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98년 여름,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장군감이네!"
세상에 처음 나온 그 순간부터, 갑옷을 입었다.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2003년의 유치원이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여자아이인 지영이와 나는 단지 내에 있는 유치원을 함께 다니던 친구였다.
어느 날 내가 네모난 블럭을 쌓으며 놀고 있던 때, 지영이는 실수로 내가 쌓아놓은 블럭을 무너뜨렸다.
나는 울었다.
당황한 지영이도 따라 울었다.
놀란 선생님이 뛰어오시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나는 울며 말했다. "지영이가..."
지영이도 울며 말했다. "민준이가..."
나와 지영이는 우느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선생님은 우리가 싸운 줄 아셨나 보다.
"민준아. 뚝! 남자아이가 돼서 울면 못써! 여자친구를 울리면 안되는거야. 남자답게 여자친구들한테 양보도 하고, 다음부터는 민준이가 먼저 나서서 지켜줘야 되는거야. 알겠지?"
어린 나이에 우느라 바빠서 선생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다 이해하진 못했다.
하지만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혼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명확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2006년, 나는 2학년이 되었다.
1학년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키도 작고 덩치도 작아 키번호 3번을 배정받았다.
키와 덩치를 보면 알 수 있듯, 나는 굉장히 몸이 약했다.
하지만 강해야만 했다.
새로운 친구들과 친해지기 시작하던 봄이었다.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현지"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책을 발견했다.
나는 그 주인공과 같은 이름을 가진 내 짝꿍에게 그 책을 보여주었다.
"이 책 봐봐! 여기에 현지 나온다!"
표지에 그려진 "현지"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일까?
내 짝꿍 현지가 울기 시작했다.
나중에 듣기로는 본인이 놀림받은 것으로 착각했다고 한다.
짝꿍이 갑자기 울자 당황한 나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유치원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남자는 울면 안된다고.
3년 전과 비슷한 이유로 나는 교무실에 불려갔다.
중년의 선생님의 눈에 비춰진 내 모습은, 짝꿍을 울린 못된 말썽꾸러기였다.
내 생애 첫 얼차려를 받았다.
엎드려 뻗치라는게 무슨 뜻인지 그 날 처음 배웠다.
억울했지만 참았다.
여자아이를 울린 내 잘못이니까.
3년 전, 선생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있었다.
교복을 입을 나이가 되었다.
무서운 선생님이 수업을 하시는 수학시간이었다.
나를 포함한 같은 반 친구들의 대부분이 준비물인 컴퍼스를 깜빡하고 가져오지 않았다.
우리는 복도에 나가서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는벌을 받아야 했다.
선생님께서 여학생들의 손바닥을 먼저 때리셨다.
톡, 톡.
이제 남학생들이 맞을 차례가 되었다.
부웅 퍽, 부웅 퍽.
남학생들은 1층에 쌓여있는 A4용지를 4층 교무실로 옮기는 벌을 추가해서 받았다.
한 친구가 선생님께 물었다.
"이건 왜 남자만 옮겨요?"
그 친구는 손바닥을 한대 더 맞았다.
사회 과목 수업시간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와 권리에 대해 배웠다.
그 중 국방의 의무와 병역의 의무에 대한 수업이었다.
병역 기피 혐의를 받는 연예인들에 대한 기사를 보여주시며 그 연예인들에게 욕을 하셨다.
"의무가 없는 사람이 의무를 기피한 사람을 욕할 자격이 있나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선생님께서는 노트북으로 "국방의 의무 축하해~"라는 노래를 부르는 광고 영상을 틀어주시며,
"남자들! 너희 미래야. 깔깔깔"
이라고 웃으며 말하셨다.
이번에는 손을 들고 선생님께 질문했다.
"국민의 의무라면서 왜 여자는 군대 안가요?"
결과는 뻔했다.
"여자랑 남자랑 같니?"
라는 대답과 함께 나는 찌질이로 낙인찍혔다.
기말 시험이 끝나고 방학을 기다리던 때에, 선생님들은 노트북에 있는 영화를 보여주신다.
제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재난 영화라는것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여자와 아이부터 구해!" 를 외치며 재난상황 속으로 뛰어드는 남자들.
