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사랑한 Bruce Hunt(한부선 )

먼훗날2008.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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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선이 선교사로 나선 것이 1928년이었다.

한부선의 스승인 메이첸교수는 1929년 프린스톤

신학교를 사임하고 필라델피아에 새로운 신학교

웨스트민스터를 세웠다. 한부선은 한국어를 잘 구사

할 수 있었기 대문에 청주에 도착한 즉시 선교사업에

착수하였고, 주로 청주고등성경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쳤다.

 

1935년 처음 안식년에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스승인

메이첸교수는 그가 소속했던 미국 북장로교회부터 제명을

당했고 1936년 5월 지금의 지금의 미국정통장로교회를

조직하였다. 한부선은 통장로교회 총회가 조직되기 직전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부에 사표를 제출했다.

 

한부선은 1936년 10월 청주로 돌아와 새로운 선교지를

물색하였고 만주 하얼빈으로 가기로 하였다. 그는 조선

예수교장로회 총회앞에 정식으로 미국 정통장로교회 소속

선교사로 승인을 신청하였다.  만주 하얼빈으로 선교지를

옮긴 지 2년 후 신사참배라는 푹풍이 조선 예수교장로회에

불어닥쳤다. 당시 한부선 선교사는 만주 봉천 노회에 소속

되어 있었다. 한부선은 선교사로 봉천노히를 대표하여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개최된 총회에 참석하였다. 총회에는 유명한

방위량선교사도 참석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장인과 사위의

관계였다. (내일 계속 합니다.)

 

우리나라를 위하여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한국을 사랑하고 자신을 헌신한

이분의 삶을 모든 한국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춥네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