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1층은 화재를 금방 알아채 대피했고 3층 NBA당구장에 있던 사람들도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면서 부상자는 있었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모든 사망자는 2층 호프집에 집중되어 있었다.
당시 호프집은 마침 학교 축제가 끝난 뒤 뒤풀이를 하던 인천 지역 고등학생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사망자 대부분도 이들이었다.[4] 이 때는 인천 지역 고등학교 축제가 몰려있던 시즌이었는데, 축제가 끝난 직후라 모두 학생임을 드러내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이 때문에 사고 후에도 계속 질타가 나오게 되었다.
특히 사고가 난 동인천 권역에는 여러 학교들 주변에 유흥가가 많았던 것도 문제이다. 당시 뉴스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마땅히 놀 곳이 없다"라며 한탄하는 해당 지역 학생 인터뷰도 있었다.
사용 가능한' 비상구가 있었다면 이 정도로 심각한 사망자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불 자체는 이미 화재 시작 후 30분 만에 진압되었고 모두 비상구로 탈출하는 일만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있던 비상구를 베니어 합판으로 막아버렸고 내부 수리를 하면서 창문도 개폐식이 아닌 통유리로 바꾼 데다가, 간판으로 쓰려고 모두 판자를 붙여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것 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호프집이 2층이었기에 창문에서 뛰어내린다면 어딘가 부러지기는 하더라도 최소한 죽지는 않았을 상황이었다.[5]
거기다가 호프집 주인[6]의 정신나간 조치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화재로 고등학생들이 빠져나가려고 하자 대왕코너 화재사고 때처럼 "돈 내고 나가라."라며 유일한 출입구를 막은 것이다. 결국 마지막 출입구까지 봉쇄된 채 유독가스에 노출된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질식사하였다.
1999년 10월 30일 오후 6시 55분에 인천광역시 중구 우현로83번길 10(인현동 27-43)에 있는 '라이브2 호프집'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 사고.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가 일어난 후 4개월 밖에 안 된 시점에서 일어난 사고로, 사망 56명, 부상 78명의 대참사로 정부 수립 이래 3번째 규모의 대형 화재 사고였다.[1]
인천 최대의 유흥가였던 동인천역 인근의 구도심 상권은 이 사고가 터져버림으로써 상권은 물론 도심마저 구월동과 관교동으로 넘어갔으며, 타격이 동인천역뿐만 아니라 주안역과 동암역의 상권까지 영향을 줘서, 결국에는 세 지역 상권은 같이 망하고, 원도심의 위치도 자연스럽게 무너졌다. 다른 도시의 원도심과 다르게 인천 원도심에 해당하는 중구와 동구가 무척 피폐한[2]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월호선장도 울고갈 고등학생 학살범 ㄷㄷㄷ
다행히 1층은 화재를 금방 알아채 대피했고 3층 NBA당구장에 있던 사람들도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면서 부상자는 있었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모든 사망자는 2층 호프집에 집중되어 있었다.
당시 호프집은 마침 학교 축제가 끝난 뒤 뒤풀이를 하던 인천 지역 고등학생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사망자 대부분도 이들이었다.[4] 이 때는 인천 지역 고등학교 축제가 몰려있던 시즌이었는데, 축제가 끝난 직후라 모두 학생임을 드러내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이 때문에 사고 후에도 계속 질타가 나오게 되었다.
특히 사고가 난 동인천 권역에는 여러 학교들 주변에 유흥가가 많았던 것도 문제이다. 당시 뉴스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마땅히 놀 곳이 없다"라며 한탄하는 해당 지역 학생 인터뷰도 있었다.
사용 가능한' 비상구가 있었다면 이 정도로 심각한 사망자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불 자체는 이미 화재 시작 후 30분 만에 진압되었고 모두 비상구로 탈출하는 일만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있던 비상구를 베니어 합판으로 막아버렸고 내부 수리를 하면서 창문도 개폐식이 아닌 통유리로 바꾼 데다가, 간판으로 쓰려고 모두 판자를 붙여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것 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호프집이 2층이었기에 창문에서 뛰어내린다면 어딘가 부러지기는 하더라도 최소한 죽지는 않았을 상황이었다.[5]
거기다가 호프집 주인[6]의 정신나간 조치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화재로 고등학생들이 빠져나가려고 하자 대왕코너 화재사고 때처럼 "돈 내고 나가라."라며 유일한 출입구를 막은 것이다. 결국 마지막 출입구까지 봉쇄된 채 유독가스에 노출된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질식사하였다.
1999년 10월 30일 오후 6시 55분에 인천광역시 중구 우현로83번길 10(인현동 27-43)에 있는 '라이브2 호프집'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 사고.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가 일어난 후 4개월 밖에 안 된 시점에서 일어난 사고로, 사망 56명, 부상 78명의 대참사로 정부 수립 이래 3번째 규모의 대형 화재 사고였다.[1]
인천 최대의 유흥가였던 동인천역 인근의 구도심 상권은 이 사고가 터져버림으로써 상권은 물론 도심마저 구월동과 관교동으로 넘어갔으며, 타격이 동인천역뿐만 아니라 주안역과 동암역의 상권까지 영향을 줘서, 결국에는 세 지역 상권은 같이 망하고, 원도심의 위치도 자연스럽게 무너졌다. 다른 도시의 원도심과 다르게 인천 원도심에 해당하는 중구와 동구가 무척 피폐한[2]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인이
탈출하려는고딩 못나가게
출구 틀어막고
살고싶으면 돈을 내라 시전ㄷㄷㄷㄷ