여자 주인공을 구하고 장렬하게 죽고 만다.
미디어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여자의 생명은 귀하고, 남자는 그 귀한 생명을 지키는 것이 남자다운 것이라고 묘사되었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이 보급되었으며, SNS도 급격하게 발전하였다.
그 무렵 SNS에서 젊은 층에서 이슈가 되던 사항은 바로 데이트폭력과 여성혐오 범죄다.
그동안 우리가 무감각했지만, 화를 내거나 발을 구르거나 문을 세게 닫는 등의 행동 또한 데이트폭력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한다.
이러한 데이트폭력을 경험해본 여성의 비율은 과반이라고 한다.
또한 서울의 한 번화가에서 여성이 묻지마 살인을 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데이트폭력과 묻지마 범죄의 피해자들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중요치 않았다.
해당 범죄에서 가해자는 남자의 비율이 높고, 피해자는 여자의 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나는 '잠재적 범죄자'가 되어야 했다.
"여자라서 죽었다"
당시 유명해진 글귀다.
공감이 된다.
나도 6년 전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에 타고 있던 수병분들과 연평도 포격전에 참전했던 해병분들도 어쩌면, 남자라서 죽은 것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친구의 추천으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80년대생 국군 장병들도 남자가 아니었다면,
연평해전에서 죽고 다치지 않고, 또래 나이인 김지영씨처럼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2002월드컵을 즐기고 있으셨을텐데.
착잡한 마음에 TV를 틀어 예능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렸다.
여자 연예인이 남자 연예인을 때리는 것을 개그 소재로 삼고 있었다.
이번에는 남자 연예인이 조금 전 자신을 때렸던 여자 연예인에게 보복하려고 하는 장면이 나왔다.
예상했다시피, 그 남자 연예인은 '찌질이'가 되었다.
'폭력'의 정의란 무엇일까. 혼자 생각해보았다.
그 유명한 고3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입시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인서울'의 중위권에서 중상위권 수준에 해당하는 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는 성적이었다.
나는 진학할 대학교를 선택할 때, 세 가지 조건을 염두에 두었다.
첫째, 공대가 서울에 있어야 한다.
둘째, 교통이 편리한 곳이어야 한다.
셋째, 캠퍼스가 아름다워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며, 내가 목표로 삼을 수 있을 정도의 성적대가 형성되는 대학교가 세 개 정도로 추려졌다.
신촌에 위치한 E여대, 용산에 위치한 S여대, 광진구에 위치한 K대.
누구나 알다시피 나는 남자라는 이유로 세 개의 학교 중, 두 학교에는 지원이 불가능했다.
경쟁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의문이 생겨 여대가 왜 탄생했고 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았다.
여대가 아닌 대학은 사실상 남자대학교이기 때문에 여대가 없으면 여자에게는 공정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다.
아니, 더 깊어졌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여자에게 공정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가?
20살이 되었다.
동갑의 여자친구들은 다들 기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남자친구들은 그렇지 않았다.
병역판정검사를 받으라는 통지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갓 20살이 된 나는 병무청으로 병역판정검사를 받으러 갔다.
나는 추간판 탈출증이라는 질환이 있다.
흔히 말하는 '허리 디스크'의 정확한 명칭이다.
상태가 꽤 심각해서 나는 오래 걷거나 앉아있지 못한다.
군의관님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군의관도 강제로 끌려온 입장이었다.
의대 여자 동기들은 의사로서 일하는 동안, 남자라는 이유로 군의관으로 끌려와서 엄청난 양의 업무를 소화하는 증이었다.
어쨌든 나의 신체등급은 3급. 마치 정육점의 고기처럼, 국가에서 내 신체를 평가했다.
현역 입영 대상자였다.
대학 동기들과 마지막으로 술자리를 가졌다.
한 여자동기가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래도 2년동안 쉬는게 어디야. 나는 쉬지도 못하고 스트레이트로 졸업해야되는데. 요즘 군대 편해졌다면서"
갓 스물 한살이 된 겨울날, 남자친구들과 여자친구들의 상태메시지가 달라진다.
