리신 글들을 보았을 때 저는 생각했죠. 나만 선생님을 첫 스승님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지 정작 선생님은 나를 제자로 생각하지도 않았었구나 라고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해외로 유학을 가기로 결정이 되어서 인사를 드리러 학원으로 찾아갔었는데 수업중이라며 잠시 기다리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4시간을 기다렸고 수업이 끝나니 본인이 병원을 가야한다며 저에게는 눈길 한번도 주지 않으시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떠난 모습이 제가 본 선생님의 마지막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선생님이 ㄷㅋㄴㅅㅌ이라는 디저트 가게를 열었는데 다른 친구가 그 가게를 찾아갔을때 제 이야기를 하였다고 하더라구요. 그친구는 나를 많이 싫어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제가 잘못들은건가 싶어서 그 친구에게 몇번이고 다시 되물어봤습니다. 제가 그동안 얼마나 선생님을 따르고 선생님에게 칭찬 한번 들으려고 노력했는지는 알고 계신가요? 뒤에서까지 끝까지 저를 처참히 나쁜 사람으로 몰아 가시는 모습에 정을 다 떼버렸습니다.
학원을 다니고 대회 준비를 하면서 대락적인 금액만 약 1억원 이상을 지불하였습니다. 부모님께서는 1억원의 큰 인생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자며 이야기 하셨지만 전 아직도 그때의 트라우마가 남아있고 다시 시작하는것이 너무 두렵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1억원의 금액을 지불해야 받는 인생 공부라면 차라리 이 길을 걷지 말걸 하는 생각도 합니다. 제가 그토록 좋아하던 제과제빵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다시 시작해보자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고있지만 아직까지 그때의 공포, 불안감에 무서워서 두렵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악몽을 꾸고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비용을 지불한 만큼의 충당한 교육을 받지도 못하였고 제자라는 대우 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개명도 하신것 같더라구요.
아무리 저에게 있어서는 나쁜 사람일지 몰라도 지금은 한 사람의 남편이자 아버지이고, 대표이니 책임을 져야 하는 많은 것들이 있으시니 지금의 위치를 잃고 싶지 않으시겠죠. 하지만 저는요? 그 때부터 약 12년동안을 고통받고 제가 그토록 좋아하던 일들도 겁이나서 두려워서 다시 시작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사과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사과 하신다고 하더라도 용서 못합니다. 그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렇게 한 사람에게 트라우마가 남을 정도의 행동을 하셨다는 것 최소한 그에 대한 죄책감,미안한 마음을 한 구석에 가지시고 평생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그런 행동을 하는것이 잘못된 일이라는걸 아시는 분이라면,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 해주셨더라면 애초에 제가 글을 쓰지도 않았겠죠. 미처 글로 다 쓰지 못할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저에게 한 행동들 말고도 제 친구들과 은사님에게 한 행동들까지 말한다면 책을 내야 할 정도로 길어지니 그것까진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본인 주변 사람들한테 이야기 하면서 선동하려고 하신것 또한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 다 제 귀로 들어오는건 알고 계신가요? 두번 다시 같은 행동 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당한사람은 얼마나의 시간이 지난다고 한들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한 행동들은 반드시 돌아오기 마련이라는 것 반드시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같은 직종은 물론이거니와 전문직종의 기능대회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계시다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저와 같이 당하고 있지만 마시고 목소리를 내주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정말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버리니까요. 저와 같은 길을 걷는 어린 피해자 친구들이 없길 바라며 글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