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즉시 나는 나의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하여 405프리웨이와 레이크우드 길이 만나는 데 있는 홀리데이 호텔에 1천명이 들어 갈 수 있는 큰 회의실을 예약 하고 LA타임스에 공업 폐수처리에 관한 세미나를 한다고 나의 이름과 경력을 실어 광고를 냈다. 세미나 날짜는 1993년7월15일 이었는데 7월 8일까지 수강료를 내면 하루에 1백 25불이고 그 후는 1백 35불이라고 했다. 세미나에는 1천명의 회의실이 꽉 찼다. 그러니까 하루에 12만 5천 달러를 벌어 호텔비용, 기타 경비를 제 하고도 10만 달러 이상을 번 셈이다. 누가 알면 도둑놈이라고 말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는 거기서 번 돈을 연구소 확장에 투자 했다. 1996년 나는 세계 환경의 날 (World Environmental Day) 미국 대표로 나가는 두명 중 한명으로 나가 ‘개스로 인한 하수 폭발 방지’에 관한 연설을 했다. 1996년과 1998년에 연구원들과 함께 일하며 ‘물 속에 있는 피씨이(PCE)- 발암 물질을 제거 하는 기계’ 그리고 ‘하수의 피크 (Peak)치를 줄이는 장치’를 개발하여 미국 특허를 받아 냈다. 2001년에는흙 속에 있는 독극물을 없애는 약품을 발견하여 현재 특허 신청을 내놓고 있다 . 만일 나에게 충분한 돈이 있으면 위궤양과 위암으로 고생해 온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수소 이온 농도 (pH) 와 위궤양 또는 위암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하여 학술적으로 이론을 정립하고 싶다. 수소 이온 농도에 의해 왕성해지는 박테리아와 위궤양 또는 위암과는 분명한 상관 관계가 있다고 확신 한다. 2001년 어느 날 미국의 상원의원이며 그 유명한 우주인인 존 글렌 (John Glenn)으로 부터 큰 봉투가 배달 돼 왔다. 뜯어 보니 우주복을 입은 자신의 큰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 사진에 ‘존경하는 중희에게 (To Choong, Best Regards)’ 라고 쓰고 그의 친필 사인이 들어 있었다. 나를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하여 전화를 해 봤다. 비서의 말인 즉 나를 도서 검색(Library Search) 하던 중 나의 연구 논문과 책들에서 알았다는 것 이었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인하여 내 이름이 좀 알려진 모양이다. 그 후 국회의장인 데니스 헤스터트(Dennis Hastert) 로 부터 목에 걸고 국회에 출입할 수 있는 ‘VIP 프리패스 (Free Pass)’ 라고 인쇄된 무상으로 통과되는 플라스틱 카드가 부쳐져 왔고 워싱턴 D.C. 에 올 길이 있으면 저녁을 같이 하자는 편지도 왔다. 금년 2월19일자 ‘월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 에 내 이름이 실려 있는 것을 보고 놀랬다. 뒤이어 더욱 놀랜 것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금메달이 부쳐져 왔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금년 4월 15일에는 5월 21일에 있을 ‘프레지던트 디너 파티 (The President’s Dinner)’ 에 부시 대통령과 함께 먹는 저녁 식사에 참가 할 수 있는 정식 초청장과 함께 PRESIDENTAL BUSINESS COMMISSION (대통령 자문의원)에 위촉 한다는 임명장이 붙여 왔다. 그 후 국회의원 톰 딜레이 (Tom Delary)와 보좌관들로 부터 꼭 참석해 달라는 전화가 몇 번 왔으나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나는 미국에 와서 남이 먹다 버린 음식을 주워 먹고 다니던 거지 였었다. 내가 무엇을 한 것이 있다고 대통령이 초청 하는 프레지던트 디너 파티 같은 어마어마한 자리에 참석할 자격이 있겠는가?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 온 소시민 이며 한인 사회에서는 ‘무명인사’ 에 불과 하다. 꼭 기억해야 할 교훈은 인종 차별을 외치기 전에 꿈을 갖고 열심히 일하면 돕는 사람이 생기고 길이 열리는 것이 미국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사람은 고생을 해 봐야 장래의 꿈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 조폐공사에서 파면을 당 하고 홀로 단돈 45불을 들고 미국에 와 고생 했던 얘기와 거짓없이 열심히 살아 온 얘기들을 간추려 적어 봤다. 나의 이런 얘기를 쓰는 것이 무척 창피한 얘기 뿐 이지만, 언젠가는 꼭 한번 글로 써 보고 싶었다.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은데 “세월을 붙들어 두는 기계는 없을까?” 생각해본다. 미국에서 돈은 못 벌었지만 “거지의 꿈” 은 이루어 진 것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고 싶다. 미주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 <거지의 꿈 - 이중희> 중에서
거지의 꿈 <7>
그 후 즉시 나는 나의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하여 405프리웨이와
레이크우드 길이 만나는 데 있는 홀리데이 호텔에 1천명이 들어
갈 수 있는 큰 회의실을 예약 하고 LA타임스에 공업 폐수처리에
관한 세미나를 한다고 나의 이름과 경력을 실어 광고를 냈다.