박민재. "2018.01.22 ~ 2019. 09. 17"
이민지. "01.22~01.31유럽여행, 02.08수강신청"
나도 군인이 되었다.
되기 싫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군 미필 남성은 여권도 자유롭게 만들지 못하고, 기업에 취업할수도 없으며, 연애와 결혼시장에서도 기피대상 1순위이다.
그래서 나는 만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최저시급의 반의 반의 반도 받지 못하고 21개월간 강제노동하는, 군인이 되어야 했다.
입대하기 몇 주 전부터 삶의 의욕이 없어졌다.
입맛도 없어졌다.
병원에 가서 우울증 약을 처방받고, 형 집행일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하루하루를 공포에 몸부림치며 다가오는 입대 날짜를 기다렸다.
입대 당일이 되었다.
오후 2시,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훈련소로 들어갔다. 나는 교관들에게 짐짝처럼 다루어지며 소대와 분대를 배정받았다.
내 의사와 상관 없이 강제로 삭발을 당하고 나의 모든 행동을 통제받았다.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인 인권도 누릴 수 없었던 훈련병 생활을 끝마쳤다.
무거운 완전무장을 매일같이 짊어지고 훈련을 받은 탓인지, 허리 디스크가 더 심해진 듯 했다.
후반기 교육까지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밥은 제대로 먹지 못하는데 엄청난 양의 훈련을 소화한 탓에 두 달 사이에 살이 20키로나 빠졌다.
173cm의 키에 50kg.
두 달동안의 외부 소식이 궁금해서 나는 주말이 되자마자 사이버 지식 정보방에 달려가서 SNS에 접속했다.
"군대 갔다온 복학생 특징"이라는 영상이 SNS의 첫 번째 페이지에서 나를 반기고 있었다.
"군무새 극혐ㅋㅋㅋ"이라는 댓글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아 상단에 올라와 있었다.
스크롤을 내렸다.
다음 페이지에는 사회복무요원에 대해 여자 공무원이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군 복무 대신 일하는거면서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댓글 창을 열었다.
여성분들이 남성분을 태그한 댓글이 많았다.
댓글의 내용은 비슷했다.
"으 정공일듯ㅋㅋㅋ 너도 공익이잖아. 이러는거 아니지?ㅋㅋㅋ"
착잡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중대로 복귀하여 아픈 허리에 파스를 바르고 다음 주에 있을 대대전술훈련을 준비했다.
지옥같은 군생활이 이제 6개월이 지났다.
드디어 첫 휴가를 나간다.
중대에 인원이 부족해서 휴가 전날 새벽까지 위병소 근무를 서야 했다.
남자의 90%를 징병하는데도 왜 인원이 부족한걸까?
새벽 근무에 투입되어도 야간수당이나 초과수당은 당연히 없다.
피곤하지만 들뜬 마음으로 첫 휴가신고를 하고 부대 밖으로 나왔다.
300원도 안되는 시급을 받는 일병에게 KTX는 사치였다.
무궁화호를 타고 고향으로 향했다.
기차역에서 내리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 빈 자리가 많았다.
중간 자리에 가서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앉았다.
어제 새벽에 근무에 투입된 탓인지, 눈이 자꾸 감겨서 결국 종점까지 가고 말았다.
6개월만에 부모님을 만났다.
꿈만 같았다.
6개월만에 내 스마트폰의 전원을 켰다.
스마트폰을 만지는 것이 너무 어색했다.
SNS에 조금 전 버스에서 찍힌 내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군바리가 여자한테 자리양보도 안하네"라는 글과 함께.
첫 휴가의 두 번째 날, 동네 친구들을 만났다.
여자 동창이 군대 간 남자친구에게 이별통보를 했다고 한다.
자기는 너무 힘든데 남자친구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 반대 아닐까?' 속으로 생각했다.
여자 동창이 먹고싶을 때 먹고, 자고싶을 때 자고, 취미생활을 즐기는 동안 남자친구는 기본적인 인권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었을텐데.
21개월의 길고 길었던 군생활이 끝났다.
군대에서 PX도 가지 않고, 담배도 끊고, 외출도 나가지 않으며 모은 200만원의 적금을 손에 쥐고 대학교에 복학했다.
