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청춘물 썼는데 읽고 평가 좀 해주라

ㅇㅇ20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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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찐한 것은 무엇이던 간에 자국을 남기고.



'유현. 강유현.'

종이 위에 이름을 끄적였다. 처음 한 번은 흐릿하게, 두 번째는 꾹꾹 눌러담아. 날이 건조해서 그런가, 샤프심이 종이와 닿아 버석거렸다.

내가 빚어낸 작은 소음에 내가 놀랐다. 순간적으로 삐끗, 하며 샤프심이 글자를 엇나갔다. 소리가 이렇게 컸었나, 혹은 내가 왜 남의 이름을 썼나. 금새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행동에 계속해서 물음표가 이어진다. 아까까지만 해도 잠잠하기만 하던 속내가 소란스러워졌다.


황급히 정신을 차려 주위를 힐끗대니, 이미 다들 수업 진도에 따라 책이 한 장 넘어가 있었다. 그 모습을 또 헤, 하며 바라보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깜짝 놀라 곧바로 책 쪽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눈 앞에 대문짝만하게 보이는 낙서들을 지우개로 빠르게 지워냈다.

습기 하나 없는 문제집이 만들어내는 소음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내게는 천둥이 치는 소리마냥 세차게 귓전을 두드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빠르게 종이를 한 장 넘겼다. 뒷장엔, 두 번째로 적었던 이름 세 글자의 자국이 남았다. 오돌토돌한 그 질감을 쓸며 꾹 눌러보지만, 좀전에 깊게 패였던 탓인지 쉽게 뭉그러지지 않았다.

두 번째로 적은 이름과 달리 첫 번째의 것은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기실 내가 바랐던 것이었는데. 결국 흘리듯 쓴 글씨는 어떠한 것도 담지 못했다는 사실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sinX를 X로 나눈 값의 극한값은•••"


웅웅거리며 한껏 돌아가고 있는 히터에 눈꺼풀이 무겁다. 히터 바로 아래에서 따뜻한 바람을 맞아서인가, 뇌가 녹진하게 흘러내리는 상상을 했다. 다소 섬뜩한 상상이었기에 생각은 그 상태로 멈췄다.


열려있는 귓구멍으로 나이든 선생님의 설명이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반대쪽 귀로 안녕, 하고 나간다. 히터가 작동하며 내는 얕은 진동에 선생님의 말소리는 쉽게 묻히고 말았다. 눈꺼풀의 매달린 잠기운이 점점 무거워졌다.


"•••현아, 김아현ㅡ"

듣기 좋은 속삭임이 귀를 간지럽혔다. 다정한 음성은 고저 없이 나긋하기만 하다. 울림이 큰 목소리는 소리를 죽여 이름 석 자를 부르고 있었다. 몽롱하니 가만히 눈만 껌벅일 뿐이었다.

"••••••현."

아 맞다. 김아현. 내 이름.

스타카토처럼 끊어지는 생각은 좀처럼 이어질 줄 몰랐다. 허우적거리고 싶은 기분에 내 이름을 입 밖으로 냈다. 웅얼거리며 뻐끔대고 있는 난, 아직도 꿈과 현실을 오가고 있던 중이었다.


교실을 둘러보시곤 혀를 차던 선생님께서 갑자기 칠판을 쾅 내려쳤다. 그 순간 선잠에서 깼다. 깨어나면서 깜짝 놀라다 못해 펄떡거렸기에, 얼굴을 바치고 있던 손이 어긋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온 몸이 흐물거리는 상태로 받침대마저 사라진 머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책상으로 고꾸라졌다. 그제서야 아차, 하며 정신을 붙잡았을 땐 이미 늦어 할 수 있는 거라곤 눈을 꽉 감는 것 뿐이었다. 그저 꽉, 책상을 부술 각오로.


그러나, 빠르게 무너지는 머리는 책상과 부딪히며 챱, 하는 소리를 냈다.

챱, 이라니. 의문스러운 소리의 출처에 대한 궁금증에 살며시 눈을 떴을 때, 내 이마와 책상 사이엔 유현의 오른손이 자리잡고 있었다.


동시에, 왼쪽에서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작은 한숨 소리에는 약간의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이윽고 옅은 웃음 소리가 두어 번 공기를 울렸다.


내 머리를 받치고 있는 손은 손바닥만으로도 내 이마의 대부분을 덮을 정도로 큰 편이었다. 그 새삼스러움에 놀란 것도 잠시, 얼떨떨해 하며 좀전의 손이 불쑥 튀어나왔던 왼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와중에도 뜨끈하게 열이 몰린 이마는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이마로 체감하기에, 체온이 높은 편인 듯한 네 손바닥도 여전히 뜨거웠다.


네 얼굴엔 짧은 당혹감이 스쳤다. 아마 내가 고개를 돌릴 것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인 듯 했다. 그러나, 짧은 당황은 눈 깜박이는 사이에 자취를 감췄다.


그후 곧바로 자리잡은 것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넌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내게 말을 건넸다.

'세 이 프!'


다행이라는 듯 웃는 널 고요히 쳐다봤다. 씨익 웃는 네 모습은 무척이나 반짝였다. 그러니, 별 수 없었다.


난 고작 이름 세 글자 썼을 때보다 소란스러워진 속과 여전히 맞닿아 있는 이마에서 느껴지는 열감이 네 손바닥의 온기에 묻히길 빌었다.


내 방황하는 시선은 입꼬리에서부터 볼 한쪽에 패인 보조개로까지, 길을 잃은 순간조차도 널 향하고 있었다.


허파가 간질간질하고, 속 안의 무언가가 터질 것 같이 부풀어오르는 느낌이 지나치게 생경하다.


이 모든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몇 초였다.

참 기분 좋은 패배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하, 웃으며, 다시 네 손바닥으로 얼굴을 묻었다.

이마를 통해 전해지는 네 맥박이 조금씩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난 잠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