세미나 날짜는 1993년7월15일 이었는데 7월 8일까지 수강료를 내면
하루에 1백 25불이고 그 후는 1백 35불이라고 했다. 세미나에는
1천명의 회의실이 꽉 찼다. 그러니까 하루에 12만 5천 달러를 벌어
호텔비용, 기타 경비를 제 하고도 10만 달러 이상을 번 셈이다.
누가 알면 도둑놈이라고 말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는 거기서
번 돈을 연구소 확장에 투자 했다.
1996년 나는 세계 환경의 날 (World Environmental Day) 미국 대표로
나가는 두명 중 한명으로 나가 ‘개스로 인한 하수 폭발 방지’에 관한
연설을 했다. 1996년과 1998년에 연구원들과 함께 일하며 ‘물 속에
있는 피씨이(PCE)- 발암 물질을 제거 하는 기계’ 그리고 ‘하수의 피크
(Peak)치를 줄이는 장치’를 개발하여 미국 특허를 받아 냈다.
2001년에는흙 속에 있는 독극물을 없애는 약품을 발견하여 현재
특허 신청을 내놓고 있다 .
만일 나에게 충분한 돈이 있으면 위궤양과 위암으로 고생해 온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수소 이온 농도 (pH) 와 위궤양 또는 위암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하여 학술적으로 이론을 정립하고 싶다. 수소 이온
농도에 의해 왕성해지는 박테리아와 위궤양 또는 위암과는 분명한
상관 관계가 있다고 확신 한다.
2001년 어느 날 미국의 상원의원이며 그 유명한 우주인인 존 글렌
(John Glenn)으로 부터 큰 봉투가 배달 돼 왔다. 뜯어 보니 우주복을
입은 자신의 큰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 사진에 ‘존경하는 중희에게
(To Choong, Best Regards)’ 라고 쓰고 그의 친필 사인이 들어 있었다.
나를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하여 전화를 해 봤다. 비서의 말인 즉
나를 도서 검색(Library Search) 하던 중 나의 연구 논문과 책들에서
알았다는 것 이었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인하여 내 이름이 좀
알려진 모양이다.
그 후 국회의장인 데니스 헤스터트(Dennis Hastert) 로 부터 목에 걸고
국회에 출입할 수 있는 ‘VIP 프리패스 (Free Pass)’ 라고 인쇄된 무상으로
통과되는 플라스틱 카드가 부쳐져 왔고 워싱턴 D.C. 에 올 길이 있으면
저녁을 같이 하자는 편지도 왔다.
금년 2월19일자 ‘월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 에 내 이름이
실려 있는 것을 보고 놀랬다. 뒤이어 더욱 놀랜 것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금메달이 부쳐져 왔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금년 4월 15일에는 5월 21일에 있을 ‘프레지던트 디너 파티
(The President’s Dinner)’ 에 부시 대통령과 함께 먹는 저녁 식사에 참가
할 수 있는 정식 초청장과 함께 PRESIDENTAL BUSINESS COMMISSION
(대통령 자문의원)에 위촉 한다는 임명장이 붙여 왔다. 그 후 국회의원 톰
딜레이 (Tom Delary)와 보좌관들로 부터 꼭 참석해 달라는 전화가 몇 번
왔으나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나는 미국에 와서 남이 먹다 버린 음식을 주워 먹고 다니던
거지 였었다. 내가 무엇을 한 것이 있다고 대통령이 초청 하는 프레지던트
디너 파티 같은 어마어마한 자리에 참석할 자격이 있겠는가?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아 온 소시민 이며 한인 사회에서는 ‘무명인사’
에 불과 하다.
꼭 기억해야 할 교훈은 인종 차별을 외치기 전에 꿈을 갖고 열심히
일하면 돕는 사람이 생기고 길이 열리는 것이 미국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사람은 고생을 해 봐야 장래의 꿈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 조폐공사에서 파면을 당 하고 홀로 단돈 45불을 들고 미국에 와
고생 했던 얘기와 거짓없이 열심히 살아 온 얘기들을 간추려 적어 봤다.
나의 이런 얘기를 쓰는 것이 무척 창피한 얘기 뿐 이지만, 언젠가는
꼭 한번 글로 써 보고 싶었다.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은데 “세월을 붙들어
두는 기계는 없을까?” 생각해본다.
미국에서 돈은 못 벌었지만 “거지의 꿈” 은 이루어 진 것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고 싶다.
미주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 <거지의 꿈 - 이중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