방학 한달만에도 충분히 모을 수 있을 수준의 금액을 스물 한달간 모았다.
같이 새내기 생활을 했던 여자 동기들은 졸업반이 되었고, 전문대에 진학했던 여자친구들은 수천만원의 연봉을 받는 직장인이 되었다.
이제는 나보다 높은 학년이 된 대학교 후배와 술자리를 가졌다.
"나 군대에 있는 동안 어떻게 지냈어?"
"저는 뭐 공부하고 자격증따고 인턴하느라 바빴죠."
"인턴했어? 요즘 인턴이 금턴이라면서. 인턴자리 구하기 힘들다던데."
"여성취업 지원센터에 연락했어요."
"잘했네. 이제 3학년 된거지?"
"네 등록금때문에 휴학할까 했는데 다행히 장학금 받았거든요."
"공부 열심히 했나보다"
"성적이 아주 좋진 않았는데 이공계 여학생 장학금 나왔어요."
2년 전처럼, 편치 않은 마음으로 마저 술을 마셨다.
이제는 여자 동기들도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 여자 동기와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와 천천히 결혼 얘기를 하고있다고 한다.
벌써?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20대 중반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집은 어떻게하려고?" 내가 물었다.
남자친구분이 집과 차가 있다고 한다.
하긴, 결혼 하려면 남자가 집이랑 차는 있어야겠지.
30살에 5000만원을 모았다고 말했다가 결혼정보업체에서 가입을 거절했다는 한 남성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공대생들 사이에서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모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해당 기업 홈페지이에 들어가 보았다.
여성 직원이기만 하면 무조건 받는 '여성수당'이 눈에 띈다.
취업 시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나는 매일 해당 공기업에 관한 기사를 검색해본다.
가장 아래에 있는 기사를 클릭한다.
군 경력을 인정해주는 것은 군필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적은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라는 이유로 민원이 많이 들어와서, 국가에서 공기업 군 경력 인정 제도를 폐지시켰다고 한다.
98년생 김민준
"장군감이네!"
세상에 처음 나온 그 순간부터, 갑옷을 입었다.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2003년의 유치원이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여자아이인 지영이와 나는 단지 내에 있는 유치원을 함께 다니던 친구였다.
어느 날 내가 네모난 블럭을 쌓으며 놀고 있던 때, 지영이는 실수로 내가 쌓아놓은 블럭을 무너뜨렸다.
나는 울었다.
당황한 지영이도 따라 울었다.
놀란 선생님이 뛰어오시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나는 울며 말했다. "지영이가..."
지영이도 울며 말했다. "민준이가..."
나와 지영이는 우느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선생님은 우리가 싸운 줄 아셨나 보다.
"민준아. 뚝! 남자아이가 돼서 울면 못써! 여자친구를 울리면 안되는거야. 남자답게 여자친구들한테 양보도 하고, 다음부터는 민준이가 먼저 나서서 지켜줘야 되는거야. 알겠지?"
어린 나이에 우느라 바빠서 선생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다 이해하진 못했다.
하지만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혼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명확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2006년, 나는 2학년이 되었다.
1학년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키도 작고 덩치도 작아 키번호 3번을 배정받았다.
키와 덩치를 보면 알 수 있듯, 나는 굉장히 몸이 약했다.
하지만 강해야만 했다.
새로운 친구들과 친해지기 시작하던 봄이었다.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현지"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책을 발견했다.
나는 그 주인공과 같은 이름을 가진 내 짝꿍에게 그 책을 보여주었다.
"이 책 봐봐! 여기에 현지 나온다!"
표지에 그려진 "현지"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일까?
내 짝꿍 현지가 울기 시작했다.
나중에 듣기로는 본인이 놀림받은 것으로 착각했다고 한다.
짝꿍이 갑자기 울자 당황한 나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유치원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남자는 울면 안된다고.
3년 전과 비슷한 이유로 나는 교무실에 불려갔다.
중년의 선생님의 눈에 비춰진 내 모습은, 짝꿍을 울린 못된 말썽꾸러기였다.
내 생애 첫 얼차려를 받았다.
엎드려 뻗치라는게 무슨 뜻인지 그 날 처음 배웠다.
억울했지만 참았다.
여자아이를 울린 내 잘못이니까.
3년 전, 선생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있었다.
교복을 입을 나이가 되었다.
무서운 선생님이 수업을 하시는 수학시간이었다.
나를 포함한 같은 반 친구들의 대부분이 준비물인 컴퍼스를 깜빡하고 가져오지 않았다.
우리는 복도에 나가서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는벌을 받아야 했다.
선생님께서 여학생들의 손바닥을 먼저 때리셨다.
톡, 톡.
이제 남학생들이 맞을 차례가 되었다.
부웅 퍽, 부웅 퍽.
남학생들은 1층에 쌓여있는 A4용지를 4층 교무실로 옮기는 벌을 추가해서 받았다.
한 친구가 선생님께 물었다.
"이건 왜 남자만 옮겨요?"
그 친구는 손바닥을 한대 더 맞았다.
사회 과목 수업시간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와 권리에 대해 배웠다.
그 중 국방의 의무와 병역의 의무에 대한 수업이었다.
병역 기피 혐의를 받는 연예인들에 대한 기사를 보여주시며 그 연예인들에게 욕을 하셨다.
"의무가 없는 사람이 의무를 기피한 사람을 욕할 자격이 있나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선생님께서는 노트북으로 "국방의 의무 축하해~"라는 노래를 부르는 광고 영상을 틀어주시며,
"남자들! 너희 미래야. 깔깔깔"
이라고 웃으며 말하셨다.
이번에는 손을 들고 선생님께 질문했다.
"국민의 의무라면서 왜 여자는 군대 안가요?"
결과는 뻔했다.
"여자랑 남자랑 같니?"
라는 대답과 함께 나는 찌질이로 낙인찍혔다.
기말 시험이 끝나고 방학을 기다리던 때에, 선생님들은 노트북에 있는 영화를 보여주신다.
제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재난 영화라는것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여자와 아이부터 구해!" 를 외치며 재난상황 속으로 뛰어드는 남자들.
여자 주인공을 구하고 장렬하게 죽고 만다.
미디어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여자의 생명은 귀하고, 남자는 그 귀한 생명을 지키는 것이 남자다운 것이라고 묘사되었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이 보급되었으며, SNS도 급격하게 발전하였다.
그 무렵 SNS에서 젊은 층에서 이슈가 되던 사항은 바로 데이트폭력과 여성혐오 범죄다.
그동안 우리가 무감각했지만, 화를 내거나 발을 구르거나 문을 세게 닫는 등의 행동 또한 데이트폭력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한다.
이러한 데이트폭력을 경험해본 여성의 비율은 과반이라고 한다.
또한 서울의 한 번화가에서 여성이 묻지마 살인을 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데이트폭력과 묻지마 범죄의 피해자들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중요치 않았다.
해당 범죄에서 가해자는 남자의 비율이 높고, 피해자는 여자의 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나는 '잠재적 범죄자'가 되어야 했다.
"여자라서 죽었다"
당시 유명해진 글귀다.
공감이 된다.
나도 6년 전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에 타고 있던 수병분들과 연평도 포격전에 참전했던 해병분들도 어쩌면, 남자라서 죽은 것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자친구의 추천으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80년대생 국군 장병들도 남자가 아니었다면,
연평해전에서 죽고 다치지 않고, 또래 나이인 김지영씨처럼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2002월드컵을 즐기고 있으셨을텐데.
착잡한 마음에 TV를 틀어 예능 프로그램으로 채널을 돌렸다.
여자 연예인이 남자 연예인을 때리는 것을 개그 소재로 삼고 있었다.
이번에는 남자 연예인이 조금 전 자신을 때렸던 여자 연예인에게 보복하려고 하는 장면이 나왔다.
예상했다시피, 그 남자 연예인은 '찌질이'가 되었다.
'폭력'의 정의란 무엇일까. 혼자 생각해보았다.
그 유명한 고3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입시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인서울'의 중위권에서 중상위권 수준에 해당하는 대학교에 합격할 수 있는 성적이었다.
나는 진학할 대학교를 선택할 때, 세 가지 조건을 염두에 두었다.
첫째, 공대가 서울에 있어야 한다.
둘째, 교통이 편리한 곳이어야 한다.
셋째, 캠퍼스가 아름다워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며, 내가 목표로 삼을 수 있을 정도의 성적대가 형성되는 대학교가 세 개 정도로 추려졌다.
신촌에 위치한 E여대, 용산에 위치한 S여대, 광진구에 위치한 K대.
누구나 알다시피 나는 남자라는 이유로 세 개의 학교 중, 두 학교에는 지원이 불가능했다.
경쟁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의문이 생겨 여대가 왜 탄생했고 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았다.
여대가 아닌 대학은 사실상 남자대학교이기 때문에 여대가 없으면 여자에게는 공정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다.
아니, 더 깊어졌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여자에게 공정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가?
20살이 되었다.
동갑의 여자친구들은 다들 기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남자친구들은 그렇지 않았다.
병역판정검사를 받으라는 통지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갓 20살이 된 나는 병무청으로 병역판정검사를 받으러 갔다.
나는 추간판 탈출증이라는 질환이 있다.
흔히 말하는 '허리 디스크'의 정확한 명칭이다.
상태가 꽤 심각해서 나는 오래 걷거나 앉아있지 못한다.
군의관님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군의관도 강제로 끌려온 입장이었다.
의대 여자 동기들은 의사로서 일하는 동안, 남자라는 이유로 군의관으로 끌려와서 엄청난 양의 업무를 소화하는 증이었다.
어쨌든 나의 신체등급은 3급. 마치 정육점의 고기처럼, 국가에서 내 신체를 평가했다.
현역 입영 대상자였다.
대학 동기들과 마지막으로 술자리를 가졌다.
한 여자동기가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래도 2년동안 쉬는게 어디야. 나는 쉬지도 못하고 스트레이트로 졸업해야되는데. 요즘 군대 편해졌다면서"
갓 스물 한살이 된 겨울날, 남자친구들과 여자친구들의 상태메시지가 달라진다.
박민재. "2018.01.22 ~ 2019. 09. 17"
이민지. "01.22~01.31유럽여행, 02.08수강신청"
나도 군인이 되었다.
되기 싫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군 미필 남성은 여권도 자유롭게 만들지 못하고, 기업에 취업할수도 없으며, 연애와 결혼시장에서도 기피대상 1순위이다.
그래서 나는 만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최저시급의 반의 반의 반도 받지 못하고 21개월간 강제노동하는, 군인이 되어야 했다.
입대하기 몇 주 전부터 삶의 의욕이 없어졌다.
입맛도 없어졌다.
병원에 가서 우울증 약을 처방받고, 형 집행일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하루하루를 공포에 몸부림치며 다가오는 입대 날짜를 기다렸다.
입대 당일이 되었다.
오후 2시,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훈련소로 들어갔다. 나는 교관들에게 짐짝처럼 다루어지며 소대와 분대를 배정받았다.
내 의사와 상관 없이 강제로 삭발을 당하고 나의 모든 행동을 통제받았다.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인 인권도 누릴 수 없었던 훈련병 생활을 끝마쳤다.
무거운 완전무장을 매일같이 짊어지고 훈련을 받은 탓인지, 허리 디스크가 더 심해진 듯 했다.
후반기 교육까지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밥은 제대로 먹지 못하는데 엄청난 양의 훈련을 소화한 탓에 두 달 사이에 살이 20키로나 빠졌다.
173cm의 키에 50kg.
두 달동안의 외부 소식이 궁금해서 나는 주말이 되자마자 사이버 지식 정보방에 달려가서 SNS에 접속했다.
"군대 갔다온 복학생 특징"이라는 영상이 SNS의 첫 번째 페이지에서 나를 반기고 있었다.
"군무새 극혐ㅋㅋㅋ"이라는 댓글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아 상단에 올라와 있었다.
스크롤을 내렸다.
다음 페이지에는 사회복무요원에 대해 여자 공무원이 불만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군 복무 대신 일하는거면서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댓글 창을 열었다.
여성분들이 남성분을 태그한 댓글이 많았다.
댓글의 내용은 비슷했다.
"으 정공일듯ㅋㅋㅋ 너도 공익이잖아. 이러는거 아니지?ㅋㅋㅋ"
착잡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중대로 복귀하여 아픈 허리에 파스를 바르고 다음 주에 있을 대대전술훈련을 준비했다.
지옥같은 군생활이 이제 6개월이 지났다.
드디어 첫 휴가를 나간다.
중대에 인원이 부족해서 휴가 전날 새벽까지 위병소 근무를 서야 했다.
남자의 90%를 징병하는데도 왜 인원이 부족한걸까?
새벽 근무에 투입되어도 야간수당이나 초과수당은 당연히 없다.
피곤하지만 들뜬 마음으로 첫 휴가신고를 하고 부대 밖으로 나왔다.
300원도 안되는 시급을 받는 일병에게 KTX는 사치였다.
무궁화호를 타고 고향으로 향했다.
기차역에서 내리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 빈 자리가 많았다.
중간 자리에 가서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앉았다.
어제 새벽에 근무에 투입된 탓인지, 눈이 자꾸 감겨서 결국 종점까지 가고 말았다.
6개월만에 부모님을 만났다.
꿈만 같았다.
6개월만에 내 스마트폰의 전원을 켰다.
스마트폰을 만지는 것이 너무 어색했다.
SNS에 조금 전 버스에서 찍힌 내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군바리가 여자한테 자리양보도 안하네"라는 글과 함께.
첫 휴가의 두 번째 날, 동네 친구들을 만났다.
여자 동창이 군대 간 남자친구에게 이별통보를 했다고 한다.
자기는 너무 힘든데 남자친구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 반대 아닐까?' 속으로 생각했다.
여자 동창이 먹고싶을 때 먹고, 자고싶을 때 자고, 취미생활을 즐기는 동안 남자친구는 기본적인 인권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었을텐데.
21개월의 길고 길었던 군생활이 끝났다.
군대에서 PX도 가지 않고, 담배도 끊고, 외출도 나가지 않으며 모은 200만원의 적금을 손에 쥐고 대학교에 복학했다.
방학 한달만에도 충분히 모을 수 있을 수준의 금액을 스물 한달간 모았다.
같이 새내기 생활을 했던 여자 동기들은 졸업반이 되었고, 전문대에 진학했던 여자친구들은 수천만원의 연봉을 받는 직장인이 되었다.
이제는 나보다 높은 학년이 된 대학교 후배와 술자리를 가졌다.
"나 군대에 있는 동안 어떻게 지냈어?"
"저는 뭐 공부하고 자격증따고 인턴하느라 바빴죠."
"인턴했어? 요즘 인턴이 금턴이라면서. 인턴자리 구하기 힘들다던데."
"여성취업 지원센터에 연락했어요."
"잘했네. 이제 3학년 된거지?"
"네 등록금때문에 휴학할까 했는데 다행히 장학금 받았거든요."
"공부 열심히 했나보다"
"성적이 아주 좋진 않았는데 이공계 여학생 장학금 나왔어요."
2년 전처럼, 편치 않은 마음으로 마저 술을 마셨다.
이제는 여자 동기들도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 여자 동기와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와 천천히 결혼 얘기를 하고있다고 한다.
벌써?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20대 중반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집은 어떻게하려고?" 내가 물었다.
남자친구분이 집과 차가 있다고 한다.
하긴, 결혼 하려면 남자가 집이랑 차는 있어야겠지.
30살에 5000만원을 모았다고 말했다가 결혼정보업체에서 가입을 거절했다는 한 남성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공대생들 사이에서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모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해당 기업 홈페지이에 들어가 보았다.
여성 직원이기만 하면 무조건 받는 '여성수당'이 눈에 띈다.
취업 시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 나는 매일 해당 공기업에 관한 기사를 검색해본다.
가장 아래에 있는 기사를 클릭한다.
군 경력을 인정해주는 것은 군필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적은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라는 이유로 민원이 많이 들어와서, 국가에서 공기업 군 경력 인정 제도를 폐지시켰다고 한다.
울고 싶다.
하지만, 울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